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오빠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전 오빠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혜옥씨, 우리는 죽음의 전선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명예로운 병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남들의 전쟁에 돈을 받고 달려나가 싸우는 용병이었을 뿐입니다. 남들의 대리전쟁에 우리는 고용되어 나아가 윤중사는 한쪽 팔을 잃고 저는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병신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생명을 건져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불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이미 그곳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우린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나을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윤중사의 자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제 거짓말을 용서해주십시오. 차마 혜옥씨의 가슴에 새로운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종세의 목소리가 떨리어 나왔다. 종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혜옥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윤중사는 정말좋은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윤중사가 제게 혜옥씨에 대해 말을 해주셨더라도 이렇게까지 일이 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윤중사는 죽어서 한줌의 뼈가 되어 산과 들로, 바다로 강으로 북어가겠지만 저는 어디로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 P303

"정말 정말 갈 거유?"
도석이가 애원하듯 종대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같이 있습니다. 형님, 헤어지지 맙시다. 나는 무서워."
종대는 뛰듯이 언덕을 걸어내려갔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방향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조건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그는 이것으로 저 자식과는 또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저 자식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대는 언덕길을 내려와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등을 돌려보았다.
거짓말처럼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도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모습은 죽은 넋이 되어 살아 있는 자의 눈으로는 볼 수없이 현상의 세계에서 증발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 P364

그에 관한 기억은 그의 죽음으로 완전히 소멸된 셈이었다.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자신의 육체 속에 기록하고 다닌다. 그가 죽으면 그 역사는 그것으로 소멸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만의 왕국을 유산으로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가 죽으면 그의 왕국도 성(城)도 멸망하는 것이다. - P388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나 혼자 처리하고 나 혼자 지켜보려고 했어. 이건 비참한 비극이야. 무서운 비극이야."
"당신 혼자 괴로울 것 같았어요."
혜옥은 잘라 말하였다.
"외롭고 고독하실 것 같았어요."
"잘 왔어."
종세는 솔직히 대답하였다.
"정말 잘 와주었어."
"오는 길에 초를 사왔어요. 분향할 때 쓰는 향도 사오고, 밤샘할때 먹을 김밥도 사가지고 왔어요. 꽃도 필요할 것 같아서 꽃도 사왔어요."
"잘했어."
종세는 아내의 손에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영안실이 어디예요?"
두 사람은 우산을 쓰고 건물을 돌아 영안실 쪽으로 다가갔다. 걷다가 말고 혜옥은 깜박 잊었다는 듯 주머니 속에서 작은 물병을 꺼내들고 말하였다.
"참 성수도 갖고 왔어요. 돌아가신 시아주버니 가족에게 뿌려줄까 해서요. 아아."
혜옥은 혼잣말로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가엾은 시아주버니의 영혼을 씻어드릴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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