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1780년의 열하를 가다

이 책의 제목 ‘1780 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에서 ‘1780 년‘과 ‘열하‘는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시·공간을 나타내고자 쓴 말이다. 역사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독자라도 ‘1780 년에 도대체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거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1780년은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해‘로 여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열하라는 지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열하 하면 금방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책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 P11

이러한 명과 조선의 관계는 보통‘사대자소事大字小‘ 관계의 전형이라고 한다. 사대자소란 ‘약소국은 강대국을 지성으로 섬기고, 강대국은 약소국을 자애롭게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대국과 소국의 관계를 마치 부모와 자식 사이 같은 따뜻한 관계에 빗댄 것이다. 관계의 실상이 정말 그러했다면,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 관계에 비하자면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주권 평등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므로 오늘날에는 절대 통할 수 없는 말이지만, 적어도 옛날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강대국이 되고, 어느 쪽이 약소국의 입장에 설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문제였다. 청과 조선의 경우는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입장이 순식간에 뒤집혔기 때문이다.
조선은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기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마찬가지로 여진인들에게 섬김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하게 여겼다. 훗날 청나라의 핵심을 형성하는 만주인들은 여진인들의 후예였고, 여진인들은 원래 조선 땅 동북쪽에 빌붙어 지내는 ‘오랑캐‘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조선 초기의 실록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면 여진의 추장들이 때마다 예물을 바치러 찾아오고, 조선의 왕들이 선물을 하사하면서 그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금세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여진은 조선을 섬기고 조선은 명을 섬기는 위계hierarchy 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16세기 말까지는 그랬다. - P23

인조 14년 병자년(1636) 이월에 후금의 사신이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자는 취지의 요구를 들이밀었다. 이는 기존의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전환하자는 의미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척화론이 들끓었고, 후금의 사신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곧바로 단절되지는 않았다. 조선 조정은 매년 봄마다 보내던 춘신사春信使를 그대로 파견하였다.
같은 해 사월,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식‘이 선양에서 거행되었다. 이제 홍타이지는 ‘관온인성 황제 寬溫仁聖皇帝(만주어로는 ‘고신 온초 후왈리야 언두링거 한Gosin Onco Hüwaliyasun EndringgeHan)로 불리게 되었고, 이에 맞추어 국호는 대청국大淸國(만주어로는 ‘다이칭 구룬Daicing Gurun)으로, 연호는 천총天聰에서 숭덕崇德으로 바뀌었다.
즉위식에서 홍타이지는 자신의 ‘칭제‘稱帝를 정당화하는 명분의 첫 번째로 ‘조선 정복‘의 업적을 내걸었는데, 이는 정묘호란의 성과를 과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선양에 머물던 중 즉위식 현장으로 끌려간 조선의 사신들이 홍타이지에 대한 삼궤구고두三궤九叩頭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황제 즉위식 현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홍타이지는 아마도 조선의 사신들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자신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례儀禮를 고분고분 수행하리라 기대했던 것 같은데, 사신들은 자신들의 삼궤구고두 수행이 곧 조선 또한 홍타이지의 칭제에 동참했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이다. 조선 사신들의 삼궤구고두 거부는 홍타이지가 칭제의 첫 번째 명분으로 내건 ‘조선 정복‘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에 홍타이지는 자신의 칭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짜로 조선을 정복하는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조선 사신들이 흙탕물을 끼얹었다고 할 수 있는 즉위식으로부터 여덟 달이 지난 병자년 십이월 초, 홍타이지가 마침내 청의 대군을 직접 이끌고 오늘날 우리가 병자호란이라고 부르는 전면전을 개시했다.  - P31

조선은 국왕과 조정은 강화도로 건너가고, 각 지역의 군·민은 평지의 성을 떠나 산성으로 들어가서 전쟁을 지구전으로 끌고 간다는 방어 전략을 세우고 청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전략을 미리 간파한 홍타이지는 개전 초기 서울을 곧바로 기습 타격하는 작전과 조선군의 산성 방어 거점들을 그대로 지나치는 작전을 구사했다. 홍타이지의 작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청군의 선봉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남하하였고, 전방 지역의 조선군은 그들의 초고속 진군을 저지하지 못했다. - P33

