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들은 말이 없었다. 밥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고 잠을 자려고 하지도 않았다. 거적을 뒤집어쓴 채 공사장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워 뒹굴기만했다. 그것은 참으로 끔찍스러운 광경이었다. 허탈감은 조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원장 역시 처음 한동안은 그 엄청난 자연의 배반 앞에 원망스런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 속에 넋을잃은 사람처럼 멍청스레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며칠이 지나고 나자 조원장은 비로소 자신에 못지않은 수천 나환자의 무서운 절망감에 눈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원생들의 절망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원망과 증오감으로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원생들의 원망과 미움이 누구를 표적으로 겨누게 될 것인가는 물으나마나였다. 원생들에게는 옳은 표적이 찾아질 리 없었다. 배반의 원흉은 물론 바람을 몰아온 자연의 심술이어야 했지만, 원생들의 미움은 그토록 먼 표적을 들춰낼 여유가 있을 수 없었다. 원생들의 표적은 그들에게 가까이 있는 조원장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 자신도 원생들이 그렇듯이 그 자연을 원망의 표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은 차츰 자신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둥이는 남 위해 일하는 법이 없노라고 충고해준 것은 아마도그 황희백 노인의 진심이 분명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둥이들의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생각일랑은 앞으로 절대 지니지 않겠노라고 한 조원장 자신의 장담은 아마도 모두 사실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조원장은 생각이 분명했다. 그는 이제 황장로 말마따나 자기 아닌 누구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오직 스스로의 복수심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자연의 횡포를 견뎌 이겨내고 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은 집념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 P252
그러는 가운데도 투석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 가라앉은 둑을 다시 솟아오르게 하는 데는 또 한번 3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도 돌둑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며칠 동안뿐이었다. 둑은 다시 가라앉아버렸다. 가라앉으면 솟아올리고, 솟아올려놓으면 다시 가라앉는 싸움이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제1, 제2, 제3 세 개의 방조제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서 교대로 가라앉아 들어갔다. 제1 방조제에서 10미터가 무너진 것을 쌓아 이어놓으면 제2방조제에서 20미터가 물러나앉았고, 그것을 어렵사리 이어 발라놓으면 이번에는 제3방조제 쪽에서 다시 30미터가 가라앉아 들어갔다. 원생들도 이젠 원장과 마찬가지로 그 싸움 자체에 대한 집념이 쌓여갔다. 원생들도 이제 땅에 대한 소망 같은 건 둘째 문제였다. 틈만나면 물속으로 모습을 숨겨 들어가려고 하는 그 돌둑과의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지냈다. 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싸움을 이기고 말겠다는 집념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또 던지게 했다. 돌둑은 벌써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기 위한 무의지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무서운 복수심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에 끈질기게 거역해오는 두려운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런 싸움이 무한정 계속되다 보면 지쳐나는 쪽은 역시 인간들 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심신이 지치다 보면 무엇엔가 터무니없는 곳에까지 의지의 손길을 뻗치게 마련이었다. - P262
문둥이들도 벌써 그걸 알아차리고 있는데, 주정수 원장혼자서만 유독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게 탈이었더란 말이지. 난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만. 한데 이번에는 조원장이 또 그토록 답답한 사람일 줄을 누가 알았겠나. 묘한 것은 글쎄, 원장으로 오는사람마다 이 한 가지 일에만은 뜻밖에도 늘 미숙한 데가 많은 점이거든. 도대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별해내는 데는 이 문둥이들보다 늘 깨우침이 늦단 말야. 그래서 오늘 밤처럼 또 이렇게 섭섭한 일들이 벌어지고 ••••••. "그만두시오." 흉물스런 산짐승이 미리 사람의 혼을 뽑아놓기 위해 멀리서부터 빙빙 주위를 좁혀들어오고 있는 듯한 노인의 사설에, 조원장은 그만 견딜 수가 없어지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섰다. 참혹스런 일을 저지르려 할 때면 언제나 조용조용 옛날 얘기들을 들추어내는 것이 노인의 버릇이라고 했던가. 조원장은 노인의 그 음침스런 예감이 깃든 목소리가 마치 함정에 걸려든 날짐승을 다루는 거미줄처럼 끈적끈적 온몸을 옭아매 들어오고 있는 기분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냥에 성공한 거미가 먹이의 가슴팍에 독침을 꽂아넣기 전에 포획물의 생명이 충분히 시들기를 기다리듯, 노인은 원장의 영혼과 육신의 힘을 서서히 마비시켜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 P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