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사건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건도 모종의 규칙성을 띨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만만치 않은 지성의 도약을 요구한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과 뒷면 중에 무엇이 나올지는 전혀 모르더라도 동전을 1,000번 던지면 500번쯤 앞면이 나옴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개념적 진보다. 이 깨달음은 중력이 모든 물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보편적인 힘이라는 깨달음에 못지않은 지적 발전이다. 이 지적인 진보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연한 사건의 속성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정상적인!) 동전 던지기를 하는데 처음 열 번의 시도에서 앞면이 뒷면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음 시도들에서는 뒷면이 더 많이 나와서 균형이 회복되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다. 이 오해는 워낙 만연해서 ‘도박꾼의 오류Bambler‘s fallacy‘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 P67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빈도주의적 해석에서 확률은 외부 세계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든 예들에서 확률은 동전과 주사위의 속성이다. 확률은 대상의 길이나 질량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주관적 해석은 확률을 사뭇 다르게 본다. 주관적 확률은 외부 세계의 한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한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개인적 믿음을 나타낸다. 당신은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가능성이 동등하다고 믿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당신이믿는 앞면이 나올 확률은 2분의 1이다. 그런데 동전 던지기에 쓰이는 동전이나 던지기를 실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차츰 더 많이 알게 되면(예컨대 마술사가 양면이 모두 앞면인 동전을 던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 당신은 믿음의 강도, 곧주관적 확률을 조정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주관적 해석에서 확률은외부 세계의 속성이 아니라 정신의 내적 속성이다. 각 개인은 각 사건에 대해서 나름의 주관적 확률을 가질 것이다. 이런 연유로 브루노드 피네티Brunn de Finetti 는 중대한 저서 《확률론>의 첫머리를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열었다. 그의 취지는 확률이란 외부 세계에 딸린 속성이 아니라우리가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에 딸린 속성이라는 것이다. - P78
빈도주의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은 각각 ‘우연적eatory‘ 해석과 ‘인식론적epistemological‘ 해석으로도 부른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aleatory‘는 ‘주사위던지기에 의존하는‘, ‘인식론적‘은 ‘앎에 기초를 둔‘이라는 의미다. 지금 유형이 사뭇 다른 두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대통령이 여성일 확률은 0.9다"와 같은 문장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 문장과 관련해서는 반복 시도를 생각할 수 없다. 수많은 시도 중 일부에서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거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신에 단지 확신 또는 믿음의 정도만 있다. 확률을 ‘믿음의 정도‘로 간주하는 인식론적 해석은 사실상 우연을 무지의산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따라서 인식론적 확률 해석은 일신교와 맥락이 통한다. 실제로 17세기 중반 확률 개념의 토대는 그런 맥락 속에 놓였다. 그 맥락 속에서 우연적 사건은 단지 신이 어떻게 그것을 일으켰는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곧 살펴보겠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불확실성이 단지 참된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 P79
