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뤼천이 이렇게 주장하면서 내놓은 근거는 상당히 설득력이있다. 우선 인간 활동으로 지구 육지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가 변형되었다. 지난 100년간 인류는 세계 주요 강의 대부분을 댐으로 막거나 그 방향을 바꿨다. 최근의 사례만 놓고 보면, 중국 정부가 양쯔강에 세운 싼샤 댐이나 이명박 정부가 4대강 곳곳에 세운 보가 그 유력한 증거다. 특히 크뤼천은 인간이 대기의 구성 요소를 변화시킨 데 주목한다. 자연에서 식물이 고정하는 질소보다 훨씬 더 많은 질소 비료가사용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질소가 늘어나고 있다. 화석 연료, 삼림 파괴 때문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00년간 40퍼센트 증가했다.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온실 기체인 메테인(CH)의 농도도 같은 기간 동안 2배나 뛰었다. - P89
2만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라시아, 북아메리카에는 거대한 포유류가 가득했다. 지금은 화석을 토대로 그린 상상도를 통해서나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매머드, 털코뿔소, 검치호, 동굴곰 등이다. 하지만 1만 년 전 정도가 되면 거대한 포유류는 지구에서 대부분 자취를감춘다. 흥미롭게도 거대한 포유류의 멸종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았약 1만3000년 전부터 대형 포유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약 5만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에 달하는 날지 못하는 모아새가 있었다. 하지만 모아새를 비롯한같은 곳에는 (포유류는 아니지만) 키가 3.7미터에 몸무게가 230킬로그램뉴질랜드의 대형 생물은 400년 전에 멸종했다. 눈치 빠른 이라면 알아챘겠지만, 대륙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거대한 포유류의 멸종 시기는 인류의 이동 시기와 겹친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등으로 진출한 인류의 작은 발걸음이 그곳에 살던거대한 포유류에게는 멸종을 알리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마스토돈은 인류가 아메리카에 정착하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해 1만 년 전에 멸종했다. 지난 1,000년간의 기록은 더욱더 극적이다. 오늘날 육지에 사는동물 가운데 야생 동물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인간, 가축, 애완 동물이 육지에 사는 동물의 97퍼센트를 차지한다. 흔히 육상 동물 먹이 사슬의 정점에 위치해 ‘동물의 왕‘이라 불렸던 사자의 신세가 전형적이다. 2,000년 전에 100만 마리에 달하던 사자는 오늘날 2만 마리로 줄었다. 바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950년대 이후 불과 50년 만에 다랑어, 상어, 대구 등 바다의 대형 동물 90퍼센트가 사라졌다. 바다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서식 공간인 산호초는 1980년대와 비교해도 3분의 1로 감소했다. - P94
플랑크톤보다는 작은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보다는 큰 물고기가 큰 물고기보다는 고래의 몸속에 더 많은 오염 물질이 쌓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다로 배출한 오염 물질 중에는 PCB라는이름으로 익숙한 폴리염화바이페닐(polychlorinated biphenyl)이 있다. 과학자는 동물의 몸속에서 분해되지 않는 이 오염 물질이 고래의 몸속에 고농도로 쌓여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고래 중에서 새끼를 낳은 암컷 고래만 몸속의 PCB 농도가 낮았다. 바로 새끼한테 준 젖 때문이었다. 고래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오염 물질 PCB가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수유다. 젖을 통해서 어미 몸속에 있는 PCB가 새끼에게옮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오염된 젖을 먹은 새끼 가운데 일부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만약에 이런 고래 고기를 사람이 먹는다면 어떨까? PCB 같은 오염 물질은 고래 고기를 먹은 사람의 몸속에 농축된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고래 고기는 여전히 고단백의 고급 음식으로 선호되고 있다. 몸이 허약해진 임산부의 원기 회복을 위해서 고래고기를 먹는 경우도 많다. 고래 고기를 먹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나면 고래와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오염 물질 PCB의 상당수가 수유를 통해서 아기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고래의 비극은 우리의 비극이다. - P111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도 있다. 국회 의원이 기초 과학 연구비를 삭감하면서 염두에 뒀던 과학 기술의 역할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쓸모 가운데 으뜸은 돈벌이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과학 기술이 꼭 돈벌이 혹은 국방 같은 당장의 쏠모로만 그 유용성이 평가되어야 할까? 해파리의 빛을 연구하던 과학자가 그 쓸모를 의식했더라면 지속적인 탐구가 가능했을까? 물질을 구성하는 미지의 입자를 찾으려는 가속기 프로젝트의예산을 따려고 동분서주하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RobertWilson)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9년 가속기의 쓸모를 놓고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가속기‘를 ‘기초 과학‘ 혹은 ‘해파리‘로 바꿔서 기초과학연구비 삭감을 결정한 국회 의원에게 들려주고 싶다. "가속기는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화가인가 좋은 조각가인가, 훌륭한 시인인가와 같은 것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진정 존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해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지식은 전적으로국가의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 P138
공유경제는 바로 이렇게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의 노동력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헐값에 부리는 일이다. 일찌감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히 (Robert Reich)가 공유 경제의 진짜 이름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 (share-the-scraps cconomy)"라고 꼬집은 것도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런 노동을 통해서 그들이 얻는 대가가 고작 "부스러기"에 불과하니까." 새로운 과학기술의 탈을 쓴 오래된 욕망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또 있다. 그렇게 부스러기를 나눠 주는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대다수는 (현재)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다. 이들은 그 일자리를 잃지 않고자, 즉 노동 시장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1시간도 허투루쓰면 안되는 처지니 가사노동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등은 골칫거리다. 그 결과로 요리, 청소, 육아 같은 노동은 쪼개져서 노동 시장바곁에서 스마트폰을 켜놓고 대기 중이던 ‘작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물론, 자신의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마음에 덥석 내놓은 대가 가운데 상당액은 정작 노동의 당사자(작은 노동자)가 아니라거간꾼(플랫폼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된다. 당대의 과학 기술에는 어쩔 수없이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때로는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고, 더 나아가 개인의 행복까지 좀먹는 추악한 욕망이 과학 기술로 변신해서 삶을 좌지우지한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공유 경제 안에는 과연 어떤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을까? 글머리의 30대 여성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을것 같아요."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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