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직소퍼즐‘이나 플러그 음모론‘을 생각한다면 물론, 그럴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 ‘매끄러운 개선의 기울기‘를 떠올려야 한다.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것이 어떻게 진화했을까 하는 수수께끼에 직면해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과거에도 늘 요즘처럼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였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도로 진화해 완전히 다듬어진 효소 분자는 반응을 수조 배 빠르게 촉매한다. 정확하게 알맞은 형태로 아름답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자연선택의 선호를 받기 위해서 꼭 수조 배의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 백만 배만 해도 좋다! 천 배도 좋다. 열 배나 두 배라도 자연선택의 간택을 받기엔 충분하다. 효소의 성능은매끄러운 기울기를 따라 개선된다. 구멍이 전혀 없는 데서 시작해, 조잡한 모양의 구멍들을 거쳐, 결국 적절한 형태와 화학적 특징을갖춘 소켓이 되기까지, 꾸준히 나아간다. ‘기울기는 각 단계가 전단계에 비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눈에 띄는 개선이 이루어졌다는뜻이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최소 수준보다 더 작은 개선이라 우리 눈에는 안 띄어도, 자연선택의 눈에는 충분히 될 수 있다.
- P326

그러니. 배아 발생의 전 과정이 이처럼 정교하고 연쇄적인 사건들을 거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유전자들이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하고, 그것이 단백질의 삼차구조를결정하고, 그것이 소켓 같은 활성 부위의 형태를 결정하고, 그것이 세포의 화학반응을 결정하고, 그것이 배아 발생 과정에서 세포가 찌르레기 같은 행동을 하도록 결정한다. 그렇기에 부잡한 연쇄적사건들의 시작점에서 유전자에 차이가 발생하면 결국 배아 발생 방식에도 차이가 빚어지고, 따라서 성체의 형태와 행동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 성체가 생존과 번식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느냐에 따라서 그 차이를 만들었던 유전자가 유전자풀에서 생존할지 실패할지가결정된다.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 P327

 세포들은 유전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화학적 속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아에서 연속적으로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 그 각각의 역사가 누적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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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레기들의 떼짓기를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은 이렇다. 새 한 마리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는 데 거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자. 그 로봇 찌르레기에게 세세한 규칙들을 부여하자. 나는 방법, 서로의거리와 상대 위치에 기반해 이웃 찌르레기들에게 반응하는 방법을설정하자. 이웃들의 행동에 얼마나 무게를 둘지, 방향을 바꿀 때 자신의 뜻에 얼마나 무게를 둘지에 관한 규칙들도 심어주자. 실제 새의 행동을 세심하게 측정함으로써 모형 규칙들의 정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규칙들을 무작위로 변이시키는 경향성도 사이버 새에게 부여하자.
찌르레기 한 마리의 행동을 모두 규정한 복잡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면, 이제 이 장에서 강조하는 결정적인 단계로 나아갈 차례다.
무리 전체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려고 애쓰지 마라. 예전 세대의 프로그래머들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대신 방금 프로그래밍한 한 마리의 컴퓨터 찌르레기를 복제하자. 로봇 새를 천 마리쯤 복사하자. 모두 같게 만들 수도 있고, 저마다 제 규칙에서 약간의 변이를 일으키게끔 차이를 줄 수도 있다. 천 마리 모형 찌르레기를 컴퓨터에 풀어 놓자. 그들이 모두 같은 규칙들을 준수하되,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도록 내버려두자.
- P297

여기에서 핵심은 안무가도, 지도자도 없다는 점이다. 질서나 조직이나 구조 등은 전역적인 규칙들에 의해 생겨난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어 국지적으로 지켜지는 규칙들의 부산물로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발생의 방식이다. 발생은 국지적 규칙들로만 이루어지는과정이다. 다양한 차원에 규칙들이 적용되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세포 차원이다. 안무가는 없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없다. 중앙집중식 계획은 없다. 건축가도 없다. 발생이나 제작 분야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래밍 원리를 가리켜 자기조립 (self-assembly)이라고 한다.
- P298

