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차 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뭉쳐 있을 수만 있으면 어디로든 차를몰았다. 나는 늘 내 작은 볼보에 친구들을 태워 줬다. 무엇보다 그렇게하면 쿨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고, 운전하는 동안 친구들이 내가트는 음악을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좋았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항상 좁은 차 안에 빽빽이 포개 앉아 잔뜩 들뜬 마음으로 칼리지 애비뉴의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녔다. 대략 여섯 곡쯤 들으면 닿는 거리였다. 새로 만든 믹스 테이프를 끝까지 들을 요량으로 베이 브리지를 건너가 달랑 아이스크림만 사온 적도 있다. 한 친구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 우정을 표현하는 궁극의 행위라고나 할까- 돌아오던 어느 날 밤 880번도로 근처에서 24시 대형 마트를 발견하곤 한밤중에 메모장이나 속옷 같은 걸 사러 꼬박 30분을 운전하기도 했는데 그럴 가치는충분했다. 간혹 카세트테이프에서 긁히는 잡음과 함께 소리가 튀면 누군가 물었다. 이 노래 뭐야? 이미 수백 번은 들은 노래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듣는 그런 순간을, 나는 내내 고대했다. - P10
그 나이대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뭔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주차장에서 시간을 때우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다음엔 어디로 갈지 궁리하곤 한다.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일어나고 있어서, 그곳으로 이끌어 줄 지도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 나이대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하고 놓쳐 버리며 조바심치게 된다. 하루가 영원같이 느껴지고 1년이 지질학적인 한 시기 같다. 대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갔을 땐 어쩐지 이제는 전과 다른 침착함과 성숙함을 보여 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시절엔 늘 아주 들뜨거나 아주 가라앉았고 그도 아니면 세상 지루했다. 인류 역사상 그토록 지루해한 사람은 없었던 것마냥. 우리는 숨넘어갈 정도로웃어댔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코올 중독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지경까지 술을 마셨다. 나는 내가 알코올 의존증일까 봐 늘 초조했다. 우리는 섬망 상태에 빠져 아주 늦게까지 밤을 새우며 온갖 이론들을 내놓았다. 그 정신으로 적어 놓을 생각까지는 못했다는 게 탈이었지만, 우리는 남은 평생 비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두고두고 회자될 사랑의 열병을 주기적으로앓았다. 한동안은 언젠가 자신이 유례없이 슬픈 이야기를 써나가게 되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 P12
이민자의 자녀에게는 자신도 부모님도 모두 동화되어 가는 중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나도 세월이 흐른 후 깨달았다. 어머니와 내가 이 매장 저 매장을 훑고 다니며 찾던 것은 가능한미래였다는 걸, 우리 둘 다 똑같은 패션과 트렌드에, 또 몇몇 언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늦은 밤 아버지와 음반 매장에 다녀오던 그 나들이의 근본적인 목적은 통달이 아니라 발견이었다는 걸. 훗날 나는 완전한 동화란 움직이는 지평선을 향한 경주임을깨달았다. 동화의 이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억양은 어떻게 해도 완벽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계약으로 묶인 타협점이었다. 동화는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문제 그 자체였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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