인조 15년 정축년(1637) 정월 중순, 남한산성 포위망을 완성한 청군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남한산성의 식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는 고사枯死작전을 구사하고 있었다. 아무리 일러도 이월 말은 되어야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홍타이지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청군 진영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홍타이지는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귀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홍타이지를 포함한 청군 지휘부는 대다수가 어려서 천연두를 앓은 적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도 늘 천연두, 즉 마마의 공포에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마 환자가 발발하면 감염을 피하고자 ‘자가격리‘를 위한 칩거에 들어가곤 했다. 전쟁에 나가더라도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의 작전 참가는 기피하였다. 따라서 병자호란 당시 청군 진영의 천연두 발발은 홍타이지가 전쟁의 조기 종결을 추진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 P33

 인조는 출성 대신에 홍타이지가 원래 원했던 군신 관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상의 항복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홍타이지는 인조의 출성을 고집했다.
인조의 출성 여부를 둘러싸고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청군은 인조의 출성을 압박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남한산성을 공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예정보다 한 달가량을 앞당겨 강화도 점령 작전을 감행했다. 당시 강화도에는 종묘사직의 신주와 왕실 및 신료들의 가족이 피난을 가 있었던 터라, 청군의 강화도 점령은 남한산성의 농성 의지를 일거에 꺾고 인조의 출성을 이끄는 최후의 결정타가 될 수 있었다. - P35

병자호란 무렵의 조선은 명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국력도 크게 쇠퇴하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겨우 10년도 지나지 않아 멸망의 길에 들어서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 점에서는 명은 두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심지어 청도 마찬가지였다. 1644년에 시작된 급변 사태는 그야말로 ‘천붕지열, 즉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당시의 조선이 보기에 명의 멸망과 청의 중국 정복이라는 사건은 한바탕의 비극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나중에 조선에서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은, 어찌 보면 더 비극적인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청의 동맹 세력에 편입되어 명과 싸웠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이 눈엣가시와 같던 조선 연해 가도 주둔의 명군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수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명과 청이 요서遼西의 진저우 일대에서 운명을 걸고 벌인 한판 대결에서도 조선은 청을 위해 병력과 군량을 댔다. 1644년 섭정왕攝政王 도르곤(1612~1650) 이 이끄는 청군이 명의 수도 베이징에 입성할 때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가 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의 비극적인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명의 멸망 이후 조선인들이 명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마음이 아마 조선을 이러한 비극적인 처지로 몰아넣은 청나라 오랑캐에 대한 원망으로 변환되어 삼전도의 치욕으로 생긴 원한을 증폭시키지 않았을까? - P40

영조는 긴 치세의 전반기 동안 ‘오랑캐의 운수는 100년을 가지 못한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간직하며 청이 머지않아 멸망하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청은 멸망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세력과 판도를 키우더니 1760년경에 이르러서는 숙적 준가르를 절멸시키는 데 성공하여 공전의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제 청의 멸망은 황하가 맑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기다려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에 영조는 한편으로 황하가 맑아지는 기적의 날을 여전히 기다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화 문명의 보존을 자임하였다. 앞의 인용문에서 보았듯이, 중원의 문물을 보존하면서 명 황제들에 대한 제사를 계속 이어가는 것(대보단大報壇)이 조선의 도덕적 의무라고 여겼다. 영조는 1757년에도 "만약 황하가 맑아진다면, (중국은 반드시 와서 우리나라를 본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중화의 보존은 영조에게 도덕적 의무이자 문화적 자존감의 원천인 동시에 조선의 역사적 사명이기도 하였다. - P58

1644년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이 이자성李自⅔成(1606~1645)이 이끄는 농민 반란군에게 떨어지고 숭정제가 자결하는 돌발 사태가 일어났다. 청나라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베이징을 점령하고는 아예 자신들의 수도마저 그곳으로 옮겨버렸다. 이 사건은 보통 청의 입관이라고 불린다.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고 하는 만리장성 동쪽 끝의 산해관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이다.
입관 전 시기 서울과 선양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의 입장에서 청나라의 베이징 천도는 여행 거리와 기간, 그리고 여행으로 인한 노고가 대폭 증가함을 의미했다. 압록강을 건너 선양까지는 옛날 거리 단위로 540리에 불과했다. 대략 일주일 조금 넘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베이징까지는 무려 2,000 리가 넘는 길이었다.  - P68

