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의 가족은 200년의 역사 위에 걸터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문명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1890년대 말에 미국 정부가 동화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토지분할을 실시하면서 몰리 가족의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땅을 160에이커씩 분할해서 진정한 ‘부동산‘으로 만든 뒤, 부족원 한 사람당한 필지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남는 땅은 이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미 많은 부족에게 실시된 적이 있는 이 분할제도는 옛날식 공동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미국 인디언들을 개인 재산 소유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인디언들의 땅을 손에 넣기가 쉬워지는 것 또한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오세이지족은 체로키 영토의 일부였으며,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의 서쪽 경계선 근처의 광대한 초원지대인 체로키 하구가 어떻게되었는지 이미 보았다. 미국 정부는 체로키족에게서 이 땅을 사들인 뒤, 1893년 9월 16일 정오에 4만 2,000필지를 이주민들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주민 한 명은 한 필지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만 명의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저 멀리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 온사람들도 있었다. 누더기를 입은 더러운 사람들이 필사적인 표정으로 지평선을 따라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치 내분이 일어난 군대 같았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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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오세이지족에게 캔자스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주민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원의 집>을 쓴 로라잉걸스 와일더의 가족들도 그런 이주민이었다. "왜 인디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엄마?" 책 속에서 로라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냥 싫어. 손가락 빨지 마라, 로라."
"여긴 인디언의 땅이잖아요." 로라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싫다면서 왜 이 사람들의 땅에 온 거예요?"
어느 날 저녁 로라의 아버지가 정부가 오세이지족을 곧 이주시킬것이라고 딸에게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로 온 거야, 로라. 백인들이 이 일대에 정착할 거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땅을 얻을 거야."
비록 책에서 잉걸스 일가는 병사들의 위협을 받으며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나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무단으로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오세이지족은 무덤이 약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견디다 못해, 캔자스 땅을 에이커당 1.25달러를 받고 이주민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런데도 성급한 이주민들은 오세이지족 여러 명을 죽여 시체를 훼손하고 머리가죽을 벗겼다.
인디언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 P58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맸다. 당시 인디언 영토였던땅, 즉 자기 땅에서 쫓겨난 많은 부족들에게 ‘눈물의 길‘의 종착지가 된 캔자스 남쪽 지역에서 체로키족의 땅을 거의 150만 에이커나 사들이자는 논의가 있었다. 오세이지족이 눈독을 들인 이 땅은 델라웨어주보다 더 크고 아직 비어 있었다. 인디언실 관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백인들은 이 땅을 "형편없는 바위투성이 불모지라서 경작에 전혀 맞지 않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추장인 와티안카는 위원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족이 이 땅에서 행복해질 것이다. 백인은 이 땅에 쇠붙이를 들일 수 없다. 백인은 이 땅에 오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산이 많다. (•••) 백인은 산이 많은 땅을 좋아하지 않으니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부족이 오두막 바닥처럼 땅이 평평한 서쪽으로 가면, 백인들이 우리들의 집으로 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 땅을 내놓아라.‘ (••• 곧 땅은 사라지고 오세이지족은 집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오세이지족은 에이커당 70센트로 그 땅을 사서, 1870년대 초에 대이동을 시작했다. "노인들, 특히 영원히 두고 떠나야 하는 자식들의 무덤 때문에 탄식하는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 당시의 목격담이다.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보호구역으로 이동을 마친 뒤, 여러 곳에 캠프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포허스카에 있었다. 인디언실도 포허스카의 우뚝 솟은언덕 위에 현장 지부가 들어갈 건물을 사암으로 위풍당당하게 지었다." 이 땅의 서쪽에 있는 그레이호스는 새로 지은 오두막 몇 채가모여 있는 곳에 불과했다. 리지와 네카에세이는 1874년에 결혼해서 이곳에 정착했다.
연달아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백인들의 질병"인 천연두까지 겪는 바람에 부족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인구가 약 3,00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7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인디언실 관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한때 이 일대 모든 땅의 주인이었던 영웅적인 부족의 흔적은 이 사람들이 전부다. - P59

