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음속의 말들을 전부 쏟아놓고 싶었다. 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명은 늘 변명에 불과했다. 모두가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들어보면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 머스탱에 문제 있으면 알려주고 보러가드가 말했다.
아리엘은 문제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음에 봐." 그는 아리엘이 카운터로 걸어가 주스와 기름 값을 계산하고 마트를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리엘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아리엘은 열여섯이었다가, 열두 살이 되고, 이윽고 다섯 살 아이가 되었다. 그녀가 차에 탔을 때, 보러가드는 갓 태어난 아리엘을 안고 있는 상상을 했다. 조막만 한 손을꼭 쥐고 들어 올리는 모습은 마치 싸움을 준비하는 듯했다. 하지만그 싸움은 아리엘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승부는 이미 조작되었고 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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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수년 전에 나는 중국 출신의 한 대학원생과 함께 사회심리학적 주제와 인간의 사고 방식에 관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은 "교수님, 교수님과 저의 차이점이라면, 저는 세상을 원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교수님은 세상을 직선으로 생각하신다는 점입니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혹스러워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생각을 계속해서 말했다. "중국 사람들은 사물은 늘 변화하며 언젠가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아주많은 사건들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물들 간의 관계성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부분만을 떼어내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서양 사람들은 훨씬 더 단순하고 기계적인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그들은 큰 그림보다는 부분적인 사물 그 자체, 혹은 사람 자체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물의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 P13

나를 포함한 보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인지 과정을 가지고 있다. 마오리족의 지도자이든지 현대의 벤처 사업가이든지 지각, 기억, 인과분석, 범주화, 그리고 추론과정에 있어서 동일하다.
• 만일 어떤 문화권의 사람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신념 체계가 다르다면, 그것은 그들이 세상의 다른 측면을 보거나 아니면 단순히 다른 내용을 교육받았기 때문이지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 고등 추론 과정은 논리학의 형식 논리에 따른다. 예를 들어, 모순된 것을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추론은 "어떤 명제가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없다"라는 형식 논리에 따른다.
• 인간의 사고 과정 자체는 사고의 내용과는 독립적이다. 다시 말해 서로다른 대상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사고 과정이 작용한다. - P14

 이에 더하여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훈련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추론 방법과 실제 행동이 바뀔 수 있음을 이 연구들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의 힘을 인식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버클리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펑카이핑이라는 그 중국 학생의 주장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교육에 의해서 성인들의 추론 방식이 바뀔 수 있다면,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한 사고의 습관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사회화될 것이고 그 결과 서로 다른 사고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 P15

동양과 서양의 사회 구조에서의 차이, 그리고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자기 개념에서의 차이는 그들이 사고 과정과 사고 내용에서 보이는 차이와 일치한다. 즉,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 어떤 사건이든지 수없이 많은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는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같은 논리로, 서양 사회의 개인주의적이고독립적인 특성은 개별 사물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분석하는그들의 접근, 사물들을 다스리는 공통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과 통한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고의 체계에서 정말로 다르다면, 태도, 신념, 가치, 선호와 같은 심리적 특성들에서 나타나는 문화간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생각의 도구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 P17

과학과 수학 
- 왜 고대 중국에서는 연산과 대수학은 발달했지만 기하학은 발달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고대 그리스는 기하학에서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까? 현대의 동양인들이 서양인들보다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서의 최첨단 발전은 왜 서양에서 더 두드러질까?
주의 과정과 지각 과정 
- 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보다 사건들 간의 관련성을 잘 파악하는 것일까? 반대로 주변 환경에서 개별 사물을 분리하는 과제에서는 왜 동양인들이 서양인들보다 더 어려워할까?
인과적 추리 
- 왜 서양인들은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적인 요인은 무시하고 그 사람의 내부 특성만을 강조할까? 왜 동양인들은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내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지‘라는 후견지명 효과를 강하게 보일까?
지식의 조직화 
- 왜 서양의 유아들은 동사보다는 명사를 더 빠른 속도로 배울까? 그 반대로 왜 동양의 유아들은 명사보다는 동사를 더 빨리 배울까?
추론 과정 
- 왜 서양인들은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형식논리를 자주 사용할까? 왜 동양인들은 명백하게 모순되어 보이는 두주장들을 동시에 받아들일까?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이 각각 특징적으로 범하는 추론의 실수는 무엇일까? - P19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유독 강했다. 그 시대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왕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고, 왕에게 대항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한 사회에서시민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도 개인에게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것은 매우 위협적인 일이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자신의 삶은 스스로 주관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행복‘에 대한 그들의 정의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이 정의하는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강한 신념은 개인 정체성에대한 강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독특한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 P27

