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는 뱀장어가 심해의 바닥을 따라가는 줄 알았으나 최근 뱀장어에 무선 추적기를 달아 인공위성으로 추적한 결과, 낮에는 천적을 피해 수심 500~900미터의 깊은 곳을 헤엄치다 해가 지면 수심100~300미터의 비교적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약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산란장을 어떻게찾아가는지, 구체적인 이동 경로는 아직도 숙제로 남겨져 있다. 해저산맥 때문에 교란된 지자기와, 염분과 수온이 다른 해류가 만나는 독특한심해 바닷물을 감지하여 그곳 산란장을 찾는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산란장으로 이동하는 6개월 동안 뱀장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위와 장은 퇴화해 거의 보이지 않고 그 빈자리를 생식소가 채운다.
그렇게 필리핀 동쪽, 괌 서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향한다. 산란할 때가 되면 암컷은 눈에 띄게 배가 부푼다. 수컷은 그보다 조금 작다. 수온이 25~27°C로따뜻한 4월~8월 사이, 수심 160미터쯤 되는 해저 산봉우리에서 달도없이 캄캄한 그믐밤에 떼로 모여 산란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믐밤의 사랑의 밀월인 셈이다. - P150

동북아산 뱀장어는 북위 15도 동경 140도 부근의 마리아나 해산서쪽 태평양에서 태어난다. 새끼일 때는 ‘렙토세팔루스 Leptocephalus 라는 투명한 대나무 잎(유럽에서는 버들잎이라고 표현한다) 모양의 댓잎뱀장어형태로 북적도 해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후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6~12개월 동안 약 3000킬로미터의 끝없는 여행을 한다. 그러다가 대륙사면에 이르면 납작했던 몸이 원통형의 실뱀장어 Glass eel로 바뀌고그 모양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연안으로 들어온다. 자기 어미가 살았던 민물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이 같은 모천회유母川回游는신비에 가깝다. (보통 연어의 회유 양상을 모천회유라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연어는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것이니 ‘고향 방문‘이 맞지 않을까?) 게다가 댓잎뱀장어에서 실뱀장어로 변태할 때는 7~8센티미터이던 몸길이가 5~6센티미터로 오히려 줄고 모양도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옛날에는 댓잎뱀장어와 실뱀장어를 다른 종으로 분류했다. - P152

현재까지 뱀장어 양식은 전적으로 하구에서 채집한 실뱀장어 공급에 의존한다. 물고기를 양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어미로부터 인공적으로 알을 짜내 부화시켜 종묘, 즉 물고기 새끼를 만든다. 그러나 뱀장어는 아직 인공 종묘 생산이 되지 않아서 하구로 올라오는 자연산 실뱀장어를 잡아 키운다. 이를 양만이라고 한다. 보통 물고기는 양식이라고 하는데, 뱀장어에는 유독 ‘뱀장어 만" 자를 써서 양만養鰻이라고 하니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일 것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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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대한민국에 이순신 연구자만 5,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역사 전공 여부를 떠나, 이순신에게 매료되어, 이순신의 행적을 좇고 흔적을 찾아 이순신을 연구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연구자들의 성과가 모여 후학들이 편하게 이순신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순신을 먼저 연구하신 선배 역사가들에게 진심으로 감드립니다. - P5

넷째, 튼튼하지만 무거운 판옥선이 바다 위에서 이순신의 마음처럼 움직여주려면 노를 젓는 노군격군들을 훈련시켜야 하였다. 이순신은 키가작고 가슴팍이 두꺼운 격군을 선발했고 실전처럼 훈련시켰다. 전라좌수영의 격군들은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되었고 바다위에서 수십대의 판옥선으로 진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실전에서나 훈련에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힘든 역할이 격군이었음을 이순신은 알았다. 격군 중에는 노비도 많았다. 이순신은 이름조차 없었던 노비 출신 격군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전쟁 중공을 세우거나 사망했을 경우를 대비한 섬세한 행정이었다.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던 노비들이 격군으로 끌려왔으나 이순신은 그들을군인 이상의 중요 자원으로 여겼고 본영의 격군들만을 모아 잔치를 치러주기도 하였다. 이순신은 아군이 사망했을 경우, 전투가 끝나면 그 사망자의 시신을 배에 실어 고향에 보내주었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격군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 P50

