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지름길이다. 미국정치학회 보고서는 정당을 ‘통치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라고 했는데, 정당이 "조치를 위한 대안들 사이에서 적절한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세금의 적정 수준을 모르고, 시리아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을 만드는 게 옳은 건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당, 공화당, 녹색당 또는 자유당을 지지하는지는 안다. 당을 선택하는 행위는 국가가 직면한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가치들을 정확한 정책 판단으로 바꿀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는 행위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있어서 공적인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기뢰는 선거에서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 P29

「모든 정치는 전국적이다All Politics Is National」라는 분석에서, 에모리대학교의 정치학자 앨런 어브래머위츠Alan Abramowitz와 스티븐 웹스터 Steven Webster는 20세기 후반에 어떻게 그런 행동 양식이 약해지고 또다른 천 년의 경계를 넘으면서 사실상 사라졌는지 보여준다. 어브래머위츠와 웹스터는 경합이 이뤄지는 하원 선거 지역들을 조사한 결과, 1972년과 1980년 사이 하원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과 대통령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 사이의 상관관계가 0.54 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2년과 1990년 사이에 그 수치는 0.65 까지 올라갔다. 2018년경에는 0.97에 달했다!  40년 사이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원의원 투표에 있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지지 예측변수에서 ‘거의 완벽한‘ 지침으로 바뀌었다.
표를 나눠주는 것은 두 정당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때 가능하다. 즉, 한 당에 표를 몰아준다는 것의 이면에는 두 정당에 대한 편안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있다.  - P35

언뜻 보기에 이 두 가지 경향은 상반된다. 어떻게 유권자들이 투표는 이전보다 당파적으로 하면서 당에서는 더 멀어질 수 있을까? 정당에 대한 일관된 지지와 정당에 대한 충성도는 연결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핵심적 개념은 ‘부정적인 당파성‘이다. 이것은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지지하는후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단순 무식하거나 사회주의자인 상대 후보의 당선이 두려워서 투표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었던 것이다. 많은 이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한 조사에따르면, 자칭 무당과 유권자들은 부정적인 동기에 더 이끌렸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대다수 무당파 유권자들은 자신의 성향에대한 주된 이유를 설명할 때 상대 당의 정책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조적으로 어느 당의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그 당을 선택했다고말하는 사람은 각 집단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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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작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 공원이 섬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섬에 꾸며졌노라는 낙원 역시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낙원이 없는 한 소록도엔 낙원이 없었다.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섬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상욱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은 것이어야 했다. - P157

나 역시 당신들의 처지가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인 줄은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위로를 받는 것이 당신들의 권리일 수는 없습니다.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오. 당신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언제까지나 당신들을 위로만 해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당신들에겐 보다 큰 위로가 되리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을 끝내고 난 원장은 이제 장로들의 반응 같은 건 기다려볼 생각도 없다는 듯 한동안 검은 하늘로 시선을 흘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할 일을 다한 사람처럼 조용히 뱃머리를 섬쪽으로 돌려세웠다. - P180