이처럼 구월·시월 · 십일월에 잇따라 사신을 출발시켜야 했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동지사겸연공사 일행이 베이징에 도착한 음력 십일월에 청나라가 삼절 三節즉 동지 · 정조·성절의 병공과 동시에 연공 방물의 감축을 발표하였다. 베이징 천도로 인해 조선 사신의 여정이 길어지면서 부담이 너무 커졌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은 이듬해인 1645년부터 ‘1년 4행‘ 의무를 단 한 차례의 사신 파견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세 차례의 절사와 연공사를 합한 사행이었으므로 ‘삼절연공행三節年貢行‘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어떤 명절에 맞추어 보낼 것인지가 문제였다. 청나라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제시하였다. 그들은 정월 초하루, 즉 설날을 선택하였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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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승복은 오전에 흠잡을 데 없는 자격을 갖춘 교육자들의 강력한 증언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소위 지체 아동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발달을 연구하고,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온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그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는 것은 잠재력을 묻어버리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소위 지체 아동도 배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확인했다고 모든 증인이 입을 모았다. 생생한 경험적 증거는 설득력이 넘쳤다. 판사들이 보기에 주정부의 승복은 "압도적인 중거에 대한 영리한 반응"일 뿐이었다.
길홀은 승리를 거두었다. PARC의 부모들을 대신해 쟁취한 승리였다. 그는 소위 ‘법원 조정서‘ 초안을 작성할 권리를 위임받았다. 조정서란 법정다툼을 벌이던 양자가 합의에 도달했을 때 상세한 합의내용을 적은 문서다. 펜실베이니아주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2개월간 용어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하며 주 정부와 13개 교육청이 취해야 할조치들을 문서화했다. 과거와 깨끗이 결별하고 신속하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우선 펜실베이니아주의 모든 가정, 펜헐스트를 비롯한 모든 수용시설, 모든 학교에서 "정신지체" 어린이를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기한은 이듬해 6월까지였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제 자녀가 무료로 공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부모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 후 각급 학교는 어린이 각자의 학습 능력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했다. 길훌은 이 말이무슨 뜻인지 분명히 했다. 모든 어린이에게 최대한 "정상적인" 환경에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규 공립학교 교실이 특수 공립학교 교실보다 바람직하며, 특수 공립학교 교실이 기타 모든 교육훈련 프로그램보다 바람직하다." - P240

남은 것은 주지사의 서명뿐이었다. 법안이 그의 책상에 놓인 날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주지사에게는 12일이 주어졌다. 그사이에 법안을 거부하거나, 서명하거나,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수 있었다. 그런 경우 법안은 자동 통과되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주지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건드는 말할 것도 없고 자폐공동체 전체가 걱정에 휩싸였다. 1974년은 로널드 레이건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주지사 임기가 끝나는 해였다. 그는 주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에 확실히 제동을 걸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예산을 가장 방만하게 낭비하는 분야가 교육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한바 있었다. 자폐교육법에는 좋지 않은 징조였다. 법안이 통과되면 매년 학교에 입학하는 자폐 어린이 한 명당 3,000달러씩의 비용이들어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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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9월30일, 임기 마지막날 레이건은 법안에 서명했다. 그날레이건은 직무실 책상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그의 뒤로 몇몇 주의원들 사이에 절친한 친구인 로이드 놀란의 모습이 보인다. 버나드 림랜드도 있었다. 킴벌리 건드와 함께였다. 그날 하비는 진료실에서환자를 보았다. 코니는 평소처럼 집에서 아들 셋을 돌보았다.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한 후 레이핀 부부는 바로 소를 취하했다. 이제 막 레이건이 서명하여 발효된 그 법은 눈물어린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제 숀은 물론, 캘리포니아의 모든 자폐 어린이가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P261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며칠간 같은 과정을 반복하자 개들은 실험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반응을 보였다. 고기 분말을 입에 넣어주기 전부터 침을 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개들은 실험용 가운을 입은 파블로프의 조수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을 흘렸다. 소화관 연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침 분비량을 측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때 파블로프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통찰이 떠올랐다. 파블로프와 개가 영원히 역사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개들은 환경으로부터 뭔가를 학습한 것이었다! 혀에 음식이 닿았다는 자연적 자극이아니라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모습, 흰 가운을 입은 실험보조원의 모습을 고기 분말의 맛과 연관시켰다. 이런 행동은 조건반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파블로프는 조건반사를 이해하기 위해 몇 년간 연구에 깊이 빠져 종을 울리는 등 다른 자극을 이용해 개의 소화 관련 반응들을 조절할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했다. 1904년 그는 소화과정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수락 연설에서 열띤 어조로 자신이 개척한 심리학 분야에 관해 설명했다. 환경을 조작하여 개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관련된 몇 가지 법칙이 인간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설을 마치면서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자신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우리의 심리적구조, 그리고 베일에 싸여 있었고 현재도 베일에 싸여 있는 그 작동기전"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축하를 보냈다.
파블로프가 노벨상을 수상한 뒤로 행동주의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혁명적인 명제는 동물과 인간의 심리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갖고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1913년 이후 "행동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은 미국의 존 왓슨 John Watson-Ison은 장차 "행동주의 선언"이라고 불리게 될 연설을 통해 기염을 토했다. "행동주의자는 인간과 야수를구분하는 경계선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입장은 그 대담한 의미는 물론, 인간이 특별하다는 관념에 모욕적이란 면에 있어서도 다윈의 진화론에 비견할 만했다. - P296

