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어린나이에, 열여덟 살이던가 열다섯 살 때부터, 내 얼굴은 이미 중년이 되면 알코올때문에 형편없이 이지러질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알코올에는 신(神)이 갖고 있지 않은 기능이 있었다. 자살을 하게하는, 혹은 살인을 하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나는 알코올을 입에 대기 전부터 알코올의 그런 속성을 짐작했다. 알코올 자체는 그 사실을 확인해 준 것뿐이다. 당시 내 마음에는 그것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마찬가지로 그것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호기심이 강해서 너무 일찍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는 욕망이 자리 잡아 갔다. 열다섯 살 때의 내 얼굴은 관능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나는 관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못했다. 그 관능적인 요태는 뚜렷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그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며, 오빠들도 눈치 챘을 것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눈에 띄는 얼굴, 초조한 표정, 눈자위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조숙한 눈 때문에 ‘경험‘은 시작되었다. - P15
그 영상이 흐려져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바로 그 여행 중이었다. 그 영상은 사진 한 장쯤 남겨 놓을 수도 있었다. 마치 다른 상황에서 그 어떤 영상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영상은 그러지 못했다. 대상이 너무나 가물거려서 떠올릴 수가 없었다. 누가 그것에 대해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날 강을 건넌 일, 그 사건이내 생애에서 가질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그 영상을 찍어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사건이 일어나는 중에도나는 그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직 신(神)만이알았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 영상은, 물론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략되었고 잊혔다. 흐려진 것이 아니라 숫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그 부재(不在)를 통해 그 영상은 고유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 어떤 절대를 표현할 수 있는 힘, 요컨대 절대의 창조자와도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