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의 마음을 읽으려면 그 대상이 알맞은 빠르기로 보여져야 한다. 일단 대상에서 마음을 읽어 내면 그러한 지각은 우리를압도한다. 이 지각은 관찰자인 우리가 편견을 가졌다는 사실을 드러낼까. 아니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까? 마음이라는 현상에서 속도는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까? 사람의 마음보다 훨씬느리게 움직이지만 어떤 마음 못지않게 현실감을 주는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보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만일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생각하는 속도가 우리보다 몇천 배에서 몇백만 배 빠른 화성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화성인에게 우리는 나무처럼 아둔해 보일 것이며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가설에 화성인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화성인이 코웃음을 친다면 그것은 화성인의 실수다. 그렇지 않은가? 화성인은 자기가 가진 시간틀의 좁은 울타리에 갇힌 희생자다. 따라서 엄청나게 느리게 사고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면 우리는 인간의 사고 속도에 대해 우리가 가진 편애와는 종류가 다른 근거를 찾아내야만 한다. - P112
자동 온도 조절 장치나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감응력(sensitivity)은 정말로 중요한 현상, 곧 감지력(sentience)의 아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의 후보군에 감지력이있는지를 따져 ‘단순한 지향계‘와 ‘진정한 마음‘을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감지력이란 무엇일까? 감지력은 제대로 정의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대체로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이라고 추정되는것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쓴다. 여기서 우리는 감지력을 단세포 유기체, 식물, 자동차의 연료계, 카메라의 필름이 가진 단순한 감응력과 대비시키는 전략을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감응력은 의식의 개입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진 필름은 다양한감도로 광선에 반응한다. 자동온도조절 장치는 온도 변화에 민감한 물질로 되어 있다. 리트머스 종이는 산성의 유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의 통념에 따르면 식물이나 해파리, 해면 같은 ‘하등‘ 동물은 감지력이 없고 감응력만 있으며 ‘고등‘ 동물은 감지력이 있다. 인간 같은 고등 동물은 그저 다양한 감응 장치 (이런저런 대상에 차별적으로 알맞게 반응하는 장치)를 부여받은 데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고등 동물은 감지력이라는 한 단계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은 보통 생각한다. 이런 특성은 과연 무엇일까? - P115
마음을 캐는 현대의 많은 이론이 공유하는 근본 가정의 하나로 기능주의(functionalism)라는 것이 있다. 기능주의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개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은 기능주의를 잘 나타낸다. 기능주의에서는 마음(믿음 또는 아픔 또는 두려움)의 본질은 마음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라고 본다. 인공물을 대할 때 우리는 이러한 원칙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점화 플러그의 본질은 어떤 환경에 그것을 끼울 수 있고 여차하면 불꽃을 낸다.‘는 것이다. 오직 이것만이 중요하다. 점화플러그의 빛깔, 재질, 구조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기능의 세부 요건에 어긋나지않는 한 모양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생명 세계에서도 기능주의는 폭넓게 수용된다. 심장은 피를 밀어내는 장기이므로 인공심장이나 돼지의 심장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심장을 이런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 P121
기능주의로 정의되는 대가능하다고 기능주의자들은 흔히 말한다. 아무 재료로든 인공심장처럼 인공 마음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마음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핵심만 파악하면 기준에 맞는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마음(또는 마음의 구성 요소)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론가는 마음이 하는 일이 정보처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음은 몸을 다스리는 제어계의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이 제어 작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별하고 저장하고 변형하고 처리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기능주의가 원래 그렇지만 기능주의는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의 특수성을 추상화하여 실제로 이루어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론은 참 깔끔해진다. 그렇지만 작업을 턱없이 단순화시키다 보니 이론도 지나치게 깔끔해진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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