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그랬다. 그 점만은 분명하다. 격렬해지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날마다 거의 일정한 시각에 절망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잠도 잘 수 없었고, 때로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했다. 아니면 때로는 정반대로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하거나, 전혀 예기치 않게 기분이 들뜨다가도 좌절하거나, 그도 아니면 때로는 여왕이라도 된 듯 우리가 어머니에게 요구하는것, 그녀에게 제안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데도 아무 이유 없이 사들인 ‘작은 호수‘ 위의 그 집, 딸이 원하니까 사준 남성용 중절모, 금박으로 장식된 하이힐 등.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자거나, 죽은 듯 있기도 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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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황당한 논쟁이 벌어졌을까요? 다시 ‘현생 인류의 정의 문제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다른 사람들과 생김새가 꽤 다릅니다. 6만 년이나 고립돼 있었으니 고유한 특성이 많이 생겼겠죠. 그래서 만약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을 같은 종(인류)으로 포함시킨다면, 생김새가 몹시 다양한 다른 사람들고인류 포함)도 같은 종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바로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생김새는 비로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생김새의 차이보다 월등히 그 차이가 큰 것도 아니거든요. 네안데르탈인의 생김새는 현생 인류가 지닌 생김새의 다양성 범위안에 충분히 포함됩니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현생 인류의 일부가 될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사이에 자손이 나왔고, 그 결과 우리를 비롯해 지구 곳곳의 현생 인류의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둘을 다른 종으로 구분하는게 과연 옳을까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현생 인류의 아종)‘인지 논쟁이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 P261

1960년대의 저명한 인류학자 레슬리 화이트(Leslie White)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게 문화란 체외 적응 기재다(Culture is the extra-somaticmeans of adaptation for the human organism)."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환경에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 따른다면, 이런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몸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도구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게 될 거라고요. 예를 들면 춥다고 두꺼운 지방층을 발달시킬 필요 없이, 따뜻한 난방을 해서 견디면 되거든요. 문화는 계속해서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으니, 굳이 몸으로 적용할 필요는 줄어들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틀린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우리는 진정 진화의 법칙마저 초월하고 있을까요? - P267

하지만 21세기에 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대표 게놈이 판독되고, 판독된 개인 게놈의 수도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유전 정보가 쌓였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유전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했는지 추적해 보니, 기존의 주장과는달리 변화한 유전자가 하나둘씩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계속 진화를 해 왔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문명이 발달하면서 더욱 그 진화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킨‘ 주체는 다름 아닌 문화였습니다. - P269

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1999년에야 처음 발견돼 현재까지 10개 이상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륙마다 분포가 다릅니다. 피부색이 대략 비슷한 정도로 검거나 희다고 해도 그 유전적인 조합은 다른 것이죠. 유럽인의 흰 피부는 아시아인의 흰 피부와 다른 색깔을 띱니다. 그런데 유럽인의 흰 피부는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북쪽으로 퍼지고 나서 한참 뒤인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비로소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류가 북쪽으로 진출한 직후는 지금으로부터 200만년전인데, 그보다 훨씬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비타민D가설이 간단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중위도 지방에 산 이후에도 인류는 사냥 등으로 고기와 생선을 풍부하게 먹었습니다. 이런음식에는 비타민 D가 풍부했고, 따라서 굳이 피부로 합성할 필요가없었습니다. 이미 피부에 있던 멜라닌 색소를 없앨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흰 피부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된 1만년 전부터 이런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기와 생선 대신 곡물을 주로 섭취하게 되면서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결과, 결국 부족한 비타민을 합성하기 위해 피부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하게 됐습니다. 이제 자외선을 통과시켜 비타민 D를 만들 수 있는 흰 피부가 검은 피부보다 유리해졌고, 이 사람들의 피부는 하얘졌다는 것입니다. 농경이라는 문화적 요인이 흰 피부의 선택을 초래한 셈입니다. 문화가 진화를 대체한 게 아니라, 반대로진화를 촉진했습니다. - P270

