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뤼천이 이렇게 주장하면서 내놓은 근거는 상당히 설득력이있다. 우선 인간 활동으로 지구 육지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가 변형되었다. 지난 100년간 인류는 세계 주요 강의 대부분을 댐으로 막거나 그 방향을 바꿨다. 최근의 사례만 놓고 보면, 중국 정부가 양쯔강에 세운 싼샤 댐이나 이명박 정부가 4대강 곳곳에 세운 보가 그 유력한 증거다.
특히 크뤼천은 인간이 대기의 구성 요소를 변화시킨 데 주목한다. 자연에서 식물이 고정하는 질소보다 훨씬 더 많은 질소 비료가사용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질소가 늘어나고 있다. 화석 연료, 삼림 파괴 때문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00년간 40퍼센트 증가했다.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온실 기체인 메테인(CH)의 농도도 같은 기간 동안 2배나 뛰었다. - P89

2만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라시아, 북아메리카에는 거대한 포유류가 가득했다. 지금은 화석을 토대로 그린 상상도를 통해서나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매머드, 털코뿔소, 검치호, 동굴곰 등이다. 하지만 1만 년 전 정도가 되면 거대한 포유류는 지구에서 대부분 자취를감춘다.
흥미롭게도 거대한 포유류의 멸종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았약 1만3000년 전부터 대형 포유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약 5만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에 달하는 날지 못하는 모아새가 있었다. 하지만 모아새를 비롯한같은 곳에는 (포유류는 아니지만) 키가 3.7미터에 몸무게가 230킬로그램뉴질랜드의 대형 생물은 400년 전에 멸종했다.
눈치 빠른 이라면 알아챘겠지만, 대륙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거대한 포유류의 멸종 시기는 인류의 이동 시기와 겹친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등으로 진출한 인류의 작은 발걸음이 그곳에 살던거대한 포유류에게는 멸종을 알리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마스토돈은 인류가 아메리카에 정착하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해 1만 년 전에 멸종했다.
지난 1,000년간의 기록은 더욱더 극적이다. 오늘날 육지에 사는동물 가운데 야생 동물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인간, 가축, 애완 동물이 육지에 사는 동물의 97퍼센트를 차지한다. 흔히 육상 동물 먹이 사슬의 정점에 위치해 ‘동물의 왕‘이라 불렸던 사자의 신세가 전형적이다. 2,000년 전에 100만 마리에 달하던 사자는 오늘날 2만 마리로 줄었다.
바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950년대 이후 불과 50년 만에 다랑어, 상어, 대구 등 바다의 대형 동물 90퍼센트가 사라졌다. 바다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서식 공간인 산호초는 1980년대와 비교해도 3분의 1로 감소했다.  - P94

 플랑크톤보다는 작은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보다는 큰 물고기가 큰 물고기보다는 고래의 몸속에 더 많은 오염 물질이 쌓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다로 배출한 오염 물질 중에는 PCB라는이름으로 익숙한 폴리염화바이페닐(polychlorinated biphenyl)이 있다. 과학자는 동물의 몸속에서 분해되지 않는 이 오염 물질이 고래의 몸속에 고농도로 쌓여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고래 중에서 새끼를 낳은 암컷 고래만 몸속의 PCB 농도가 낮았다. 바로 새끼한테 준 젖 때문이었다.
고래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오염 물질 PCB가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수유다. 젖을 통해서 어미 몸속에 있는 PCB가 새끼에게옮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오염된 젖을 먹은 새끼 가운데 일부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만약에 이런 고래 고기를 사람이 먹는다면 어떨까? PCB 같은 오염 물질은 고래 고기를 먹은 사람의 몸속에 농축된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고래 고기는 여전히 고단백의 고급 음식으로 선호되고 있다. 몸이 허약해진 임산부의 원기 회복을 위해서 고래고기를 먹는 경우도 많다. 고래 고기를 먹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나면 고래와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오염 물질 PCB의 상당수가 수유를 통해서 아기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고래의 비극은 우리의 비극이다. - P111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도 있다. 국회 의원이 기초 과학 연구비를 삭감하면서 염두에 뒀던 과학 기술의 역할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쓸모 가운데 으뜸은 돈벌이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과학 기술이 꼭 돈벌이 혹은 국방 같은 당장의 쏠모로만 그 유용성이 평가되어야 할까? 해파리의 빛을 연구하던 과학자가 그 쓸모를 의식했더라면 지속적인 탐구가 가능했을까?
물질을 구성하는 미지의 입자를 찾으려는 가속기 프로젝트의예산을 따려고 동분서주하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RobertWilson)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9년 가속기의 쓸모를 놓고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가속기‘를 ‘기초 과학‘ 혹은 ‘해파리‘로 바꿔서 기초과학연구비 삭감을 결정한 국회 의원에게 들려주고 싶다.
"가속기는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화가인가 좋은 조각가인가, 훌륭한 시인인가와 같은 것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진정 존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해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지식은 전적으로국가의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 P138

