<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맨 마지막 장에서 저는 이미 ‘밈mem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분들은 ‘밈‘과 비슷한 뜻을 담은 용어, 예컨대 ‘문화유전자‘ 등을쓰기도 했죠. 여기서 ‘밈‘이란 인간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데요, ‘기억memory‘이나 ‘모방imitation‘의 ‘m‘과 ‘유전자gene‘에서 따온 ‘eme‘를 합성해 만들었습니다. ‘대물림 가능한 정보의 기본 단위‘, 또는 ‘문화와 관련된 복제의 기본 단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예를 들어 감미로운 멜로디, 축구에대한 광적인 집착, 인종 편견, 요리법 등은 한 인간에서 다른 인간에게로 복사되는 밈의 사례입니다. - P241

제가 셋째 날, 이기적 유전자에서 어떻게 이타적인 개체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면서 인간이 유전자의 운반자vehicle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전자뿐 아니라 밀도 운반하고 전달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때로는 유전자의 ‘명령‘과의 ‘명령‘이 상충하기도 합니다. 가령 독신이나 만혼의 예를 생각해봅시다.
현대 사회에서 이 밈들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요. 주로 교육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밈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유전적 적합도를 생각해봅시다.
분명히 적합도는 낮아집니다. 그럼에도 밈들은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지요.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밈이마치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이기적 유전자> 초판의 맨 마지막 문장을,
"우리만이 이기적 유전자의 독재에 항거할 수 있다"고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제 이론을 ‘이기적유전자 이론‘이라고 하지 말고, 밈까지를 포괄한 이론으로서 아예 ‘이기적 복제자 이론‘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 P242

그렇다면 정신 바이러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정보를 복제하는 기자입니다. 인간의정신은 세포와 컴퓨터만큼이나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컴퓨터가 본래의 작동을 멈추고 그 바이러스의 명령에 따라 작동하듯이, 정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은 그 바이러스를 더 많이 퍼뜨리는 방식으로자신의 행동을 수정하게 됩니다.
왜 종교가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일까요? 제 이론은 이렇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이면 대개 의심을 하지 않죠.
진화론적으로는 다 이해가 가는 행동입니다. 아이들은 언어를배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습을 배워야 하죠. 또 그러려면 여러 규칙들을 배울 필요가 생깁니다.  - P244

이 코드들은 대개 부모의 가르침으로 자식에게 전달됩니다. 가령 이슬람교인 부모 밑에서 자란아이들은 대개 이슬람교인이 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종교가 일치할 개연성은 실제로 상당히 높지요.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주저앉는 모습을 여기 앉아 계신 모든 분이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도대체 왜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테러가 자행되었을까요? 저는 감히,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치는 종교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측면에서 분석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모두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디언》에 ‘종교의 오발탄‘이라는제목의 글로 제 생각을 알렸죠.
만일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자살 테러 같은 것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고,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겁니다. 사후세계에 집착하는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입니다! 감사합니다. - P245

굴드 : 종교는 정신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치료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도킨스 교수의 생각에는 종교에 대한 그의 무지가 잘 드러납니다. 또한 죄송한 말씀이지만, 과학의 역사에 대한 공부도 더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흔히들 과학과 종교, 예컨대 진화론과 기독교는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즉 진화론이 맞으면 기독교는 잘못된 것이고, 기독교가 진리라면 진화론은 거짓이라고말이죠. 하지만 종교와 과학은 각자 자기만의 탐구 영역과 방법론, 그리고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과학은 사실에 대한 경험적 탐구인 반면 종교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도덕에 관한 담론입니다. 여기 칠판에 그린 두 원처럼 두 세계는 서로 만나는 지점이 없습니다. (앉아 있는 도킨스 교수를 바라보며)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대부분의 과학자와 종교 지도자가 바로 이런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 심지어 다윈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성을 충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과학만큼이나 종교도 필요합니다. 9·11테러가 종교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했다는 발상은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킨스 같은 영향력 있는 학자가 역사적 사건을 그렇게 단순한 인과관계로 본다는 사실에서우려를 금할 수가 없네요. - P247