플라이스토세와 비교할 때, 최근 5000년 동안 인류는 그 이전 인류에 비해 100배나 빨리 진화했습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양합니다. 먼저 아주 신선한 가설로 ‘인구 증가‘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1만 년 전 농경이 발달하며 인구가 늘어나자 유전자의 돌연변이수도 함께 늘었습니다. 돌연변이 발생률이 똑같더라도, 인구가 더 많으면 실제로 일어나는 돌연변이 수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돌연변이 수는 다양성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인류의 다양성도 늘어났습니다. 다양성은 진화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다양성이 높은 집단에서 진화는 활발해졌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진화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인류 집단 사이의 교류도 진화를 촉진했습니다. 원래 인류는 초기부터 끊임없이 여러 지역과 유전자를 교환했습니다. 그러다 1만 년 전에 농경이 발달하고 그 후 국가가 세워지고 대규모 전쟁과 이주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륙을 넘나들게 됐고,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며 유전자의 다양성을 무서운 속도로 퍼뜨렸습니다.
의학의 발달도 다양성을 빚어내는 새로운 요인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살아남지 못했을 사람의 유전자도 후대로 전수할 수 있게 되었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경 사회나 네안데르탈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단명했을지도 모를 만큼 심한 근시인 저도 이렇게 살아남아서 사회에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류 다양성의 숨 막히는 증가는 다시 전에 없던 또 다른 형태의 다양성을 낳았습니다. 바로 지역성입니다. 최근 티베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서 고산 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EPAS1) 돌연변이를 발견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 돌연변이는 불과 1000년 전에 생긴뒤 퍼져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이전에는 선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금세 인류 전체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새로운 다양성과 지역적 환경이 어우러져 지역적인 특징으로 남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적응으로 문화와 문명이 생기면, 다시 그 대응으로 각기 크고 작은 다양한 환경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각각 인구 증가로 생겨난 다양한 특징의 인류가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인류의 형질은 한층더 복잡하고 다채로워졌습니다. - P272

첫째로, 진화의 기본 재료는 형질의 다양성입니다. 기존의 유전자와는 색다른 새로운 것이 출현하여 다양성이 생깁니다. 간단한 예를들면, 둥근 귀를 가진 집단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뾰족한 귀가 생기게됩니다. 이전에는 둥근 귀, 한가지 유형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둥근 귀와 뾰족한 거의 두 가지 귀가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형질의 다양성과 연결된 재생산의 다양성입니다. 위의 예를계속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둥근 귀를 가졌던지, 뾰족한 귀를 가졌던지, 후손을 남길 확률이 똑같다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둥근 귀를 가진 개체들보다 뾰족한 귀를 가진 개체들이 후손을 남기는 확률이 높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뾰족한 귀를 가진 개체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따라서 뾰족한 귀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비율이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상대적인 차이, 그러니까 비율, 시장 점유율입니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집단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 P294

이렇듯 진화나 선택에 의미 있는 다양성돌연변이)은 우리에게 관찰되지 않으며 관찰되는 다양성은 선택에 중립적인 것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체계화한 중립 이론은 선택이 아닌 시간, 집단 크기 등에 의한 무작위적인 변화가 진화의 원동력(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18장 ‘미토콘드리아 시계가 흔들리다). 여기서 집단유전학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선택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이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선택은 또다시 화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바퀴 돌아온 느낌입니다.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후생유전학(epigenetics)의 발전은 진화론의 또 다른 장이 열릴 것을 예고합니다.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행복하게 웃을 일입니다. 라마르크는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기린의 긴 목은 윗가지에 난 잎을뜯어 먹기 위해 목을 점점 늘리다 보니 목이 길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어쩌다 생긴 돌연변이 중에 긴 목이 있었는데 마침 환경에 들어맞아서긴 목이라는 돌연변이 형질을 가진 기린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되었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과는 다른 설명이죠. 살아가면서 우리의 몸은 변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근육을 키우거나, 성형 수술을 받아서 턱이 작고 뾰족해진다 해도 낳은 아이에게 커진 근육이나 작은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 유전설은 틀린 이론으로 그동안 낙인찍혀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후생유전학에 따르면, 획득형질이 그대로 유전될 수도 있습니다. - P296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의 확산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세계로의 확산은 민족의 대이동과 같은 의도적인 이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구 증가와 인구압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확산의 배경에는 출산율의 증가 혹은 사망률의 감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인구 폭발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착 생활을 하지 않을 경우엔 출산율의 증가는 쉽지 않습니다.
이동 생활을 할 때 아이가 하나 이상이면 이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 하나를 낳아서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집단을 따라 혼자 힘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돼야 그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경우, 아이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를 6~7세로 봅니다. 이동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쿵족부시먼)의 경우, 두 아이 사이의 터울은 5년 정도입니다. 터울이 그보다 짧다면 엄마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들 둘을 안고 메고 짐까지 든 채 이동해야 하므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인구 증가에 의한 확산이 출산율의 증가 때문이라면, 이 말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터울이 짧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인 기재가 마련됐다는 뜻입니다. 이 사회적인 기재는 ‘아버지‘였다는 가설(남자의 가족 부양설)과, ‘할머니‘였다는 가설(할머니 가설)이 제기돼 있으며 지금도 팽팽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P305

