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내밀한 히스테리에 대해 미리부터 창피함을 느꼈다. 일기 쓰기에서 가장 맥 빠지는 면은 언젠가 내가 어딘가에 앉아 이 일기를 다시 읽으리라는 걸 의식하는 거야. 어떤 과거를 되살리려 애쓰면서, 그로 인해 상기된 감정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지 깊이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신경 쓰느라 발목이 잡히게 돼. - P220

켄이 사망한 날 밤과 관련된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모든 상황이 순전히 무작위적이고 사실 같지 않게 여겨졌다. 켄의 살해범들은 확실한 단서를 흘리며 범행을 저질렀는데 그런 식의 전반적 부주의함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증오할 만한 그런 주모자의 손에서 범행이 일어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 P236

우리는 편지를 끝맺을 때 진실하자, 라는 말을 쓰지. 이 말을 탄생시킨 농담은 시간에게 졌지만 나는 그 농담에 뒤따랐던 복잡한 악수는 아직기억해. "게임에 진실하자"를 나중에 "진실하자"로 줄여 말했지. 자신에게 진실하자. 훗날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진실하자. - P277

진실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침울하기보다 큰 기쁨을 주게 될테고 기쁨에 굴복하는 게 내가 너를 버린다는 뜻은 아닐 거야. 단지 분노와 증오의 이야기가 아닌 사랑과 의무의 이야기가 되고, 꿈, 한때 미래를 기대했던 기억, 다시 꿈꾸고픈 갈망이 가득할 거야. 지루할지도 몰라. 네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시가 될 거야.
이제 상담이 거의 다 끝나 갔다. 나는 상담사에게 많은 도움이되었다고 말했다. 정말로 평범한 사무실에서 나 자신이 이런 문제를 소리 내서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내가 완전히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언제나 문제의 첫 징조를 향해 돌진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담사의 도움 덕분에 내 머릿속을 어느 정도 재배치하게 되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다고, 상담사에게 말했다. 이제는 플란넬 천 옷에 배어 있는 담배 연기 냄새, 과음한 다음날 생딸기를 얹어 슈거파우더를 뿌린 팬케이크의 맛, 황금빛 도는 갈색의 독특한 석양, 이제는 날 비탄에 빠뜨리는 노래에 대해 한때 느꼈던 아주 상반되는 감정, 새 부츠가 닳기 시작한 순간, 기말시험 주간에 끝까지 돌아간 믹스 테이프가 쌕쌕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지 구상해 봐야 했다. 어떤 비유가 쓸 만하고 어떤 비유가 별로인지, 어떤 부분을 밝히고 어떤 부분을 비밀로 묻어둘지를 가려내면서. 누군가 너를 알아볼 때의 표정도 묘사해야 해.
언젠가 이 모든 것을 글로 쓸 거라고, 내가 말하자 상담사가 미소 띤 얼굴로 바라봤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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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면 내 사람들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내가 생각했던 내 사람들이란 나처럼 입고 나와 똑같은 음악을 듣고 나와 똑같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라는 테마의 여러 변형. 하지만 너무 늦은 걸지 모르겠으나,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같이 음악을 들을 친구들이라는 걸. 뭔가를 물어볼 정도로 호기심을 가져 주고 나중에 스틱스나 크리스토퍼 크로스같이 나의 쿨함 때문에 몰랐던 아티스트들의 곡을 들어 주는 누군가. 켄은 내가 만들어 준 테이프들을 열심히 들어 본 다음, 격려해 주는 부모처럼 한 곡 한 곡마다 비평을 달아 주었다. 나는 농담으로 켄이 미국에서 벨과 세바스티안의 온순하디 온순한 곡들을 좋아하는 유일한 프래터니티 멤버일 거라고 말했다. 켄은 내가 만들어 준 테이프들을 자기 차의 바닥이나 프래터니티 하우스의 먼지투성이 구석 여기저기에 흩어 놓았다. 얼마 안 지나 새 믹스테이프를 건네주리라는 걸 알아, 제일 좋아하는 곡들 (말 얘기가나오는 노래)을 다시 녹음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노래든 영화든 TV 프로그램이든,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있다. 이것이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잘 맞는 상대가 한번 접해 보라고 설득해주면 새로운 것 두 가지를 발견한다. 접해 보니 그렇게 나쁘지않은 취향과, 새로운 절친. - P151