그들은 디키의 분노발작을 없애기 위해 당시 발표된 자폐증과 무관한 두 건의 연구에 착안하여 가벼운 처벌과 "소거"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첫 번째 연구에서 워싱턴 대학 연구진은 다루기힘든 유치원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행동 변화를 목록으로 열거하고 그래프로 요약했다. 그들은 교사에게 아이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지나치게 운다든지, 혼자 논다든지, 도저히 어떻게 할 수없을 정도로 심하게 몸을 긁는 것 등)을 나타내면 완전히 무시하라고 했다. 선생님의 주목을 끌지 못하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이내 "소거" 과정을 거쳐 빠른 시일 내에 완전히 사라졌다.
반대로 사이좋게 노는 등 보다 적절한 행동으로 바뀌면 교사는 즉시 주목했다. 교사의 주목은 강화에 효과적이었다. 적절한 행동의 빈도가 급속히 늘어났던 것이다. "주목"이란 반드시 칭찬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미묘한 개념이었다. 어린이 곁에 더 가까이 다가서 미소를 짓고, 도와주는 일이 모두 주목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육아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 1962년 워싱턴 대학 실험실에서는 놀라운 발견이었던 셈이다. 그전까지 성인의 주목 행동이 어린이에게 강력한 강화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디키를 지켜본 연구팀은 이런 지식을 근거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아이가 분노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는 것은 행동을 더욱 강화하고, 심지어 더 자주 그런 행동을 유도한다는것이었다. 실제로 직원들은 분노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정성을 다해 디키를 달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 역시 똑같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엄마의 본능이나 모성애라고 할 만한 그런 충동이 행동분석가들의 눈에는 문제의 근원인 것 같았다. 엄마는 의도와 전혀 달리 보상을 통해 아이가 더 많은 분노발작을 일으키도록 유도한 셈이었다. - P300

1980년대 중반 혐오치료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장애인권리옹호단체, 부모 단체, 몇몇 유명 교육 전문가들과 힘을 합쳤다. 반대운동은 정확히 목표로 하던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사회적 담론에큰 영향을 미쳤다. 정서적 호소력이 강력했던 데다, 논리 또한 당시거대한 정신병원들을 닫게 만들었던 설득력 있는 주장들 중 하나와일치했던 것이다. 그 주장은 매우 단순했다. 장애인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커다란 건물을 지어 가두어 놓는 것이 잘못된 처사인 것처럼, 단지 교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체험을 강요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논리였다.
논쟁은 다양한 계층에서 불타올랐다. 1988년 미국자폐협회 AutismSociety of America 는 "혐오치료 기법"에 반대 입장을 채택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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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내게는 그들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그들의 기이한 품격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에서 나온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내가 줄리언 모로 교수에게서 발견한 것도 그런 품격이었다. 그가 풍기는 인상이 참신하다거나소박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정반대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품격은 타고난 것이 아닌,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고도의 세련된 기술이었다). 공부가 제대로 되든 말든, 나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품격이 과연 학문적 정진을 통해 획득된 것인지, 나 역시 그들로부터 배우면 그러한 품격에도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했으나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 내 머리는 너무나 어지러웠다.
결국 나는 머나먼 플래노에서, 아버지의 주유소에서, 그곳에 이르기 위해 달려온 셈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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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고 있었다. 우리는 버니가 죽은 지 몇 주가 지나고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버니는 죽은 지 열흘 만에 발견되었다. 주(州) 경찰, 연방수사국 요원들, 심지어 주 경찰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버몬트 주 사상 최대의 수색작전이 펼쳐졌다. 대학이 휴교하고, 햄든의 염색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뉴햄프셔는 물론, 뉴욕 주 북부와 보스턴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정도였다. - P11

