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에 입을 맞춘다‘는 표현에서 문자 그대로 드러나듯이 체벌을 받은 자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는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라는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을 짓밟으려는 기독교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더욱이 고통의 체험은 체벌로서만 의미가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모방으로서도 의미를 가졌다. 기독교 은둔자들은 고행을 통해서 예수가 몸소 견뎌야 했던 고통을 묵상하며 자신의 몸으로 같은 고통을 체험했다. 이런 자기 고행은 고귀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한 것으로서 대중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고, 일찍이 고대 말부터 그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매질을 가하는 것이 주요 금욕적 고행수단으로 교회에서 공인된 것은 11세기의 일로 수도원 개혁자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네딕투스 수도회 소속 페트루스 다미아니에 의해서였다.
고통의 추구가 쾌락의 추구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하기까지는1,0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 구세주께서 채찍질을 견뎌내시지 않았던가?" 다미아니는 채찍질의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론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사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도 매질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구세주를 닮고 싶다면 그들이 겪은 고통을 우리도 몸소 겪는 것 그 이상의 방법이 있겠는가? 물론 다미아니도 이런 영광스러운 선구자들의 경우에는 채찍질을 가한 것이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승리를거둔 세계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채찍질을 가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그저 막연히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모든 꿈과 교리는 헛될 뿐이었다.
다미아니의 자취를 따른 많은 문헌들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신은 꼭 나무토막 같아져야 할 것이니, 몸을 때리고 채찍질하라. 지팡이를 휘두르고 매질을 가하며 단련하라. 육신은 고통을 당하고 굶주림을 겪어야 하리니, 그런 다음에야 육신은 영혼에게 굴복하고 완벽한 형상을 갖출 것이다. 이와 같은 영적 목표 앞에는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을 수없었고 자제심이라든가 거리낌 같은 감정이 설 자리가 없었다. 다른 이들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도 수치스럽지 않았으며, 떨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우는 모습을 들켜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