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마디로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그 섬 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사실 수는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나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의 천국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은 저들의 천국이라 하고 저들은 원장님의 천국이라 말하게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그 거리가 얼마나 깊고 멀다는걸 전 섬을 나온 후로부터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전 섬을나온 이후부터 이것저것 참 여러 가지 일을 해봤습니다. 일을 통해 육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으로 자신을 섞여들어보려구요. 하지만 섞일 수가 없었습니다. 섬 생각이 사라지게 하질 않았어요. 육지 사람들이 절 그렇게 만들었고, 저 자신이 저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흔적 없이 섞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억지로 섞여들면 숨는 꼴이 되었구요. 초인적인 인내와 용기가 없는 한 운명을 같이하기란 그토록 힘이 드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전 저 자신에게서나마 숨어산다는 생각이 가실 때까지 이 육지를 견뎌보려고 오늘까지 이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고 있는 꼴입니다. - P379

여기 너희 천국이 마련되어 있는데 원장님께서는 이미 섬을 빠져나가려는 원생들을 이 섬과 동환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고 계십니다.
문둥이들만을 위한 천국- 여기에 또한 원장님의 그 눈에 보이지않는 또 다른 모습의 철조망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불행한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도 온갖 인간적인 소땅과 자기 생의 실현욕은 근본적으로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을것입니다. 기구한 생의 역정을 걸어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기구해온 천국이 여느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비록 그것을 망각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저들에게 그것을 다시 찾아주어야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그러나 저들에게 그냥 인간의 천국을 지어주시려는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 하고 계십니다. 원장님의 천국계획은 처음부터 이 나라의 나환자를 한데 모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 원생들이 섬을 떠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섬안에 낙토를 꾸미시겠다는 원장님의 계획은 섬을 나가기만 하면 육지사람들의 무서운 복수를 면할 수 없으리라는 협박으로 원생들의 발목을 섬 안에 붙들어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방법이 다를 뿐 효과에 있어서는 목적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저들을 그냥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과 양보 위에 그것을 수락할 수있는 문둥병 환자로서만 이해하려 하심으로써 오히려 저들로 하여금 원장님 자신의 문둥이 천국을 짓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야 가난한 자의 천국은 우선 재산을 누리는 곳에서, 병을 앓는자의 천국은 건강을 되찾는 곳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산이나 건강은 그것이 극도로 결핍된 처지에서나 어떤 특수한 천국의 내용이 될 수 있을 뿐,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인간의 궁극적인 천국의 내용일 수는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 누구에게서도 너희 병을 용서받아보지 못한 가엾은 문둥이들이므로-. - P387

도대체 어떤 절대 상황 안에 격리된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한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 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
결코 장로회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다만그 원장님의 천국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섬을 나갔을 때 그들이 육지사람들로부터 당하게 될 지주와 학대를 적절히 설명하심으로써 원생들 스스로 그들의 울타리를 높여가게 하고, 그 울타리 안에 고정된 적절한 상황의식을 되풀이 환기시켜줌으로써 그 장로들과 섬사람들을얼마든지 뜻대로 조작해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 결국 이 몇 년 동안 원장님과 원생들의 관계에서 한 선의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의 어떤 대등한 상호 지배 질서, 만인 공유의화창한 지배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배자가 어떤불변의 절대 상황 속에 갇힌 다수의 인간 집단을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저항 없는 조작을 행해갈 수 있는가 하는 슬픈 지배술의 시범을 보아왔던 셈입니다.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된다는 말씀입니다. - P397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차이가 큰 일이었지요. 섬사람들과의 한운명 단위 속에서 서로 믿음을 얻고 나면 일단 그 자유나 사랑을 함께 행해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사랑은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져나감은그 자유나 사랑 속에 깃든 힘으로 해서일 겁니다. 사랑이나 자유의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자유나 사랑이나 다 같이 그 실천적인 힘에 근거하여 비로소 제 값을 지닐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선 두 가지가 같은 차원의가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겠구요.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를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나갈 수있다는 이야깁니다."
"원장님께서는 결국 원장으로 다시 섬을 들어오지 못하셨기 때문에, 원장의 권능으로 섬을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그 자우와 사랑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운명을 같이하지 않는 한에서의 어떤 힘의 질서는 무서운 힘의 우상을 낳을 뿐이겠지요. 하지만 운명을 같이하려는 작정이 있은 다음엔 내게 그 원장의 권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허심탄회한의 질서 속에서 섬의 자유와 사랑이 행해져나가야 했었어요. 하지난 이미 이 섬 병원의 원장이 아니었어요." - P408