굴드 : 우선, 자연선택은 유전자의 수준부터 개체, 개체군, 종, 심지어 종 이상의 분류군 수준에서도 작용합니다. 이건 단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예컨대 종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어떤 것들은 그 종을 망하는 길로 이끌지만, 다른 특성들은 오히려 그 종을 더욱 번성케 합니다. 만약 어떤 종이 풍부한 변이성을 지닌 유전자 풀로구성되어 있다면, 그 좋은 그런 특성 때문에 그렇지 않은 종보다 환경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죠. 또한 구성원들이넓게 분포되어 있는 종들은 좁은 서식지만을 갖는 종들에 비해변화에 대한 완충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멸종으로 쉽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종 선택species selection은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일어납니다. 다윈과 도킨스 모두가 간과한 부분이죠. - P254

굴드 :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theory‘ 이 미국 개신교 사회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저도 잘 압니다. 진화론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창조론자들이 제 ‘NOMA‘ 원리를제발 좀 이해하고 수용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원리에 대해 뭐라고 했습니까? 종교는 가치와 의미만을 얘기할 뿐 객관적실재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창조론자들은 정확히 이 원리를 어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마치 객관적 사실인 것 마냥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 어디에서 창조에 대한 ‘어떻게how‘를 얘기한단 말입니까? 창세기는 인류 탄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아시아 지역의 신화일 뿐입니다. 창조론자들과 괜히 과학적인 주제들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봤자 그들이 견해를 바꾸지도 않을 거고요. 그저 "너나 잘하세요!" 하고 충고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죠. 그런 충고가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계속 늘어나니.
굴드 : - P259

이런 구분에 따르면, 어떤 서열이 능동적 복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제본을 남기기 위해 다른 서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제자들끼리 ‘이기적‘경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DNA 서열을 동일한 길이의 다른서열로 대체시키면 그 서열을 담고 있는 유기체의 적합도가 변화되거나 그 서열이 다른 서열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경우 (예컨대 ‘감수분열 분리비틀림 meiotic drive‘과 같은 경우)에 그 DNA 서열은 유전자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진다. 그것은 복제자의 일차적인 목표가 자기 자신의 사본을 더 많이 남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유전자가 어떤 의도나 의식을 갖고서 그런일을 한다는 뜻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도킨스는 그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기성 selfishness‘ 이라는 단어가 (분자들의)행동적 차원이지 심리적 차원이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 P282

생물철학자 킴 스티렐니와 필립 키처도 도킨스의 것과 유사한 유전자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들은 유전자 선택론의 타당성이 비판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전자는 차이 제조자difference maker 이며 그것이 만드는 차이들 덕분에 유전자는 선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떤 대립유전자를 갖고 있음으로 인해 표준적 환경에서 푸른색 눈보다는 갈색 눈이 나올 개연성이 더 높아진다면 그 대립유전자는 ‘갈색눈을 위한 대립유전자‘로 불릴 수 있다. 이것이 차이를 만드는 자원으로서의 유전자 개념이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만드는 이런 차이 때문에 자연선택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상이 유전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P283

 왜냐하면 "유전자가 그 자신의 복제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을 넘어서
"그 유전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개체들마저도 자신의운반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주장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 확장된 표현형의 사례들은 적지 않다. 그중에는 기상천외한 것들도 있다. 예컨대 숙주인 게에 딱 달라붙어서 자기 자신을 단세포 상태로 변형을 시킨 다음 그게 속에 잠입하는 조개삿갓의 경우를 보자. 기생자인 조개삿갓은(만약 숙주가 수컷이라면 게를 생화학적으로 거세하고 암컷화한 다음 숙주가 기생자인 자신의 알을 돌보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버린다. 기생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숙주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는 광경이다. 어이없이 당하는 숙주의 모습은 기생자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인 셈이다. - P286

자연선택이 도대체 뭐기에 창조자로서의 신의 자리마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도킨스는 자연선택을 시계공에 비유한다.
여기까지는 페일리와 똑같다. 하지만 그 시계공이 장님이란다.
즉 생물의 진화 과정은 시계공이 설계도에 따라 부품들을 조립하듯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설계도도 볼 수 없는 장님이 손을더듬으며 부속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명체들을 보면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상일 뿐 실제의 자연선택은 앞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절차를 계획하지도 않으며 목적을 드러내지도않는 그런 과정이다. 그렇다면 그런 눈먼 시계공이 과연 인간의복잡한 눈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박쥐의 반향 위치 결정 능력이 과연 그런 미덥지 않은 과정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도킨스는 아무렇게나 자판을 두들겨 특정한 문장을 만들 개연성을 실제로 계산해보는 방식으로 답을 한다. 이때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우연히 맞춘 알파벳은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단지 몇십 번만 반복되어도 특정한 뜻이 담긴 문장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는 복잡한 기능의 생명체가 진화할 확률이 마치 고철더미 위에 태풍이 분 후에 보잉 747 이 만들어질 확률과 비슷하며 그것은 명백히 0‘이라는 창조론자들의 해묵은 비판에 맞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결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논박하고 있는 셈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선택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주장은 오해일 뿐이다. 그 과정은 오히려 무작위적인 변이 생성을 추려주는 누적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그의 논리대로라면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놀라운 적응 형질들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자연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진화가 가능하다. - P292