1877년에는 사냥할 버펄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당국이이주민들에게 들소를 아예 멸절시키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더욱더 당겨졌다. 한 장교의 말에 따르면, 당국은 "버펄로 한마리가 죽을 때마다 인디언 한 명이 사라진다""고 확신했다.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억제와 봉쇄에서 동화 강요로 바뀌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점점 오세이지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옷을 모두 갖춰 입고 밭을 갈게 만들려고 애썼다. 정부는 캔자스 땅을 판매한 것에 대해 부족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으나, 네카에세이처럼 건강한 남자들이 농사를 시작할 때까지 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족이 농사를 시작한 뒤에도 정부는 돈 대신 옷과 음식을 배급하는 방식으로 지불하겠다고 주장했다. 오세이지족의 한 추장은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먹이를 줘야 하는 개가 아니다." - P61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줄을 지어서 이리저리로 행군하듯 이동했다. 그들은 피아노 글씨 쓰기, 지리, 산수 등을 배웠다.  세상이 낯선 기호들로 정리되었다. 이 학교의 가르침은 몰리를 백인사회에 동화시켜, 당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만들기 위한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오세이지족 소년들이 농사와 목공을 배우는 동안, 몰리는 바느질, 빵 만들기, 세탁 등 ‘살림의 기술‘을 배웠다. "인디언 소녀들을 세심하게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남자가 근면하게 열심히 일해서 식구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주더라도, 아내가 요리를 할 줄 모르고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습관이 없어서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더럽고 불결한 곳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이교도의 의식과 미신에 끈질기게 집착하며 그가르침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바로 여자들이다."
몰리의 학교에 다니던 많은 오세이지족 학생들이 도망치려고 시도했지만, 보안관들이 말을 타고 그들을 쫓아가 밧줄로 묶어서 다시 데려왔다. 몰리는 매년 8개월씩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그레이호스의 집으로 돌아가면, 담요를 걸치고 모카신을 신은 소녀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년들도 허리에 천을 두르는 대신 바지를 입었고, 투구 장식 모양으로 머리를 깎는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 과거의 관습을 지키는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오세이지족의 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아이가 귀를 닫아버렸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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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해 봐. 네게 남성다움이란 무엇이지?」「음...... 그 누구에게 허풍 떨지 않는 것...... 심지어 권력을 쥐고 있더라도 말이야...... 아니야, 그것 이상이야. 허풍 떨지않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남자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야. 그건 명령이나 팁 따위로 그 누구도 깎아 내리지 않는 것이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네옆에 있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또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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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앙스파크Mark Anspach는「다음엔 내가 갚을 차례A Charge de Revanche』‘라는 저서에서 "상대도 같은 것을 한다는 조건"으로 성립하는 상호성(호수성)에 대해 논한다. 서로 돕기는 ‘그를 돕는다면 내가 어려울 때 상대방도 똑같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고 서로 기대하는 선순환의 호수성이다. 하지만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복수의 연쇄, 악순환의 상호성도 존재한다. 앙스파크는 선순환하는 상호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자발적으로 증여 (빌려주기)를 하고 상대방과의 미래 관계를 믿고 여기에 ‘베팅할‘처음에는 리스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선순환을 유지하려면 서로가상대방에게 "빚을 졌다"라는 감정을 계속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앙스파크의 논의는 이러한 선순환의 호수성이 얼마나 쉽게 악순환의 호수성으로 전락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 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P258

