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세계 경영을 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인프라와 강선steel vessel 건조를 통해 1950년대까지 조선산업을 이끌었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3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은 상대적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1970년대 유럽이 쥐고 있던 조선산업의 패권을 아시아로 가져온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상대적 저임금이라는 이점 외에도 다양한 혁신을 통해 세계를 제패했다. 일본은 우선 용접을 재발견했다. 리벳이라는 나사를 통해 강판을 조이는 방식이 아닌, 용접을 통해 강판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대형 도크장에서 크레인을 활용한 탑재 방식을 활용해 공정 속도와 효율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도요타 Toyota 자동차의생산 혁신 기법으로 유명한 적기 납기(JIT, Just-In-Time)나 미세 작업 관리를 도입해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1990년대 세계 조선산업의 패권을 획득한 한국의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임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산업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저임금 노동이 유리하게 작용한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 면에서도 세계를제패했다. 일본의 블록 탑재 공법을 향상해 블록의 대형화와모듈화를 이끌었다. 또한 옥외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던 작업들 중 선행 작업들을 실내 공장으로 옮겨왔을 뿐 아니라 자동화와 기계화를 달성했다. 야드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 블록들을 외부 블록 공장에서 조립을 마쳐 운송해 최종 공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 P45
해양플랜트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중반부터 거제로이주한 젊은 엔지니어들과 사무직들은 2010년대에 새로 조성한 아주동에 자리를 잡았다. 거제를 처음 방문해 장승포를 돌아다니다보면 1970~1980년대를, 옥포를 다니다 보면1990~2000년대를, 아주동과 고현, 수월과 장평을 돌아다니면 2010년대를 느낄 수 있다. 장승포, 옥포의 식당들 다수가부서 회식을 할 수 있는 좌식 룸을 보유하고 있다면, 아동의식당들은 4인이 앉아서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를 탑재한 20~30대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회사가족들‘과 끈끈한 연대를 맺고 살던 시대에서, 그런 회식이 싫어 삼삼오오 모여 개인으로 조용히 살아가려는 시대로 넘어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 P49
산업도시 거제의 기적을 만든 또 다른 주인공은 노동운동이다. 1987년 8월 10일, 대우조선에 초대 노동조합 집행부가 결성되었다. 노동자들은 조회나 두발 단속같이 신변을단속하는 행위나 정해진 근무시간 외에 조기 출근을 하는 것,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 등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또한 단결권 인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연이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성장한 기업이 민주노조 운동을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우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대우조선의 노조 탄압은 이석규, 박진석이라는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당시 노동조합 담당 변호사는 16대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진상규명위원회의 변호사는 19대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 P53
작업복은 ‘중공업 가족‘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언젠가 상사에게 물었다. "왜 퇴근하고도 작업복을 입나요? 현대중공업) 다니는 친구는 퇴근하면 다들 사복 입는다던데?" 그 상사는 "야, 나가면 다 우리 식구고 얼마나 좋냐?" 하고 답했다. 나도 곧 작업복이 더 편해졌다. 작업복을 입고 소개팅에 나갔고, 데이트를 할 때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게 됐다. 잦은 회식과 직원들을 ‘우리 식구‘라고 부르는 문화에 저항했지만, 곧 ‘식구‘에 뿌듯함을 느꼈다. - P59
이처럼 ‘대우 가족‘ ‘현대 가족‘ ‘삼성 가족‘은 어느 날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가족‘들은 공동체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과 더불어 회사의 적극적인 기업문화 활동을통해 주조되었다. 비슷하게 벌고 정년을 보장받는 모든 직원들은 사택이나 근처 아파트에 살고, 그룹의 계열사가 생산하는 비슷한 자가용을 비슷한 시기에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직원들은 일련의 동질성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중공업 가족이되어갔다. 대우조선이 운영하는 대우초등학교, 거제중학교, 거제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빠와 똑같은 식단으로 식사한다. 웰리브라는 자회사가 야드와 학교에 동시에 급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P65
2016년 거제, 그리고 그 몇 년 전 울산에 구조조정의 여파가 몰아닥쳤을 때 그녀들은 전체 인적 구조조정의 ‘숫자‘를 맞추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1,000명이 넘는 여성 사무보조직들은 부지불식간에 회사를 등지게 된다. <밥.꽃.양>(2001)이라는 독립영화는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바 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이 벌어질 때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지키기 위한 대가로 당시까지 직영으로운영하던 식당을 외주화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해고당했다. 이들은 남성들처럼 ‘생계 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땐뽀걸즈‘였다가 사무보조로 취업해 10년을 넘게 회사를 다닌 여성노동자들도 같은 이유로 2015년 명예퇴직했다. 2000년대 초중반 농협에서도 부부가 직원이면 둘 중 여성 노동자가 명예퇴직으로 내몰렸다. - P92
하지만 개인주의자로 자란 젊은 세대의 청년들은 그런문화가 낯설기만 하다. 언젠가 "거리에 나가면 다 우리 식구들인데 얼마나 좋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을피해 숨을 데 하나 없이, 하루를 온전히 회사 사람들과 보내는 것도 모자라 퇴근 후 늦은 밤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 문화. 퇴근하고 혼자 커피 한잔을 하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공부를 하는 ‘샐러던트의 자리는 없고, 회사 상사에게서 벗어나 다른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과 편하게 ‘뒷담화‘를할 수 있는 소박한 술자리도 갖기 어렵다. 서울에서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었던 익명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본인의 의지로 그런 ‘단순한 삶‘ 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런 삶에 함께 동참할 사람, 즉 중공업 가족의 반려자가 될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또 다른 난관이기다리고 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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