사람, 독수리, 두더지, 돌고래, 치타, 표범개구리, 제비…… 이들의 몸은 하나같이 아름답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발달을 지시한유전자들이 청사진이나 설계도나 계획안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는사실을 우리는 좀처럼 믿기 어렵다. 하지만 아니다. 컴퓨터 찌르레기들처럼 그것도 개별 세포들이 국지적인 규칙들만을 따른 결과다. 아름답게 설계된 몸은 개별 세포들이 국지적으로 준수한 규칙들의 결과로서 창발한 것이지, 뭔가 전역적인 계획을 참조해 만들어진게 아니다.
발달하는 배아의 세포들은 거대한 무리 속 찌르레기들처럼 선회하며 춤을 춘다. 물론 중요한 차이도 있다. 찌르레기들과는 달리 세포들은 면이나 덩어리 형태로 서로 물리적으로 붙어 있다. 세포들의 ‘떼‘는 ‘조직‘이다. 세포들이 작은 찌르레기들마냥 선회하며 춤을추면 삼차원 형상이 구축된다. 세포들의 움직임에 따라 조직이 함입하기 때문에, 혹은 국지적인 세포의 성장과 사멸 패턴에 따라 조직이 부풀거나 쭈그러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대한 비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종이접기다. 탁월한 발생학자 루이스 월퍼트가《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The Triumph of the Embryo)》에서 제시했던 비유다.  - P299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것은 바이러스들의 유전물질이 담긴 단백질 용기고, (달 착륙선) T4의 경우에는 숙주를 감염시키는 도구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단백질 용기가 조립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실제로 자기조립되기 때문이다. 사전에 만들어진 단백질 분자 여러 개가 조립되어 하나의 바이러스를 이룬다. 단백질 분자 각각도 자기조립되는데, 아미노산 서열이 화학법칙의 힘에 따라 저만의 독특한 ‘삼차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도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 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바이러스의 ‘사차구조‘를 이룬다. 분자들은 국지적 규칙을 따를 뿐, 전역적 계획이나 청사진은 없다.
- P303

종이접기가 정말로 생물학을 닮은 듯한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정크선도 발생 과정서 여러 유생 단계를 거치는데, 그 중간 단계들도 나름대로 보기 좋은 형태들이라는 점이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가는 길의 중간 단계고, 애벌레와 나비는 전혀 닮지 않았으며, 애벌레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잘 작동하는 생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단순한 정사각형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해 그것을 접기만 하면(절대 자르지 않고, 절대 풀로 붙이지 않고, 절대 다른 종이를 끼워넣지 않는다), 그과정에서 세 가지 확연한 유생 단계가 등장한다. 쌍동선, 덮개 두 개달린 상자, 액자에 든 사진. 그런 다음 ‘성체‘인 정크선으로 절정을이룬다.
종이접기 비유를 더 옹호해보자면, 정크선 접는 법을 처음 배운사람은 정크선 자체만이 아니라 세 유생 단계(쌍동선, 찬장, 액자)에 대해서도 깜짝 놀란다. 내 손으로 접고는 있지만, 정크선이나 유생 단계들에 대한 청사진을 따라 작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최종생산물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접기 규칙들을 따랐을 뿐인데, 결국에는 번데기에서 나비가 빠져나오듯 정크선이 등장한다. 이처럼 종이접기 비유는 전역적 계획과 대비되는 국지적 규칙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종이접기 비유를 지지하는 이유가 또 있다. 접기, 함입하기, 뒤집기는 배아의 조직들이 몸을 만들 때 즐겨 사용하는 기교라는 점이다. 특히 초기 배아 단계들에 이 비유가 잘 들어맞는다. - P305

