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린 새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 P7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너는 본다. - P12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 P17
유난히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밤에는 간격을 만들 겨를도, 공간도 없어서 얼기설기 관들의 모서리를 맞대 모조리 붙여놓았다. 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소리치지도 움직이지도 손을 맞잡지도않는, 지독한 시취만을 뿜어내는 군중 속을 너는 장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빠르게 걸어다녔다. - P21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지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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