그리스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 관계가 중요했다. 중국인들은 어릴때부터 자신이 어떤 집단의구성원, 특히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한 사실로 교육받는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 특정 상황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다면,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은 ‘특정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연극이나 시 낭송을관람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생각한 반면, 동시대의 중국인들은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는 것을 특별한 행사로 여겼다. 철학자 헨리 로즈먼트(Henry Rosemont)는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평했다.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당연히 바뀐다. 즉, 완전히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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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러가드는 커피를 끝까지 들이켜며 생각했다. 한때는 이런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고 지붕에서 비가 새지 않는 집. 각자 자신만의 방이 있고 물 새는 곳에 양동이를 받쳐놓지 않아도 되는 집 말이다. 그는 다 마신 커피 컵을 싱크대에 두면서 소박한 꿈과 예상 가능한 꿈을 꾸는 것 중 무엇이 더 슬픈가를 생각했다. 집에 대한 꿈은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에 가졌던 꿈이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에는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후, 그는 어떤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8

보러가드는 몇몇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기위해 수백 킬로그램의 콘크리트를 부어 무기를 묻었다가 적이 찾아오자마자 어렵게 묻은 무기를 파내는 장면이 너무도 클리셰라고생각했다.
영화에서 흔히 쓰는 상징이려니 넘어가려고 해도 극히 비현실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든 한번 입문하면 절대로 그 ‘어두운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한번 그 삶에 입문한 자들은 언제든그 삶을 어깨 너머로 살피게 된다. 총은 손이 닿는 곳에 두지 영화에서처럼 시멘트를 부어 파묻지 않는다. 총을 옆에 두어야만 안심하는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러가드는 집의 모든 방에 총을 숨겨두었다. 총은 좋은 친구지만 종국에는 나쁜 짓을 일삼고야 만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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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통찰력에 의존하여 빠른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지루한 훈련을 거치지 않고도 문제가 되는 지식의 적절한 상징적 표상만 떠올리면 당장 알 수 있다. 쥐, 고양이, 원숭이, 돌고래 같은 비인간적 대상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 환경이나 틀을 고안한 심리학자는 각 동물에게 새로운 과제를 훈련시키는 데에 오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피험자에게는필요한 사항을 말로 전달하면 된다. 짤막한 질문과 답변, 몇 차례의 연습만 거치면 인간 피험자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어떤 행위자도 못 따라올 정도의 탁월한 학습 능력을 보인다. 물론 우리는 이런 실험에서 제시되는 표상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른다. 즉 어떻게 ABC 학습이 인간의 학습으로 이행되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자유롭게 떠다니는 전략을 행위자안에 강하게 묶어 두어 그 행위자 자신의 이성이 되게 하려면 행위자는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의 표상은 구성되고설계되고 편집되고 수정되고 조작되며 승인받을 수 있다. 한 행위자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뇌에서 새로운 기관을 발전시킨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자신이 숙지하고 있던 외부 세계의 조작을 통해 이런 능력을 쌓은 것일까? - P218

행위자는 지각과 행동의 양면에서 자신이 지금 보유한 기술을 가지고 환경에 대처한다. 이런 기술로 극복하기에 환경이 너무복잡할 경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환경을 단순화시키지 않으면 행위자는 난관에 봉착한다. 대부분의 좋은 자연 표지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 나서지만 일부 좋은 인위적인 표지를 해 두었다가 나중에 이용하는 재주를 고안했다. 예를 들어 개미는 집과 먹이를오가는 길에 페로몬 흔적 (냄새 흔적을 남기며 텃세를 부리는 종들의 개체들은 자기 오줌에 함유된 독특한 향기가 나는 화합물로 영역의 경계를 표시한다. 우리가집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단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다. 그것은 또 우리 자신을 위한편리한 인식 수단이기도 하다.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혹은 경작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투자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주는 경계선을 따로 기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속의 중요한 마디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의 일부를 쉽게감지할 수 있는 형태로 외부 세계에 저장함으로써 뇌의 한정된 자원을 다른 활동에 쓸 수 있도록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훌륭한 관리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특성을 식별하는 데 쓸 수 있도록정교한 표지를 환경에 남기는 것은 지각과 기억에 가해지는 과도한 인지 부하를 줄이는 뛰어난 방법이다. 그것은 가장 요긴한 곳에발신 장치를 설치하는 탁월한 진화 전략의 변형이자 개선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 P221