이 모든 호모속 종 혹은 집단이 현대 인류(호모 사피엔스)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어떻게 보느냐에따라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프리카 기원론(Recent African origin of modern humans, 완전 대체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보면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0만 년에서 6만 년 전정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새로운 종이라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르면 새로운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확산하면서 이미 각 지역에서 살고 있던 원주 집단과 하나도 섞이지 않았으며(서로 다른 종에 속하므로), 우월한 문화와 언어에 힘입어 원주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겼고, 원주 집단은 전멸했습니다. 최근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허토(Herto)에서 나온 화석이 주축으로,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인 호모사피엔스 이달투(Homo sapiens idaltu)로 불립니다. 이 집단이 아프리카에서 확산하여 전 세계로 퍼졌으며, 원주 집단과 연계가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다지역 연계론(Multiregional origin of modern humans, 혹은다지역 기원론)‘입니다. 다지역 연계론은 현생 인류가 한 곳에서 기원한새로운 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각 지역의 집단끼리, 그리고 다양한 시점의 집단끼리 계속 문화와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200만 년 동안 계속돼 왔다는 관점입니다. 그동안 멸종하거나 새로 발생한 집단들은 종 아래의 분류 단위인 집단일 뿐이지, 새로운 종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 P307

다지역 연계론의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궁극적으로 20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아주 오래된 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집단이 시공간을 아우르면서 지속적으로 유전자를 교환했다면, 생물학적인 종의 정의에 따라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모든집단은 하나의 종에 속하게 됩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이후 모든 집단들이 하나의 종에 속하게 된다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같은 종이 되며, 종명 부여 원칙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도 호모 사피엔스로 통합돼야 합니다. 이에 따르면 100년을 넘게 사용해 온 호모 에렉투스 명칭을 종이 아닌 집단명으로 바꿔야 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200만 년 이상 지속돼 온 종으로 봐야 하며, 호모 하빌리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호모속 종은 호모 사피엔스가 돼야 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당연하지만, 관습의 힘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벽에 부딪힙니다. - P309

21세기에 들어서서 고인류학 연구는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데니소바인처럼 뚜렷한 화석 없이 DNA로만 존재하는 인류 조상도 발견되었습니다. 고DNA 추출 기법이 계속 발달하고 비용이 절감되면서 유전학은 고인류학에서 화석과 동등한, 어쩌면 더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고인류 화석 역시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연구가 쌓여 가면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새롭게 묻고 대답을 찾습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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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의 남극 탐험은 지구상의 다른 곳을 탐험하는 것과는 달랐다. 탐험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위험한 맹수나 야만인은 없다. 시속 300km의 바람과 영하 70도의 추위에 맞서야 하는 남극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과 한없는 인내력이었다.
1914년에 시작하여 1917년에 끝난 ‘인듀어런스 탐험‘ 은 극지 탐험 영웅시대의 마지막 모험으로 불린다. 1901년 8월, 로버트 스콧이 이끄는 ‘디스커버리‘ 호가 남극의 맥머도 협만을 향해 출발하면서 영웅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과학 발전‘ 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이 탐험의 실제 목적은 남극점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이었다.
스콧은 이 첫 번째 남극 탐험의 동반자로 의사이자 동물학자인 윌슨 박사와 28살의 젊은 선원 섀클턴을 선택했다. 11월 2일, 세 사람은 썰매를 끌 개 19마리와 짐을 가득 실은 썰매 5대로 탐험을 시작했다. 지도에도 없는 완벽한 미지의 땅에서 왕복 2,500km가 넘는 엄청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 힘겹게 전진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모자라는 식량을 나누어먹은 다음 얼어붙은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 굶주림과 괴혈병으로 인해 세 사람은 차츰 지쳐가기 시작했다. 병든 개들이 한 마리씩 쓰러졌고, 그렇게 죽은 개들은 살아남은 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남위 82도 17분, 남극점에서 북쪽으로 1,000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스콧은 결국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괴혈병으로 신음하던 섀클턴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채 썰매에 실려 오는 신세가 되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 끝에 그들이 귀환한 것은 출발 3개월 만인 1903년 2월 3일이었다.
이 첫 번째 남극 탐험은 이후 남극 대륙에 상륙한 영국 탐험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영웅적인 고난의 전형이 되었다. - P17