1장

인생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암흑의 균열 같은 ‘치명적인 결함‘이 과연 문학 밖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삶의 치명적인 결함이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삶을 다채롭게만들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 바로 그것인 듯하다.
내 이야기다. 내가 가진 광기에 관한 이야기 하나.(A moi. L‘histoire d‘unede mes folies)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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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님은 나와 형님의 이름을 착각했을 뿐이지만,
아까 하신 말씀이 딱히 틀린 건 아니에요. 할아버님은 이 집에서 일어난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고, 범인이 누군지 알고있습니다."
사토코는 2층을 올려다보려던 시선을 다시 떨구며 다케히코의 얼굴을 보았다. 그 시선은 어중간하게 숙여진 채 문득 멈춰버렸다. 다케히코의 얼굴에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없는 기묘한 미소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아까 할아버님이 빨리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라고 하신 말씀은 류스케 형님이 아니라 나한테 하신 말이었어요."
그리고 그 미소를 그대로 지은 채 이렇게 말했다.
"경찰서에 가서 모두 다 말하기 전에 처형에게 먼저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날 내가 나오코를 죽였다는 것을." - P166

실제로 내 몸은 모피가 타는 듯한 냄새를 풍겨서 나는 죄라는 건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이구나, 하고 나 스스로도 그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도 그 거무칙칙한 악취는 어쩐지 그 자리에 생뚱맞게 튀어나온 것인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기보다 피식 웃은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오코의 눈에는 내가 평소처럼 미소를 지은 것으로 보였겠지요…. 바로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나를 보고 그리 놀라지도 않고, 무슨 큼직한 봉제 인형을 만난 것처럼 내게 빙긋이 미소를 건넸습니다.
봉제 인형?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건 봉제 인형이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제야 겨우 알겠군요. 그때 일은 노출오버 사진처럼 모든 것이 여름 한낮의 하얀 빛에 녹아들어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지금껏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건 봉제 인형이었습니다. - P168

나와 유키코, 그리고 처형 부부의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 범죄 비슷한 것이었고 그 중요한 증거품을 일부러 내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았습니다. 나오코라는 존재는, 단순한 게임 같은 어처구니없는 어른들의 사랑 드라마를 심각한 범죄로 바꿔버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역시 류스케 씨의 아이구나... 그런 실감이 들었습니다.
신주쿠 산초메 사거리에 내던지고 왔을 터인 고통이 갑작스레다시 큰 의미를 품고 나를 덮쳤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 류스케 씨의 아이다. 게다가 나오코는 그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류스케 이모부의 딸이고, 이곳이 진짜 자신의 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키코가 슬쩍 알려주었는지, 아니면 어린아이의 예리한 후각이 본능적으로 진짜 아버지의 냄새를 맡았는지, 아무튼 이 아이는 알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앞에서나 집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이런 너부죽한 자세로 엎드려 있을 리 없다…. 나오코는 스케치북에 얼굴을 파묻듯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느라 내가 다가온 것도 알지못한 것 같았습니다.
"나오코 뭘 그리고 있어?"
내가 말을 건네자 나오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는 나오코의 머리 바로 옆에 뻣뻣이 서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다리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지요.
 그대로 새우처럼 작은 몸을 뒤로 젖혀 그 아이의 시선은 미끄러지듯이 내 얼굴로 올라왔습니다. 그 나긋나긋한 몸의 움직임을 보며 호텔 침대에서 밀회 중인 유키코를 떠올렸습니다. 나를 타인처럼 올려다보는 무표정한 눈도 평소의유키코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표정 없이 윤곽선만 그려놓은초상화 같은 나오코의 얼굴은 심플한 그만큼 류스케 씨와똑같은 얼굴을, 범죄의 또 하나의 증거를 분명하게 내 눈앞에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오코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남자가 누구인지 겨우 알아봤는지, 놀라움과 동시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부르짖었습니다.
"아저씨!"라고.
그것이 어른들의 범죄와도 같은 사랑 게임의 세 번째 크나큰 증거였습니다. - P177