결혼식 아침날은 기대했던 대로 남해안 특유의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산간을 뻗어 돌아간 황톳길들은 밤사이 함성처럼 피어난 벚꽃 무리로 하여 불을 켠 듯 환하게 뚫려나가고, 벌판을 휘돌아 어우러진 보리밭의 푸르름은 바야흐로 한창 봄의 약동을 합창하고 있는 듯했다. 십자봉을 비껴 흐르는 하늘은 정봉의 소나무 가지보다도 드높았고, 섬을 휘감아 돌아간 득량만의 물빛은 어느새 그 선뜩선뜩하고 암울스런 겨울빛을 말끔히 벗고 있었다. - P413

하지만 이제 자기 목소리에 열이 오를대로 오른 조원장은 자신이 이미 식장의 시간을 늦은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간이이미 늦어버린 가운데에 그 조원장의 능청스런 축사 연습은 그리고자신의 광기에 못 이긴 기이하고도 진지한 연기는 아직도 한동안이나 더 도도하게 계속돼나갔다.
"이제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비로소 윤해원과 서미연 두 사람에 대한 그의 당부라는 것을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라는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서도 이미말했듯이 두 분은 기왕에 남다른 사랑과 용기로 이 일을 이룩하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방을 허물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굳세게 그를 지키고 살찌워나가주시라는 것입니다. 벽을 허물어뜨리고그 벽 대신 따뜻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 동네 한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제가 두 분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병사 지대의 중간에 마련케 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두 분의 결합과 정착지를 시발점으로 하여 하루빨리 이 섬에서부터 두 마을이 하나로 합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정착지가 하루빨리 새로운 마을로 번창하여 이 섬 안엔 건강 지대와병사 지대가 따로 없는 하나의 마을로 채워지기를 빕니다. 이제 두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나갈 것입니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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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이 된대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게 정말로 장로님의 진심일 수가 있습니까?"
"진심일 수 있지. 우리 우리가 할 일을 다했을 뿐이고, 우리들한테 땅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안 나눠주고는 다음번 일을 맡아간 사람들의 일이니까. 설사 그 사람들이 우리한텐 한 조각의 땅도 나눠주고 싶지 않다 해도 그 역시 이젠 그 사람들의 일이거든."
"이 섬 5천 원생들의 생각도 모두가 장로님처럼 태연스러울 수 있을까요?"
"같지 않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아, 원장도 알지 않은가? 문둥이들이란 원래가 그런 식으로 살아온 걸 말야. 그런 건 다들 벌써 익숙해 있을 거야."
"••••••."
"그렇다고 뭐 그 문둥이들을 너무 안되어할 것도 없는 일이지. 안되어할 게 없는 것이 언젠가 그 문둥이들은 남 위해 일하는 법 없다고 말했지만 문둥이들도 이 일을 해오면서 벌써 제 누릴 몫의 은혜는 다들 누려온 셈이거든. 문둥이들이 제 힘으로 일하면서 제 힘으로 살아갈 땅을 얻겠다고 이 몇 년 동안 제법들 땀을 흘려보지 않았나 저마다 제가 살 천국도 그려보고. 그만만 해도 문둥이들한텐 대단한 은혜지. 너무 못미더워 안되어할 건 없어. 내 원장이 아직 잘모르고 있을 게란 것도 바로 그 점이지. 그 점을 잘못 알고 있길래 원장은 여태도 그 사람들하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야.
그야 기왕지사 섬을 떠나게 된 마당에 원장으로서도 일을 좀 만족스럽게 마무리지어두고 싶긴 하겠지. 그걸 나무랄 순 없을 게야. 하지만 내 보기엔 그게 아무래도••••••."
"그게 아무래도 제가 이 섬 사람들의 공로를 온통 저의 것으로 만들어 또 다른 동상을 짓고 싶어하는 증거가 아니냔 말씀이시지요." - P329