1912년 1월 16일, 스콧과 그의 탐험대는 남위 89 도 지점에서 아문센 탐험대가 이미그곳을 지나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을 발견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스콧은 일기에 솔직하게 적었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다음날 스콧 탐험대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남극점으로 향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남극점에서 스콧은 예감처럼 이런 일기를 남긴다. "이제 다시 돌아간다. 아마도 필사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결국 해내지 못했다. 스콧 탐험대는 한 명씩 차례로 얼음 위에서 죽었다. 천신만고 끝에 보급창고에서 18km 떨어진 곳까지 와서 텐트를 쳤을 때, 생존자는 스콧을 포함하여 겨우 세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눈앞에 다가온 최후. 스콧은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영국에 있는 탐험대 회계책임자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비장한 편지를 썼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불굴의 정신과 인내력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겠다••••••
우리가 살아난다면 모든 영국인들의 가슴을 뒤흔들 탐험대의 용기와 인내를 말해 줄수 있을 텐데•••••• 이 짧은 글과 우리의 시체가 그 이야기를 대신 해줄 것이다.

그리고 3월 29일, 스콧은 마지막 일기를 적었다.

안타깝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 - P19

섀클턴은 극지 탐험용 배를 만들어온 노르웨이의 유명한 조선소에서 300톤 규모의 목조 범선 ‘북극성‘ 호를 구입했다. 80cm 두께의 참나무와 노르웨이 전나무로 만든 44m길이의 튼튼한 배였다. 남극 바다의 얼음을 헤치고 항해하기에 안성맞춤인 그 배의 이름을 섀클턴은 ‘인듀어런스(Encturance : 인내‘로 정했다.
집안의 가훈인 ‘Fortitudine Vincimus(인내로 극복한다는 뜻여주)‘ 에서 따온 것이었다.
탐험에 필요한 배는 두 척이었다. 인듀어런스 호가 웨들해로 가는 동안 또 한 척의 배가 보급 팀을 싣고 건너편의 로스해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오는 섀클턴의 횡단 팀을 위해 곳곳에 물품 창고를 세워 두는 임무를 맡는다. 보급 팀을 싣고 갈 배는 1876년에 건조된 물개 사냥선 ‘오로라‘ 호였다.
영국 언론들은 섀클턴의 탐험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1914년 8월 1일 런던에서 인듀어런스 호가 출발할 때 다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그의 탐험은 세상의 관심에서 지워져 버렸다.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전역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 영해를 채 벗어나기도 전인 8월 4일에 ‘총동원령‘ 이 내려졌고, 섀클턴의 탐험은 자칫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걱정을 씻어주는 짤막한 전보가 해군성에서 날아왔다. "계속 진행하시오." 당시해군성 장관으로 있던 윈스턴 처칠 역시 "당국은 탐험이 계속 추진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전보를 섀클턴에게 별도로 보냈다.
8월 8일 인듀어런스 호는 영국을 떠나 대서양 남쪽으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 P21

