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적 지향성과 파생적 지향성
존설(John Searle)을 대표로 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에 따르면지향성은 본래적 (intrinsic)인 것과 파생적(derived)인 것 두 가지로나뉜다. 본래적 지향성은 우리가 지닌 생각, 믿음, 욕망, 의도의 겨냥이다. 이것은 말, 문장, 책, 지도, 그림,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인공물처럼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고 파생적 성격을 가진 겨냥의 명백한 원천이다. 인공물이 지향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이베푼 보시 덕분이다. 인공 표상물의 파생적 지향성은 그 창조의 밑바닥에 깔린 참다운 본래적 지향성 위에 얹혀 있다. - P95
지향성과 관계된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방금 우리는 인공 표상물(문장이나 그림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활동 안에서 그것이 맡는 역할 덕분에 파생적 지향성을 갖는다는데 합의했다. 종이쪽지에 적혀 있는 쇼핑 목록은 그것을 쓴 사람의의도에서 파생적 지향성을 얻을 뿐이다. 동일한 사람의 기억에 담긴 쇼핑 목록이라 하더라도 사정은 같다! 이 경우의 지향성은 종이에 적힌 목록의 지향성과 같은 이유에서 똑같이 파생적이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혹은 마돈나)에 대한 마음의 상은 여러분이 그리는그림과 똑같이 파생적 방식으로 대상을 겨눈다. 그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뇌가 만들어 낸 인공물이며 그것의 의미는 뇌의 내부 활동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성 안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와, 뇌의 내부 활동이 주변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의 복잡한 활동을 다스리면서 맡는 역할에서 비롯된다. - P99
가상의 로봇은 한낱파생된 지향성, 밖에서 주입된 지향성을 밑천으로 삼아 세상을 누비고 다니면서 자신의 과업을 처리하고 위험을 피해 나갈 것이다.
처음에는 공학자가 넣어 준 내용이 로봇이 가진 지향성의 주류를이루겠지만 세상에 대한 정보가 하나둘 쌓이면서 로봇은 지향성의 내용을 스스로 바꿔 나갈 것이다. 어쩌면 인간도 로봇처럼 ‘한낱 파생된 지향성을 등불로 삼아 삶을 꾸려 나가는 존재일지도모른다. 우리를 자연이 진화를 통해 설계한 인공물이라고 치면 본래적 지향성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것은 우리가 진화의유산으로 물려받지 못한 그 어떤 혜택을 우리에게 줄 수는 없을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허깨비를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전망이 우리 앞에 열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지향성 덕분에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세상의 온갖 경이에 놀라움을 느끼지만 이런 지향성은 진화의 길에서 뒤늦게 나타난 아주 복잡한 현상이다. 우리가 가진 지향성의 조상은 더 투박한 종류의 지향성들(설을 비롯한 일부 철학자들이 ‘어설픈 지향성‘으로 깎아내리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은 지금도 우리의 지향성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우리는 로봇의 후예이며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지향성은 실은 이 수십억에 달하는 투박한 지향계에 깃든 기초적 지향성에서 비롯되었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