후회가 됐다. 내가 왜 켄의 파티에서 그렇게 일찍 나왔을까? 왜 켄의 아파트 발코니 앞을 그냥 지나쳤을까? 켄이 일요일 밤에 춤추러 가자고 전화하지 않은 것에 어떻게 그런 안도감을 느꼈을까?
아직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 곁을 떠나 미라의 집으로 가서 이 일에 대해 최대한 간략히 말해 주었다. 그리고 커튼을 치고 거의 완전한 침묵 속에서 관계를 가졌다. 그런 뒤에는 복도로 나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쁜 소식을 전하며 또한 사람의 고통을 마음에 담는 일은 별난 목적의식을 갖게 했다. 나는 충격과 타격을 안겨 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내 아파트로 돌아와 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목이 메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토요일에 엘카혼에서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우리 모두 가기로 했다. "케니는 널 사랑했어" 어머니의 말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며 주먹으로 카펫을 내리쳤다. "네 칭찬을 아주 많이 했어." 그날밤에 모두가 집으로 왔다. 우리는 기진맥진해 몸을 덜덜 떨며 피자와 맥주를 우걱우걱 먹었다. 앤서니는 자꾸만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먼 곳을 응시했다. 알렉은 여전히 믿지 못했다. 우리의 삶은 특별할 거 없는 인디 영화였으나, 그웬의 말처럼 이제 더는 그렇지않았다. - P175

장례식장 안은 레이브 파티에 와 있는 기분을 일으켰다. 숨이 막혔고 그 안에 떠다니는 공기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서로 어루만져 주고 몸을 좌우로 흔드는가 하면 옆사람에게 기대기도 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아픔이 깃든 미소 하나만 봐도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안절부절못해 꼼지락거리며 흐느껴울고, 신도석에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몸으로 악한 뭔가를 좇아내려 애쓰는 것도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정적 속에서 뛰고 있는 모든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 P189

나는 그 자리에서 유체 이탈을 체험했다. 추도사의 말들이 인식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어딘가에 있었고 내가 지금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일부러 산 검은색 볼링 셔츠와 세로줄 무늬 바지였는데도 우리 모두가 켄에 대한 기억을 지켜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를 다시 데려올 수 있다고. 그것이 켄을 우리와 함께 미래로 데려갈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켄과 함께하지 못하게 될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짚어 나갔다. 오랜 놀림거리이던 이라미, 알렉과의 ‘피아노맨‘ 공연부터, 스티브에게 생일 선물 주기, 졸업식, 결혼식, 그웬의 미래의 아이들과 놀아주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너무 엿같은 이 세상이유감스러워. 그런 세상이 우리에게서 너를 빼앗았고 너에게서 우리를 빼앗았어.
사미가 그런 엄숙한 자리에서 욕을 입에 담은 건 좀 너무했다고 한소리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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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청춘의 우정이 언제나 즐거움을 따라 궤도를 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청춘의 삶은,

감정에 이끌려, 즐거움을 주는 대상과 그 순간의 경험을 열렬히 쫓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즐거움의 대상도 달라지고, 급속도로 친구가 되었다가 또 그만큼 빨리 멀어지기도 한다. 즐거움의 대상이 달라지면서 우정 역시 변한다. 젊은이의 즐거움이란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경험. 우정의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서로가 점점 나이를 먹고 헤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로 서로가 필요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우정이 가볍고 일시적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는다. 우정은 불균형, 보이지 않는 여러 겹, 사소함,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정이 한결같이 이어져야 한다고 믿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정이 산발적으로 이어져도 괜찮다고 믿는다. 수년간 서로를 보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도 자기들만의 농담이나 대화를 늘어놓을 수 있듯이.
하지만 이 모든 것 이전에는 친해지는 순간이 있다. - P68

