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오세이지족에게 캔자스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주민들이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다.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원의 집>을 쓴 로라잉걸스 와일더의 가족들도 그런 이주민이었다. "왜 인디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엄마?" 책 속에서 로라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냥 싫어. 손가락 빨지 마라, 로라." "여긴 인디언의 땅이잖아요." 로라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싫다면서 왜 이 사람들의 땅에 온 거예요?" 어느 날 저녁 로라의 아버지가 정부가 오세이지족을 곧 이주시킬것이라고 딸에게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로 온 거야, 로라. 백인들이 이 일대에 정착할 거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땅을 얻을 거야." 비록 책에서 잉걸스 일가는 병사들의 위협을 받으며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나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무단으로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1870년에 오세이지족은 무덤이 약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견디다 못해, 캔자스 땅을 에이커당 1.25달러를 받고 이주민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런데도 성급한 이주민들은 오세이지족 여러 명을 죽여 시체를 훼손하고 머리가죽을 벗겼다. 인디언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 P58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맸다. 당시 인디언 영토였던땅, 즉 자기 땅에서 쫓겨난 많은 부족들에게 ‘눈물의 길‘의 종착지가 된 캔자스 남쪽 지역에서 체로키족의 땅을 거의 150만 에이커나 사들이자는 논의가 있었다. 오세이지족이 눈독을 들인 이 땅은 델라웨어주보다 더 크고 아직 비어 있었다. 인디언실 관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백인들은 이 땅을 "형편없는 바위투성이 불모지라서 경작에 전혀 맞지 않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세이지족 추장인 와티안카는 위원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족이 이 땅에서 행복해질 것이다. 백인은 이 땅에 쇠붙이를 들일 수 없다. 백인은 이 땅에 오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산이 많다. (•••) 백인은 산이 많은 땅을 좋아하지 않으니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부족이 오두막 바닥처럼 땅이 평평한 서쪽으로 가면, 백인들이 우리들의 집으로 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 땅을 내놓아라.‘ (••• 곧 땅은 사라지고 오세이지족은 집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오세이지족은 에이커당 70센트로 그 땅을 사서, 1870년대 초에 대이동을 시작했다. "노인들, 특히 영원히 두고 떠나야 하는 자식들의 무덤 때문에 탄식하는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 당시의 목격담이다. 오세이지족은 새로운 보호구역으로 이동을 마친 뒤, 여러 곳에 캠프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포허스카에 있었다. 인디언실도 포허스카의 우뚝 솟은언덕 위에 현장 지부가 들어갈 건물을 사암으로 위풍당당하게 지었다." 이 땅의 서쪽에 있는 그레이호스는 새로 지은 오두막 몇 채가모여 있는 곳에 불과했다. 리지와 네카에세이는 1874년에 결혼해서 이곳에 정착했다. 연달아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백인들의 질병"인 천연두까지 겪는 바람에 부족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인구가 약 3,00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7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인디언실 관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한때 이 일대 모든 땅의 주인이었던 영웅적인 부족의 흔적은 이 사람들이 전부다. - P59
1877년에는 사냥할 버펄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당국이이주민들에게 들소를 아예 멸절시키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더욱더 당겨졌다. 한 장교의 말에 따르면, 당국은 "버펄로 한마리가 죽을 때마다 인디언 한 명이 사라진다""고 확신했다.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억제와 봉쇄에서 동화 강요로 바뀌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점점 오세이지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옷을 모두 갖춰 입고 밭을 갈게 만들려고 애썼다. 정부는 캔자스 땅을 판매한 것에 대해 부족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으나, 네카에세이처럼 건강한 남자들이 농사를 시작할 때까지 돈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족이 농사를 시작한 뒤에도 정부는 돈 대신 옷과 음식을 배급하는 방식으로 지불하겠다고 주장했다. 오세이지족의 한 추장은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먹이를 줘야 하는 개가 아니다." - P61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줄을 지어서 이리저리로 행군하듯 이동했다. 그들은 피아노 글씨 쓰기, 지리, 산수 등을 배웠다. 세상이 낯선 기호들로 정리되었다. 이 학교의 가르침은 몰리를 백인사회에 동화시켜, 당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만들기 위한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오세이지족 소년들이 농사와 목공을 배우는 동안, 몰리는 바느질, 빵 만들기, 세탁 등 ‘살림의 기술‘을 배웠다. "인디언 소녀들을 세심하게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남자가 근면하게 열심히 일해서 식구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주더라도, 아내가 요리를 할 줄 모르고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습관이 없어서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더럽고 불결한 곳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이교도의 의식과 미신에 끈질기게 집착하며 그가르침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바로 여자들이다." 몰리의 학교에 다니던 많은 오세이지족 학생들이 도망치려고 시도했지만, 보안관들이 말을 타고 그들을 쫓아가 밧줄로 묶어서 다시 데려왔다. 몰리는 매년 8개월씩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그레이호스의 집으로 돌아가면, 담요를 걸치고 모카신을 신은 소녀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년들도 허리에 천을 두르는 대신 바지를 입었고, 투구 장식 모양으로 머리를 깎는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 과거의 관습을 지키는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오세이지족의 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아이가 귀를 닫아버렸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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