하지만 종이를 접는 손이 없는데, 대체 어떤 기계적 과정에 의해서 이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단순한 팽창 그 자체도 부분적으로 추진력이 된다. 조직 전역에서 세포들이 증식하면 조직의 면적이 커지고, 조직은 달리 아무데도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접히거나 함입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좀 더 통제된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말이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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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켈은 깡마른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줄어든 것처럼, 그도 줄어들어 있었다. 한때 그토록 가까웠던 누군가가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를 껴안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 냉정하고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과 대조적으로 이상하게 부드러운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전화기너머로가 아니라 직접 듣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예전처럼 말하는 동안 강도가 변하는 광채를 내뿜는 그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래도 라켈은 그와의 만남이 끝나서, 그 만남을 뒤로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남자가 그녀와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의 지저분한 현실이 그들의 삶에 개입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기뻤다.
지금이 더 좋았다. 훨씬 더 좋았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그가 올 것이다. 그는 해리와 달리 제시간에 오는 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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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늘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정보가 꽤 풍성해졌다. 분자유전학적 증거를 볼 때, 고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하마고, 다음은 돼지, 다음은 반추동물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역시 분자적 증거를 볼 때 하마는 다른 우제류(돼지나 반추동물들) 보다는 고래와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근연관계와 외형적 유사성이 때로 합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또 한 사례다. 어류 중에도 다른 어류보다 인간과 더 가까운 녀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인간의 계통은 물을 떠나 땅에 오름으로써 진화의 급물살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간 반면에, 우리가 뒤에 남겨둔 친척인 폐어와 실러캔스는 계속 물에만 머물러 있음으로써 먼 선조를 닮은 모습을 지켜왔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같은 현상이되, 상황이 역전되었다. 하마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아직 땅에 발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먼 친척인 육상 반추동물들과 닮은 모습을 유지했다. 반면에 고래는 바다로 떠남으로써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분자생물학자들 말고는 생물학자들조차 고래와 하마의 근연성을 놓쳤던 것이다.  - P233

머나먼 선조어류들이 원래 그 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처럼, 고래의 선조들이 바다로 돌아간 것도 대역사였을 것이다. 공중으로 이륙하거나 풍선을띄우는 것과 좀 비슷하지 않았을까? 중력의 무거운 짐을 벗고 육지에 내렸던 닻을 잘라 둥둥 뜨게 되었으니 말이다.
- P234

1.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는 원래 땅에 살았던 동물들이 남긴 후대의 생존자인지도 모른다. 그 조상 동물들이 이들에 앞서 일부를 바다로 보냈고, 그리하여 오돈토켈리스 등의선조가 되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껍질은 일찍이 땅에서 진화했고, 오돈토켈리스는 물로 간 뒤에 등딱지를 잃고 배딱지만남은 것이다.
2. 중국인 저자들이 제시한 대로, 껍질이 물에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배를 보호하는 배딱지가 먼저 진화하고, 등딱지는 나중에 진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반의 껍질을 지니고 물에서산 오돈토켈리스보다 후대에 땅에서 산 프로가노켈리스와 팔 레오케르시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들은 독자적으로 껍질을 진화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3. 즉,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가 더 일찍 물에서 뭍으로 돌아간 사례라는 가능성이다. 깜짝 놀랄 만큼 흥분되는 생각 아닌가?

거북들이 진화 역사에서 땅으로의 진출 과정을 두 번이나 밟았다는것은 이제 충분한 증거로 거의 확인된 사실이다. 처음에 땅에 살았던 거북들이 그들의 어류 선조가 살았던 물 환경으로 돌아가서 바다거북이 되었다. 그 바다거북들이 다시 땅으로 올라와서 새로운 종류의 땅거북들로 재탄생했다. 그것이 땅거북과다. 이것은 사실이다. 혹은 거의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 왔다갔다 하는 과정이두 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대 거북을낳은 과정이 아니라, 훨씬 이전 트라이아스기에 프로가노켈리스와 팔레오케르시스를 낳은 과정이 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P246

루시와 그 친족들을 연구한 결론은 이렇다. 그들의 뇌는 침팬지만한 크기였지만, 그들은 침팬지와 달리 우리처럼 똑바로 서서 뒷다리로 걸었다. 앞에서 언급한 세 시나리오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셈이다. ‘루시들‘은 직립보행하는 침팬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족보행했다는 사실은 메리 리키(Mairy Leakey)가 화산재 화석에서 발견해낸, 사무치게 감동적인 발자국 증거를 통해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그 발자국 화석은 더 남쪽인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되었고, 루시나 AL 444-2보다 좀 더 오래되어 약 360만 년 전의 것이었다. 보통 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나란히 걸어간 자국이라고 해석된다(손을 맞잡고?).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360만 년 전 지구에는 직립보행하는 유인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뇌는 침팬지만 하지만 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두 발로 걷는 존재들이 있었던 것이다.
- P259

