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은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과 다르게 ‘홀로코스트도 있었으니 나도 힘을 내야지‘ 혹은 ‘나는 코에 종기가 생겼지만 길 아래쪽 저 사람은 코를 잃었으니까 나는 그 사람은 코를 잃었는데 나는 코를 안 잃었다고 기뻐해야 하고 그 사람은 홀로코스트를 안 겪었으니까 기뻐해야 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세상에 나보다 더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감사드려야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나로서도 아빠 생각이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삶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말이다. 삶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테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 또 이 평범한 세상, 이 작은 인간 세상에 사는 우리는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지도 않고 상대적인 것 대신 영•원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 P134

 엄마와 엄마 유형, 그러니까 우울한사람도 비극 앞에 굴복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불쌍한 사람이 끔찍한 운명을 겪도록 선택한 신의은총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조차도, 내내 속 편하게지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들 유형에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 즉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이나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과 삶에 대한 선의와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극히 드물게 있었지만,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이거나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이거나 나를 포함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135

나는 어릴 때에도- 어찌면 어렸기 때문에- 빛을 왜곡하는 장막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다가오는 상처와 쌓여기는 고난과 잃어버린 희망과 사라진 신뢰와 아무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정신적 무력감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간의 어두움과 결탁했거나 혹은그 어둠에서 나온 물리적 환경이 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길고 우울한 이야기 속에 파묻혀 있어서 진정빛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어둠속으로 들어오면 어둠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둠에 포섭될 위험이 있고 심지어는 (만약 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히 환하고 각별히 빛나는 사람이라면) 자기 목숨을 잃는 지경에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살아와서 안전한 어둠에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도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만약 우리가 이 빛을, 투명함을, 광휘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걸 즐기게 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익숙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믿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감명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고 해묵은 전통을 버리고 빛에 물들고 빛을 흡수해서 우리 자신이 빛을 내기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빛을 뺏기거나 빛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이 압도하는환경에는 빛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나의 환경에는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 P137

그렇기 때문에 개가 필요한 것이다. 개들은 중요하다. 사람 사이, 부족 사이, 국가 사이, 성별 사이에서 순식간에터져나와 주변 모든 것에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히는혐오와 자기혐오의 감정이 순간 맞부딪쳐 치명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막아주는 균형추, 가림막, 안전장치다. 이런 나쁜 기억, 고통, 역사, 인간성의 쇠락을 막고 피하고밀어내려면 개가 짖는 소리, 그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울음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 군인들이 지나갈 때까지 십오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군인들과 맞닥뜨릴 일이 없고 무기력함과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 정상이고 평범하고 좋은 사람인 내가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하는 상황도 일어날 일이 없다. 만약에 전장이 되어버린 거리에 이미 나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개 짖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파악해 군인들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만약 이쪽으로 오고 있다면 얼른 샛길로 들어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피하면 된다. 그런데 군인들이 개를 죽여버렸다. 중재자를 제거해버렸다. 그래서 새로 개가 태어나 우리 지역에 충성하도록 기르고 가르치기 전까지는 과거의 직접적이고 밀착된 증오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밤새 개가 학살을 당하고 난 다음 날 아침, 엄청난 사체들을 마주했을 때에도 직접적인 감정이 솟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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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 관습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인정한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고 선택은책임을 뜻하는데 우리가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본 탓에 추궁을 당하고무너지게 되면 어쩌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 그게 좋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좋았고 마음에 들어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에서 위안을 얻고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면, 그것을 빼앗긴다면, 다시는 되찾을수 없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나? 애초에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그래서 우리 하늘의 색은 파란색이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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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패션과 건축에서 유사한 형태의 디자인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옷을 디자인하기도 하고, 실제로 건축가들이 직접 패션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구두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심지어 ‘유나이티드 누드‘라는 브랜드는 브랜드 콘셉트 자체를 건축 분야와 협업하는 것으로 잡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분야와 접목하여 하이브리드를 만들어 내는 시대적패러다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다. 지금은 분야가 달라도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유사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끼리의 디자인도 점점 닮아가고 있다. 지금의 모든 디자인 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윈도우 프로그램과 어도비 Adobe가 만든 각종 그래픽 소프트웨어, 그리고업종별로 사용하는 몇 가지 3D 소프트웨어들 위에 세워진 세상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마야‘를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 장면을 만들 때도 사용하고 있으며, 건축 분야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래빗Revit‘으로 블록버스터영화 배경 속 건축물을 만든다. 반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동대문 ‘DDP‘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똑같이 ‘라이노‘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쓰면 사용하는 명령어가 똑같다. 그렇게되면 비슷한 형태의 결과물이 나온다. 곡면을 만드는 방식도 소프트웨어에 따라 다른데,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비슷한 모양의 곡면이만들어진다. 그런 이유에서 반지와 건축물의 모양이 비슷해지고 있다. - P351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패션, 건축, 산업 디자인 등 각종 디자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 왔다. 패션은 옷감을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했으며, 건축에서는 돌을 쌓고, 나무를 깎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각 분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에 근거해서 서로 전혀 다른, 다양한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컴퓨터에서 디자인하고, 스크린상에서컴퓨터로 만든 3차원 그림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그 형태를 CADCAM(Computer Aided Design,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비슷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매스 미디어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서로 점점 더 베껴 가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분야의 ‘다양성‘이 사라져 가는 추세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기술로 인한 획일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사람의 신체에 집중하기도 하고 일부는 재료에 집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몸과 재료는 현실 세계에서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356

