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이가 들꽃이 되어 사라진 후 어느 날 한적한 오후에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모험을 혼자서 시도해 보았다. 겁쟁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의외로 용기가 나고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이었다. 나는 눈에 띄는 그 즉시 거대한 팽이로 둔갑해 버리는 까마득한 강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생땀을 흘렸다. 엿가락으로 흘러내리다가 가로지르는 선에 얹혀 다시 오르막을타는 녹슨 철근의 우두한 표면만을 무섭게 응시하면서 한뼘 한뼘 신중히 건너갔다. 철근의 끝에 가까이 갈수록 강바람을 맞는 몸뚱이가 사정없이 까불렸다. 그러나 나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그일을 해내고 말았다. 이젠 어느 누구도, 제아무리 쥐바라꽃일지라도 나를 비웃을 수는 없게 되었다.
지옥의 가장귀를 타고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바로 되돌아 나오려는데 이때 이상한 물건이 얼핏 시야에 들어왔다. 낚시바늘 모양으로 꼬부라진 철근의 끝자락에다 끈으로 친친 동여맨 자그만 헝겊주머니였다. 명선이가 들꽃을 꺾던 때보다 더 위태로운 동작으로나는 주머니를 어렵게 손에 넣었다. 가슴을 잡죄는 긴장 때문에 주머니를 열어보는 내 손이 무섭게 경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그 주머니 속에서 말갛게 빛을 발하는 동그라미 몇 개를 보는 순간 나는 손에 든 물건을 송두리째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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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메뉴 중 또 하나의 항목인 ‘군도 종 분화‘는 섬의 동물상과 식물상을 기묘함이 더 커지는 쪽으로, 그리고 다양성이 더 커지는 쪽으로 몰고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군도 중 한 섬에 동물 또는 식물 한 종이 정착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뒤를 이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이주 과정이일어나며, 결국에는 섬에 따라 서로 차이가 나는 개체군들이 살게 된다. 이 개체군들은 시간이 지나면 유전학적으로 분기하여 결국 각 섬에는 다른 섬의 종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고유종이 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군도에서 일어나는데, 특히 섬들 사이에 이주가 일어나면서도 드물게 일어나도록 섬 사이의 간격이 적당히 떨어진 군도에서 일어난다. 섬들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왕래가 계속되기 때문에 유전적 분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 P294

마스카렌 제도나 하와이 제도나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수심이 깊은 곳에 자리잡은 화산섬 군도는 군도 종 분화를 촉진하는 물리적 간격을 제공한다. 섬들이 모여 있으되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조건은 격리와 이주의 균형을 제공함으로써 개체군의 분리와 분기를 촉진한다. 바다이구아나가 아종으로 분기한 것은 전형적인 결과이다.  - P295

등딱지 모양은 갈라파고스땅거북들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예였다. 에스파뇰라 섬에 사는 거북은 등딱지가 안장 모양이면서 앞쪽이 아치 모양으로 휘어져 키 큰 식물을 향해 머리를 세울 수 있었다. 산타크루스 섬에 사는 거북의 등딱지는 돔 모양이고 앞쪽 가장자리가 낮다. 이러한 차이는 서로 다른 두 섬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가 분명했다. 메마른 에스파뇰라 섬에서는 거북이 부채선인장에서 아래로 처진가지를 뜯어먹고 살지만, 산타크루스 섬의 습기 찬 고지대는 풀과 그 밖의 지상 식물이 풍부해 거북은 머리를 낮추고 먹이를 먹을 수 있다. 큰섬인 이사벨라 섬에는 화산 봉우리가 다섯 개 있는데, 각 화산마다 등딱지 모양이 각각 다른 거북이 살고 있다. 풀이 많은 남쪽 지역에 사는 거북 개체군은 등딱지가 일반적으로 돔 모양에 가까운 반면, 북쪽 지역에사는 개체군은 안장 모양에 가깝다. - P296

적응 방산은 공통 조상에서 유래한 종들이 다양한 생태적 지위들을 채우기위해 갈라져가는 현상이다. 적응방산은 한 종이 반복적인 종 분화 사건을통해 다양한 종류의 후손을 낳고, 이 후손들이 작은 지리적 장소에서 동소적 서식을 할 때 일어난다. 공존하는 종들은 이종간 경쟁을 줄이기 위해 생태계의 자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서로 달리하는 경향이 있다. 
생태적 지위, 동소적 서식, 경쟁… 이것들이 핵심 단어이다. - P299