공유경제는 바로 이렇게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의 노동력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헐값에 부리는 일이다. 일찌감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히 (Robert Reich)가 공유 경제의 진짜 이름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 (share-the-scraps cconomy)"라고 꼬집은 것도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런 노동을 통해서 그들이 얻는 대가가 고작 "부스러기"에 불과하니까."
새로운 과학기술의 탈을 쓴 오래된 욕망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또 있다. 그렇게 부스러기를 나눠 주는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대다수는 (현재)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다. 이들은 그 일자리를 잃지 않고자, 즉 노동 시장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1시간도 허투루쓰면 안되는 처지니 가사노동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등은 골칫거리다.
그 결과로 요리, 청소, 육아 같은 노동은 쪼개져서 노동 시장바곁에서 스마트폰을 켜놓고 대기 중이던 ‘작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물론, 자신의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마음에 덥석 내놓은 대가 가운데 상당액은 정작 노동의 당사자(작은 노동자)가 아니라거간꾼(플랫폼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된다.
당대의 과학 기술에는 어쩔 수없이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때로는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고, 더 나아가 개인의 행복까지 좀먹는 추악한 욕망이 과학 기술로 변신해서 삶을 좌지우지한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공유 경제 안에는 과연 어떤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을까? 글머리의 30대 여성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을것 같아요."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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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그때 수상한 앰네스티 언론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상은 줄기 세포 조작 스캔들을 폭로한 공으로 주어진 것이아니라, 그때나 또 지금이나 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줄기 세포 연구의 윤리 부재를 비판한 기사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한번 음미해 볼 생각거리를 준다. - P51

"강기자 지적에 부끄러워서 기자를 그만뒀소."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랬다. 이 기자를 포함해몇몇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황우석 사태 때의 책임을 지고서 기자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은 책임을 지고서기자생활을 그만둔 이 기자들은 그나마 평소에 양질의 과학 기사를쓰려고 노력했던 이들이었다.
정작 황 박사와 엉겨 붙어 희희낙락대던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과학이나 의학 전문‘ 기자 행세를 하면서 활보하고 다닌다. 마치 자신은 그때 진실의 편에 섰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서 말이다. 이와 관련한 후일담 하나. 황우석 사태가 한창 정리 국면이던 2006년 초에 과학기술부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4월에 ‘대한민국과학문화상‘ 시상식이 있는데 신문 및 잡지부문에서 강양구 기자가 여럿으로부터 추천이 되었습니다. 공적 조서를 내서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시죠."
과학기술부는 황우석 사태가 이렇게 엉망이 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부 부처였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가 아직 채 정리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이 주는 상을 받으라니! 이런 내용을 담아서 답장을 보내고서 잊어버렸다. (더구나 과학기술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과학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이 상을 받는 꼴사나운 행태도 역겨웠다.) 그해 4월, 과학기술부에서 날아온 보도 자료를 보고서 어이가없었다. 혹시, 2005년 11월에 처음으로 ‘제보자를 색출하라.‘뉘앙스의 보도를 했던 그 기자 생각나는가? 바로 그 기자가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신문 및 잡지 부문 수상자(상금 1000만원)로 선정이 되었던 것이다. - P57