이러한 호수성의 어려움을 전제로 홍콩 탄자니아인들의 조합 활동을 살펴보면 그 독특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구리타 가즈아키가 말했듯이, 중국으로 오는 아프리카인 대다수는 ‘정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이동하는 사람, ‘상업적인 여행자‘다. 유동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커뮤니티에 계속 관여하고 균질적으로 공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기성이 높은 시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들 사이에는 단지 부자와 가난뱅이만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은 큰 부자가 무일푼이 될 수 있고 빈털터리도 큰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으로도 높은 유동성이 있다. 이들은 길든 얕든 그레이존에 걸친 모호한 장사를 하기에교도소와의 거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적잖이 켕기는데가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타고난 성격이나 배경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이 타자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의 처세술로 간주된다. 그러한 이들 사이에서 "왜 그 사람이 도움받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의 범위인가", "나만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람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재난이나 어려움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귀고, 깊이 알아가고, 크게 신뢰하고, 확실한 인연을 만든다는 발상과는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공헌도나 궁지에 몰린 원인을 묻지 않고, 조합원 자격이나 타자를 도울 때에 관한 세세한 규칙을 명확히 만들지않고, 그저 타자가 필요로 하는 지원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판단한다. 이 책에서 나는 ‘왜 나만 애쓰고 있는가‘, ‘왜 그 사람은 언제나 도움받는가‘라는 멤버 사이의공헌 불균형, 호수나 신뢰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배경으로 ‘겸사겸사‘의 논리와 ICT를 이용한 교역 시스템의연속성을 제시했다. - P260

타자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담은 듣고 깨끗이 흘려버리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약속을 파기한다. 조합 참여 활동이나 기부금도 사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느라 참여할 수 없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헌하지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유동적으로 돌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독립독행으로 살아가는 타자에게 자신의 요망을 들어 달라, 정체를 알지도못하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포착되고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돈벌이나 호구지책이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타자에게공감이나 공공성을 띤 행동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참모습‘을 ‘미지未知/불가지不可知의 가능성‘
으로 환영하고, 상장 기업의 사장이나 대통령의 비서만이아니라 비합법 underground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겸사겸사‘ 친절을 주고받음으로써 선뜻 연결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 P263

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 P266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 부조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간접 호혜주의).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널 도우면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상호 부조의 구조는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로 바뀌었다."

이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 이는 증여 교환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수렵채집민이 사냥하고 채집한 것들을 같이 나누던 행위, 일방적인 이양, 분배sharing라고 불리며 연구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공유경제시스템은 인류학자들이 수렵채집민 사례를 연구하며 밝혀온 ‘분배‘보다 다소 ‘냉담‘한 것처럼 보인다.
‘분배‘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말하는 ‘증여‘나
‘증여 교환‘과 달리 ‘줄 의무‘, ‘받을 의무‘, ‘답례의 의무‘
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운 좋게 사냥에성공한 사람이 동료에게 당연한 듯 (마치 의무처럼) 고기를 분배하고, 다음에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 사냥에 성공하면 그 사람도 동료에게 당연한 듯 고기를 분배한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이타주의적인 ‘일반적 호수성‘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가 고기를 계속 얻는다.
그런데 인류학자들이 밝혀온 수렵채집민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에도 ‘소유 의식‘이 있었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집단 구성원들의 능력에도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분배를 받는 자가 오히려 노획물의 빈약함을 질책하고 주는 자는 한없이 미안해하는 식의 배려나 포획자와 노획물의 소유자를 분리하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받는 자에게 ‘부담‘이 발생하거나 일방통행적인 분배를 계속하는 자에게 ‘위신‘이 생겨나지 않도록 세세한 실천을 행하면서‘ 불균형한 공헌이 문제가 되지 않게 해온 것이다. - P268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오늘날 점점 세련되고 철저해지고 있다. 인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함정도 있는 것 같다.
보츠먼은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Who Can You Trust?: How Technology Brought UsTogether and Why It Could Drive Us Apart』에서 이러한 평가경제의 문제를 논한다.

기술은 신뢰의 범위를 넓혀 낯선 사람과의 연결과 협력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고폐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평판과 평가 시스템은 책임감을 강화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가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평판이 손상되어 디지털 연옥에 영원히 갇히는 사람도 생겨난다."

