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레기들의 떼짓기를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은 이렇다. 새 한 마리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는 데 거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자. 그 로봇 찌르레기에게 세세한 규칙들을 부여하자. 나는 방법, 서로의거리와 상대 위치에 기반해 이웃 찌르레기들에게 반응하는 방법을설정하자. 이웃들의 행동에 얼마나 무게를 둘지, 방향을 바꿀 때 자신의 뜻에 얼마나 무게를 둘지에 관한 규칙들도 심어주자. 실제 새의 행동을 세심하게 측정함으로써 모형 규칙들의 정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규칙들을 무작위로 변이시키는 경향성도 사이버 새에게 부여하자.
찌르레기 한 마리의 행동을 모두 규정한 복잡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면, 이제 이 장에서 강조하는 결정적인 단계로 나아갈 차례다.
무리 전체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려고 애쓰지 마라. 예전 세대의 프로그래머들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대신 방금 프로그래밍한 한 마리의 컴퓨터 찌르레기를 복제하자. 로봇 새를 천 마리쯤 복사하자. 모두 같게 만들 수도 있고, 저마다 제 규칙에서 약간의 변이를 일으키게끔 차이를 줄 수도 있다. 천 마리 모형 찌르레기를 컴퓨터에 풀어 놓자. 그들이 모두 같은 규칙들을 준수하되,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도록 내버려두자.
- P297

여기에서 핵심은 안무가도, 지도자도 없다는 점이다. 질서나 조직이나 구조 등은 전역적인 규칙들에 의해 생겨난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어 국지적으로 지켜지는 규칙들의 부산물로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발생의 방식이다. 발생은 국지적 규칙들로만 이루어지는과정이다. 다양한 차원에 규칙들이 적용되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세포 차원이다. 안무가는 없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없다. 중앙집중식 계획은 없다. 건축가도 없다. 발생이나 제작 분야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래밍 원리를 가리켜 자기조립 (self-assembly)이라고 한다.
- P298

사람, 독수리, 두더지, 돌고래, 치타, 표범개구리, 제비…… 이들의 몸은 하나같이 아름답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발달을 지시한유전자들이 청사진이나 설계도나 계획안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는사실을 우리는 좀처럼 믿기 어렵다. 하지만 아니다. 컴퓨터 찌르레기들처럼 그것도 개별 세포들이 국지적인 규칙들만을 따른 결과다. 아름답게 설계된 몸은 개별 세포들이 국지적으로 준수한 규칙들의 결과로서 창발한 것이지, 뭔가 전역적인 계획을 참조해 만들어진게 아니다.
발달하는 배아의 세포들은 거대한 무리 속 찌르레기들처럼 선회하며 춤을 춘다. 물론 중요한 차이도 있다. 찌르레기들과는 달리 세포들은 면이나 덩어리 형태로 서로 물리적으로 붙어 있다. 세포들의 ‘떼‘는 ‘조직‘이다. 세포들이 작은 찌르레기들마냥 선회하며 춤을추면 삼차원 형상이 구축된다. 세포들의 움직임에 따라 조직이 함입하기 때문에, 혹은 국지적인 세포의 성장과 사멸 패턴에 따라 조직이 부풀거나 쭈그러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대한 비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종이접기다. 탁월한 발생학자 루이스 월퍼트가《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The Triumph of the Embryo)》에서 제시했던 비유다.  - P299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것은 바이러스들의 유전물질이 담긴 단백질 용기고, (달 착륙선) T4의 경우에는 숙주를 감염시키는 도구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단백질 용기가 조립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실제로 자기조립되기 때문이다. 사전에 만들어진 단백질 분자 여러 개가 조립되어 하나의 바이러스를 이룬다. 단백질 분자 각각도 자기조립되는데, 아미노산 서열이 화학법칙의 힘에 따라 저만의 독특한 ‘삼차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도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 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바이러스의 ‘사차구조‘를 이룬다. 분자들은 국지적 규칙을 따를 뿐, 전역적 계획이나 청사진은 없다.
- P303

종이접기가 정말로 생물학을 닮은 듯한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정크선도 발생 과정서 여러 유생 단계를 거치는데, 그 중간 단계들도 나름대로 보기 좋은 형태들이라는 점이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가는 길의 중간 단계고, 애벌레와 나비는 전혀 닮지 않았으며, 애벌레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잘 작동하는 생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단순한 정사각형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해 그것을 접기만 하면(절대 자르지 않고, 절대 풀로 붙이지 않고, 절대 다른 종이를 끼워넣지 않는다), 그과정에서 세 가지 확연한 유생 단계가 등장한다. 쌍동선, 덮개 두 개달린 상자, 액자에 든 사진. 그런 다음 ‘성체‘인 정크선으로 절정을이룬다.
종이접기 비유를 더 옹호해보자면, 정크선 접는 법을 처음 배운사람은 정크선 자체만이 아니라 세 유생 단계(쌍동선, 찬장, 액자)에 대해서도 깜짝 놀란다. 내 손으로 접고는 있지만, 정크선이나 유생 단계들에 대한 청사진을 따라 작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최종생산물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접기 규칙들을 따랐을 뿐인데, 결국에는 번데기에서 나비가 빠져나오듯 정크선이 등장한다. 이처럼 종이접기 비유는 전역적 계획과 대비되는 국지적 규칙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종이접기 비유를 지지하는 이유가 또 있다. 접기, 함입하기, 뒤집기는 배아의 조직들이 몸을 만들 때 즐겨 사용하는 기교라는 점이다. 특히 초기 배아 단계들에 이 비유가 잘 들어맞는다. - P305

하지만 종이를 접는 손이 없는데, 대체 어떤 기계적 과정에 의해서 이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단순한 팽창 그 자체도 부분적으로 추진력이 된다. 조직 전역에서 세포들이 증식하면 조직의 면적이 커지고, 조직은 달리 아무데도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접히거나 함입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좀 더 통제된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말이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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