그런데 이렇게 ‘착한 놈‘과 ‘나쁜 놈‘의 선악 구도로 나뉘지 않는중요한 문제가 갈수록 늘고 있다. 윤리, 복지, 환경 등 가치에 기반을둔 문제가 그렇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저널리즘은 때로 대중의 상식에 반하는 문제제기도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격렬한 반발도 감수해야 한다.
황우석 사태, 특히 난자 출처를 둘러싼 윤리 문제가 바로 그런예였다. ‘세계적인 과학 업적 앞에 윤리 문제 따위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PD수첩과 한학수 PD는 바로 그런 문제를 들춤으로써 PD 저널리즘의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런 「PD수첩」과 PD 저널리즘의 시도는 그 이후에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가끔 고약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제보자가 난자 출처를 둘러싼 윤리 문제만 놓고서 「PD수첩」을찾아갔더라도, 「PD수첩」과 한학수 PD는 기꺼이 나섰을까? 아니 그때 이른바 ‘황까‘였던 사람들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줄기 세포는 있잖아요?" - P60

착한 30퍼센트 vs. 나쁜 30퍼센트, 승자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대목은 바로 ‘착한 30퍼센트‘와 ‘나쁜30퍼센트다. 인정사정없는 월스트리트 게임을 한다는 신호에도 33퍼센트는 여전히 협력을 선택했다. (착한 30퍼센트) 반면에 신뢰를 강조하며 공동체 게임을 한다고 해도 30퍼센트는 자기만 챙겼다. 또 10달러를모조리 가져가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 상황에서 얌체처럼 그 돈을 모조리 챙긴 28퍼센트가 있었다. (나쁜 30퍼센트)여기서부터는 아니면 말고 식의 가설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든 타인을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는 30퍼센트와 그런 마음 따위는 없는 30퍼센트 그리고 그 양극단 사이의 40퍼센트로 구성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남을 도울 마음 따위는 없는 30퍼센트마저도 평판이 나빠질 위험이 생기면 기꺼이 타인을 배려하는 척이라도한다. 이것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비밀이다. - P71

씁쓸한 결과다. 마시멜로 먹기를 참을 수 있는 의지력은 청소년기의 성취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반면에 자녀 교육 지원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집안의 넉넉한 살림 같은 사회 경제적 배경이오히려 결정적인 변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의지력이 강해 봤자 현실에서 자수성가는 불가능했다.
가슴 아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가난한 어린이는 눈앞의 마시멜로를 곧바로 먹어 치우는 경향이 강했다. 앞에서 소개한 불신이 어린이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결과를 염두에 두면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부모의 소득이 변변치 못한 어린이일수록 불신 환경에 여러 번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이날 로봇 장난감 사주기로 했잖아요?" "어떡하니, 아빠가 돈이 없어.")그런 어린이에게 확실히 보장된 미래는 없다. 몇 분 뒤에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지 말지는 당장 관심사가 아니다. 눈앞의 마시멜로는먼저 먹어 치우는 것이 남는 장사다. 실제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아이는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보상에 집착한다는 여러 증언과 연구 결과가 있다. - P75