‘가도입명 假道入明‘

명나라를 공격할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일본의 부탁을 조선이 들어줄리 만무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오랜 분열기를 끝내고 통일이 된 일본의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우선 정식 사절단인 통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통신사 정사로 황윤길, 부사로 김성일이 일본에 건너갔다.
당시 조선은 붕당 간 대립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본을 다녀온 직후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을 경계하고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한 반면,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생긴 게 쥐새끼처럼 생겼는데 뭐가 두렵단 말입니까?"
붕당간의 대립은 있었지만 조선도 나름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 경로를 계산하여 성벽을 보수하였고 무기들을 손질하였다. 뛰어난 무장들을 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수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조정과 일선의 장수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이 있더라도 과거 왜구의 노략질 수준의 침략으로 상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고 통일된 일본의 전력에 대해 무지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보던 대마도주가 전쟁에 대해 경고하며 조총까지 보여줬으나 조선은 콧방귀만을뀌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섬나라 일본이 지금껏 대륙을 넘본 적도 없었고, 설령 일본이 침략해 온들 대국인 명나라가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심리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의 속박에서 벗어난 인물이 있기 마련이고 조선에서는 이순신이 그러했다. - P69

다음 날인 5월 5일 이순신의 함대는 당포에 이르렀다. 그리고 원균의 경상우수영과 조우하였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원균은 거짓말처럼 단 1척의 판옥선만을 이끌고 나타났다. 더군다나 원균의 판옥선에는 함포조차실려 있지 않았다.
원균은 경상좌수사 박홍이 육지로 도망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서 박홍처럼 자신도 육지로 도망가려는 생각을 했다. 원균은 중요한 군수품인 조선의 판옥선을 적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판옥선들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리고 육지로 도망가려 했으나 옥포 만호 이운룡의 만류로 이순신에게 도움을 청한 터였다.

왜적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우수사원균은 대적할 형편이 못 된다는것을 알고 전선과 무기들을 모조리 바다에 가라앉히고 수군 1만여 명을 흩어버린 다음, 단지 옥포 만호 이운룡, 영등포 만호 우치적과 함께 남해현 앞바다에 머물러 있다가 육지에 올라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 P76

옥포만에서 징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징소리에 맞추어 일본군을향해 다가오던 조선의 전함들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뱃머리를 90도 돌려 배의 옆구리를 드러냈다. 무언가 명령을 내린 듯 대장선으로 보이는 배에서 깃발이 올라갔다. 일본군들은 대체 조선군이 뭘하자는 것인가 하며 쳐다볼 뿐이었다.
"쾅!"
그때 천지를 울리는 굉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무언가가 일본의 전함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일본도를 꼬나들고 한껏 집중하여 백병전을 준비하던 일본군들은 혼비백산했다. 조총의 사정거리 바깥에서 총알 수백 배 크기의 포탄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으니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주변의 동료들이 포탄을 맞아 머리가 으깨지고 뼈가 골절되어 쓰러졌다. 포탄을 피하면 포탄이 배의 갑판을 뚫고 밑바닥까지 구멍을 내어 바닷물이 차오르는 기가막힌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탄성과 신음 소리, 살려 달라는 절규, 총을 쏠수도 없고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할 수도 없는, 일본군 입장에서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기에 바빴고 배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퍼내기에 급급하였다.
일본군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공격. 이것이 바로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 선보인 일시집중타였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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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저속 촬영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옮김, 민음사, 1983, p. 353). 이 구절은 광주항쟁 이후의 모든 대규모 집회가 어째서 축제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형식을 띠었는지 설명해준다. 광주항쟁은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첫날"이자, 그것에 선행하는 시간을 압축하는 "역사의 저속 촬영기"였으며, 축제 (1987년과 1990년 군중이 애도 공동체를 형성했던 대규모 시위들, 2007년과 2008년 촛불집회들)의 모습을 하고 되돌아왔던 "항상 동일한 날"이었다. 축제가 만들어내는 ‘절대 공동체‘ 속에서 역사의 연속성은 폭파되며, 죽은 자의 시간과 산 자의 시간이 뒤섞인다. - P257

현대 사회의 도덕의 기초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의 원리이다. 즉 태어나는 모든 인간 생명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신성함이란 바로 이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낙태의 합법화는 이 원리를 위반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태아에게 장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뿐이기 때문에, 태아를환대할 권리 역시 엄마에게만 있다. 사회가 엄마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아를 환대하기로 결정하고 엄마에게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는 한 사람의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 된다. 즉 엄마의 사람자격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절대적 환대의원리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태아가 아직 사회 바깥에 있으며, 태아를 사회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엄마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말해야 한다."
- P259