인터넷을 매개로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누군가를 평가하고 선별해가는 행위가 당연한 듯이 행해진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폐쇄된 환경 속에 있기에 자신의 의견과 편견이 증폭되는 ‘반향실효과echo-chamber effect‘, 가짜 뉴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의 만연⋯⋯ 테크놀로지는 그러한 부정적인 현상도 일으키는동시에 새로운 신용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한다. - P274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인공지능이든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P285

청킹맨션의 보스는 불완전한 인간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나 사회에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게 타자와 사회에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배신당하는 상황을 포함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이들의 시스템은 세련되지 않고 적당하며 허술하기에 오히려 멋지다.
카라마가 "그래서 내가 홍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르쳐준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하지만 나는 카라마의 뛰어난 제자는 아닐지도 몰라요. 카라마가 가르쳐준 것이나 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게다가 내가 심술궂게 카라마를 극악한 보스처럼 묘사하면 어떡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카라마는 여유가 가득한 얼굴을 하며 ‘괜찮아. 사야카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라고단언했다. 그건 사실이다. 단,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카라마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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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1
표적이 된 여자

1
실종

4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영토의 광대한 초원과 검은 산들을 뒤덮었다.‘ 제비꽃, 클레이토니아, 그리고 파란색의 작은 꽃들. 오세이지족 출신 작가인 존 조지프 매슈스는 꽃잎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펼쳐진 광경이 마치 "신들이 색종이 조각을 흩뿌리고 떠나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불안할 정도로 커다란 달 아래에서 코요테들이 울부짖는 5월이 되면 자주달개비, 노랑데이지처럼 키가 좀 더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 위로 슬금슬금 번지면서 그들에게서 빛과 물을 훔쳐가기 시작한다. 작은 꽃들의 목이 부러지고 꽃잎들은 팔랑팔랑 날아간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땅속에 묻힌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의 시기라고 부른다. - P9

몰리와 자매들의 이름도 부모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오세이지 명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즉, 부족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그들이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870년대 초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주의 고향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북동부의 바위투성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다들 아무 가치도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십 년 뒤 이땅이 미국 최대의 석유 매장지 몇 군데를 깔고 앉아 있음이 밝혀졌다. 탐사에 나선 사람들은 이 석유를 손에 넣기 위해 오세이지에게 임대료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족 명부에 이름이 실려 있는 사람들에게 20세기 초부터 1년에 네 번씩 수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몇 달러짜리 수표였지만, 세월이 흘러 석유채굴량이 늘어나면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도 수백 달러, 수천 달러로 늘어났다. 초원을 흐르는 개울들이 하나로 모여 흙탕물이 흐르는 널찍한 시머론강이 되듯이, 거의 매년 늘어난 지급액 덕분에 부족원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수억 달러에 이르렀다(1923년만 해도 부족원들에게 지급된 돈은 3,000만 달러가 넘었다. 오늘날의 가치로 4억달러가 넘는 액수다. 오세이지족은 재산을 인구수로 나눴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은 이렇게 외쳤다. "보라! 인디언들이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은행가들도 부러워서 얼굴이 노랗게 질릴 만한 소득을 꾸준히올리고 있다." - P10

치안판사의 주재로 검시를 위한 배심원단이 협곡에 황급히 소집되었다.‘ 이런 방식의 검시는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수사와 질서유지에 큰 몫을 담당하던 시절의 잔재였다. 미국이 독립한 뒤 오랫동안 국민들은 경찰국 창설에 반대했다. 경찰이 시민을 억압하는 세력이 될까 우려한 탓이었다. 대신 시민들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직접 나서서 용의자를 추적했다. 나중에 대법관이 된 벤저민 N. 카도조는 시민들이 "힘없이 느린 발걸음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용감했으며, 자신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도구와 재주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산업도시들이 성장하고 도시 폭동이 빈발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이른바 위험한 계층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게 된 19세기 중반에야 미국에 경찰국이 생겨났다.  - P27

몰리의 어머니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와콘타에게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원하며 오세이지 기도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역사가이자 저술가이며 오세이지족의 피가 섞여 있는 존 조지프 매슈스(1894~1979)는 이 부족의 전통들을 많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는 전형적인 기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어린 소년이던나의 영혼이 두려움과 달콤씁쓸함, 이국적인 갈망으로 가득해졌다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기쁨과 두려움의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누워서 기도가 더 이어지기를 열렬히 바랐으나, 또한 더 이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나중에 조리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뒤에 보니, 이런 기도노래, 찬가, 영혼을 뒤흔드는 탄원은 언제나 좌절의 흐느낌 속에서 마무리되기도 전에 끝나는 것 같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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