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저속 촬영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옮김, 민음사, 1983, p. 353). 이 구절은 광주항쟁 이후의 모든 대규모 집회가 어째서 축제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형식을 띠었는지 설명해준다. 광주항쟁은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첫날"이자, 그것에 선행하는 시간을 압축하는 "역사의 저속 촬영기"였으며, 축제 (1987년과 1990년 군중이 애도 공동체를 형성했던 대규모 시위들, 2007년과 2008년 촛불집회들)의 모습을 하고 되돌아왔던 "항상 동일한 날"이었다. 축제가 만들어내는 ‘절대 공동체‘ 속에서 역사의 연속성은 폭파되며, 죽은 자의 시간과 산 자의 시간이 뒤섞인다. - P257
현대 사회의 도덕의 기초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의 원리이다. 즉 태어나는 모든 인간 생명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어떤 명목으로도 이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신성함이란 바로 이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낙태의 합법화는 이 원리를 위반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태아에게 장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뿐이기 때문에, 태아를환대할 권리 역시 엄마에게만 있다. 사회가 엄마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아를 환대하기로 결정하고 엄마에게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는 한 사람의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 된다. 즉 엄마의 사람자격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절대적 환대의원리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태아가 아직 사회 바깥에 있으며, 태아를 사회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엄마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말해야 한다." - P259
이제 노예를 벌거벗은 생명과 비교한다면, 두 경우 모두 사회적인 죽음이 그들의 상태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무 때나 주권자의 명령만으로벌거벗은 생명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며, 구성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있건-시민권자이건 등록 외국인이건 그들 사이의 연대가 모두 파괴되어 그들이 다만 인구로서 존재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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