"도대체 절더러 지금 무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원장은 거의 신경질적인 어조가 되고 있었다.
"무얼 어떻게 하다니? 원장이 내게 그걸 물어서 쓰나?"
황장로가 원장을 나무랐다.
"그야 원장이 할 일이란 간단하지. 원장은 그저 앞으로도 뱃심 좋게 우리 문둥이들을 부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원장은 문둥이들만잘 부려주면 되는 게야. 지금까지 이야기도 내 그래서 원장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귀띔을 해준 게 아닌가 말야."
"••••••."
"겁먹지 말고 죽도록 일을 부리라 이 말이지. 그렇게 지내온 놈들이라 하려고만 들면 무슨 일이고 끝장을 보고 말 위인들이니까. 게다가 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추호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명분이 있지 않나. 그건 원장이 우릴 부려댈 명분도 명분이지만 우리들 쪽에서도 지금까지 감당해온 숱한 고난들 가운데서 모처럼 명분다운 명분이 서는 일이거든. 하지만 원장이 먼저 겁을 집어먹은 꼴을 보이면 모든 건 끝장이야. 저 위인들 가슴 속에 숨겨진 독기는 아닌 게아니라 제 몸을 던져 둑을 쌓아올리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이지만, 원장이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고 보면 그건 하루 아침 동안에도 잔인스런 심술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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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에서 시지각과 시각적 표상의 유사점을 관찰한 사례는 최소한 한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영국의 신경과 의사 헨리 헤드와 고든 홈스는 후두엽에 미미한 손상을 입은 이로 인해 완전 실명은 아니지만 시야에 맹점이 생긴 환자 다수를 진료했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상세한 질문을 던져서 맹점이 나타난 지점이 심상이 나타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1992년에는 마사 패라가 이끄는 연구진이 후두엽절제술로 인해 한쪽 눈의 시각을 부분적으로 상실한 한 환자의 사례를 보고했다. 그 환자는 마음의 눈의 시야각도 축소되었는데, 시각을 상실한부위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시각적 표상 기능과 시지각 기능에서 최소한 일부 요소는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는 1986년에 머리에 부상을 입은 뒤 완전색맹이 되어 나와 상담했던 화가 씨의 경우였다.  1 씨는갑자기 색 지각 능력을 상실하고 비탄에 빠졌지만, 색을 기억할 수도 마음속에 그려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심지어 이따금씩 나타나는 시각편두통 증상에서도 색이 빠져 있었다. 1 씨 같은 환자들의사례는 지각 기능과 표상 기능이 시각피질의 위쪽에서 아주 밀접하게 쌍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 P256

"정상 시력인 친구들은 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질문을 던지면 친구들은 보지 못할 뻔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이건 일종의 호혜 관계예요. 서로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에 내가 풀 수 없는 (그러나 기분 좋은)역설이 하나 있다. 경험과 기술 사이에, 세계를 직접 경험해서 얻은 지식과 무언가를 매개로 얻은 지식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맞다면, 언어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가장 인간적인 발명품인 언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언어가 있기에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지 않은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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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일어나지 않은 일

힐러리 클린턴은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에 이렇게 썼다. "2016년 11월 8일 이후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하나의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는 독특한 책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출간된 이 책은 선거에 패배한 후보가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핵심에는 2016년 선거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미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협과 거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이하고 일탈적인 일이 일어났다는믿음이 존재한다.
설령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밋 롬니가 승리했더라도 오바마가 이게 무슨 일이야What the Hell?』 같은 책을 쏠리는 없을것이다. 패배는 미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존 케리가 설령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재선에 실패한 조지W. 부시가 법치 파괴 행위에 골몰하며 극렬지지자들에게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에 대한 연방의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가 진압된 사건이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역겹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옮긴이.) 클린턴의 책에서, 그리고 선거 이후 진보주의자와 ‘트럼프 절대반대파never-Trumpers‘가 쏟아낸 고뇌에 찬 논평에서 묻어나는 건 2016년 선거가 2012년이나 2004년과는 다르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망했는데, 왜그렇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 P9

바텔스의 생각은 이렇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난 대선들에 관한 자료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거가 이상한 선거였는지 골라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상한 선거를 고를 수 있겠는가? 비록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 중 하나이긴했지만, 2016년 대선의 결과는 2012년, 2008년, 2004년 대선의 결과와 엇비슷해 보인다.
2016년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놀라운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가 30% 차로 패하거나 20% 차로 이기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한 사람 대부분은 2012년에 선택했던당을 2016년에도 똑같이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찰할 점이 없다는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주요 주체들에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며 트럼프 당선시켰다. 그러나 숫자로만 보면 2016년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전형적인 경쟁이었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다른 공화당 후보처럼 대했다는 사실은 정당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극심한 양극화는 2016년 선거를 2012년 롬니와 오바마 사이의 경쟁이나 2004년 케리와 부시 사이의경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적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사실상 마음을 바꿀 만한 어떤 후보도, 정보도, 조건도 없었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 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가 됐든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준, 신념, 책임감 없는 정치다. - P15

문제는 시스템이다. 유독한 시스템은 선량한 개인들을 손쉽게 타락시킨다. 유독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가치를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게아니라, 가치를 줄세워서 우리가 서로를 배반하도록 한다. 각자에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집단으로 행해질 때는 파괴적인 것이 된다. - P16