"바로 저 나무뿌리가 그런 것 중의 하나지요. 산에만 올라가면 저런 고목나무 뿌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모두가 땅속에 숨어 있어요. 놔두면 제물에 썩어 없어져버릴 것들이지요. 하지만 내가 올라가 땅을 파고 썩어가는 뿌리를 찾아주면, 저것들은 제 몫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니고 저렇게 내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사람들 현상의 실체가 뭔가를 찾아낸다고 생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들겨깨기도 하고, 새끼줄을 이리저리 얽어매는 따위의 별스런 짓까지 하는 모양입니다만, 이 나무뿌리는 그렇게 힘이 들 필요가 없어요. 일부러 뭘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제가 원래 지닌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그 숨어 묻혀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놔두면 그냥 땅속에서 썩어 없어질 나무뿌리를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게 예술이 안 됩니까. 그래선 예술 작품이안 되는 거웨까?"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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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하고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장님께서 그간 이 섬에 이룩해놓으신 일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선 이미 이 섬에서 너무도 큰 일을 이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원장님께서 절강제를 치르게 되시든 안 되시든 원장님께서 염려하고 계시듯 오마도 간척장을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빼앗기는 경우에 있어서까지도 이 섬에선 이미 훌륭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절강제나 원장님의 전출 때문에 그것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한데도 원장님께선 아직이 일에 다른 사람의 힘이 보태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의 힘이 더 보태질 여지가 없을 만큼 이 일은 원장님 혼자서 결말을 지어놓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은 원장님의 지나친 욕심입니다. 왜냐하면 원장님 스스로도 이제 이 일엔 더 보태실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장님 자신이 기어코 이 일을 결말내고 싶어하시는 것은원장님께서 이미 이 섬에 이룩해놓으신 것에 대한 원장님의 당연하면서도 인색스런 권리의 주장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동상 때문이겠군. 이과장은 아직도 그 동상의 망령이 내게 되살아날까 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거 아니오?"
원장은 이제 노골적으로 불쾌한 어조로 말하고 나서, 그러나 그동상의 망령에 대해서라면 전혀 안심을 해도 좋다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상욱은 이제 그만한 여유조차도 원장에게 용납하지 않으려는 기세였다. - P305

"원장님께서 부임 초에 말씀하셨던 대로 이 섬은 애초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유령들의 섬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선 그 유령들을 깨워일으켜 땅 위를 걸어다니는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생대한 희망과 신념을 갖게 하고 이웃간의 신뢰도 심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처럼 만의 희망과 신념이 또 다른 속박에로의 안내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상이란 언제 어느 곳에 세우게 되든 그것을 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자기 속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 섬에 다시 누구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다면 그 동상이 이 섬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 바는 조금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아닐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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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들은 말이 없었다.
밥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고 잠을 자려고 하지도 않았다. 거적을 뒤집어쓴 채 공사장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워 뒹굴기만했다.
그것은 참으로 끔찍스러운 광경이었다.
허탈감은 조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원장 역시 처음 한동안은 그 엄청난 자연의 배반 앞에 원망스런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 속에 넋을잃은 사람처럼 멍청스레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며칠이 지나고 나자 조원장은 비로소 자신에 못지않은 수천 나환자의 무서운 절망감에 눈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원생들의 절망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원망과 증오감으로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원생들의 원망과 미움이 누구를 표적으로 겨누게 될 것인가는 물으나마나였다.
원생들에게는 옳은 표적이 찾아질 리 없었다. 배반의 원흉은 물론 바람을 몰아온 자연의 심술이어야 했지만, 원생들의 미움은 그토록 먼 표적을 들춰낼 여유가 있을 수 없었다.
원생들의 표적은 그들에게 가까이 있는 조원장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 자신도 원생들이 그렇듯이 그 자연을 원망의 표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은 차츰 자신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둥이는 남 위해 일하는 법이 없노라고 충고해준 것은 아마도그 황희백 노인의 진심이 분명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둥이들의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생각일랑은 앞으로 절대 지니지 않겠노라고 한 조원장 자신의 장담은 아마도 모두 사실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조원장은 생각이 분명했다. 그는 이제 황장로 말마따나 자기 아닌 누구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오직 스스로의 복수심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자연의 횡포를 견뎌 이겨내고 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은 집념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 P252

