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청춘의 우정이 언제나 즐거움을 따라 궤도를 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청춘의 삶은,

감정에 이끌려, 즐거움을 주는 대상과 그 순간의 경험을 열렬히 쫓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즐거움의 대상도 달라지고, 급속도로 친구가 되었다가 또 그만큼 빨리 멀어지기도 한다. 즐거움의 대상이 달라지면서 우정 역시 변한다. 젊은이의 즐거움이란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경험. 우정의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서로가 점점 나이를 먹고 헤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로 서로가 필요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우정이 가볍고 일시적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는다. 우정은 불균형, 보이지 않는 여러 겹, 사소함,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정이 한결같이 이어져야 한다고 믿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정이 산발적으로 이어져도 괜찮다고 믿는다. 수년간 서로를 보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도 자기들만의 농담이나 대화를 늘어놓을 수 있듯이.
하지만 이 모든 것 이전에는 친해지는 순간이 있다. - P68

데리다 같은 이론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의 삶은 중심을 찾아다니며 삶의 원동력에 의문을 갖는, 원자화된 개인 [atomizedindividual]들로 가득하다. 데리다의 글은 복잡하기로 유명하며, 인용과 난해한 용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관계를 성찰한 대목은 어느정도 명확한 편이다. 그는 어떤 글에서 우정의 친밀함은 상대의 눈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느낌에 있다고 썼다. 일들은 언제나
‘이미‘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친구를 안다. 그 친구가 더는 세상에 없을 때에도 여전히 첫 만남 때부터 내가 친구보다 더 오래 살거나 친구가 나보다 오래 살 거란 사실을 안다. 언젠가 친구를 어떻게 기억할지 이미 상상한다. 울적하게 하려고 꺼낸 말이아니다. 데리다는 쓰길, 우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사랑해야 한다" 동료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사망 후에 쓴 글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걸까"라고 말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정의 궁극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저 산 자와 산 자의 슬픔에 주목하는 추도에 그치지 않는 것이. - P86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990년대 중반,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인간이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 탐구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명확한 지위가 정해지고 위계질서에 따른 족쇄에 갇혀 살며 그것을 정상적인 질서로 받아들였다. 봉건 제도와 구세계적 유대가 해체되고 사회·경제 이동성이유연해짐과 더불어 일시성의 개념이 사람들의 정신을 감화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표면을 벗겨 내야 발견할 수 있는 고유의 본질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고유의 본질은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자기 발견, 자기 창조, 수정의 과정중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람에 따라 이런 과정은 일종의 끝없는 표류와 탐색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추구한 것은 결국 같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그런 특징.
테일러는 이런 특징을 진정성 [authenticity]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진정성은 현대 생활에서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이 되었다. 진정성은 진정성의 부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허식을 부릴 때 비진정성과 거짓을 알아본다. 그런데도 진정성을 느끼려 안간힘 쓴다. 그래 봐야 헛수고임을 아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테일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예술가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특성들을 붙잡고 창의적인 씨름을 벌인다. 말하자면 "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독창성에 충실한 것이며 자신의 독창성은 나만이 분명히 표현하고 발견할수 있다. 그 독창성을 분명히 표현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독창성을 특징짓는다"는 얘기였다.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자신에게 충실하기는 외부와의 접촉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성격을 구축하는 일은 하나의 게임이다. 남들의 기대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게임. 테일러의 설명대로, 진정성은 대화를 전제로 하며 대화를 하려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인식되려고 애쓴다. 가까운 친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너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그런 별종이라는 얘기일지라도 자신을 알아주길 원한다. - P121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큰 소리를 내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악의 척결을 부르짖는 이런 일이 꼭 뭔가를 이루려는 시도는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한목소리를 내려는 시도일 때도 있다고. 무리 속에서 익명성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하는 것임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라기보다 뜨거운 감정을 주체 못해서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것임을. 설령 그것이 잘못된 대상을 향한 외침이더라도.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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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기독교인의 핵심적인 가치로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쾌락을 추구했다. 태고부터 살아온 아담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았다. 농부들의 오두막에서도, 권력자들의 연회장에서도 시골길에서도 고위 성직자의 궁에서도, 그리고 수도원의 높은 벽 너머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과식을 했으며 시끌벅적한웃음소리와 함께 즐거운 춤판을 벌였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남녀가 서로를 탐하며 몸을 섞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권위를 가진 그 누구도감히 이런 쾌락을 공공연히 긍정하지 못했다. 그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소심하거나 뭔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는 최소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 자체가 이미 철학적으로 지지나옹호의 여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에피쿠로스는 죽어서 땅에 묻힌 지 오래였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4세기의 성 히에로니무스가 짤막하게 루크레티우스가 자살했다고 언급한 후로, 에피쿠로스의 로마인 수제자도 더 이상 공격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 수제자의 유명한 시가 남아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사상을 매장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사본 한 권이 흘러든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9세기의 어느 날, 썩어 문드러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던 그 사본을 한 수도사가 스크립토리움에서 베끼기 시작한 것도 정말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필사본이 약 5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 화재와 홍수, 무시무시한 시간의 이빨을 견디고 마침내 1417년, 자신을 자랑스럽게 포기우스 플로렌티누스라고 칭하는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포조의 손에 떨어지게 된 것도 정말이지 대단한 우연이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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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들의 열정적인 신념과 압도적인 위엄 앞에서 속세의 대중은 일반적인 자기 보호와 쾌락의 추구라는 본능적 행동을 지켜낼 수가없었다. 일찍이 믿음과 고행은 천박한 것들, 그러니까 일상적인 필요로가득 찬 ‘이 세상 것들‘로부터 멀어진 종교 지도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적 수련이 속세의 주류 사회에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회 전체에 채찍질이 만연했고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한때는 과격한 반체제 문화(counterculture) 였던 것이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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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에 입을 맞춘다‘는 표현에서 문자 그대로 드러나듯이 체벌을 받은 자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는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라는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을 짓밟으려는 기독교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더욱이 고통의 체험은 체벌로서만 의미가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모방으로서도 의미를 가졌다. 기독교 은둔자들은 고행을 통해서 예수가 몸소 견뎌야 했던 고통을 묵상하며 자신의 몸으로 같은 고통을 체험했다. 이런 자기 고행은 고귀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한 것으로서 대중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고, 일찍이 고대 말부터 그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매질을 가하는 것이 주요 금욕적 고행수단으로 교회에서 공인된 것은 11세기의 일로 수도원 개혁자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네딕투스 수도회 소속 페트루스 다미아니에 의해서였다.
고통의 추구가 쾌락의 추구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하기까지는1,0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 구세주께서 채찍질을 견뎌내시지 않았던가?" 다미아니는 채찍질의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론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사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도 매질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구세주를 닮고 싶다면 그들이 겪은 고통을 우리도 몸소 겪는 것 그 이상의 방법이 있겠는가? 물론 다미아니도 이런 영광스러운 선구자들의 경우에는 채찍질을 가한 것이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승리를거둔 세계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채찍질을 가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그저 막연히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모든 꿈과 교리는 헛될 뿐이었다.
다미아니의 자취를 따른 많은 문헌들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신은 꼭 나무토막 같아져야 할 것이니, 몸을 때리고 채찍질하라. 지팡이를 휘두르고 매질을 가하며 단련하라. 육신은 고통을 당하고 굶주림을 겪어야 하리니, 그런 다음에야 육신은 영혼에게 굴복하고 완벽한 형상을 갖출 것이다. 이와 같은 영적 목표 앞에는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을 수없었고 자제심이라든가 거리낌 같은 감정이 설 자리가 없었다. 다른 이들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도 수치스럽지 않았으며, 떨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우는 모습을 들켜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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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차 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뭉쳐 있을 수만 있으면 어디로든 차를몰았다.
나는 늘 내 작은 볼보에 친구들을 태워 줬다. 무엇보다 그렇게하면 쿨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고, 운전하는 동안 친구들이 내가트는 음악을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좋았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항상 좁은 차 안에 빽빽이 포개 앉아 잔뜩 들뜬 마음으로 칼리지 애비뉴의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녔다. 대략 여섯 곡쯤 들으면 닿는 거리였다. 새로 만든 믹스 테이프를 끝까지 들을 요량으로 베이 브리지를 건너가 달랑 아이스크림만 사온 적도 있다. 한 친구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 우정을 표현하는 궁극의 행위라고나 할까- 돌아오던 어느 날 밤 880번도로 근처에서 24시 대형 마트를 발견하곤 한밤중에 메모장이나 속옷 같은 걸 사러 꼬박 30분을 운전하기도 했는데 그럴 가치는충분했다. 간혹 카세트테이프에서 긁히는 잡음과 함께 소리가 튀면 누군가 물었다. 이 노래 뭐야? 이미 수백 번은 들은 노래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듣는 그런 순간을, 나는 내내 고대했다. - P10