 자주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지만 집을 떠나 병원에서 지내게 된 노인들은육체적으로는 더없이 편한 대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수가 있다. 심지어 그들은 노망기를 보이기도 한다.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몸을 씻는 기본적인활동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한다. 그러니 더 큰 흥미를 낳는 활동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가면 혼자서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집이라는 환경 안에 너무도 낯익은 표지, 몸에 밴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음식이 있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며 전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일깨워 주는 신호를 투여해 온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학습을 하기에는 뇌의 기능이 둔화되었지만 노인은 그처럼 지겹도록 낯이 익은 세계에서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노인을 집 밖으로내모는 것은 사실상 마음의 주된 영역에서 그를 단절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잠재적 충격파는 뇌수술에 버금갈 것이다. - P226

문학 비평가인 수전 손택 (Susan Sontag)은 사진에 관하여 (Onphotography) (1977)에서 고속 촬영 사진의 등장은 과학 기술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기술 덕분에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복잡한 시간 현상을 실시간이 아니라 자기에게 편리한 시간틀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인간은복잡한 사건이 낳은 흔적에 대한 정연한 분석을 느긋하게 즐길 수있게 되었다. 3장에서 언급했듯이 자연 상태에서 우리의 마음은오직 특정한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더 빠르거나 더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은 아예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 분야에서 이루어진 기술의 진보는 인지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흥미를 품은 사건을 우리의 특정한 감각에 맞게 주문 제작된 맞춤형 틀 안에 재현할 수 있게되었다. - P233

우리가 문화에서 얻는 마음의 도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언어다. 처음에는 입으로 말하는 언어, 그 다음에는 손으로쓰는 언어가 등장했다. 언어는 발신 장치와 표지판이 구조가 단순한 생물의 세계를 원활하게 탐색하게 해 주듯이 인식을 도와 우리의 지능을 끌어올린다. 추상적이며 다층적인 관념 세계로의 항해는 공유하고 비판하고 기록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으며 이동과 기억이 가능한 막대한 분량의 표지판이 없다면 애당초 불가능하다. 우리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수십만 년(혹은 수백만 년)의 격차를 두고 나타났으며 각각의 고유한 힘을 가진 확연히 구별되는혁신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뇌나 마음을 이론화할 때 우리는 이 두 가지 현상을 하나로 묶는 경향이 있다. 인지 작용의 매질로서 사고 언어‘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글은 대부분 우리가 씌어진 사고 언어를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 경향을 몇 해 전에 나는 "뇌는 쓰고 마음은 읽는 식이라고 꼬집은 바있다. 언어의 등장이 우리의 인지력을 어떻게 확장시켰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씌어진 사고 언어보다는 말해진 사고 언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유익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 P238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리의 딱지는 점점 정교해지고 명료해지고 분절되어서 종국에 가서는 거의 마술에 가까운 경지에 이른다. 표상에 대한 단순한 성찰만으로 그에 관련된 모든 앎을 떠올릴 수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대상의 이해자가 된다.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이 인공의 교점, 들리고 말해지던 단어들의 이 어슴푸레한 그림자를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개념은 자신의 수많은 연상물 중에 단어 (공적이건 사적이건)의 청음적, 조음적 특성을 담을 수도 담지 않을 수도 있는 내부 딱지다. 단어는 개념의 원형 또는 조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최초의 개념은 내가 보기에는 ‘발성된 개념이다. 다룰 수 있는 개념만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 P245

이 책은 수많은 질문 공세로 시작되었지만 철학자가 쓴 책인지라 속 시원한 답변이 제시되면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나는 이 질문들이 더 나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마음의 다양한 갈래를 지속적으로 탐구할 때 따라가도 좋을 길과 피해야 할함정을 지혜롭게 분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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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적인 얼굴 확인계(혹은확인계들)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데 비해 ‘사기꾼‘이 사랑하는 연인과똑같이 생겼다는 데 캡그래스 환자들이 동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통 때에는 그런 경우에 재차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하는 드러나지 않은 체계(혹은 체계들)는 훼손당하여 기분 나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얼굴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그런 미묘한 체계의 부재는 당혹스러운 결과("무언가가 아니야!")를 낳는다. 그것은 살아남은 시스템이 던진 찬성표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환자는 지각계에 생긴 오류를 문제 삼기보다는 바깥 세계를 탓한다. 훼손당한 지각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터무니없는 형이상학적 믿음을 고수하려고 든다. 이 특정한 지각계의 인식욕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그지각계는다른 지각계가 받아들인 내용을 뒤집어엎는다. - P189