보다 수준이 높은 기본적인 법칙 하나는 ‘큰 수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주어진 값들의 집합에서 무작위로 뽑은 수들의 평균은 그 수들의 개수가 많을수록 원래 집합의 평균에 더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 예컨대 6개의 값으로 이루어진 집합 {1, 2, 3, 4, 5, 6}을 생각해보자. 이 집합의 평균은(1+2+3+4+5+6)/6=3.5다. 이제 이 집합에서 무작위로 수들을 뽑는다고 해보자. 뽑은 수는 다시 집합에 집어넣는다. 따라서 한 수를 두번 이상 뽑을수도 있다(내가 뽑은 수들은 이를테면 3, 6, 2, 2, 4, 1, 5 등일 수 있다). 큰 수의 법칙에 따르면 뽑는 수들이 많아질수록 그 수들의 평균은 3.5에 더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 아주 많은 수들을 뽑았다면, 그 수들의 평균이 3.5를 크게 벗어날 개연성은 극히 낮다. - P85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큰 수의 법칙(비공식적인 명칭은 ‘평균의 법칙‘)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도박꾼의 오류를 상기하라. 도박꾼의 오류란 동전 던지기에서 처음에 앞면이 더 많이 나오면 그 다음에는 뒷면이 더 많이 나와서 불균형이 해소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뜻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동전 던지기가 계속 반복되면 그 불균형이 희석되어 앞면의 비율이 점점 더 2분의 1에 접근하는 것이다. 2분의 1은 0과 1의 평균이다. 바로 이것이 큰 수의 법칙이다. 큰 수의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 P86
우연의 법칙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수준 높은 법칙은 이른바 ‘중심극한정리‘다. 이번에도 집합 {1, 2, 3, 4, 5, 6)에서 무작위로 한 값을 뽑아서 확인하고 다시 집어넣는 작업을 상상해보자.이미 언급했듯이, 주사위 던지기를 이용하면 이 작업을 쉽게 반복할 수 있다. 나는 주사위를 다섯번 던져서 나온값들의 평균을 계산하려 한다. 이런 평균을, 앞서 큰 수의 법칙을 다룰 때도계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던지기 횟수를 그냥 누적하는 대신에 5회 던지기를 한 세트로 삼아 이 세트를 반복하면서 평균들을 구할 것이다. 첫째 세트의 평균과 둘째 세트의 평균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5회 던지기한 세트를 계속 반복하면서 매번 평균을 구하면, 이리저리 흩어진 평균들의 분포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예에서 다섯 번이라는 횟수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다. 5회 대신에 10회나 20회, 또는 100회를 한 세트로 삼을 수도 있다. 즉 표본의 크기를 5가 아니라 10, 20, 또는 100으로 정해도 된다. 표본의 크기가 얼마냐에 따라서 평균들의 분포는 고유한 모양을 떨 것이다. 중심극한정리는 표본의 크기가 증가하면 평균들의 분포가 ‘정규분포‘(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Carl Friedrich Gauss 의이름을 따서 ‘가우스 분포라고도 함)라는 특정한 모양에 점점 더 접근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정규분포의 모양은 종의 윤곽을 닮았다. - P88
내가 방금 든 간단한 예에서도 오른쪽 그래프는 정확한 정규분포가 아니다. 하나만 지적하자면, 진정한 수학적 정규분포는 양쪽 방향으로 무한히늘어진 ‘꼬리‘를 가진다. 바꿔 말해 참된 정규분포에서는 가능한 값에 한계가 없다. 반면에 집합 {1, 2, 3, 4, 5, 6}에서 뽑은 5개의 값을 평균하는 작업에 기초한 나의 예에서 가능한 최대 평균은 65개의 값이 모두 6인 경우), 최소평균은 15개의 값이 모두 1인 경우)이다. 자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키가 30미터이거나 음수인 사람은 없다. 정규분포는 유용한 수학적 추상물이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벽하게 대표하는 모형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곧 살펴보겠지만, 정규분포가 자연적인 분포의 근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연의 법칙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 P90
본래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아원자 규모의 사건들을 연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전자를 비롯한 입자들을 확률 분포, 혹은 ‘확률 구름‘으로 서술하기시작했다. 확률 분포는 입자의 속성(위치, 속도 등)이 특정한 값으로 측정될 확률을 알려준다. 이런 서술은 속성이 측정될 때 비로소 속성의 값이 실제로존재하게 된다는 생각을 함축한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확률적인 세계관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1944년에 막스보른 Max Bar) 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당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을 믿는 반면, 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완전한 법칙과 질서를 믿는다.… 양자이론이 일단 큰 성공을거뒀다 하더라도, 나는 주사위 놀이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실제로 우연이 자연을 근본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불확정성이 자연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시계장치 우주에서 확률적 우주로의 이행은 한 세기 전에 시작되어 지금은 사실상 완결되었다. 우리는 우연과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산다. 하지만 이미 살펴보았듯 우연은 고유한 법칙들을 따른다. 그 법칙들은 확률론의 토대를 이룬다. 이후 장들에서 그 토대 위에서 우연의 법칙이 건축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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