그러는 가운데도 투석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 가라앉은 둑을 다시 솟아오르게 하는 데는 또 한번 3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도 돌둑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며칠 동안뿐이었다.
둑은 다시 가라앉아버렸다.
가라앉으면 솟아올리고, 솟아올려놓으면 다시 가라앉는 싸움이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제1, 제2, 제3 세 개의 방조제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서 교대로 가라앉아 들어갔다. 제1 방조제에서 10미터가 무너진 것을 쌓아 이어놓으면 제2방조제에서 20미터가 물러나앉았고, 그것을 어렵사리 이어 발라놓으면 이번에는 제3방조제 쪽에서 다시 30미터가 가라앉아 들어갔다.
원생들도 이젠 원장과 마찬가지로 그 싸움 자체에 대한 집념이 쌓여갔다. 원생들도 이제 땅에 대한 소망 같은 건 둘째 문제였다. 틈만나면 물속으로 모습을 숨겨 들어가려고 하는 그 돌둑과의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지냈다. 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싸움을 이기고 말겠다는 집념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또 던지게 했다. 돌둑은 벌써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기 위한 무의지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무서운 복수심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에 끈질기게 거역해오는 두려운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런 싸움이 무한정 계속되다 보면 지쳐나는 쪽은 역시 인간들 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심신이 지치다 보면 무엇엔가 터무니없는 곳에까지 의지의 손길을 뻗치게 마련이었다. - P262

문둥이들도 벌써 그걸 알아차리고 있는데, 주정수 원장혼자서만 유독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게 탈이었더란 말이지. 난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만. 한데 이번에는 조원장이 또 그토록 답답한 사람일 줄을 누가 알았겠나. 묘한 것은 글쎄, 원장으로 오는사람마다 이 한 가지 일에만은 뜻밖에도 늘 미숙한 데가 많은 점이거든. 도대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별해내는 데는 이 문둥이들보다 늘 깨우침이 늦단 말야. 그래서 오늘 밤처럼 또 이렇게 섭섭한 일들이 벌어지고 ••••••.
"그만두시오."
흉물스런 산짐승이 미리 사람의 혼을 뽑아놓기 위해 멀리서부터 빙빙 주위를 좁혀들어오고 있는 듯한 노인의 사설에, 조원장은 그만 견딜 수가 없어지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섰다. 참혹스런 일을 저지르려 할 때면 언제나 조용조용 옛날 얘기들을 들추어내는 것이 노인의 버릇이라고 했던가. 조원장은 노인의 그 음침스런 예감이 깃든 목소리가 마치 함정에 걸려든 날짐승을 다루는 거미줄처럼 끈적끈적 온몸을 옭아매 들어오고 있는 기분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냥에 성공한 거미가 먹이의 가슴팍에 독침을 꽂아넣기 전에 포획물의 생명이 충분히 시들기를 기다리듯, 노인은 원장의 영혼과 육신의 힘을 서서히 마비시켜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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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의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서 공화당원들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는쉽다(실제로 많은 공화당원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오늘날 어떤 정당이 더 많은 건강보험 보장을 지지하는지를 두고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정당 사이의 선택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또 다른 예로 임신중단 문제를 보자. 1982년 상원의원 조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의 판례를 뒤집을 수 있는 헌법 수정안에 찬성했다. 그는 당시 그 투표를 두고 "미국 상원의원으로서 내가 던진가장 어려운 투표"였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자신의 양육 과정을 들어 그 결정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뭐라고 표현하고싶으시든 간에, 나는 아마도 내 배경의 피해자이거나, 부산물일 것입니다." 그는 또한 정치적 순간의 산물이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에 반대했지만, 그의 부통령 넬슨 록펠러는 뉴욕주 주지사로서 임신중단 제한 조치를 폐지했다. 1976년 공화당 정강은 임신중단을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렵고논쟁적인 질문들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었다." 이어 "우리 당에는 필요한 경우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든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개헌으로 대법원의 결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원들도 있다"라고 하며 공화당 내부의 분열을 인정했다. 의회에서도 비슷한 수의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상관없이 임신중단은 어떤 경우라도 합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과 어떤경우라도 불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같았다.
오늘날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으려는 보수 진영의 노력에 대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유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그것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공화당 정강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고 있지 않다. 공화당의 2016년 정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히 하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침해 불가한 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가지고있음을 단언한다." 임신중단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을 인정하기는커녕,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민주당원들을 공격한다. 또한 그 정강은 "민주당의 임신중단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임신중단에 대한 기본적인 제한에 대한 강경한 반대는 그들을 미국국민의 생각과 극적으로 멀어지게 한다"라고 선언한다. 건강보험 문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공화당 내에는 임신중단에 찬성하는 사람이있었고, 또한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유권자는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하고 공화당은 반대한다. 정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도 이것은 알 수 있다. - P43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하스연구소Haas Institute의 인종정치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안 헤이니 로페즈lan Haney Lopez는 20세기 미국을 ‘헤렌볼크Herrenvolk -지배 민족만을 위한 민족주의-옮긴이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다수 인종 집단에게는 민주주의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매우다른 정치 제도다. 헤이니 로페즈는 "헤렌볼크 자유 민주주의는 백인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회의 부를 어떻게 하면 계속 아래쪽으로, 바깥쪽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번영을 공유하고 확장했습니다. 백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매우 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 P55