이제 노예를 벌거벗은 생명과 비교한다면, 두 경우 모두 사회적인 죽음이 그들의 상태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무 때나 주권자의 명령만으로벌거벗은 생명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며, 구성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있건-시민권자이건 등록 외국인이건 그들 사이의 연대가 모두 파괴되어 그들이 다만 인구로서 존재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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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본디 문화의 습득과는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무엇이다. 영혼이 있다는 말은 신성하다는 뜻이며, 함부로 범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뒤르켐은 이 신성함이 사회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신성함의 원천은 개체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갓난아기의 둘레에 금줄을 치고, 함부로 손댈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은 사회이다. 사람은 신성하기 때문에 의례의 대상인 게 아니라, 의례의 대상이기 때문에, 의례의 수행을 통해서 비로소 신성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격에 대한 이 같은 수행적 관점은 여전히 윤리학적인 문제를 내포한다. 신성함을 부여하는 힘이 사회에 있다면, 사회는 그것을 박달하는 힘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회가 한 개인에게서 신성함을 박탈하여 그를 어떤 금기의 보호도 받지 않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들려할 때, 우리는 무슨 근거로 그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권리를가질 권리‘에 대해 논의하면서 아렌트가 예리하게 의식하는 문제이기도하다. 나치스는 가치 있는 생명과 무가치한 생명을 구별하는 것은 주권자의 권한이며, ‘내재적 가치‘나 ‘빼앗길 수 없는 존엄‘ 따위는 존재하지않음을,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보내고 그들의 몸을 비누나 성냥으로 만듦으로써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신성함의 원천이 개인의 바깥에 있다는 말은 결국 이러한 관점에 동조하는 게 아닌가? - P246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두 가지이다. 우선 사회는 주권자-국가나 총통처럼 단일한 주체가 아니다.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들 각자는 타자를 사회적 죽음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벌거벗은 생명은 아직 완전히 벌거벗은 게 아니다(이는 발화의 장소성placedness 이라는 주제로 우리를 이끄는데, 우리가 벌거벗은생명들의 인권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하더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 담론의 취약성은 그것이 신학적 관념 -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였다‘ 등등-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담론을 실천과 분리하여 비장소화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다음으로, 신성함이 사회로부터 온다는 말은 결코 사회가 마음대로그 구성원에게서 존엄을 박탈할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조건부의 환대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 안에 전쟁을 다시 끌어들이고, 그리하여 사회의 개념을 토대에서부터 무너뜨린다.  - P247

아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야말로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은 우리가 무엇을 준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맺었던 관계의 본질은 우리가 더 이상 남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게 되는 시점에 받게 될 대접을 통해 확인된다. 물론 죽은사람의 몸 자체는 그 사람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사람‘은 몸과 분리되어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온무언가가, 그 사람의 존재 혹은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그가 두고 간 이 껍데기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그가 남긴 다른 유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껍데기는 팔거나 버리거나 아무에게나 넘겨주어서는 안 되는 "간직할 의무가 있는 물건이다. 우리는 이 물건을 의례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망자와의 관계를 지속한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죽은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뜻한다. 사회는 산 자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죽은 자들 역시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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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예컨대 국적이나 출신 계급이나 인종이나 성별, 심지어 언어와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 서사에 통합되는 한에서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authorship 자체임을 뜻한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정체성운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도(펩femme이나 부치butch 같은 단어를 모른다 해도) 그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 P215

영아 유기가 성행한 로마에서, 그를 구조한 노예 상인은 그의 죽음을 유예했을 뿐, 그를 환대한 게 아니다. 그들의 관계를 특징짓는 것은 오히려 지속적인 적대이다. 노예 상인은 아무 때나 아이를 죽일 수 있고, 매질과 모욕으로 끊임없이 죽음을 환기시키면서 아이의 복종을 끌어내기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은 환대가 면책 혹은 망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로부터 나왔고,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자기들이고, 그들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 망각으로부터 사회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 P217

‘주인‘은 내부에 타자들을 포함한다. 환대의 권리를, 칸트가 그랬듯이공간에 대한 권리이자 교제의 권리, 즉 친교의 가능성으로 충전된 현상학적 공간사회에 들어갈 권리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환대가 단지 이방인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국경선과 관련된 문제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서류상으로 엄연히 미국 시민이었지만, 공공장소에대한 접근권이라는 면에서 외국인보다 못하였던, 민권운동 이전의 미국 흑인들이 좋은 예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는이유로 다른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야 했던 무수한이들은 또 다른 예일 것이다. 환대의 권리가 인류의 구성원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라면, 이 권리를 부정당하는 사람은 ‘인류 공동체‘에속한다는 사실을 부정당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환대란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행위, 그가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 현상하고 있음을 몸짓과 말로써 확인해주는 행위라고 말하기로 하자.  - P229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바로 환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푸코의 비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는 사회 안에서어떻게 끊임없이 전쟁이 작동해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전쟁을 국경으로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사회를 절대적 환대의 공간으로 만들 수 없음을암시한다. 전쟁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언제나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그들의자리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라도 인민의 적으로규정되어 성원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환대는 그러므로 전쟁의 문제를해결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환대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칸트의 유명한 텍스트에 ‘영구평화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는 점을상기시키고 싶다. 칸트는 보편적인 환대를 영구평화의 조건으로 제시한셈이지만, 우리는 그 역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구평화야말로 절대적 환대의 조건이라고 말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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