자꾸 꽃 넝쿨로 목을 매려다가 나동그라져 죽지 못하고웃음소리를 올리는 노인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나오코의 죽음까지 그리 슬픈 사건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지난 이 년 동안 노인의 괴상한 말과 행동을 혼자 감당하면서 사토코는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도무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껴왔지만 왠지 이 순간, 사토코는 처음으로 이 노인네는 미친 게 아니라고 느껴졌다. 오히려 이 노인네만 정상이고, 미친 건 우리 쪽이다. 나를 포함해 죽음을 잔혹하고 슬픈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친 것이다….
그렇게 느껴질 만큼 그때 정원 안에는 낙원처럼 아름답고 선하고 온화한 것이 있었다. 여름을 몰아내는 가을바람같은 조용하고 적막한 바람이 불어와 꽃도 노인의 웃는 얼굴도 투명한 바람의 흐름 속에 둥둥 떠돌며 빛났다가 그늘지고 그늘졌다가 다시 빛나면서 자연의 추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한 달여 동안이 집 안에는 추악한 현실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의 머릿속에만은 이런 낙원과도 같은 꿈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노인의 머릿속에는 무시무시한 전쟁터가 있어서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잔인한 살육의 망상에 고통을 받아왔을 터였다. 바로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다케히코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수하러 간 것처럼 이 노인도 이제야 겨우 망상의 전쟁터에서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끝에 이 깨달음과도 같은 낙원의 세계에서 노닐고 있는 게 아닐까. - P186

"애, 사토코, 이번에 살해된 여자애는 저기 서 있는 저여자와 나 사이에 생긴 아이야. 그런데 실은 저 여자가 딴 남자하고 만든 아이야 나도 그렇고 다들 저 여자의 속임수에 감쪽같이 넘어갔어."
참으로 엉뚱한 말이었다. 사토코는 분명하게 알아보면서 유키코는 자신의 전처로 혼동하고 있었다. 전처의 배신이 이 노인에게는 그토록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리라.
일주일 전의 사건과 전처의 부정이 노인의 뒤엉킨 머릿속에서 군데군데 끊긴 채 하나로 이어지면서 전기 합선처럼 불꽃이 튄 결과가 방금 내뱉은 말로 나타난 게 아닐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아니었다. 시아버지가 나오코를 전처가 딴 남자에게서 낳아온 아이라고 착각했고, 그 바람에 살해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토코는 짐짓 나무랐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 나오코는 유키코와 다케히코의 아이예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유키코를 향해 "나를 보면서도 이따금 세상 떠난 시어머니로 착각을 하시니까 네가 너그럽게 용서해"라고 말했다. 딱히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유키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술을파르르 떨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노인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입은 건가..….
"어린애 농담 같은 거라니까. 그렇게 정색을 하고 받아들일 것도 없는.…."
하지만 유키코는 그 말을 가로막으며 비명 같은 소리를올렸다.
"언니...!"
그 목소리도 눈빛도 언니를 비난하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아니라 사토코에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왜 그래,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웃으면서 되물은 순간, 사토코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의 실수를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유키코는 여전히 겁에 질린 눈빛으로 언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어붙은 듯 새파래진 관자놀이에서 밀랍 같은 땀이 툭 떨어지는 것을 사토코는 여동생보다 훨씬 더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 P100

조금 전에 다케히코가 털어놓고 간 얘기들이 가슴속에충격의 잔향으로 엉겨 있었다.
충격을 받은 건 다케히코가 한 고백의 내용보다 그의 거짓말이 너무도 교묘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특히 사건 당일의 행동에 관한 한, 다케히코가 한 얘기는 모두 다 거짓말이었다.
다케히코는 그날 나오코를 죽이지도 않았고, 나오코가 살해된 시간에 이 집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토록 교묘한 거짓말로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다케히코는 범인이 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왜 범인이되려 하는지도, 왜 경찰에 가기 전에 이 집에 왔는지도, 사토코는 잘 알고 있었다.
범인은 따로 있다•••. - P192