데리다 같은 이론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의 삶은 중심을 찾아다니며 삶의 원동력에 의문을 갖는, 원자화된 개인 [atomizedindividual]들로 가득하다. 데리다의 글은 복잡하기로 유명하며, 인용과 난해한 용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관계를 성찰한 대목은 어느정도 명확한 편이다. 그는 어떤 글에서 우정의 친밀함은 상대의 눈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느낌에 있다고 썼다. 일들은 언제나
‘이미‘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친구를 안다. 그 친구가 더는 세상에 없을 때에도 여전히 첫 만남 때부터 내가 친구보다 더 오래 살거나 친구가 나보다 오래 살 거란 사실을 안다. 언젠가 친구를 어떻게 기억할지 이미 상상한다. 울적하게 하려고 꺼낸 말이아니다. 데리다는 쓰길, 우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사랑해야 한다" 동료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사망 후에 쓴 글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걸까"라고 말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정의 궁극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저 산 자와 산 자의 슬픔에 주목하는 추도에 그치지 않는 것이. - P86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990년대 중반,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인간이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 탐구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명확한 지위가 정해지고 위계질서에 따른 족쇄에 갇혀 살며 그것을 정상적인 질서로 받아들였다. 봉건 제도와 구세계적 유대가 해체되고 사회·경제 이동성이유연해짐과 더불어 일시성의 개념이 사람들의 정신을 감화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표면을 벗겨 내야 발견할 수 있는 고유의 본질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고유의 본질은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자기 발견, 자기 창조, 수정의 과정중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람에 따라 이런 과정은 일종의 끝없는 표류와 탐색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추구한 것은 결국 같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그런 특징.
테일러는 이런 특징을 진정성 [authenticity]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진정성은 현대 생활에서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이 되었다. 진정성은 진정성의 부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허식을 부릴 때 비진정성과 거짓을 알아본다. 그런데도 진정성을 느끼려 안간힘 쓴다. 그래 봐야 헛수고임을 아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테일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예술가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특성들을 붙잡고 창의적인 씨름을 벌인다. 말하자면 "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독창성에 충실한 것이며 자신의 독창성은 나만이 분명히 표현하고 발견할수 있다. 그 독창성을 분명히 표현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독창성을 특징짓는다"는 얘기였다.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자신에게 충실하기는 외부와의 접촉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성격을 구축하는 일은 하나의 게임이다. 남들의 기대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게임. 테일러의 설명대로, 진정성은 대화를 전제로 하며 대화를 하려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인식되려고 애쓴다. 가까운 친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너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그런 별종이라는 얘기일지라도 자신을 알아주길 원한다. - P121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큰 소리를 내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악의 척결을 부르짖는 이런 일이 꼭 뭔가를 이루려는 시도는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한목소리를 내려는 시도일 때도 있다고. 무리 속에서 익명성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하는 것임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라기보다 뜨거운 감정을 주체 못해서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것임을. 설령 그것이 잘못된 대상을 향한 외침이더라도.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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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기독교인의 핵심적인 가치로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쾌락을 추구했다. 태고부터 살아온 아담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았다. 농부들의 오두막에서도, 권력자들의 연회장에서도 시골길에서도 고위 성직자의 궁에서도, 그리고 수도원의 높은 벽 너머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과식을 했으며 시끌벅적한웃음소리와 함께 즐거운 춤판을 벌였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남녀가 서로를 탐하며 몸을 섞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권위를 가진 그 누구도감히 이런 쾌락을 공공연히 긍정하지 못했다. 그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소심하거나 뭔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는 최소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 자체가 이미 철학적으로 지지나옹호의 여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에피쿠로스는 죽어서 땅에 묻힌 지 오래였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4세기의 성 히에로니무스가 짤막하게 루크레티우스가 자살했다고 언급한 후로, 에피쿠로스의 로마인 수제자도 더 이상 공격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 수제자의 유명한 시가 남아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사상을 매장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사본 한 권이 흘러든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9세기의 어느 날, 썩어 문드러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던 그 사본을 한 수도사가 스크립토리움에서 베끼기 시작한 것도 정말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필사본이 약 5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 화재와 홍수, 무시무시한 시간의 이빨을 견디고 마침내 1417년, 자신을 자랑스럽게 포기우스 플로렌티누스라고 칭하는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포조의 손에 떨어지게 된 것도 정말이지 대단한 우연이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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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들의 열정적인 신념과 압도적인 위엄 앞에서 속세의 대중은 일반적인 자기 보호와 쾌락의 추구라는 본능적 행동을 지켜낼 수가없었다. 일찍이 믿음과 고행은 천박한 것들, 그러니까 일상적인 필요로가득 찬 ‘이 세상 것들‘로부터 멀어진 종교 지도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적 수련이 속세의 주류 사회에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회 전체에 채찍질이 만연했고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한때는 과격한 반체제 문화(counterculture) 였던 것이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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