그런데 가장 최신(!) 로봇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조규진 교수는 ‘소프트 로봇(soft robot)‘의 권위자다. 소프트 로봇은 딱딱한 금속 대신에 유연한 소재를 활용해서 만든 로봇이다. 소프트 로봇은 유연성이 떨어지는 금속 로봇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어 동작이 둔하기 마련인 금속 로봇보다 현실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라. 딱딱한 금속 로봇은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지진 후의 재난 현장이나 이곳저곳 장애물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이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소프트 로봇의 경우에는 움직임이 유연하기 때문에 험지를 이동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 조규진 교수와학생이 함께 만든 소프트 로봇 ‘스누맥스(SNUMAX)‘는 좋은 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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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가 소리의 속도로 나는 비행기의 엔진을 만드는 루카스 항공(Lucas Aerospace)에서 일했던 공학자 마이크 쿨리 (Mike Cooley)의 고민을 소개했다.
"우리는 소리의 속도로 나는 콩코드 비행기를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두고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노인이 얼어 죽는 일을 막는 난방 기술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리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과학 기술이 가장 발전한 산업 국가의 수많은 노동자는실업자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쿨리가 1970년대에 고민했던 이런 과학 기술의 역설은 극복되기는커녕 수십 년이 지난 21세기에 오히려 심화되었다. 예를 들어, 대형 마트 노동자는 매일 10~25 킬로그램의 무거운 상자를 수백 차례씩 들고 나른다. 그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외쳤다.
"제발 상자에 ‘손잡이 구멍‘이라도 뚫어 달라."
로봇,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생명 공학 등이 추동하는 ‘혁명‘을 예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의 창업자가 달(제프 베저스)이나 화성(일론 머스크)으로의 ‘인류 이주를 공공연하게 말하는 상황에서 무거운 상자의 손잡이 구멍이라도뚫어 달라."는 절박한 요구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역설인가. - P12

이 책에서 나는 결코 ‘돈‘, ‘경제‘, ‘성장‘과 동일시할 수 없는과학 기술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당장 과학 기술은 문학, 그림, 음악 등 훌륭한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창의력의 산물이다. 더구나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어떤 과학 기술은우리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문화‘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성난 노동자의 19세기 러다이트 운동부터 새로운 차량 호출 서비스를 둘러싼 21세기 택시기사의 반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과학기술은 국가, 자본, 노동이 힘겨루기를 하는 정치의 장이다. 때로는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갈등으로도 이어지는 이 정치의 결과에 따라서 과학기술은 해방과 억압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 P14

당시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를 꿰뚫는 문제 의식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서 공히 나타나는 ‘윤리의 부재‘였다. 핵심은 난자였다. 인간 복제 배아를 만들려면 여성의 난자가 필요하다. 그간황 박사는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줄기 세포를 얻고자총 427개(2004년 242개, 2005년 185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난자 숫자도 놀랄 만큼 많은 것이었다. 전 세계 어떤 과학자도 그렇게 많은 수의 여성의 난자를 확보해 실험에 이용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난자의 출처에 과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터였다. 더 나아가 한재각-김병수-강양구 트리오는 이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한 마리의 복제 동물(동물복제 배아)을 만드는 데도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동물 난자가 필요한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겨진 인간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데 고작(?) 수백 개의 난자만 사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검찰 수사 결과, 황우석 박사가 확인가능한 난자만 총 2,221개를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 P30

이런 한재각 연구원의 압박에 꿈쩍 않을 것 같던 황우석 박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7일 <조선일보》는 ‘황우석 교수 ‘민노당 때문에 연구 못 할 지경‘이라는 눈에 띄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황 박사가 10월 5일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의 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불만을그대로 전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국정감사에 필요하다며 별별 자료를 다 요구하고 있다."
"연구 팀이 자료 작성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연구에 엄청난지장을 받고 있다."
"(심지어 중국 연변 처녀들의 난자를 불법적으로 거래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민주노동당이 자료 제출을 요구해 왔다."
"줄기 세포 연구에 필요한 모든 난자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구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연변 처녀 난자‘ 괴담으로 상징되는 황우석 박사의 이런 발언에는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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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은 자신에 대한 감시 여부를 알 수 없기에, 늘 감시당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형 감옥은 단지 비용 절감이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권력을 원형 archetype 그대로 보여 준다. 이 부분에서 비대칭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낸시 프레이저가 말했듯이, 원형 감옥은 "새로운 지식의 새로운 생산 과정을 새로운 종류의 권력에 연결하는 미시적 실천의 원조prototype였다. 이런 연결은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된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과학자나 관리인은 죄수를 볼 수있지만, 죄수는 상대를 볼 수 없다. 일방향의 가시성은 죄수들이 언제 감시당하는지, 혹은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는 죄수들로 하여금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만들어, 각자는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Fraser 1989, 23).
푸코에 의하면, 비대칭성은 감시관과 죄수 사이의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관계를 분리시킨다" (Foucault 1979, 202).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분석은 불충분하다. 죄수들이 서로 어떻게 알게 되고, 의사소통하는지를 감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대칭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한다(이 기능은 분리성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공유 지식의 형성을 차단해 죄수들간에 조정된 행동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P103