그때 나오코의 몸을 안고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
그러자 아버지는 또렷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응, 그 여자가 나한테 부탁했던 게 생각나서 내가 그 아이를 죽였어. 몸을 배배 꼬는 그 못된 여자... 내 전처를 닮은그 여자... 가끔 우리 집에 왔었지? 오늘 아침에도 왔었어. 전부터 그 여자가 나한테 그 아이를 죽이라고 말했어. 류스케,
누구냐, 그 여자?" - P247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내가 그 아이를 죽인 이유는뻔히 다 알잖아. 네가 바로 그 여자니까!"
한순간 할아버지가 나와 형부의 불륜을 눈치채고 똑같은 실수를 범한 나와 전처를 혼동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건 나의 지레짐작이었다. 게다가 그 바로 뒤에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바로 옆의 탁자를 쾅 내리쳤다.
"그 애가 아직 살아 있다면 내가 죽여야 해. 그 애는 섬에서 죽었으니까 살아 있으면 안 돼!"
목청을 쥐어짜듯이 그런 말을 부르짖었다. 그 손아귀의 힘은 탁자를 부수기 전에 자신의 손을 부술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주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와 형부의 관계에 숨은 잔혹한 일면을목격한 듯한 마음이 들었다. 단지 쾌락만을 탐했을 뿐, 우리둘의 관계 속에 누군가 이런 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릴 만큼큰 죄가 숨어 있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나는정원으로 시선을 옮겨 여름 하루의 마지막 햇빛에 달궈져 부옇게 흐려진 작은 여자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죽여야 해. 내가 저 아이를 죽여야 해"라고 내뱉었을 때, 불쑥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해버렸다.
"네, 그렇게 하시라구요. 그래야 속이 풀리신다면 하셔야죠. 근데 오늘은 안 돼요. 나중에 다른 날에 하세요."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얼굴에 웃음마저띠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달래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분노가 진정되어 깊은 안도감에 휩싸인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 P257

혹시 히라타가 자신의 입을 나오코에게 대고 있었다면 그건 숨이 멈춰버린 나오코에게 인공호흡을 해주려고 한 것이다. 그 아이를 죽인 건 할아버지다. 히라타는 그 집에 갔다가 덜컥 현장을목격했고, 순간적으로 인공호흡을 해주려고 했을 뿐이다.
분명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머리가 나쁜 나도 간단히 알 수있는데 류스케는 이번에도 자기 멋대로, 자기 편리한 대로사실을 왜곡했다. 그다음 일도 나는 간단히 알 수 있다. 히라타의 착한 구조 노력 덕분에 나오코는 숨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도 류스케는 엉뚱한 오해를 했다. 나오코가 축 늘어진 것만 보고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땅에 묻어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오코가 숨이 돌아온 것은 땅에 묻힌 다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먼저였던 히라타가 애써구해낸 나오코의 목숨을 다시금 매장해버린 건 류스케다.
그 정원은 흙이 바짝 말라서 모래 같은 상태였으니까 땅에 묻었다고 해봤자 푸석푸석한 흙을 덮어둔 정도였을 것이다. 나오코의 손끝이 밖으로 나온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나오코는... 그 아이는..… 되살아난 그 희미한 목숨으로 마지막에 지상으로 손을 내밀어 그날 오후 정원에 가득하던 하얀 빛을 잡으려고 했다•••. - P262

‘아, 그렇구나, 아버님이 나오코를 공격하게 만들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거야.‘
처음에는 나오코를 살짝 다치게 하는 정도로만 하려고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버님을 요양 시설에 보내기가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유키코가 나오코를 데려간 바로 뒤에 나는 아버님에게 말했다.
"그 아이가 그토록 눈에 거슬리면 아버님 손으로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저도 정말 짜증이 나네요."
그저 잠깐 농담으로 한 얘기였다. 웃기까지 했다. 그랬는데 시아버지가 왠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시아버지의 눈빛은 여느때처럼 텅 빈 것이 아니었다. 내 웃음의 이면에 숨어 있는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악한 것까지 알고 있는 듯한 느힘이 들었다. 물론 나는 곧바로 이성을 되찾아 농담으로라도 그런 잔인한 말을 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그이성도 돌연 몸속 어딘가에서 태풍처럼 끓어오르는 짜증에 어이없을 만큼 간단히 날아가버렸다.
그다음 주 목요일에 유키코가 나오코를 데려왔을 때도나는 은밀히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아이 때문에 정말 짜증 나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같이, 둘만 있을 때를 노려 똑같은 말을 시아버지의 부서져가는 조개껍데기 같은 귀에 속닥거렸다.
"저 아이 때문에 짜증 나요. 다음에 왔을 때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런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실은 "아버님 때문에 짜증 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하게 "저 아이 엄마 때문에 진짜 짜증나요"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P272