 하지만 우리집강아지가 갑자기 껑충껑충 뛰는 행동, 옆집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물리법칙 혹은 설계원리만을 들이댄다고해서 이해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닛은 바로 이 대목에서 ‘지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행위자가 어떤믿음과 욕구를 가지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는 그런 자세 말이다. 데닛의 용법으로는 유전자와 밈은 지향체계intentional system이고 우리는 지향적 자세로 그것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더 이상 유전자와 밈의 비유비적disanalogical 요소 때문에 걱정할필요가 없다.
이 지향성 이론을 종교 현상을 이해하는데 사용해보면 어떤결과가 나올까? 이런 접근에는 크게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virus of mind‘로 이해하는 도킨스의 견해와다른 하나는 종교를 ‘길들여진 밈domesticated meme‘으로 해석하는 데닛의 견해다. - P302

그렇다면 왜 도킨스는 종교가 정신 바이러스라는 것일까? 종교적 세계관에 감염된 신앙인들이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보기때문일까? 물론 그는 그동안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온갖 비인도적 만행들을 또 한 번 들춰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논증은 조금 더 과학적이다. 우선 그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달되는 수직적 믿음에 대해 주목한다. 아이는 어른의 말과 행동을 - P303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존재다. 유아기 시절 부모의 지속적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아야만 생존이 가능한 인간 종에게 있어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무작정 따라하고 배우는 능력은 진화적으로도 매우 유용한 형질이었을 것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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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게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인종차별을 피하기 위해 복합적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겉
모습을 따라 ‘백인‘인 척 행동한다. 낙인을 피하기 위해 사회가 ‘정상‘ 또는 ‘주류‘로 여기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를 어빙 고프먼은 패싱passing 이라고 부른다. 성소수자는 패싱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대개 본인이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성소수자가 굳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coming"out은 이상해 보일수 있다. 본인 스스로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니 말이다. 개인의 성적지향(누구에게 끌리는가)이나 성별정체성(자신의 성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이 지극히 사적인 정보라는 점에서기본적으로 이것을 대중에게 공개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보면 성별, 나이, 인종, 장애, 경제적 수준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지극히 사적인 특성들이다. 사실은 공적인 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차별이 사적인 개인의 특성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왜 사적 특성을 공적 영역에서 드러내느냐?"라는질문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실제로는 특정한 사적 특성만을 받아들이고(예로 남성, 성인, 이성애자), 특정한 사적 특성은 그 이유로 거부하기 때문이다(예로 여성, 아동, 동성애자).
- P140

사라 아메드 Sara Ahmed는 감정이 단순한 심리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규범에 투하한 일종의 자본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부정적감정을 투자한 결과는 좋지 않다. 혐오는 정동적 경제affective economy를 순환하며 부정의를 생산한다. 혐오가 생산하는 부정의는 때로 폭력의 형태를 띤다.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의 반대는 단지 언어에 그치지 않았다. 차량을 파손하고 사람을 밀치고 때리며 깃발을 빼앗아 부수는 범죄행위였다.
이를 증오범죄hate crime, 다른 말로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bias-motivated crime 라고 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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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미국의 이야기는 엄청난 악으로 여겨지는 부끄러운 인종분리의 역사가 어찌 보면 사소한 ‘불쾌한 감정‘에서 시작될 수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진다. 안타깝지만 법과 규범 없이 개인들의 자발적 합의를 통해 평등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평등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우리 감정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P127

