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대한민국에 이순신 연구자만 5,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역사 전공 여부를 떠나, 이순신에게 매료되어, 이순신의 행적을 좇고 흔적을 찾아 이순신을 연구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연구자들의 성과가 모여 후학들이 편하게 이순신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순신을 먼저 연구하신 선배 역사가들에게 진심으로 감드립니다. - P5
넷째, 튼튼하지만 무거운 판옥선이 바다 위에서 이순신의 마음처럼 움직여주려면 노를 젓는 노군격군들을 훈련시켜야 하였다. 이순신은 키가작고 가슴팍이 두꺼운 격군을 선발했고 실전처럼 훈련시켰다. 전라좌수영의 격군들은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되었고 바다위에서 수십대의 판옥선으로 진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실전에서나 훈련에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힘든 역할이 격군이었음을 이순신은 알았다. 격군 중에는 노비도 많았다. 이순신은 이름조차 없었던 노비 출신 격군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전쟁 중공을 세우거나 사망했을 경우를 대비한 섬세한 행정이었다.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던 노비들이 격군으로 끌려왔으나 이순신은 그들을군인 이상의 중요 자원으로 여겼고 본영의 격군들만을 모아 잔치를 치러주기도 하였다. 이순신은 아군이 사망했을 경우, 전투가 끝나면 그 사망자의 시신을 배에 실어 고향에 보내주었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격군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 P50
‘가도입명 假道入明‘
명나라를 공격할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일본의 부탁을 조선이 들어줄리 만무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오랜 분열기를 끝내고 통일이 된 일본의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우선 정식 사절단인 통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통신사 정사로 황윤길, 부사로 김성일이 일본에 건너갔다. 당시 조선은 붕당 간 대립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본을 다녀온 직후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을 경계하고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한 반면,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생긴 게 쥐새끼처럼 생겼는데 뭐가 두렵단 말입니까?" 붕당간의 대립은 있었지만 조선도 나름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 경로를 계산하여 성벽을 보수하였고 무기들을 손질하였다. 뛰어난 무장들을 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수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조정과 일선의 장수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이 있더라도 과거 왜구의 노략질 수준의 침략으로 상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고 통일된 일본의 전력에 대해 무지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보던 대마도주가 전쟁에 대해 경고하며 조총까지 보여줬으나 조선은 콧방귀만을뀌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섬나라 일본이 지금껏 대륙을 넘본 적도 없었고, 설령 일본이 침략해 온들 대국인 명나라가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심리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의 속박에서 벗어난 인물이 있기 마련이고 조선에서는 이순신이 그러했다. - P69
다음 날인 5월 5일 이순신의 함대는 당포에 이르렀다. 그리고 원균의 경상우수영과 조우하였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원균은 거짓말처럼 단 1척의 판옥선만을 이끌고 나타났다. 더군다나 원균의 판옥선에는 함포조차실려 있지 않았다. 원균은 경상좌수사 박홍이 육지로 도망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서 박홍처럼 자신도 육지로 도망가려는 생각을 했다. 원균은 중요한 군수품인 조선의 판옥선을 적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판옥선들을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리고 육지로 도망가려 했으나 옥포 만호 이운룡의 만류로 이순신에게 도움을 청한 터였다.
왜적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우수사원균은 대적할 형편이 못 된다는것을 알고 전선과 무기들을 모조리 바다에 가라앉히고 수군 1만여 명을 흩어버린 다음, 단지 옥포 만호 이운룡, 영등포 만호 우치적과 함께 남해현 앞바다에 머물러 있다가 육지에 올라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 P76
옥포만에서 징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징소리에 맞추어 일본군을향해 다가오던 조선의 전함들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뱃머리를 90도 돌려 배의 옆구리를 드러냈다. 무언가 명령을 내린 듯 대장선으로 보이는 배에서 깃발이 올라갔다. 일본군들은 대체 조선군이 뭘하자는 것인가 하며 쳐다볼 뿐이었다. "쾅!" 그때 천지를 울리는 굉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무언가가 일본의 전함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일본도를 꼬나들고 한껏 집중하여 백병전을 준비하던 일본군들은 혼비백산했다. 조총의 사정거리 바깥에서 총알 수백 배 크기의 포탄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으니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주변의 동료들이 포탄을 맞아 머리가 으깨지고 뼈가 골절되어 쓰러졌다. 포탄을 피하면 포탄이 배의 갑판을 뚫고 밑바닥까지 구멍을 내어 바닷물이 차오르는 기가막힌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탄성과 신음 소리, 살려 달라는 절규, 총을 쏠수도 없고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할 수도 없는, 일본군 입장에서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기에 바빴고 배에 차오르는 바닷물을 퍼내기에 급급하였다. 일본군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공격. 이것이 바로 세계 해전사에서 처음 선보인 일시집중타였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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