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은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과 다르게 ‘홀로코스트도 있었으니 나도 힘을 내야지‘ 혹은 ‘나는 코에 종기가 생겼지만 길 아래쪽 저 사람은 코를 잃었으니까 나는 그 사람은 코를 잃었는데 나는 코를 안 잃었다고 기뻐해야 하고 그 사람은 홀로코스트를 안 겪었으니까 기뻐해야 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세상에 나보다 더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감사드려야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나로서도 아빠 생각이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삶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말이다. 삶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테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 또 이 평범한 세상, 이 작은 인간 세상에 사는 우리는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지도 않고 상대적인 것 대신 영•원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 P134
엄마와 엄마 유형, 그러니까 우울한사람도 비극 앞에 굴복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불쌍한 사람이 끔찍한 운명을 겪도록 선택한 신의은총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조차도, 내내 속 편하게지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들 유형에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 즉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이나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과 삶에 대한 선의와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극히 드물게 있었지만,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이거나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이거나 나를 포함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135
나는 어릴 때에도- 어찌면 어렸기 때문에- 빛을 왜곡하는 장막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다가오는 상처와 쌓여기는 고난과 잃어버린 희망과 사라진 신뢰와 아무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정신적 무력감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간의 어두움과 결탁했거나 혹은그 어둠에서 나온 물리적 환경이 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길고 우울한 이야기 속에 파묻혀 있어서 진정빛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어둠속으로 들어오면 어둠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둠에 포섭될 위험이 있고 심지어는 (만약 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히 환하고 각별히 빛나는 사람이라면) 자기 목숨을 잃는 지경에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살아와서 안전한 어둠에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도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만약 우리가 이 빛을, 투명함을, 광휘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걸 즐기게 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익숙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믿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감명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고 해묵은 전통을 버리고 빛에 물들고 빛을 흡수해서 우리 자신이 빛을 내기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빛을 뺏기거나 빛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이 압도하는환경에는 빛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나의 환경에는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 P137
그렇기 때문에 개가 필요한 것이다. 개들은 중요하다. 사람 사이, 부족 사이, 국가 사이, 성별 사이에서 순식간에터져나와 주변 모든 것에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히는혐오와 자기혐오의 감정이 순간 맞부딪쳐 치명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막아주는 균형추, 가림막, 안전장치다. 이런 나쁜 기억, 고통, 역사, 인간성의 쇠락을 막고 피하고밀어내려면 개가 짖는 소리, 그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울음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 군인들이 지나갈 때까지 십오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군인들과 맞닥뜨릴 일이 없고 무기력함과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 정상이고 평범하고 좋은 사람인 내가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하는 상황도 일어날 일이 없다. 만약에 전장이 되어버린 거리에 이미 나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개 짖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파악해 군인들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만약 이쪽으로 오고 있다면 얼른 샛길로 들어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피하면 된다. 그런데 군인들이 개를 죽여버렸다. 중재자를 제거해버렸다. 그래서 새로 개가 태어나 우리 지역에 충성하도록 기르고 가르치기 전까지는 과거의 직접적이고 밀착된 증오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밤새 개가 학살을 당하고 난 다음 날 아침, 엄청난 사체들을 마주했을 때에도 직접적인 감정이 솟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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