문제는 나름 합리적인 복잡한 시스템들이 종종 ‘논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망가진 나사나 빼먹은 정기점검을 발견하면, 사고의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가 관리 비용 삭감으로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보았던 사실을 놓친다면, 사고 원인 파악도 재발방지에도 실패한 셈이다. 데커는 시스템적 사고란 "어떤 한 부분도 고장 나지 않았을 때나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일 때도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정치는 이와는 다르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미국 정치가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유권자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은 각자의 동기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 행위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잘 기능하도록 애쓰는 각 부분이 모여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전체가 되어버렸다. 최악의 인물이 성공을 꾸며낸다고 해서 그것이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만약 시스템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데커는 우리가 어떻게 탐색해나가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좁은 범위의 기준을 잘 지키고 수행한 결과 사고가 난다는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고는 현재의 정치·경제·사업 구조 속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받기 위해 성과 기준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떤 것도 고장 나지 않고,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아무도 규칙을 위반하지 않아도 재난은 벌어질 수 있다. - P19

불행하게도,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위를 묘사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된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고 경찰의 잔혹성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체성 정치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것도 정체성 정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국민 신원 조사를 폭정이라고 비난하는 시골에 사는 총기 소지자거나, 높은 세율은 경제적 성공을 가로막고 부자를 악마화한다고 불평하는 역만장자 CEO이거나, 공공장소에 예수의 그림을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은 그저 선량한 구식 정치일 뿐이다. ‘정체성 정치‘는 교묘하게 소외된 집단에만 따라붙는다.
이렇게 사용되는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뭔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가린다. 이는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더 강한 집단의 관심사를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보이게 하고 약한 집단의 관심사는 이기적이고 특수한 호소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관심사를 축소하고 신뢰성을 떨어트리게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체성을 칼날처럼 휘두르면서 렌즈로서의 정체성을 잃었고,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는 시도속에서 우리의 눈은 멀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눈을 하릴없이 찾아 헤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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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윈체스터에게 편지를 써서 저서 《대영제국의 유산Outposts)의오디오북을 얼마나 즐겁게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인사했다.
나는 책의 세계에 살며, 무언가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다. 아니,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읽는 데 바쳤다. 하지만 지금은 오른쪽 눈은 ‘부재중‘이고 왼쪽 눈은 왼쪽 눈대로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는 터라 읽는일이 쉽지가 않다. 어렸을 때 왼쪽 눈을 맞은 일이 있는데, 그 일로 백내장이 생겼고 그 뒤로 줄곧 시력이 아주 낮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쪽 눈의시력이 10일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된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쓰는 안경이 왼쪽 눈의 시력에는 충분하지 않아 돋보기를 써야 하는데, 그러자니 읽는 속도가 더디고 페이지 전체를 한번에 훑어볼 수가없다.
케이트와 서점으로 나가 대형 활자로 인쇄한 서적을 몇 권 샀다. 하지만대형 활자 서적의 대다수가 입문서나 로맨스 소설인 것을 보고는 의기소침해졌다. 대형 활자 서적 구역에서 괜찮은 책을 단 한 권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각에 장애가 있으면 지적으로도 장애가 있는 줄 아는가 보다. <타임스>에 이 문제에 대해 격렬한 칼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디오북은 범위가 넓지만, 평생을 독자로 살아온 나는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는다는 일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다행히도 사이먼 윈체스터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되었다. - P190

검고 불투명한 커다란 무언가가 중심시를 흐리는 것이 보이는데, 위족이 돌출한 아메바처럼 생겼다. 이것은 팽창했다 수축했다 하면서 율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 테두리는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손가락으로 찔렀더니 블랙홀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손가락이 사라졌다. 화장실 거울에 내모습을 비쳐 보는데, 오른쪽 눈으로는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것은 어깨와 턱수염 아래쪽뿐이었다. 글 쓸 때는 펜촉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외출했을 때는 길 다니는 사람들의 하반신만 보였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더블린을 돌아다니는 "펑퍼짐한 바지 한 벌"로묘사되는 아티포니 씨가 떠올랐다. 길은 온통 치마와 바지, 상체 없이 움직이는 다리와 엉덩이들뿐이었다(이로부터 며칠 뒤에는 암점이 더 커져 사람들 발만 보였다).
물론 이 현상은 왼쪽 눈을 감았을 때만 나타난다. 양쪽 눈을 다 쓸 때면시력은 상당히 ‘정상‘이어서 지난 몇 달 동안의 상태보다도 훨씬 좋다. 이제는 오른쪽 눈의 시각이 왼쪽 눈의 시각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중심시만큼은 가망 없이 완전히 멀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된 것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 레이저 치료를 몇 달 전에 받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단안시가 되고 보니 입체시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데, 시야의 상반부에서 3분의 2까지 사라졌다. 하지만 하반부는 손상되지 않아서주변시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하반신은 입체시로 보이고, 상반신은 완전 평면의 2차원으로 보인다. 물론 하반신을 남은 중심시로 볼 때면 이 또한 평면으로 변한다. - P197

