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의 남극 탐험은 지구상의 다른 곳을 탐험하는 것과는 달랐다. 탐험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위험한 맹수나 야만인은 없다. 시속 300km의 바람과 영하 70도의 추위에 맞서야 하는 남극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과 한없는 인내력이었다.
1914년에 시작하여 1917년에 끝난 ‘인듀어런스 탐험‘ 은 극지 탐험 영웅시대의 마지막 모험으로 불린다. 1901년 8월, 로버트 스콧이 이끄는 ‘디스커버리‘ 호가 남극의 맥머도 협만을 향해 출발하면서 영웅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과학 발전‘ 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이 탐험의 실제 목적은 남극점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이었다.
스콧은 이 첫 번째 남극 탐험의 동반자로 의사이자 동물학자인 윌슨 박사와 28살의 젊은 선원 섀클턴을 선택했다. 11월 2일, 세 사람은 썰매를 끌 개 19마리와 짐을 가득 실은 썰매 5대로 탐험을 시작했다. 지도에도 없는 완벽한 미지의 땅에서 왕복 2,500km가 넘는 엄청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 힘겹게 전진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모자라는 식량을 나누어먹은 다음 얼어붙은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갔다. 굶주림과 괴혈병으로 인해 세 사람은 차츰 지쳐가기 시작했다. 병든 개들이 한 마리씩 쓰러졌고, 그렇게 죽은 개들은 살아남은 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남위 82도 17분, 남극점에서 북쪽으로 1,000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스콧은 결국 절망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괴혈병으로 신음하던 섀클턴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채 썰매에 실려 오는 신세가 되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 끝에 그들이 귀환한 것은 출발 3개월 만인 1903년 2월 3일이었다.
이 첫 번째 남극 탐험은 이후 남극 대륙에 상륙한 영국 탐험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영웅적인 고난의 전형이 되었다. - P17

1912년 1월 16일, 스콧과 그의 탐험대는 남위 89 도 지점에서 아문센 탐험대가 이미그곳을 지나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을 발견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스콧은 일기에 솔직하게 적었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다음날 스콧 탐험대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남극점으로 향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남극점에서 스콧은 예감처럼 이런 일기를 남긴다. "이제 다시 돌아간다. 아마도 필사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결국 해내지 못했다. 스콧 탐험대는 한 명씩 차례로 얼음 위에서 죽었다. 천신만고 끝에 보급창고에서 18km 떨어진 곳까지 와서 텐트를 쳤을 때, 생존자는 스콧을 포함하여 겨우 세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눈앞에 다가온 최후. 스콧은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영국에 있는 탐험대 회계책임자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비장한 편지를 썼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불굴의 정신과 인내력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겠다••••••
우리가 살아난다면 모든 영국인들의 가슴을 뒤흔들 탐험대의 용기와 인내를 말해 줄수 있을 텐데•••••• 이 짧은 글과 우리의 시체가 그 이야기를 대신 해줄 것이다.

그리고 3월 29일, 스콧은 마지막 일기를 적었다.

안타깝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 - P19

섀클턴은 극지 탐험용 배를 만들어온 노르웨이의 유명한 조선소에서 300톤 규모의 목조 범선 ‘북극성‘ 호를 구입했다. 80cm 두께의 참나무와 노르웨이 전나무로 만든 44m길이의 튼튼한 배였다. 남극 바다의 얼음을 헤치고 항해하기에 안성맞춤인 그 배의 이름을 섀클턴은 ‘인듀어런스(Encturance : 인내‘로 정했다.
집안의 가훈인 ‘Fortitudine Vincimus(인내로 극복한다는 뜻여주)‘ 에서 따온 것이었다.
탐험에 필요한 배는 두 척이었다. 인듀어런스 호가 웨들해로 가는 동안 또 한 척의 배가 보급 팀을 싣고 건너편의 로스해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오는 섀클턴의 횡단 팀을 위해 곳곳에 물품 창고를 세워 두는 임무를 맡는다. 보급 팀을 싣고 갈 배는 1876년에 건조된 물개 사냥선 ‘오로라‘ 호였다.
영국 언론들은 섀클턴의 탐험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1914년 8월 1일 런던에서 인듀어런스 호가 출발할 때 다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그의 탐험은 세상의 관심에서 지워져 버렸다.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전역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 영해를 채 벗어나기도 전인 8월 4일에 ‘총동원령‘ 이 내려졌고, 섀클턴의 탐험은 자칫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걱정을 씻어주는 짤막한 전보가 해군성에서 날아왔다. "계속 진행하시오." 당시해군성 장관으로 있던 윈스턴 처칠 역시 "당국은 탐험이 계속 추진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전보를 섀클턴에게 별도로 보냈다.
8월 8일 인듀어런스 호는 영국을 떠나 대서양 남쪽으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 P21