탐험가로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그의 낙천성이었다. 만일 그가 냉정하지못했거나 욕심이 더 많았다면 지난 두 번째 탐험에서 남극점 최초 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와 그의 대원들은 스콧 일행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당시 섀클턴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그의 특징인 낙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남극점 정복 경쟁을 아문센과 섀클턴이 했다면 섀클턴은 중간에 되돌아와 아문센 탐험대를 만나서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언젠가 유명한 극지 탐험 역사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문센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스콧을 짓눌렀던 극심한 좌절을 새클턴이라면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P22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 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부빙군과 함께 표류했다. 섀클턴이 그토록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기어이 현실로 닥치고 말았던 것이다.
배는 육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그리고 겨울은 점점 더 다가왔다. 남극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과학자와 선원들은 남극 탐험을 함께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남극의 겨울을 함께 보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갔다." 섀클턴은 이렇게 적었다. "여름이 너무 짧았다•••••• 물개가 사라졌고 새들도 떠났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먼 수평선에 아직 육지가 보였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로 갈 수가 없다."
2월24일, 섀클턴은 항해 중단을 명령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음에 붙박힌 인듀어런스 호는 더 이상 배이기를 포기한 채 대원들의 월동기지가 되었다. 이제 좋건 싫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섀클턴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는 이번 탐험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 그리고 전쟁중인 유럽, 이번에 실패하면 남극 탐험에 나설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탐험을 재개할 수도 있겠지만, 섀클턴은 날이 갈수록 그것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초조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의사로 참가한 알렉산더 맥클린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진정으로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얼음 위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짤막하게 말했을뿐이었다. 그는 절대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겨울을 준비했다. - P38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남극 겨울의 으스스한 고요와 기나긴 어둠이 주는 독특한 심리적 영향을 섀클턴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대원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쾌적한 숙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새클턴은 맥니쉬를 시켜서 갑판 사이에 있는 창고를 선실로 개조했다. 3월 11일에 새로운 숙소로 거처를 옮긴 대원들은 그곳을 ‘리츠(고급 호텔 경영자 시저 리츠의 이름을 딴 것 역주)‘ 라고 불렀다. 대략 1.8m×1.5m 크기의 작은 선실마다 두명이 들어갔으며, 각각의방에는 ‘빌라봉(물이 새지 않는 곳)‘, ‘앵커리지(은둔처)‘, ‘세일러스 레스트(선원 휴게실)‘ 와같은 다양한 이름들이 붙었다. - P47

인듀어런스 호의 이같은 평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섀클턴이 대원을 뽑았던 방식을 보면 그런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제임스가 면접 장소에 나타났을 때 이 위대한 탐험가는 탐험 경력이나 과학 지식 따위는 전혀 묻지 않고 느닷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고 물어 상대를 당혹스럽게 했다.
"카루소(이탈리아의 테너 오페라 가수 역주)처럼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오." 섀클턴이 말했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마구 소리를 지를 수는 있겠지요?" 이 질문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음이 훗날 증명되었다. 섀클턴이 원했던 건 화려한 경력의 이력서가 아니라 ‘마음 자세‘ 였던 것이다.
섀클턴은 규율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그의 말이 ‘명령‘ 이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늘 공정했으며, 의복을 비롯한 모든 물품을 선발대나 고급 대원들보다 일반대원들에게 먼저 분배했다. - P53

10월 27일 오후 5시,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들을 대피시키고 모든 물품들을 얼음 위로 내렸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섀클턴은 떨어져 나간 엔진이 바닥에 구르는 것을 기관실 위창을 통해 말없이 지켜보았다.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기록했다. "뱃사람에게배는 바다에 떠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명을 지르고 부서지고 온 몸에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서, 인듀어런스 호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헐리는 이미 물에 잠긴 리츠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 부서지는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온갖소리들로 뒤범벅이 된 아수라장 속에서도 휴게실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리고 있었다.
섀클턴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그는 인듀어런스 호의 푸른 함기를 높이 들어올렸고, 얼음 위의 대원들은 다들 그 깃발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인듀어런스호의 붉은 비상등이 마지막 인사처럼 조용히 깜박거렸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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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어린나이에, 열여덟 살이던가 열다섯 살 때부터, 내 얼굴은 이미 중년이 되면 알코올때문에 형편없이 이지러질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알코올에는 신(神)이 갖고 있지 않은 기능이 있었다. 자살을 하게하는, 혹은 살인을 하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나는 알코올을 입에 대기 전부터 알코올의 그런 속성을 짐작했다. 알코올 자체는 그 사실을 확인해 준 것뿐이다. 당시 내 마음에는 그것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마찬가지로 그것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호기심이 강해서 너무 일찍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는 욕망이 자리 잡아 갔다. 열다섯 살 때의 내 얼굴은 관능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나는 관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못했다. 그 관능적인 요태는 뚜렷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그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며, 오빠들도 눈치 챘을 것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눈에 띄는 얼굴, 초조한 표정, 눈자위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조숙한 눈 때문에 ‘경험‘은 시작되었다. - P15

