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켈은 깡마른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줄어든 것처럼, 그도 줄어들어 있었다. 한때 그토록 가까웠던 누군가가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를 껴안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 냉정하고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과 대조적으로 이상하게 부드러운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전화기너머로가 아니라 직접 듣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예전처럼 말하는 동안 강도가 변하는 광채를 내뿜는 그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래도 라켈은 그와의 만남이 끝나서, 그 만남을 뒤로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남자가 그녀와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의 지저분한 현실이 그들의 삶에 개입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기뻤다.
지금이 더 좋았다. 훨씬 더 좋았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그가 올 것이다. 그는 해리와 달리 제시간에 오는 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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