사실상 남부연합의 정치적 위계질서가 남부에서 복원되면서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의 힘과 정치적 거래주의의 힘을 합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전국 단위의 민주당이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인종주의자들에게 이끌리지 않았을 때도, 영토가 종종 군벌들에게 내맡겨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남부는 군벌들의 손에 내맡겨졌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은 권력자들의 이익에 봉사했다. 전국 단위의 민주당은 뉴딜 정책의 의회 통과, 대통령 선거 승리, 인프라 건설에 신경을 썼다. 전국 단위 민주당은 그들에게 중요한 표를 줄 수 있는 남부 민주당과 함께 일하는 것과, 탈당해서 민주당 국정 과제를 방해할 수 있는 남부 민주당에 도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을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 P56

남부와 민주당의 연합은 결코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민주당원이었고, 당에 대한 충성은 지역 정체성으로굳건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따라서 공화당에 대한 남부의 적대감은 뼈에 새겨진 것처럼 확고했다. 민주당은 부자에게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지지했다(북부는 부유했고 남부는 가난했다). 프린스턴대학교교수 하워드 로젠탈Howard Rosenthal은 "20세기가 될 무렵, 남부 민주당은 민주당 내부의 좌파를 대표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였습니다. 당시 부의 재분배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에서 걷어서 가난한 남부에 주는 것이었습니다. 의회에서 인종 문제는 의견 불일치의 영역으로서 논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종은 의견 불일치의 영역이 되었다. 민주당은 부유한 북부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남부 백인들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것만을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부유한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흑인들에게로 부를 재분배하기를 원했다. 더군다나 1948년부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린 군대 내 인종 분리 폐지 명령과 함께 민주당은 남부와의 기본 협약을 배반했다. ‘주의 권리‘를 정강으로 내걸고 출마한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옛 남부연합의 많은 부분을 대변했다.
민주당이 어떻게 민권을 포용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하다. 이 이야기에는 린든 존슨이나 휴버트 험프리와 같은 정치인들의 이상주의뿐만 아니라, 북부에서 비백인 유권자들을 포함하기 시작한 선거 연합체들이라는 냉정한 계산법이 포함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학적 진보주의의 논리적 결론에 따라, 왜 비백인 미국은 계속 가난한지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 P58

 카바서비스는 "결국 하원 투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원에서도 민주당 의원들보다 공화당 의원들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민권법의 토론 종결과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경우 5분의 4가 넘었지만, 민주당의 경우 3분의 2에 불과했다"라고 썼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정당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었고,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딕시크랫과의 동맹을 끝내기로 했다. 존슨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빌 모이어스Bill Moyers는 존슨이 민권법에 서명한 날 밤 침실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대통령을 보았던 일을 회상했다. 존슨이 "난 우리가 앞으로 오랫동안 남부를 공화당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생각하네"라고 말했다고 모이어스는 기억한다."상원 다수당 원내 대표 시절 남부 민주당에 의한 인종적 평등 봉쇄를 시행했던 존슨의 말이 옳았다. 민주당의 남부 지역에대한 장악력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바로 그때가 약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P59

남부는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한때 진보주의의 비전이었던 주의 재분배와 계층 상승이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남부 민주당은 공화당과 타협할 이념적 이유가 있었고, 전국 단위 민주당과는 타협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남부 권력은 민주당을 원래보다 덜 진보적으로 만들었고, 공화당의 의회 권력을 원래보다 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당이 그 시대의 가장 깊은 정치적 분열을 두고 갈라지는 것을 막았다.
여기서 우리는 혼합 정당들 시대의 표 분할의 힘과 목적을 확인할수 있다. 남부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딕시크랫 민주당에 투표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정치가 날카로운, 심지어는 폭력적인 의견 차이로 분열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싸움이 정당과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속될 수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민권을 포용하고 공화당이 그 법안에 반대하는 지도자 뒤로 결집하기로 한 것은 남부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이것은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의 발판이 되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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