그 나이대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뭔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주차장에서 시간을 때우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다음엔 어디로 갈지 궁리하곤 한다.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일어나고 있어서, 그곳으로 이끌어 줄 지도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 나이대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하고 놓쳐 버리며 조바심치게 된다.
하루가 영원같이 느껴지고 1년이 지질학적인 한 시기 같다. 대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갔을 땐 어쩐지 이제는 전과 다른 침착함과 성숙함을 보여 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시절엔 늘 아주 들뜨거나 아주 가라앉았고 그도 아니면 세상 지루했다. 인류 역사상 그토록 지루해한 사람은 없었던 것마냥. 우리는 숨넘어갈 정도로웃어댔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코올 중독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지경까지 술을 마셨다. 나는 내가 알코올 의존증일까 봐 늘 초조했다. 우리는 섬망 상태에 빠져 아주 늦게까지 밤을 새우며 온갖 이론들을 내놓았다. 그 정신으로 적어 놓을 생각까지는 못했다는 게 탈이었지만, 우리는 남은 평생 비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두고두고 회자될 사랑의 열병을 주기적으로앓았다.
한동안은 언젠가 자신이 유례없이 슬픈 이야기를 써나가게 되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 P12

이민자의 자녀에게는 자신도 부모님도 모두 동화되어 가는 중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나도 세월이 흐른 후 깨달았다. 어머니와 내가 이 매장 저 매장을 훑고 다니며 찾던 것은 가능한미래였다는 걸, 우리 둘 다 똑같은 패션과 트렌드에, 또 몇몇 언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늦은 밤 아버지와 음반 매장에 다녀오던 그 나들이의 근본적인 목적은 통달이 아니라 발견이었다는 걸. 훗날 나는 완전한 동화란 움직이는 지평선을 향한 경주임을깨달았다. 동화의 이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억양은 어떻게 해도 완벽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계약으로 묶인 타협점이었다. 동화는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문제 그 자체였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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