모든 것이 평평하게 보이는 것이 싫고 입체감을 잃었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가끔은 나의 2차원 세계가 고마울 때가 있다. 방이나 조용한 거리, 가로로 놓인 탁자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성된 정물로 보일 때면, 나는 화가나 사진가가 평면 캔버스나 필름에 담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상상하곤 한다. 이렇게 구성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의식하면서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림이나 사진 작품이 입체적 착시 효과은 주지 못하지만, 이런 면에서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 P213

손상된 것은 깊이감과 거리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공간에 나열된 고체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너무도 중요한 원근감마저 소실되는 경우도 있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친구의 헛간을 찾아갔을때였는데, 처음에는 그곳이 헛간인지 몰라보았다. 하늘에 새겨진 도형같은 가로선, 세로선, 대각선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원근감이 생겨서 사진이나 그림 같은 평면이기는 했어도 헛간이라는 것이 인지되었다.
깊이나 거리 지각 능력을 상실한 뒤로 나에게는 가깝고 먼 사물이 결합하거나 융합하여 기이한 변종 괴물이 되는 일이 생겨났다. 하루는 이상하게도 손가락 사이에 잿빛 거미줄이 보여서 뭔가 했더니, 내가 1미터 아래의 잿빛 카펫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발이 손의 일부가 되어 수평으로 보였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친구의 옆모습을 보았는데, 친구의 눈에서 어린가지 같기도 하고 은백색 나무토막 같기도 한 것이 뻗어 나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것은 길 건너편 나무에 붙은 가지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고 유니언스퀘어에서 길을 건너는 남자가 보였는데, 그 사람은 어깨에 거대한 토목 구조물을 짊어지고 있었다(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물건을 지고 갈 수가 있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구조물은 그 사람으로부터 10미터 뒤에 있는 다른 구조물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또 소방차 꼭대기가 내 차 지붕에 꽂힌 적이 있는데, 그 소방차는 내 차에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알고 고개를 움직여 운동 시차로 확인했는데도 이상하게 착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혼잡한 도로의 차량 사이에서 보았던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평저선은 내 바로 앞에 있는 자동차의 측면 거울이었고, 한 여자의 이상한 초록 우산은 그 여자로부터 30미터 뒤에 서 있는 나무였다. 정말 무서운 일도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침실에서 책을 읽는데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머리맡의 독서등 위로 추락하려는 것이 ‘보였다‘. 두 물건이 최소한 1~2미터는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는 착시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이제 더는 내 앞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오지도 움푹 꺼지지도 않는다. ‘앞‘이나 ‘뒤‘를 바로바로 지각하는 능력도 사라지고 중첩감과 원근감을 토대로 추론할 수 있을 따름이다. 공간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며 내가 드나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배회하던 입체의 영역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안에 살았으며,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공간 속에서 나와 관계를 맺었다. 이제 나에게는 그 공간이 시각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P215

우리는 주변시를 고마워할 줄 모른다. 평소에는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보고 응시하고 초점을 맞출 때 사용하는 것은 중심시다. 하지만 중심시를 에워싸고 하나의 맥락에서,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더 넓은 세계에서는 어떤 위치에 속하는지를 알려주는것은 주변시다. 보고 있는 대상이 움직일 때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바로주변시다. 주변시가 어느 쪽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발생하는지 경고하면, 중심시가 그 경고를 받아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오른쪽 눈의 주변시에서 큼직한 한 부분(케이크를 크게 잘라낸 조각만 한, 40도 이상 되는)이 잘려나갔다. 대략 코 오른쪽으로는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중심시는 이미 잃었지만 남은 주변시가 오른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암시해주어 미리 주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상실했다. 오른쪽으로는 자각이 전혀 없어서 시야에 무엇이 나타나건 뜻밖의 사태요 놀라운 일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이 오른쪽에서 불쑥 나타날 때면 하릴없이 당황하고 만다. 심지어는 쇼크 상태가 되기도 한다. 공간의 큼지막한 한 부분이 나에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공간 안에 무엇이 되었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 P219