푸코의 전반적인 목적은 종교적 의례에 기반한 과거의 권력 유형에서, 원형 감옥으로 형상화되는 근대적 권력 유형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원형 감옥의 규칙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고대는 스펙터클의 문명이었다. ‘소수의 사물을 다수의 사람들이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원이나 극장, 서커스장의 건축이 이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근대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소수에게, 심지어는 한 개인에게 다수 대중이 동시에 나타난다.‘ ••• 근대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감시의 사회이다. 우리는 원형극장이나 무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형 감옥 안에 갇혀 있다" (Foucault 1979, 216-217; Julius 1831에서 인용).
푸코의 일반적 논의를 수용하든 말든, 원형 감옥의 정중앙에 세워진 의례적 구조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예외적인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푸코가보기에, 역사적으로 권력 메커니즘이 스펙터클에서 감시로 전환한 이유는 스펙터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개 처형은 국가의 질서를 위한 의례이지만 국가에 대한 전복으로 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원형 감옥도 비슷한 불안정성이 있다. (중앙감시실이) 흐린 창문으로 은폐되지 않았다면 일거에 (고대의) 경기장처럼 변할 수 있능 것이다. - P107

만일 의사소통을 방향성을 가진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면, 왕실 축제(다수의 군중이 한 사람을 본다는 원형 감옥(한사람이 다수의 군중을 본다)과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해 온, 다중 multitude 속에서의 ‘공유 지식 형성‘이라는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축제와 원형 감옥은 매우 유사하다. 축제는 강렬한 이미지, 정서,상호작용을 통해서 공유 지식을 형성하는 반면, 원형 감옥에서는 감각을 빼앗김으로써 공유 지식이 형성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흐릿하게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시탑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죄수들은 제각기 홀로 감시탑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각각의 죄수들이 알고 있다. 원형 감옥에서 죄수들은 분리되어 있으나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의미로) 원자화되어 있지는않다. 각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감시 상태 그 자체가공유 지식이다. 프레이저가 묘사한 감시 유형이 유지되려면, 각각의 죄수들은 자신이 홀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외로운 편집증을 느껴야 하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없어야 한다. 벤담과 푸코의 원형 감옥은 이와는 다르다. - P109

물론 어떤 의사소통이 갖는 의미는 기존 사회의 이해 방식이라는 맥락에서만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 1964년 토니 슈월츠가 만든 일명 ‘데이지‘Daisy는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텔레비전 선거 광고였다. 이 광고는 한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세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카운트다운으로 이어져 핵폭발이 일어난 뒤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11월 3일에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합시다"라고 나오며 끝난다. 슈월츠에 따르면, 이 광고는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 특히 공화당원들은 이광고가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당시 존슨의 경쟁자였던 공화당 대선 후보을 대단히 호전적인 사람으로 몰고 갔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이 광고 어디에도 골드워터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골드워터에 대한 간접적 언급조차도 없었다..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이전에 전략적 핵무기 사용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골드워터가 핵무기를 실제로 쓸지도 모른다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내재해 있던 뿌리 깊은 감정을 환기시켰다. 이런 불신은 데이지 광고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신은 그 광고를 보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 영상과 소리의 자극은 이런 느낌을 환기시켰고, 그들의 내면적 믿음을 표출하도록 유도했다"(Schwartz 1973,93), 광고를 본 시청자는 자신에게 골드워터에 대한 두려움이 일고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인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광고는 이렇게 공유된 걱정이 표출되게 만들었고, 공유 지식을 형성했다. 이것은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의 특성 (이 광고는 ‘월요심야 영화 프로그램에서 송출되었다) 때문만은 아니고, 광고의 내용 자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슈월츠가 고안한 대로, 사람들의 기존 이해 방식과 상호작용해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 P121