 즉, 근연종 사이나 근연종 사이의 유전적차이는 모두 다 적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우연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또한, 창시자 집단과 기본 집단 사이의 무작위적 유전자빈도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갈라파고스땅거북 아종들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한 무작위적 유전자 빈도 차이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나는 1942년에 에른스트 마이어가 설명한 ‘창시자 원리 founderprinciple‘이다. 격리된 장소에 새로 도착한 창시자 집단은 대개 그 수가적다(몇몇 고독한 개체나 단 한 쌍, 심지어는 임신한 암컷 한 마리), 소수의창시자에서 유래한 새 집단에는 기본 집단의 유전자 풀 중 일부 표본만포함된다. 그 표본은 전체 유전자 풀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훨씬 빈약할 가능성이 높다. 이 효과는 다양성이 큰 전체 집단에서 소수의 표본을 선택할 때 늘 일어나는 일이다. 전체 집단이 유전자이건,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껌이건, M&M이건, 한 벌의 카드이건, 그 밖의 어떤 것이것간에 거기서 소수의 표본을 선택하면 대개 그 다양성은 전체 집단보다 훨씬 줄어든다. - P301

집단 사이에 무작위적 유전자 빈도 차이를 일으키는 노 나는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 이다. 이것은 창시자 집단이 생식을 시작한 뒤에작용한다. 이미 기본 집단과 지리적으로 격리된 창시자 집단은 유전적으로 기본 집단에서 부 시작한다. 즉, 달라지기 시작한다. 세하기대가 지남에 따라 그 유전자 풀은 기본 집단의 유전자 풀과 점점 더 달라진다. 대립 유전자의 배열(즉, 주어진 유전자의 변이 형태)과 각 대립 유전자의 보편성이 모두에서 달라진다. 부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변화가 자연 선택뿐만 아니라 우연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 P302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대립유전자는 한 개체군 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어떤 대립 유전자는 희귀하다. 만약 개체군의 크기가 아주 커서 수천만의 부모가 수천만의 자손을 낳는다면, 보편적인대립 유전자뿐만 아니라 희귀한 대립 유전자도 함께 전달될 것이다. 확률은 시행 횟수가 많을수록 안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으므로, 보편적인 대립 유전자와 희귀한 대립 유전자의 비율은 일정하게 유지될것이다. 하지만 개체군의 크기가 작으면, 희귀한 대립 유전자는 감수 분열과 수정 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적은 시행 횟수에서 작용하는 확률은 통계적 확률에서 벗어나기 쉽고,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희귀한 대립 유전자를 영영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작위적 표본추출 과정은 희귀한 대립 유전자의 상실을 낳는 경향이 있어 그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게 된다.(무작위적 표본 추출 과정이 희귀한 대립유전자를 더 보편적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다.) 희귀한대립 유전자들을 중도에 상실함에 따라 소수의 창시자 집단은 기본 집단과 점점 달라질 것이다. 이형접합체의 비율도 감소할 것이다. 남아있는 개체들 중 상당수는 전체 유전자 중 동형접합체로 이루어진 비율이 높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 부동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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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 바짝 붙거라."
바람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대로 머리를 잔뜩 숙여 붙이고 바람의 등덜미로 바싹 따라붙었다. 그러자 그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바람의 칼날을 부러뜨려 양옆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등이 전에 없이 커져서 갑자기 뒤에 매달린 바지게의 넓이하고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춥지야?"
이번에는 아버지가 영락없이 바람의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아니라고, 별로 추운 줄 모르겠다고 대답할 참이었다. 그런데 나는 엉겁결에 그만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예."
"너 못할 일만 시키는갑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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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곤충이나 조류가 새로운 섬에 도착하여 개체군을 형성하면, 거대화를 향한 진화는 지방 저장, 안정적인 체온 유지, 포식자에 대한 방어 등에서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거대화는 또한 비행 능력을 상실하는 길이기도 하며, 그것은 섬에 격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진화경향은 일종의 순환 논리를 보여준다. 섬에 사는 큰 곤충이나 조류는 섬에 갇혀 격리되었기 때문에 몸집이 커졌을 수도 있지만, 몸집이 크기 때문에 섬을 떠나지 못하고 묶여 살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먼저 일어났는간에 결과는 확산 능력 상실로 나타난다. - P265

19세기의 박물학자 중에서 주금류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중 한 사람이 윌리스였다. 월리스는 이미 1876년에 《동물들의 지리적 분포 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Animals)라는책에서 뉴질랜드, 마다가스카르섬,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큰 새들이모두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 주금류들이 "육식성포유류가 출현하기 이전 시대에 진화한 아주 오래된 종류의 새로서, 그러한 위험한 적들의 공격에서 오랫동안 벗어난 지역에만 보존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날지 못하는 큰 새들이 어떻게 멀리 떨어진 섬까지가서 정착했는지는 윌리스도 설명하지 못했다. 여기에 빠진 중요한 퍼즐 조각은 바로 대륙 이동이었다. - P269