문제는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과 ‘최초의호모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사례에서 최초의 호모는 호모 하빌리스다. 그렇다면 최초의 호모 하빌리스 표본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부모는 오스트랄로피테쿠쿠스였다. 자식이 부모와 다른 속에 속한다는 말인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이 잘못된 게 아니라, 모든 생물을 이름표 달린 분류체계에 밀어넣으려고 하는 인간의 고집이 잘못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최초의 호모 하빌리스 표본이라는 생물 따위는 없었다. 어떤 종이든, 어떤 속이든, 어떤 목이든, 어떤 강이든, 어떤 문이든 최초의 표본이라는 것은 없었다. 세상에 살았던 모든 생물은 (당시에 동물학자기 돌아다니면서 분류를 했다면) 제 부모자식과 정확하게 같은 종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에 와서 ‘돌아본다‘는 시점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의 고리를 잃어버렸다는 유익한 사실 덕분에 (그렇다. 이런 역설적인 의미에서는 유익하다), 우리가 이산적인 종 · 속과 · 목 ·강 · 문으로 분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 P268

우리가 후대에 과거를 돌아보기 때문에, 그리고 법적인 용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 이유 때문에, 현대 분류학자들은 화석 하나하나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니 호모니 꼬리표를 매달려고 고집하는것이다. 박물관 안내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 호모하빌리스의 중간쯤‘ 이라고 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역사 부인주의자들은 이런 명명상의 관행을 현실에서 중간 형태들이 없다는 증거로 해석한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투표권이있는 성인(18세 이상) 아니면 투표권이 없는 아이(18세 미만) 둘 중 하나니까, 세상에 청소년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법적으로 투표 연령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근거해 칭소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는 꼴이다.
- P279

좀 더 건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성체와 유아의 머리 모양이 극명하게 다른것을 볼 때, 주둥이 돌출 같은 특징이 사람을 더 닮는 방향으로 (혹은 덜 닮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극히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침팬지의 발생 과정은 사람을 닮은 머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모든 유년기 침팬지에 대해서 실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다양한 중간 형태들을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을 때, 그러면서 줄곧 주둥이 돌출부를 줄여왔을 때, 어쩌면 유년기의 특징들을 성년기까지 존속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을가능성이 충분하다 (2장에서 언급한 유형성숙이다). 진화적 변화의 상당부분은 특정 신체 부위의 상대적 성장 속도를 바꿈으로써 이루어진것이다. 이것을 의시성(서로 다른 시기의) 성장이라고 한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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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경관을 소개하겠다." 하겐 경정이 발표했다. 이쪽은 카트리네 브라트 경관이다."
첫 줄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자발적으로, 그러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인 여자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은 얼굴 양옆으로 맥없이 늘어졌고, 창백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데 이골이 나서 더는 그것이 싫지도, 좋지도 않게 된 매력적인 여자들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푸른색 치마 정장을 입었지만, 스커트 밑으로 보이는 두꺼운 검은색 스타킹과 실용적인 겨울 부츠는 그녀가 자신의 몸매를 이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지워주었다. 그녀는 마치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보려고 일어났다는 듯 모인이들을 눈으로 훑었다. 해리는 그녀가 출근 첫날에 대비해 옷차림이며 이 짧은 등장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했을 거라 짐작했다.
- P32

"일을 많이 하는 게 싫은 게 아냐, 해리, 당신은 일에 ‘집착‘ 했어, 당신이 곧 일이었지. 게다가 당신의 원동력은 사랑이나 책임감 같은 게 아니었어. 개인적인 야망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분노였지. 그리고 복수심, 그건 옳지 않아, 해리. 그런 식은 곤란해. 그 결과가 어땠는지 당신도 알잖아."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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