탐험가로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그의 낙천성이었다. 만일 그가 냉정하지못했거나 욕심이 더 많았다면 지난 두 번째 탐험에서 남극점 최초 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와 그의 대원들은 스콧 일행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당시 섀클턴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그의 특징인 낙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남극점 정복 경쟁을 아문센과 섀클턴이 했다면 섀클턴은 중간에 되돌아와 아문센 탐험대를 만나서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언젠가 유명한 극지 탐험 역사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문센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스콧을 짓눌렀던 극심한 좌절을 새클턴이라면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P22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 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부빙군과 함께 표류했다. 섀클턴이 그토록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기어이 현실로 닥치고 말았던 것이다.
배는 육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그리고 겨울은 점점 더 다가왔다. 남극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과학자와 선원들은 남극 탐험을 함께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남극의 겨울을 함께 보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갔다." 섀클턴은 이렇게 적었다. "여름이 너무 짧았다•••••• 물개가 사라졌고 새들도 떠났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먼 수평선에 아직 육지가 보였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로 갈 수가 없다."
2월24일, 섀클턴은 항해 중단을 명령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음에 붙박힌 인듀어런스 호는 더 이상 배이기를 포기한 채 대원들의 월동기지가 되었다. 이제 좋건 싫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섀클턴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는 이번 탐험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 그리고 전쟁중인 유럽, 이번에 실패하면 남극 탐험에 나설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탐험을 재개할 수도 있겠지만, 섀클턴은 날이 갈수록 그것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초조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의사로 참가한 알렉산더 맥클린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진정으로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얼음 위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짤막하게 말했을뿐이었다. 그는 절대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겨울을 준비했다. - P38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남극 겨울의 으스스한 고요와 기나긴 어둠이 주는 독특한 심리적 영향을 섀클턴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대원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쾌적한 숙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새클턴은 맥니쉬를 시켜서 갑판 사이에 있는 창고를 선실로 개조했다. 3월 11일에 새로운 숙소로 거처를 옮긴 대원들은 그곳을 ‘리츠(고급 호텔 경영자 시저 리츠의 이름을 딴 것 역주)‘ 라고 불렀다. 대략 1.8m×1.5m 크기의 작은 선실마다 두명이 들어갔으며, 각각의방에는 ‘빌라봉(물이 새지 않는 곳)‘, ‘앵커리지(은둔처)‘, ‘세일러스 레스트(선원 휴게실)‘ 와같은 다양한 이름들이 붙었다. - P47

인듀어런스 호의 이같은 평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섀클턴이 대원을 뽑았던 방식을 보면 그런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제임스가 면접 장소에 나타났을 때 이 위대한 탐험가는 탐험 경력이나 과학 지식 따위는 전혀 묻지 않고 느닷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고 물어 상대를 당혹스럽게 했다.
"카루소(이탈리아의 테너 오페라 가수 역주)처럼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오." 섀클턴이 말했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마구 소리를 지를 수는 있겠지요?" 이 질문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음이 훗날 증명되었다. 섀클턴이 원했던 건 화려한 경력의 이력서가 아니라 ‘마음 자세‘ 였던 것이다.
섀클턴은 규율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그의 말이 ‘명령‘ 이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늘 공정했으며, 의복을 비롯한 모든 물품을 선발대나 고급 대원들보다 일반대원들에게 먼저 분배했다. - P53

10월 27일 오후 5시,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들을 대피시키고 모든 물품들을 얼음 위로 내렸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섀클턴은 떨어져 나간 엔진이 바닥에 구르는 것을 기관실 위창을 통해 말없이 지켜보았다.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기록했다. "뱃사람에게배는 바다에 떠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명을 지르고 부서지고 온 몸에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서, 인듀어런스 호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헐리는 이미 물에 잠긴 리츠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 부서지는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온갖소리들로 뒤범벅이 된 아수라장 속에서도 휴게실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리고 있었다.
섀클턴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그는 인듀어런스 호의 푸른 함기를 높이 들어올렸고, 얼음 위의 대원들은 다들 그 깃발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인듀어런스호의 붉은 비상등이 마지막 인사처럼 조용히 깜박거렸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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