그렇지만 필립 달링턴의 이름과그가 1943년에 섬에 사는 딱정벌레가 날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다윈이제시한 설명을 비판하면서 "면적의 제약은 종종 격리된 동물상에서 동물 종의 수와 종류를 제한한다."12 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기억해두는게 좋다. 다시 말해서, 면적이 작은 곳은 면적이 큰 곳보다 서식하는 종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마데이라 섬의 딱정벌레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280

갈라파고스제도의 ‘온순한‘ 동물들은 그저 경계심이 없을 뿐이며, 사람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잠재적 적에게도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윈에게 약점을보인 갈라파고스 제도의 매는 몽구스에게도 약점을 보였을 것이다. 다윈을 믿은 흉내지빠귀는 나무뱀에게도 같은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왜그럴까? 갈라파고스 제도의 매와 흉내지빠귀는 바보들의 낙원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약 100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이들의 조상은 몽구스나 나무뱀, 머리가 벗겨진 영국인 박물학자가 전혀 존재하지않는 섬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tameness‘ 보다 더 적절한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방어 적응 능력 상실‘보다 더 나은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특징(보호색 상실, 경고 메커니즘 상실, 요람기 연장, 경계심 상실을 포함해)을 나타내는 데 내가 선호하는 용어는 ‘생태학적 순진성ecological naiveté‘이다. 이 동물들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다만, 큰 세계보다 더 단순하고 더 순진한 작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알맞게 진화했을 뿐이다. - P283

다윈과 운 나쁜 바다이구아나의 만남은 《비글호 항해기》에 나온다. 거칠게 내팽개쳤는데도 불구하고, 바다이구아나는 헤엄쳐서 곧장 다윈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윈은 바다이구아나를 다시 집어던졌다. 녀석은 또다시 돌아왔다. "바다이구아나는 아주 우아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바닥 근처에서 헤엄쳤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지날 때에는 가끔 발을 사용하기도 했다. 가장자리 근처에 이르자마자 여전히 물속에 머물면서 해초 사이에 몸을 숨기거나 바위 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위험이 지나갔다고 판단하자, 마른 바위 위로 기어나오더니 재빨리 달아났다. "
그러나 운 나쁜 바다이구아나는 한가한 시골뜨기나 잠깐 흥미를 느낀가학적인 어린이를 만난 게 아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호기심 많은 박물학자 찰스 다윈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여러차례 붙잡아 다시던져보냈지만, 녀석은 뛰어난 잠수 능력과 수영 능력이 있는데도 결코물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내가 집어던질 때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항상 되돌아왔다."24 다윈은 가끔 도덕적 일탈을 보여주긴 했지만(특히 23년 뒤에 월리스의 논문을 받았을 때), 전반적으로는 위대한 과학자일뿐만 아니라 존경할 만하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구아나와 만난 이 일화가 그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꼽고 싶다. 그는 호기심이 왕성했고 주의력이 뛰어났다. 또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영리했다. 그리고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짓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윈은 무엇을 알아냈을까? "이 어리석어 보이는 특징은 환경닷으로 돌릴 수 있다. 이 파충류는 해변에는 적이 하나도 없는 반면, 바닷속에서는 종종 다양한 종류의 상어에게 잡아먹혔다. 그래서 해변을 안전한 장소로 여기는 유전적 본능이 생겨 어떤 비상 사태에도 해변 쪽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진화는 바다이구아나에게 오직 한 가지 방어본능만 제공했다. 위협이나 공격을 받으면 무조건 해변 쪽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변화한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은 제공하지 않았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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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습은 몸크기가 크거나 작은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에 아주 복잡하다. 특히 거대화는 섬의 메뉴 중 또 하나의 요소인 ‘확산능력 상실‘과 결합해 나타날 때가 가끔 있다.
확산 능력 상실은 비행 능력 상실과 동의어로 쓰일 때가 많다. 넓은바다를 건너 이동할 때, 파충류는 날개의 힘보다는 인내력에 의존한다. 인내력은 신체 크기에 비례해 커지므로 거대화는 파충류의 확산 능력을높일 수 있다. 이 사실은 파도를 타고 알다브라 섬에 도착한 창시자 거북들에게서 잘 드러난다. 상자거북만 한 크기의 거북은 그 먼 여행에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행 능력에 의존해 확산하는 곤충과 조류에서는 그 반대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큰 날개는 확산 능력을 높이지만(앨버트로스는 참새보다 바다를 더 쉽게 건널 수 있다), 몸집이 크면 장거리 비행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공기역학과 규모의 원리는 하늘을 통해 세상을 돌아다니는 종의 몸크기를 제약한다. 곤충이 대체로 몸이 작고, 조류가 대부분 가냘픈 몸집과 속이 빈 뼈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화는 그러한 제약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도전은 과감한 실험을 하더라도 즉각 심각한 처벌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만 일어난다. 즉, 경쟁자와 포식자가 거의 없는 환경, 다시 말해서 섬에서만 일어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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