클라크와 마셜이 지적했듯이,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공유 지식을 형성하는 한 방법이다. "기본적인 발상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아는 어떤 사실이 있고, 그것에 대해 나 말고도 다른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는 것이다"(Clark and Marshall 1992, 360, 동시에, 어느정도는 공유 지식이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고도 볼 수 있다. 조셉 터로우는 1970년 이후 광고 산업은, 판촉의 초점이 일반 대중에서 틈새niche 시장으로 바뀌어 왔다고 지적한다(Turow 1997, 2). 왜냐하면 (케이블 방송, 인터넷, 전문지 등) 보다 ‘특정화된 매체들이 급성장했고, 수요층을 특정화하는데 요구되는 자료 수집과 통계 기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사회적 파편화를 낳았고, "전자 공간에서의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 들만들었다. - P136

남아공에서 인기 있는 양대 스포츠는 축구와 럭비였다. 축구는 흑인들이 주로 했고 럭비는 백인들이 즐겼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을 대표하는 종목인 럭비를 흑백이 하나가 되는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1995년 남아공에서 럭비월드컵을 개최했다. 그리고 그는 월드컵 결승전에주장 등번호 6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남아공이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하자 우승 트로피를 백인 주장에게 직접 전달한 것도 만델라였다. 그 순간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던 럭비는인종차별의 종말을 고하는 도구가 됐고 ‘팀도 하나, 국가도 하나‘라는 대회 슬로건도 현실이 됐다. 6년 후에는 만델라의 또 다른 염원대로 월드컵 축구 대회가 열렸지만, 만델라는 건강과 증손녀의 죽음으로 경기를 제대로 관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폐막식 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고, 9만 여명의 관중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만델라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마지막 모습이 됐다. - P137

사람들이 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관찰하게 되면, 의미에 관한 언어학 이론이나 상식적인 직관 말고도, 통상적인 게임이론의 논리로부터 ‘공유 지식‘이라는 의제가 곧바로 제기된다. 사회에서 공유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게 되면, 우리는 의례처럼보이는 의사소통적 이벤트communicative events(가령, 공식 행사나 매스컴 이벤트등)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유 지식을 문화적 실천과 연결 지음으로써, 이 책은 이전에는 서로 무관하고 심지어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되었던 합리성과 문화의 관점 사이에 매우 긴밀하고 상호적인 관계를정립했다. 역사적으로 원자화된 시장 사회와 관련되어 있는 ‘개인적 합리성‘이라는 발상은, 사회적 동질성을 창조하는 문화적 실천을 이해하는데에도 유용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경제적 맥락에서이해되어 왔다. ‘물질적 합리성의 논리적 귀결을 추적한 결과, 게임이론이 문화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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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반원들과 보안관들은 그 표정을 잘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이 몇 시간만 있으면 노숙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이 광경의 초현실성에,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의 속도와 폭력에, 권총집에 손을 올린 채 당신의 벽에 기대고 선 보안관들에게, 당신의 물건들을 바깥에 쌓아놓고, 당신의 싱크대에서 나오는 물을 당신의 컵에 따라 마시며, 당신의 화장실을 사용하는이 땀에 절은 남자들, 이 모든 낯선 이들에게 굴복하기를 거부하는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질문의 파도에 휩쓸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오늘 밤에는, 이번 주에는 내가 뭘 해야 하지?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하지? 약은 어디 있지? 우린 어디로 가지? 그것은 지하실에서 기어나와 보니 토네이도가 집을 쓸어버리고 갔음을 알게 된 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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