그 영상이 흐려져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바로 그 여행 중이었다. 그 영상은 사진 한 장쯤 남겨 놓을 수도 있었다. 마치 다른 상황에서 그 어떤 영상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영상은 그러지 못했다. 대상이 너무나 가물거려서 떠올릴 수가 없었다. 누가 그것에 대해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날 강을 건넌 일, 그 사건이내 생애에서 가질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그 영상을 찍어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사건이 일어나는 중에도나는 그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직 신(神)만이알았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 영상은, 물론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략되었고 잊혔다. 흐려진 것이 아니라 숫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그 부재(不在)를 통해 그 영상은 고유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 어떤 절대를 표현할 수 있는 힘, 요컨대 절대의 창조자와도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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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그 손에 주먹도끼를 쥐어 봤자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가련한 인간의 혼자 힘으로는 짐승을 잡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집단 수렴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단 수렴 활동을 위해서는 탄탄한 사회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사계절마다 변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정보 취합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인간에게 사회생활은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취미 생활이 아닌,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러한 정보를 수집, 교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가 발생하고 발달하였으며 그 주된 기능이 바로 수다인셈입니다.
••••••
수다는 입으로 하는 털 다듬기(grooming)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서로의 털을 만져 주고 이물질을 떼어 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합니다. 나보다 지위가 높은 원숭이를 만나면 먼저 털을 다듬어 주면서 내가 그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고있음을 분명하게 하죠. 그러나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 모두에게 일일이 직접 털을 다듬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말로 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털을 다듬는 일은 한 번에 한 명에게만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말로 하면 한 번에 여러 명에게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말로 때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P202

유지비가 많이 드는 두뇌를 위해 인류는 다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끊임없이 확보하고 섭취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사냥과 채집을 해야 했죠. 움직이는 동물에 대한 정보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환경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종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류의 ‘무기‘가 나타납니다. 바로 사회적 협동입니다. 속해 있는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정보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인류의 큰 두뇌는 이런 다채로운 정보를 저장해 두고 상황에 따라 응용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큰 두뇌를 지니고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두뇌 속의 뇌세포를 동시에 100퍼센트 쓰지 않더라도 많은 뇌세포를 지니는 것, 큰 두뇌를 지니는 것이 유리합니다. 상황에 대처할 수있는 능력을 축적해 둬서, 유사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05

이런 외모,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지 않나요? 바로 유럽 사람들이생각했던 식민지 사람들, ‘미개한 원주민의 모습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원주민의 모습과 닮게 복원됐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서양사람들의 의식의 한 측면이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에게 원주민은 미개하기 때문에 문명사회로 이끌어 줘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로 만들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을 봅시다. 서양인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은 무식하게 힘으로 동물을 잡아먹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동굴 속을 헤매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훤칠한 이마와 강한 턱, 굳게 다문 입을 가진 멋진 외모의 크로마뇽인(Cro-Magnon, 호모사피엔스, 그 중 특히 유럽인의 조상)에게 밀려나 멸종되고 말았고요. 서양 사람들에게 크로마뇽인은 세련된 사냥 기술과 언어, 문화를 지닌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사람이되지 못한 존재였으며 미개했지요. 미개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람에게멸종 당하게 된 운명이나(네안데르탈인), ‘미개하게‘ 살다가, 서양인들에의해 식민지가 된 이후에야 ‘문명사회‘로 발전할 기회를 얻은 운명이나(식민지의 원주민), 분명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바라본 시선에는 이들이 식민지 원주민을 바라보던 시선이 스며 있었습니다. ‘넌 네안데르탈인이야‘라는 말이 치욕스럽게 들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P212

이렇게 잘못된 유전 정보를 갖는 것을 변이 또는 돌연변이(mutation)라고 합니다. 돌연변이가 있는 생명체는 어떻게 될까요? 유명한 마블사의 영화 중 하나인 「엑스맨(X-Men)은 이런 돌연변이 때문에 특이한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탄생했다는 설정에서 시작하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의 유전학자인 기무라 모토 박사는 다른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돌연변이는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기무라 박사에 따르면, 유전자 부분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우리가 관찰할 수 없으며, 관찰할 수 있는 돌연변이는 오로지 유전자가 아닌 부분에서만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유전학에서 가장중요한 이론으로 평가 받는 ‘중립 이론(neutral theory)‘ 또는 ‘중립 진화이론(neutral evolution theory)‘의 핵심 가정입니다.
중립 이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생물의 유전자 부분(단백질을 만드는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해 봅시다. 만약 그 돌연변이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해롭다면 생명체는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로운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집니다.반대로 삶에 유익한 돌연변이라면 그 생물체가 많은 후손을 남기겠지요. 유익한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종의 모든 개체에게 퍼져 대세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모두 똑같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이 돌연변이라고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부분에 일어난 돌연변이는 사라져 버리거나 알아볼 수 없게 돼, 오늘날 우리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 P224