2020년 현대자동차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발표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쌍엽기가 날아다니는 도시를 꿈꾼 사람의 그림자를 엿보았다. 드론 교통수단은 딱 그 정도 수준의 미래상이다. 드론은 축소판 헬리콥터다. 프로펠러가 두 개면 헬기고, 여러 개가 달리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다. 수 톤 무게의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것은 헬기가 나는 것과 똑같다. 그런 비행체가 열 대만 날아다녀도 시끄러워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드론 택배 역시 소음 민원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노이즈캔슬링 기술로 소음을 없앴다고 치자. 그래도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때문에라도 안 된다. 도시에서 프로펠러로 운송을 하겠다는 상상은 이쯤에서 접는 것이 낫다. 새롭지도 않다. 프로펠러로 이동하겠다는 것은 르네상스 시절 다빈치부터 시작된 수백 년 된 아이디어다. 반면 도•요타는 비슷한 시기에 우븐시티Woven City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도시의 여러 아이디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지하에 만들어진 운송 전용 도로망이다. 도시의 지하 1층에 자율 주행 로봇들만 다니는 도로망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각 세대의 거실로 직접 물건을배달한다. 현재 자율 주행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운전하는자동차와 부딪치는 사고다. 이런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반응때문에 발생한다. 자율 주행 자동차만 따로 다닌다면 교통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자율 주행 운송 로봇용 지하 도로망이 해결책이 될 수있다. 운송 로봇만 다니면 천장고도 사람 키보다 낮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이 피자를 살 때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서 피자 한 판을 사 와야 한다. 몇 그램짜리 피자를 사오기 위해 자동차 1톤과 사람 몸무게까지 운반되어야 한다. 배달앱으로 시키면 오토바이와 한 사람의 무게가 이동한다. 작고 가벼운 지하 운송 로봇으로 피자를 배달하면 배달원 몸무게와오토바이 무게 등 무게의 많은 부분을 줄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초기에 지하 운송 도로망을 만드는비용은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 P376

전염병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모이려는 곳은 종교 공간일 것이다. 모여야 권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의 최대 발병지가 신천지 집회 장소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정상적인 종교 단체라면 전염병 기간 중 실내 공간에서 모이는 것은 자제했겠지만, 후발주자 신천지는 해산하기힘들었을 것이다.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종교 단체 최고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세 때 흑사병으로 천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교회가 힘을 잃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 가장 영향을 받을 분야는 유통상업 분야와 더불어 종교 분야일 것이다. 코로나19를 통해서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공간의 재구성을 만든다. 공간 구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 내 권력의 재배치를 만든다. 코로나19는 진정되겠지만, 그 이후 우리는 공간과 권력의 재배치가 시작되는 변화의 시작을 볼 것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 일부에 집중됐던 언론의 권력이 분산되면서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부는 맞는 말이었지만 대형 언론사의 권력이 분산되자 가짜 뉴스가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기존 권력의 해체와 분산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든다. 공간을 통한 권력의 재배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 P388