 한나 아렌트Hannah Arendi 는 아고라에서의정치적 평등이 사적 영역에서의 엄격한 위계와 지배를 전제로 했다고 말한다. 가장이 아고라에서 누리는 자유를 위해 사적 영역인가정은 희생되어야 했다.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모든‘ 사람의 평등이란 이 아고라에 모든사람이 입장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오늘날 누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을 가지며, 누가 사적 영역에 남도록 요구되는가? 성별, 장애, 나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국적, 출신 민족 등 개인의 특성들은 아고라에 입장하기 위한 기표로 작동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 기표에 따라 입장 여부가 결정된다. 누군가는 그 기표 때문에 입장을 거절당한다. 그리고 사적영역에 남도록 돌려보내진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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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리지 : 그렇죠.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화석기록이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이아니라 실제로 불연속적인 변화들, 다시 말해 격변들이 지질학적인 과거에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이죠. 고생물학자들이 다윈이후로 100년이 넘게 연구를 거듭했지만, 대부분의 화석기록은여전히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줄뿐입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저와 굴드는 1972년에 <단속평형 : 계통적 점진론에 대한 대안Punctuated equilibria: an alternative to phyletic gradualism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생물 종들이 오랜정체기를 거친 후에 급격하게 진화한다는 내용이었죠.
- P174

도킨스 : 두 분께서 단속평형설을 부각하려고 짜놓은 위와 같은 문제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두 분께서는 진화의 템포에 대한 입장을《출애굽기》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인 ‘등속설same speedism‘과 ‘단속평형설‘로 이분해놓고 사람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다윈 자신뿐만 아니라 저같이 극단적인 점진주의자도 등속설을 주장한 적이 없어요. 도대체 왜 허수아비를 세워놓고공격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좀 전에 단속평형설의 증거를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그런 사례들보다는 점진론의 증거들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웨일스지방에서 발견된 오르도비스기의 삼엽충Ordovician trilobite 화석은 점진적 진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혁명가라도 된 듯이 말씀하시는데, 진상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네요. - P177

길버트 : 아뇨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바로 진화생물학자들의 편견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변이를 생산하는 발생 메커니즘은 마치 블랙박스처럼 취급되어 왔죠. 모두 근대적 종합의 영향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사정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루이스가발견한 호메오박스의 경우, 초파리의 모든 세포 내에서 전사 과정의 스위치를 정교하게 작동시킴으로써 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스터 스위치 역할을 담당하죠. 이후에 초파리와 쥐, 심지어 인간 배아의 발생 과정을 동일한 방식으로 통제하는 혹스 유전자들이 발견됩니다. 이 발견은 발생학이 진화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죠. 혹스 유전자들에서 변이가 생기게 되면, 다른 유전자들에서 변이가 생기는 경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생 과정에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초파리, 쥐, 인간의 경우처럼 계통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종들 간에도 이 혹스 유전자들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에요. 가령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좀 더 많은 혹스 유전자가 있고 그 안에서 좀 더 다양한 변이를 가질 뿐입니다. 비유컨대 같은 종류의 레고들을 가지고 좀 더 복잡한 인간을 만들었을 뿐 기본 골격과 구조는 같다는 얘깁니다. 블랙박스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죠.
- P194

굴드: 하지만 문제는 건전한 상식도 종종 틀린 것으로 판명이난다는 점이겠죠. 복잡성complexity 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생명이 진화해왔을 것이라는 상식적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윈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생명의 진보를 ‘복잡성의 증가‘에서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즉 생명의 진화는 복잡성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trend 를 보이며, 이 복잡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생명의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이건 환상에 지나지않습니다. 생명에는 그런 추세가 없거든요! 단지 변이의 폭만 증가했을 뿐입니다. - P213

굴드 : 사실 생명의 역사에서 절반 이상은 박테리아의 독무대였습니다. 화석기록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형태들만 고려한다면 박테리아는 최소 복잡성의 왼쪽 벽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생명은 박테리아 형태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죠. 그런데 박테리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어요. 즉 박테리아는 태초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생명의 진화 역사에서 복잡성의 평균값은 증가했을 수 있지만 앞의 그래프처럼 몹시 기울어진 분포 곡선에서는 그 값이 중심 경향성을 대변해주지 못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최빈값이 더 적합한 척도가 되죠. 그값에 해당하는 박테리아는 언제나 생명의 성공을 잘 대변해주는 셈입니다. 따라서 진화 역사의 몸통에 해당하는 박테리아를 간과한 채 꼬리 끝에 붙은 한 움큼의 털에 불과한 인간만 보고 복잡성 증가를 진화의 추세로 삼는 것은 꼬리로 몸통을 흔들려는 잘못된 시도예요.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되었다는 믿음은 통계적인 환상일 뿐입니다. - P216

서트마리 : 아까 라우프 교수가 이리듐 양이 충돌 이론을 지지해주는 좋은 증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대규모의 화산 활동도 왜 이리튬이 특정한 지층에 많이 분포하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이리듐은 외계에도 흔하지만 용암에도 적지 않게 함유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리듐 증거만으로는 화산 폭발이나 소행성 충돌 중에 어떤 것이 공룡을 멸종시킨 원인인지를 가려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충돌설과 화산 폭발설을 동시에 받아들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 P221

