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들은 자신에 대한 감시 여부를 알 수 없기에, 늘 감시당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형 감옥은 단지 비용 절감이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권력을 원형 archetype 그대로 보여 준다. 이 부분에서 비대칭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낸시 프레이저가 말했듯이, 원형 감옥은 "새로운 지식의 새로운 생산 과정을 새로운 종류의 권력에 연결하는 미시적 실천의 원조prototype였다. 이런 연결은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된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과학자나 관리인은 죄수를 볼 수있지만, 죄수는 상대를 볼 수 없다. 일방향의 가시성은 죄수들이 언제 감시당하는지, 혹은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는 죄수들로 하여금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만들어, 각자는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Fraser 1989, 23).
푸코에 의하면, 비대칭성은 감시관과 죄수 사이의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관계를 분리시킨다" (Foucault 1979, 202).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분석은 불충분하다. 죄수들이 서로 어떻게 알게 되고, 의사소통하는지를 감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대칭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한다(이 기능은 분리성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공유 지식의 형성을 차단해 죄수들간에 조정된 행동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P103

푸코의 전반적인 목적은 종교적 의례에 기반한 과거의 권력 유형에서, 원형 감옥으로 형상화되는 근대적 권력 유형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원형 감옥의 규칙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고대는 스펙터클의 문명이었다. ‘소수의 사물을 다수의 사람들이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원이나 극장, 서커스장의 건축이 이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근대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소수에게, 심지어는 한 개인에게 다수 대중이 동시에 나타난다.‘ ••• 근대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감시의 사회이다. 우리는 원형극장이나 무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형 감옥 안에 갇혀 있다" (Foucault 1979, 216-217; Julius 1831에서 인용).
푸코의 일반적 논의를 수용하든 말든, 원형 감옥의 정중앙에 세워진 의례적 구조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예외적인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푸코가보기에, 역사적으로 권력 메커니즘이 스펙터클에서 감시로 전환한 이유는 스펙터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개 처형은 국가의 질서를 위한 의례이지만 국가에 대한 전복으로 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원형 감옥도 비슷한 불안정성이 있다. (중앙감시실이) 흐린 창문으로 은폐되지 않았다면 일거에 (고대의) 경기장처럼 변할 수 있능 것이다. - P107

만일 의사소통을 방향성을 가진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면, 왕실 축제(다수의 군중이 한 사람을 본다는 원형 감옥(한사람이 다수의 군중을 본다)과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해 온, 다중 multitude 속에서의 ‘공유 지식 형성‘이라는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축제와 원형 감옥은 매우 유사하다. 축제는 강렬한 이미지, 정서,상호작용을 통해서 공유 지식을 형성하는 반면, 원형 감옥에서는 감각을 빼앗김으로써 공유 지식이 형성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흐릿하게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시탑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죄수들은 제각기 홀로 감시탑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각각의 죄수들이 알고 있다. 원형 감옥에서 죄수들은 분리되어 있으나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의미로) 원자화되어 있지는않다. 각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으며, 감시 상태 그 자체가공유 지식이다. 프레이저가 묘사한 감시 유형이 유지되려면, 각각의 죄수들은 자신이 홀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외로운 편집증을 느껴야 하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없어야 한다. 벤담과 푸코의 원형 감옥은 이와는 다르다. - P109

물론 어떤 의사소통이 갖는 의미는 기존 사회의 이해 방식이라는 맥락에서만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 1964년 토니 슈월츠가 만든 일명 ‘데이지‘Daisy는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텔레비전 선거 광고였다. 이 광고는 한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세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카운트다운으로 이어져 핵폭발이 일어난 뒤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11월 3일에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합시다"라고 나오며 끝난다. 슈월츠에 따르면, 이 광고는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 특히 공화당원들은 이광고가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당시 존슨의 경쟁자였던 공화당 대선 후보을 대단히 호전적인 사람으로 몰고 갔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이 광고 어디에도 골드워터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골드워터에 대한 간접적 언급조차도 없었다..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이전에 전략적 핵무기 사용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골드워터가 핵무기를 실제로 쓸지도 모른다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내재해 있던 뿌리 깊은 감정을 환기시켰다. 이런 불신은 데이지 광고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신은 그 광고를 보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 영상과 소리의 자극은 이런 느낌을 환기시켰고, 그들의 내면적 믿음을 표출하도록 유도했다"(Schwartz 1973,93), 광고를 본 시청자는 자신에게 골드워터에 대한 두려움이 일고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인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광고는 이렇게 공유된 걱정이 표출되게 만들었고, 공유 지식을 형성했다. 이것은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의 특성 (이 광고는 ‘월요심야 영화 프로그램에서 송출되었다) 때문만은 아니고, 광고의 내용 자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슈월츠가 고안한 대로, 사람들의 기존 이해 방식과 상호작용해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 P121

클라크와 마셜이 지적했듯이,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공유 지식을 형성하는 한 방법이다. "기본적인 발상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아는 어떤 사실이 있고, 그것에 대해 나 말고도 다른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는 것이다"(Clark and Marshall 1992, 360, 동시에, 어느정도는 공유 지식이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고도 볼 수 있다. 조셉 터로우는 1970년 이후 광고 산업은, 판촉의 초점이 일반 대중에서 틈새niche 시장으로 바뀌어 왔다고 지적한다(Turow 1997, 2). 왜냐하면 (케이블 방송, 인터넷, 전문지 등) 보다 ‘특정화된 매체들이 급성장했고, 수요층을 특정화하는데 요구되는 자료 수집과 통계 기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사회적 파편화를 낳았고, "전자 공간에서의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 들만들었다. - P136

남아공에서 인기 있는 양대 스포츠는 축구와 럭비였다. 축구는 흑인들이 주로 했고 럭비는 백인들이 즐겼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을 대표하는 종목인 럭비를 흑백이 하나가 되는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1995년 남아공에서 럭비월드컵을 개최했다. 그리고 그는 월드컵 결승전에주장 등번호 6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남아공이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하자 우승 트로피를 백인 주장에게 직접 전달한 것도 만델라였다. 그 순간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던 럭비는인종차별의 종말을 고하는 도구가 됐고 ‘팀도 하나, 국가도 하나‘라는 대회 슬로건도 현실이 됐다. 6년 후에는 만델라의 또 다른 염원대로 월드컵 축구 대회가 열렸지만, 만델라는 건강과 증손녀의 죽음으로 경기를 제대로 관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폐막식 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고, 9만 여명의 관중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만델라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마지막 모습이 됐다. - P137

사람들이 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관찰하게 되면, 의미에 관한 언어학 이론이나 상식적인 직관 말고도, 통상적인 게임이론의 논리로부터 ‘공유 지식‘이라는 의제가 곧바로 제기된다. 사회에서 공유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게 되면, 우리는 의례처럼보이는 의사소통적 이벤트communicative events(가령, 공식 행사나 매스컴 이벤트등)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유 지식을 문화적 실천과 연결 지음으로써, 이 책은 이전에는 서로 무관하고 심지어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되었던 합리성과 문화의 관점 사이에 매우 긴밀하고 상호적인 관계를정립했다. 역사적으로 원자화된 시장 사회와 관련되어 있는 ‘개인적 합리성‘이라는 발상은, 사회적 동질성을 창조하는 문화적 실천을 이해하는데에도 유용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경제적 맥락에서이해되어 왔다. ‘물질적 합리성의 논리적 귀결을 추적한 결과, 게임이론이 문화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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