인간은 항상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인간성을 찾아 왔다. 이집트시대의 노예, 중세 시대의 농노, 근대 산업의 노동자,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항상 나름의 가치와 존엄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큰 방향성에서 인간의 존엄은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더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서 우리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렀고 수차례의 피의 혁명과 노예와 식민지 시대를 겪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지금의 인간다움을 만들 수 있었다. 다음 시대의 인간다움은 이러한힘든 과정 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디지털과 융합될 시대는 기술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개인이사라지고 획일화될 가능성은 더 높다. ‘과연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403

짧은 글을 통해 건축가의 관점으로 역사 속 새로운 생각들은 어떻게만들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생각은 위기와 다름에서 시작했다. 위기와 다름은 보통 갈등과 충돌을 야기한다. 그런데 갈등과 충돌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생각은 갈등과 충돌을 화합시키려는 마음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아인슈타인 이전에 물리학계에는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 사이에 갈등과 모순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물리학에 내재된 모순과 갈등을 찾아내서가 아니다. 그 갈등을 봉합할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서다. 아인슈타인은 역학과 전자기학의 모순을 화합시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합치면서 이전에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이다. 그리고그런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창조적 영감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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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김근태는 3월 3일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2000년 전당대회(당 최고위원 경선) 때 권노갑 전 최고위원으로부터2천만 원을 받았고, 모두 2억 4천만 원을 선관위 신고에서 누락했다"는 내용의 그야말로 핵폭탄급 양심선언을 했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의 초입에서 폭로된 양심선언은 당내는 물론 정국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김근태는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이 소요되고 있다. 이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소신도 아울러 밝혔다.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김근태는 일부 후보 진영의 인력 동원과자금 살포설을 우려하여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충정에서 ‘양심선언‘을 택한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고 김대중 정부의 실세인 권노갑이 2000년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김근태를 비롯해일부 후보들에게 거액을 지원한 것이 폭로된 것이다. 정치자금 수수는여야를 가리지 않고 오랜 당내 관행이기도 하고, 특히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성행했다.
그러나 김근태의 양심선언은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비화되었다. 수구보수신문은 연일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김근태와 권노갑의 정치자금에 공세의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은 호재를 만난 듯이 날선 공격을 퍼부었다.
김근태는 사면초가의 신세로 몰렸다.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깨끗한정치풍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단행한 양심선언이 정략의 빌미가된 것이다. 진행 중인 민주당 후보 지역 경선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자기만 깨끗한 척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에서 최하위권의 지지율에 맴돌자 자신의 ‘클린 이미지‘를 이용, 지지도를 끌어올려보려는 돌출 행동이라는 악평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고백이 권고문의 정치자금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개탄하며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자신의 발언은 순수한 양심선언이었지, 그 어떤 정치적 노림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정치자금을 투명화하자는내 양심선언을 정쟁화하지 말라"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정치권 관행에 따라 선배로서 후배에게 격려금을 준 것이며 기본적으로 선의로 해석한다"면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엄호했다. - P335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3월 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대장정에 올랐다. 경선 직전의 대세는 이인제 후보가 선두주자였다. 당내 최대 계보인 동교동계주류가 그를 밀었다. 15대 대선에서 이인제의 출마로 여권이 분열되고, 이회창이 열세에 놓이면서 김대중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동정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제주에서부터 이변이 터졌다. 한화갑이 이인제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무현이 3위였다. 이어진 3월 10일 울산 경선에서 노무현이 1위로 치고 오르고 이인제는 3위에 머물렀다. 김근태는 세곳의 경선 투표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민심을 헤아렸다.
3월 12일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달라"는 성명서와 함께 후보를 사퇴했다. 사퇴에 앞서 노무현을 만나고,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노무현이 당선되어 민주정권을 이어받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된 데는 김근태 지지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후보를 사퇴했는데도 후폭풍이 거세게 나타났다. 정치자금 수수의법적 책임 문제가 따른 것이다. 김근태는 자신의 ‘고백‘을 정치자금 투명화의 계기로 만들고자 했지만, 현실은 사법처리 쪽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김근태를 기소했다. - P338