사건이 터진 그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최고기온이 갱신될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여름 햇빛은 자신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져 집과 정원에 하얀 단내를 쏟아냈다. - P275

 그 아이가 류스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직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 아이가 가요보다 예쁘고 얌전하고유키코를 꼭 닮은 화려함을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을 용서할수 없었다. 그 아이가 곁에 있으면 모두가 가요 따위는 무시하고 그 아이만 예쁘다고 추켜세웠다. 마치 어렸을 때의 유키코처럼….
그날 아침, 가요가 "나오코는 치과에 데려가지 말자"라고 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가요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오코와 함께 가면 치과 선생님도,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오코만 예쁘다고 하고 자신은 무시한다는 것을 그건 사토코가 어린 시절에 유키코만 예쁘다고 칭찬하던 어른들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래서 아버님에게 "저 아이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계속 속닥거렸고, 그날은 아버님이 정말로 어떻게든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가요가 "나오코는 치과에 데려가지 말자"라고 했을 때 "그럴까?"라고 대답했다 •••. 유키코를 미워하듯이 나는 그 아이를 미워했다. 그래서 죽였다. 그 이유만으로 죽였다 •••. - P280

그리고 흙 속에서... 푸슬푸슬한 흙 속에서 얼굴 모양 같은 것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흙으로 사람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건 조금씩, 조금씩, 얼굴이 되었다. 입이, 코가, 잠든 것처럼 꼭 감은 눈이 만들어졌다. 흙의 입이 괴로운 듯 움찔거렸다. 흙을 빨아들이면서 그 애는 열심히 숨을 쉬고 있었다... 좀 힘들긴 하지만, 절대로 어느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벽한 숨을 곳을 그 애는 찾아낸것이다.
얕은 흙에 덮여 그 애는 눈을 감고 있을 텐데도 흙 속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내가 술래인데 그 애가 술래가 되어 나를 찾아냈다고 신이 난 것 같아서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그 흙 위에 올라섰다. 나는 그 위에 서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발밑의 흙은 금세 조용해졌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엄마하고 그 아이를 찾는 척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쳐버렸을 때, 할아버지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고 다케히코 이모부도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아서 내가 말해줬다.
"엄마, 아까 치과에 갈 때는 저기에 삽이 없었어."
내 말에 대답하듯이 뭔가 어려운 이름의 나뭇가지에서 오렌지색 꽃송이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 애의 몸은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금세 찾아냈다.
하지만... 진짜 숨바꼭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 P282

이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나는 치매에 걸린척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이 집에 이따금 찾아오는 여자애를 살해하라는 그 계획 때문이었다…. 아내 아키요가 세상을 떠나기 이 년 전, 며느리의 여동생이 아이를 낳는 것과 동시에 이 집안은 폭탄을 떠안은 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 폭탄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 아이가 제 엄마를 따라 진짜 내 집은 여기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자주 드나들자 아키요는 불단 안에서 "괜찮아, 죽여도 괜찮아"라고 자꾸만 속닥거렸다. 명령과도 같은 그 목소리는 어느새 나 자신의 목소리가 되고, 그 아이를 죽이는ㅊ일은 내 계획이 되었다. - P303

"괜찮아."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키요의 목소리가 아니라 눈앞의 소녀가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한 여자가 있었다.
내 눈앞에 네 살짜리 한 여자애가 있었고, 스스로 이 범죄의 진짜 범인이 되려 하고 있었다.
"죽여도 괜찮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내가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응, 엄마가 아까 전화했어. 할아버지가 나를 싫어해서 무서운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도망치라고…. 근데 괜찮아,
죽여도."
"죽인다는 게 뭔지 알아?"
"아니. 근데 괜찮아,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래서 할아버지가 힘들지 않게 된다면.... 할아버지, 힘들지? 얼굴이 힘들어보여."
아니, 나는 환상의 목소리를 듣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다. 하얀 빛에 불타서 나는 또 다시 나 자신을 잃었다.
단지 내 손만이 먼 옛날의 죄를 기억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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