헐이 말하는 심맹은 시각적 표상과 기억의 상실만이 아니라 본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려서 ‘여기‘, ‘저기‘, ‘마주 보기‘ 같은 개념이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생김새라든가 시각적 특징 같은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려보지 않는 한 3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3의 ‘운동‘ 표상은 있으나, ‘시각적 표상은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아내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고 좋아하는 장소와 정든 풍경이 마음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이 실명에 대한 자연의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자 놀랍도록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시각적 표상 능력의 상실을 다른 감각 기능이 강화되는 다음 단계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여긴 듯하다.
완전히 맹인이 된 지 2년 뒤, 헐의 시각적 표상과 기억 능력은 선천적 맹인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헐은 심오한 종교적 색채를 띠며 때로 요하네스(1542~1591,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 수도원 개혁 운동가옮긴이)를 연상시키는 언어로 희열과 묵종으로써 심맹 상태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심맹 상태란 "정법한 자율의 세계,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요..… 혼신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집약적인 상태로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헐이 말하는 "혼신으로 본다"는 것은 주의를 돌리는 것, 무게중심을 다른 감각으로 이전하는 것, 그리하여 다른 감각기관들이 새로운 힘과 자양분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껏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빗소리가 어떻게 새로운 풍경의 윤곽을 보여주는지 말한다. 비가 잔디밭이나 정원의 수풀을 두드릴 때와 정원과 차도를 가르는 담장을 두드릴 때각각 다른 소리가 난다고.

비는 모든 것의 윤곽을 드러내주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에 다채로운 빛깔의 담요를 드리운다. 간헐적인 소리로 가득하며 그래서 파편들로 존재하는 세계와 달리, 꾸준히 떨어지는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청각적 경험에는 연속성이 있어서 하나의 상황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며..… 원근감을 제시하며 세계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P230

인지신경학에서는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사람의 뇌가 통념만큼 불변적인 장치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분야의 선구자 헬렌 네빌은 언어를 배우기 전에 귀가 들리지 않은 사람들(즉, 선천적 농아나 2세 이전에 농아가 된 사람)의 뇌에서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퇴행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들의 청각 기관은 살아서 기능을 수행하는데, 다만 그 기능과 활동이 새로운 범주, 즉 시각 언어를 처리하는 기능으로 변신한다. 네빌의 용어로 말하자면 ‘재할당‘된 것이다. 선천적 맹인이나 아주 어려서 맹인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시각피질의 일부영역이 재할당되어 청각과 촉각을 처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게 시각피질 일부가 재할당되면서 맹인의 청각과 촉각 외의 감각기관은 시력이 있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리한 기능을 수행한다.  - P232

헐의 경험이 시각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일것이라고 여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적어도, 일방적이었던 것일까? 내가 반응의 한 형태만 과하게 강조하다가 이와는 전혀 다른 여타 유형의 반용도 있을 수 있음은 그만 간과해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몇 해 뒤, 졸탄 토리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심리학자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그의 편지는 실명에 관한 것이아니라 뇌에서 정신을 만드는가, 정신이 뇌를 만드는가 하는 문제와 의식의 본질을 다룬 자신의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편지에는 그가 스물한살에 사고로 실명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실명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받은 조언은 시각에서 청각으로 전환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반대 방향으로움직여서 내면의 눈을 키우는 훈련을 받자고, 그래서 시각적 표상 능력을 가능한 한 끌어올리자고 결심했다.
이 훈련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마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조작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얻었는데, 어느 정도였느냐면 그에게는 예전에 상실한 시각 표상만큼이나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때로는 그보다도 사실적이고 강렬한 가상의 시각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상화 능력은 실명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까지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저는 우리 집 다중 박공지붕의 홈통 전체를 저 혼자 힘으로 교체했습니다. 정밀하게 반응하는 정신적 공간의 힘만으로요." 그는 이렇게 썼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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