그런가 하면 정부는 2003년 3월 21일 국무회의를 열어 6백 명 규모의 국군건설공병지원단과 1백 명 안쪽의 의무지원단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내용의 국군부대 이라크 전쟁 파견 동의안을 의결해 국회에 보냈다. 집요한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을 물리치고, 대안으로 건설공지원단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진보·보수단체 간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관계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사건건 노무현의 발목을 잡아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지지하고, 집권당의 상당수 의원들과 진보언론이 반대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김근태는 대북특검과 이라크 파병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여러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이런 뜻을 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치적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내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꼬여갔다. 과거 집권당은 대통령이 총재가 되어 재정, 인사권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으나, 노무현은 대선공약에서 당정분리를 내걸고, 집권해서는 이를 실행하면서 당은 백가쟁명, 중구난방의 상태가 되었다.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생긴 암금에다 특검,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당은 말 그대로 한 지붕 두 가족의 양상이었다. - P348

타고르의 시,[혼자서 걸어가라]를 김근태 선생의 영전에 헌사한다.

혼자서 걸어가라

당신이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거든 혼자서 걸어가라.
그들이 면벽한 채 움츠리고 떨고 있다면
오, 고독한 이여,
마음을 열고 혼자 외쳐보라.

황야를 건널 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오, 고독한 이여,
가시밭길을 내딛고,
붉은 피를 흩뿌리며, 혼자서 걸어가라.

폭풍이 몰아치는 밤 그들이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오, 고독한 이여,
고통의 번갯불로, 당신 가슴에 불을 붙여라.
그리고 홀로 타게 내버려두라.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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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같은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날이었다. 밀크맨은 국가암살단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총을 맞은 일이 나에게는 전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일인 양 법석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와 안면은 있지만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닌‘ 사람들이 나를 두고 쑥덕거렸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니 아마도 우리 첫째 형부가 만들어낸, 내가 이 밀크맨이라는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쫙 퍼져 있었고 나는 열여덟살이고 그는 마흔한살이었기 때문이다. - P9

그게 실수였다. 욱한 것, 욱한 모습을 보인 것, 창밖으로 길거리에다가 소리를 질러서 나 스스로 헛소문에 발을 담근 것이 실수였다. 보통은 잘 자제한다. 그런데 화가 났다. 너무화가 났다. 언니에게, 언니가 어리고 약한 아내가 되어 남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에, 형부가 나를 자기와 똑같은 사람 취급하는 것에 화가 났다. 속에서 고집이 솟았고 ‘내 일에 신경 꺼‘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럴때면 나는 좀 괴팍해져서 경험적으로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누워서 침을 뱉는다.  - P15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 어쩌면-남자친구가 배신자라는 것. 그때부터 어쩌면-남자친구의 친구들이 편을 들기 시작했다. "국기가 그려진 부품 여기 없잖아요." 그들이 말했다. "과급기에는 국기가 없다고요." 사실그 국기가 ‘물 이쪽‘에 있는 ‘길 이쪽‘에 등장할 가능성이극도로 희박한데도 친구들은 이웃의 말이 말도 안된다고콧방귀를 뀌는 대신 열을 내며 반박했는데, 그때가 피해망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칼날 위에 선 시대, 원시적인 시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였다. 여기에서는 누군가와 기분 좋게 잡담을 나누고 나서 마음 편하게 즐거운대화 나눴다 생각하면서 돌아가다가도 머릿속에서 대화를 다시 돌려보다보면 ‘이것‘이나 ‘저것‘을 말한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나 ‘저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평화로운 시기에조차 사람들은 금세 손가락질을 하고 사람을 재단하고 말에 살을 붙이곤 하니 이 혼란의 시기에는 지적질하지 않는 손가락이나더해지지 않은 말이 어떤 건지 아예 알 수가 없고, 이때 재단을 당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등 뒤에서 내 이야기를해서 상처 받는 수준이 아니라 복면이나 핼러윈 가면을 덮어쓰고 총을 든 사람들이 한밤중에 우리집 문 앞에 나타나는 결과를 맞게 된다는 뜻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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