굴드 : 그래서 저는 생명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지구 역사의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들어보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곤 합니다. 저는 ‘인류와 같은 존재도 없었을 것이고, 전혀 다른 생물군이 나왔을 것‘이라고 답을 하죠. 생명의 역사에서 우발성은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이 우발성이야말로 생명의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이지요. 피트니스fitness 센터에서 매일 몸을 만드는 사람이라도, 자동차 사고라는 우발적사건 앞에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굴드의 말장난이 또 한 번 작렬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적합도를 ‘피트니스fitness‘라고 한다. 굴드가 위에서 든 피트니스 센터사례는 ‘피트니스‘를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큰 ‘사고‘ 한 번이면 끝난다는 얘긴데, 생명의 역사에서 ‘적응‘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바로 ‘우연‘이라는 주장을 말장난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 P223

메이너드 스미스 : 분수령이 되는 사건들이 최소한 여덟 차례 발생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와 서브마리 교수가 함께 쓴 《진화의 대전환The major transitions in evolution》(1995)에 나와 있는데요. 간단히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 복제 분자 원시 세포 속의 분자군
2. 독립적 복제자→ 염색체
3. 유전자와 효소로서의 RNA → DNA와 단백질
4. 원핵세포→ 진핵세포
5. 무성생식적 클론→ 유성생식적 개체군
6. 원생생물→ 동식물과 균류
7. 고독한 개체→ 군체
8. 영장류 사회→ 인간사회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한 번 전환이 일어나면 거의 되돌릴 수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다세포생물은 단세포 자손을 가질수 없으며 진핵생물은 원핵생물 자손을 낳을 수 없는 식이죠.
이런 의미에서 굴드 교수님이 아까 비유하신 술꾼 모형은 생명의 진화 모형으로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전환 문턱들을 넘기까지는 무작위적으로 비틀거릴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그 문턱을 넘어서서 생명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면 그 이전 과정으로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 P226

도킨스 : 진화의 역사에서 생명의 무한한 변이 공간이 점점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생명의 미래는 그공간에 있습니다.
굴드 : 생명의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박테리아의 세상일 뿐입니다. 진보는 착각이에요. 다양성만 늘었을 뿐입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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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P99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법무사 시험에서 문제지. 답안지와 시험시간을 모두에게 똑같이 주면,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제과제빵실기시험에서 모든 참가자에게 똑같이 수어통역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청각장애인에게 불리하다. 공무원 필기시험에서 다른 수험생과 똑같이 메모 대필을 허용하지 않으면, 뇌병변장애인에게 불리하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indirect discrimination의 예들이다.
내가 유학을 한 학교에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시험시간이 1.5배 더 길게 주어졌다. 로스쿨이니 당연히 언어가 중요하지만 시험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마련된 정책이었다. 이 규칙 덕분에 비영어권 유학생이영어 때문에 일찌감치 시험을 포기하거나 늘 가장 낮은 성적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많은 기준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취업에서 토익 점수의 요건은 어떤가? 청각장애인 외에는 문제없는 공정한 기준일까? 꼭 필요한 직무능력이 아닌데도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높은 영어 성적을 요구함으로써, 영어 접
근성이 좋은 사회계층 혹은 특정한 학력이나 학벌을 가진 사람을 유리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는 않은가? - P110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니 왜일까? 자신이 편향되지 않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브누아 모닌 Benoit Monin 과 데일 밀러 Dale Miller 의 실험에서도 성차별적인 발언에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 남성을 선호하는 행동을 더 거리낌없이 표출했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기에 더욱 편향되게 행동하는 이 현상을 카스티야와 버나드는 "능력주의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 이라고부른다. - P112

그런데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진상‘ 손님이 성인 남성이라면 과연 ‘성인 남성 금지‘라는 표지판을 내세울까? 이런 ‘진상‘ 손님이 인근의 대기업 직원이라면어떨까? ‘○○기업 금지‘라며 모든 사원의 입장을 거부할까? 이런상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반면 외국인에 대해서는 ‘그냥‘ 싫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국인 전용‘이라고 붙일 수 있다. 왜 어떤 집단은 특별히 잘못이 없어도 거부되는데, 어떤 집단은 개별적으로만 문제삼고 집단으로는 문제삼지 않을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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