그렇다면 알아볼 수 있는 돌연변이는 없는 걸까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부분을 ‘비암호화(noncoding) DNA‘라고 합니다(이에 반해 단백질을 만드는 부분, 즉 유전자는 ‘암호화 (coding) DNA‘라고 합니다.). 기무라 박사에 따르면, 비암호화 DNA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비암호화 DNA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능이없고, 삶에 도움도 해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후손을 많이 남기거나적게 남기는 ‘선택‘과 무관합니다. 사라지지도 않고 전체 개체에 퍼지지도 않은 채 남게 되죠. 이 돌연변이의 수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는 우연히 그 빈도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만약 돌연변이의 빈도 패턴을 알 수 있다면 그 생물 집단이 겪은 시간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한 중립 이론은 20세기 유전학에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집단 유전학은 중립 이론의토대 위에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 P225

예를 들어, 돌연변이가 100년에하나꼴로 생긴다고 해 봅시다. 돌연변이가 5개 관찰되면 50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해 온 연대 추정 방식입니다. 그런데 만약 돌연변이가 하나 나오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100년이 아니라 50년이라면 어떨까요? 실제로 흐른 시간은 250년으로 반으로 줄겠죠. 반대로 200년에 하나꼴로 돌연변이가 나왔던 것이라면, 시간은 1000년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만약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빈도가 불규칙하다면 어떨까요? 아예 시간을 측정할 수조차 없게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의 속도 자체가 흔들리면서, 불확실성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돌연변이 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밝힐 ‘시계‘였는데, 알고 보니 눈금이 아주 부정확한 시계였던 셈입니다. 그 시계로 추정한 시간이 올바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P228

중립 이론은 비암호화 DNA 부분의 돌연변이는 개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가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개체의 삶과 번식재생산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전체 게놈 중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부위가 크지 않고나머지 대부분(비암호화 DNA)은 의미가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필요없는 DNA 뭉치라는 뜻에서 ‘쓰레기(junk) DNA‘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 DNA가 다른 유전자들을 조정하거나 신호를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돌연변이는 유전자에서 일어나지 않더라도 삶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거나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선택‘의 손길에서 벗어날수 없고, 역시 중립이 아니므로 중립 이론에 근거한 ‘돌연변이 시계(mutation clock)‘의 눈금은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핵 밖에 존재하는 DNA로서 개체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미토콘드리아 DNA도, 사실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2000년대 이후 밝혀졌습니다. 핵 밖에서 신진대사를 조절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이런 연구 결과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학계에서 ‘설마‘라며 술렁대던 그 긴장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뒤돌아보면,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중립 이론이 그만큼 막강했습니다. - P229

유전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현생 인류 안에도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기이했습니다. 현생인류 안에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긴 했는데, 엉뚱하게도 멀리남쪽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등 멜라네시아인들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DNA 중 약 4퍼센트가 데니소바인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4퍼센트 가지고 있으니, 결국 현생 인류지만 그 안에 고인류의 DNA를 8퍼센트나 갖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정작 데니소바 동굴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북아시아의 인류에게서는 데니소바인의 DNA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이 주로 거주했던 유럽 사람들에게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렇습니다. 데니소바인은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2만 5000년 전부터 1만 2000년 전까지를 나타내는 기간)에 아시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온 현생 인류 집단과 유전자 교환을 했고(피가 섞였다는 뜻입니다.), 특히 적응에 유리한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현생 인류안에서 계속 살아남았다는 해석입니다. 현생 인류에서 발견되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는 면역성과 관련한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티베트지역 사람들이 고산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유전자가 데니소바인에게서도 발견되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는 왜 데니소바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을까요? 혹시 오늘날의 아시아인은 그 이후, 그러니까 인류가 멜라네시아에 이주한 뒤에야 다시 등장한 건 아닐까요? 아직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단지 덜 발견됐을 뿐, 사실은아시아에도 퍼져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한 셈입니다. 우리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 기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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