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 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그 손에 주먹도끼를 쥐어 봤자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가련한 인간의 혼자 힘으로는 짐승을 잡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집단 수렴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단 수렴 활동을 위해서는 탄탄한 사회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사계절마다 변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정보 취합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인간에게 사회생활은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취미 생활이 아닌,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러한 정보를 수집, 교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가 발생하고 발달하였으며 그 주된 기능이 바로 수다인셈입니다. •••••• 수다는 입으로 하는 털 다듬기(grooming)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서로의 털을 만져 주고 이물질을 떼어 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합니다. 나보다 지위가 높은 원숭이를 만나면 먼저 털을 다듬어 주면서 내가 그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고있음을 분명하게 하죠. 그러나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 모두에게 일일이 직접 털을 다듬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말로 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털을 다듬는 일은 한 번에 한 명에게만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말로 하면 한 번에 여러 명에게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말로 때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P202
유지비가 많이 드는 두뇌를 위해 인류는 다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끊임없이 확보하고 섭취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사냥과 채집을 해야 했죠. 움직이는 동물에 대한 정보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환경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종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류의 ‘무기‘가 나타납니다. 바로 사회적 협동입니다. 속해 있는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정보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인류의 큰 두뇌는 이런 다채로운 정보를 저장해 두고 상황에 따라 응용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큰 두뇌를 지니고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두뇌 속의 뇌세포를 동시에 100퍼센트 쓰지 않더라도 많은 뇌세포를 지니는 것, 큰 두뇌를 지니는 것이 유리합니다. 상황에 대처할 수있는 능력을 축적해 둬서, 유사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05
이런 외모,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지 않나요? 바로 유럽 사람들이생각했던 식민지 사람들, ‘미개한 원주민의 모습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원주민의 모습과 닮게 복원됐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서양사람들의 의식의 한 측면이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에게 원주민은 미개하기 때문에 문명사회로 이끌어 줘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로 만들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을 봅시다. 서양인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은 무식하게 힘으로 동물을 잡아먹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동굴 속을 헤매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훤칠한 이마와 강한 턱, 굳게 다문 입을 가진 멋진 외모의 크로마뇽인(Cro-Magnon, 호모사피엔스, 그 중 특히 유럽인의 조상)에게 밀려나 멸종되고 말았고요. 서양 사람들에게 크로마뇽인은 세련된 사냥 기술과 언어, 문화를 지닌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사람이되지 못한 존재였으며 미개했지요. 미개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람에게멸종 당하게 된 운명이나(네안데르탈인), ‘미개하게‘ 살다가, 서양인들에의해 식민지가 된 이후에야 ‘문명사회‘로 발전할 기회를 얻은 운명이나(식민지의 원주민), 분명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바라본 시선에는 이들이 식민지 원주민을 바라보던 시선이 스며 있었습니다. ‘넌 네안데르탈인이야‘라는 말이 치욕스럽게 들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P212
이렇게 잘못된 유전 정보를 갖는 것을 변이 또는 돌연변이(mutation)라고 합니다. 돌연변이가 있는 생명체는 어떻게 될까요? 유명한 마블사의 영화 중 하나인 「엑스맨(X-Men)은 이런 돌연변이 때문에 특이한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탄생했다는 설정에서 시작하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의 유전학자인 기무라 모토 박사는 다른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돌연변이는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기무라 박사에 따르면, 유전자 부분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우리가 관찰할 수 없으며, 관찰할 수 있는 돌연변이는 오로지 유전자가 아닌 부분에서만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유전학에서 가장중요한 이론으로 평가 받는 ‘중립 이론(neutral theory)‘ 또는 ‘중립 진화이론(neutral evolution theory)‘의 핵심 가정입니다. 중립 이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생물의 유전자 부분(단백질을 만드는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해 봅시다. 만약 그 돌연변이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해롭다면 생명체는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로운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집니다.반대로 삶에 유익한 돌연변이라면 그 생물체가 많은 후손을 남기겠지요. 유익한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종의 모든 개체에게 퍼져 대세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모두 똑같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이 돌연변이라고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부분에 일어난 돌연변이는 사라져 버리거나 알아볼 수 없게 돼, 오늘날 우리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 P224