지향적 자세를 채택하는 전략이 내가 주장한 것처럼 커다란혜택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동물의 마음에서 획기적 돌파구가 되는 지점은 바로 다른 존재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지향적 자세를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향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동물이 다른 동물의 다른 생각 (우리는 이것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을 찾아야 한다. 행동주의자를 빗댄 오래된 농담이하나 있다. 행동주의자는 믿음은 없다고 믿고 생각을 가진 존재는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의견이 없다는 의견을 지니고있다는 것이다. 남의 마음에 대해 가설조차 세우지 못하는 행동주의자처럼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동물은 어떤 동물인가? 자의에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한 동물은 어떤 동물인가? 우리는 이러한 두 동물의 차이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행위자의 생각을 발견하거나 조종하기에 여념이 없는 비사고 행위자라는ㅍ말에는 어딘가 모순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가 부득이 진화할 수밖에 없는 복잡성의 단계를 여기서 찾아낼 수 있을 듯하다. - P198

생각은 혼자만의 힘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여러분이 내 생각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나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반성의 군비 확장 경쟁인 셈이다.) 많은 이론가들이 고등지능의 진화를 이렇게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으로 설명한다. 심리학자 니컬러스 험프리 (Nicholas Humphrey)는 자연의 심리학자들(Nature‘s Psychologists)」(1978)이라는 논문에서 자기 의식의 발전은 남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가설을 개발하고 검증하기위한 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행위자의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 능력은 자동으로 스스로의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 능력을 수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험프리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자기 의식을 다른 의식에 대한 가설의 원천으로 이용하기 때문이거나 남에게 지향적 자세를 취하다 보면 자신에게도 동일한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때문이리라. 혹은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 P199

「개성의 조건(Conditions of Personhood)」(1976)이라는 글에서 나는 개성으로 향한 중요한 첫걸음은 1차 지향계에서 2차 지향계로올라선 것이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1차 지향계는 수많은대상에 대한 믿음과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과 욕망에 대한 믿음과 욕망은 가지고 있지 않다. 2차 지향계는 자신의 것이든 남의것이든 믿음과 욕망에 대한 믿음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3차 지향계는 이 지향계가 무언가를 원한다고 상대가 믿기를 원하는 고차적인 능력을 가질 것이다. 4차 지향계는 상대가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을 이 지향계가 믿기를 여러분이 원한다고 믿을 것이다. 가장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은 1차 지향계에서 2차 지향계로의 전환이었다고 나는 그 글에서 주장했다. 고차 지향계는 어떤 행위자가 머릿속에 한 번에 얼마만큼을 담아 낼 수 있느냐로 규정된다. - P200

그러나 연구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설령 고차 지향계가 마음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한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하더라도 사고하는 지혜와 사고하지 않는 지혜 사이에서 우리가 찾는 분수령은분명 아니다. 인간이 아닌 생물에서 나타나는 외견상의) 고차 지향계 중 일부는 심도 있게 분석한 결과 여전히 비반성적 지혜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땅 위에 둥지를 트는 새가 둥지 가까이 접근한 맹수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유인 행동을 보자. 어미새는 방어력이 전혀 없는 알이나 새끼들로부터 살그머니 멀어지면서 파닥거리다가 고꾸라졌다가 구슬픈 울음소리까지 내면서 마치날개가 부러진 듯한 시늉을 드러내 놓고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맹수는 둥지에서 어미새에게로 관심을 돌리지만 결국은 손안에 굴 마음의러 들어온 이 떡을 붙잡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여기서 채택된행동 원리는 너무도 자명하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1976년에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에서 소개한 실용적전략에 따라 이 원리를 가상적 독백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낮은 곳에 둥지를 트는 새며 새끼들은 맹수에게 발각당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다가오는 맹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조만간 새끼들을 발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를 잡아먹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야만 맹수의 관심을 흐트러뜨릴 수있는데 그러려면 나를 실제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꽤 높다고 맹수가 ‘생각해야 한다. 내가 더 이상 날지 못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면‘맹수는 얼른 그런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날개가 부러진 듯한 시늉을 함으로써 그런 증거를 보여 준다.(Dennett, 1983)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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