그렇다면 알아볼 수 있는 돌연변이는 없는 걸까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부분을 ‘비암호화(noncoding) DNA‘라고 합니다(이에 반해 단백질을 만드는 부분, 즉 유전자는 ‘암호화 (coding) DNA‘라고 합니다.). 기무라 박사에 따르면, 비암호화 DNA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비암호화 DNA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능이없고, 삶에 도움도 해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후손을 많이 남기거나적게 남기는 ‘선택‘과 무관합니다. 사라지지도 않고 전체 개체에 퍼지지도 않은 채 남게 되죠. 이 돌연변이의 수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는 우연히 그 빈도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만약 돌연변이의 빈도 패턴을 알 수 있다면 그 생물 집단이 겪은 시간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한 중립 이론은 20세기 유전학에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집단 유전학은 중립 이론의토대 위에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 P225
예를 들어, 돌연변이가 100년에하나꼴로 생긴다고 해 봅시다. 돌연변이가 5개 관찰되면 50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해 온 연대 추정 방식입니다. 그런데 만약 돌연변이가 하나 나오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100년이 아니라 50년이라면 어떨까요? 실제로 흐른 시간은 250년으로 반으로 줄겠죠. 반대로 200년에 하나꼴로 돌연변이가 나왔던 것이라면, 시간은 1000년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만약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빈도가 불규칙하다면 어떨까요? 아예 시간을 측정할 수조차 없게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의 속도 자체가 흔들리면서, 불확실성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돌연변이 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밝힐 ‘시계‘였는데, 알고 보니 눈금이 아주 부정확한 시계였던 셈입니다. 그 시계로 추정한 시간이 올바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P228
중립 이론은 비암호화 DNA 부분의 돌연변이는 개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가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개체의 삶과 번식재생산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전체 게놈 중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부위가 크지 않고나머지 대부분(비암호화 DNA)은 의미가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필요없는 DNA 뭉치라는 뜻에서 ‘쓰레기(junk) DNA‘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 DNA가 다른 유전자들을 조정하거나 신호를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돌연변이는 유전자에서 일어나지 않더라도 삶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거나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선택‘의 손길에서 벗어날수 없고, 역시 중립이 아니므로 중립 이론에 근거한 ‘돌연변이 시계(mutation clock)‘의 눈금은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핵 밖에 존재하는 DNA로서 개체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미토콘드리아 DNA도, 사실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2000년대 이후 밝혀졌습니다. 핵 밖에서 신진대사를 조절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이런 연구 결과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학계에서 ‘설마‘라며 술렁대던 그 긴장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뒤돌아보면,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중립 이론이 그만큼 막강했습니다. - P229
유전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현생 인류 안에도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기이했습니다. 현생인류 안에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긴 했는데, 엉뚱하게도 멀리남쪽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등 멜라네시아인들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DNA 중 약 4퍼센트가 데니소바인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4퍼센트 가지고 있으니, 결국 현생 인류지만 그 안에 고인류의 DNA를 8퍼센트나 갖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정작 데니소바 동굴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북아시아의 인류에게서는 데니소바인의 DNA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이 주로 거주했던 유럽 사람들에게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렇습니다. 데니소바인은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2만 5000년 전부터 1만 2000년 전까지를 나타내는 기간)에 아시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온 현생 인류 집단과 유전자 교환을 했고(피가 섞였다는 뜻입니다.), 특히 적응에 유리한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현생 인류안에서 계속 살아남았다는 해석입니다. 현생 인류에서 발견되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는 면역성과 관련한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티베트지역 사람들이 고산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유전자가 데니소바인에게서도 발견되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는 왜 데니소바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을까요? 혹시 오늘날의 아시아인은 그 이후, 그러니까 인류가 멜라네시아에 이주한 뒤에야 다시 등장한 건 아닐까요? 아직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단지 덜 발견됐을 뿐, 사실은아시아에도 퍼져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한 셈입니다. 우리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 기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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