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유럽계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생활의 통제감이 개인의 정신 건강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반면,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들에게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덜했다. 흥미롭게도 동양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자신을 통제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믿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 P98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물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설사 변하더라도 일정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변한다고 믿었다. 현대 서양인들 역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고대의중국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고를 이어받은 현대의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이며 현재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들은 일이 어떤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 있다면 그것은 곧 정반대 방향으로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를 예측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설사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변화가 현재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측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처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 - P100
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서양의 지성사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Republic), 청교도주의, 세이커 공동체, 모르몬주의, 미국과프랑스의 혁명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등장하는 에덴동산과 새로운 예루살렘의 약속과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위에 나열된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에는 유교 사상이나 고대중국의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있다. •유토피아를 향한 직선적 진보가 가정되어 있다. • 일단 도달하면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된다. 운명이나 초인간적인 개입이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 •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 그리고 유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은 동양인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는 여러면에서 반대된다. 동양인들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추구하고,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동양의 유토피아는 ‘과거‘에 존재하며, 인간의 소망은 ‘현재 상태에서 과거의 완전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 P104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이해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오류를 쉽게 범한다.
• 발생한 결과 이외의 다른 결과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발생한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범하는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인지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Baruch Fischhoff)에 의해 처음 증명되었다. 그는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있었다고 과잉 확신하는 경향‘과 ‘그 때문에 당연히 놀라워해야 할 예외적인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이를 후견지명 효과, 심리학 용어로는 과잉 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 P126
물론 보르헤스 자신이 편의적으로 만든 분류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세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한 방식이고대 그리스인들의 방식과는 상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공통의 속성을 지닌 것들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지만, 철학자 도널드 먼로에 따르면 중국인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서로 공평(resonance)‘을 통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을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오행설에 따르면 ‘봄, 동쪽, 나무, 바람, 초록‘은 모두 동일한 범주에 속했다. 왜냐하면, 바람의 변화가 나머지 네 가지에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범주화라는 지적 작업 자체에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장자는 "범주화는 지식을 제한하고 더 큰 지식을 분열시키는 짓이다"라고 적고 있다. 도덕경』은 범주화에 의존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 P135
첫째, 동사는 영어와 기타 유럽 언어에서보다도 동양의 언어에서지각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중국어나 일어, 한국어에서는 동사가문장의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치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곳들이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동사가 대개 문장의 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지각적으로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 P146
넷째, 영어나 다른 유럽 언어에서 ‘속명 (generic nouns, 어떤 범주자체에 대한 이름)‘은 문장 구조상 확연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a duck‘, ‘the duck‘, ‘the ducks‘, ‘ducks‘라는 표현을 쓸수 있는데, 이 중 마지막 표현은 속명에 해당한다. 즉, 오리 일반을지칭하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이처럼 ‘특정 오리 한 마리‘, ‘특정오리 집단‘, ‘오리 일반‘ 등을 분명히 구분지어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는 이러한 구분이 쉽지 않으며, 오로지 맥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발달심리학자인 수잔 겔먼(Susan Gelman)과 트와일라 타디프(Twila Tardif)가 영어를 사용하는 어머니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어머니를 비교 연구한 결과, 영어권 어머니들이 속명을 사용하는 빈도가 2배 높았다고 한다. - P147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뿌리 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nge) 동양의 사고에서 우주는정적인 곳이 아닌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곳이다. 어떤 사건이 현재 특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상태가 곧 변화할 것이라는징후로 간주된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들 역시 고정적이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 2) 모순의 원리(The principle of contradiction)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립(oppositions), 역설(paradoxes), 변칙(anomalies)이 늘 발생하며, 신/구 선/악, 강/약이 모든 사물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대립은 사실상 서로를 완성시키고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도교에서는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주장들이 역동적인 조화의 상태로 존재하며, 서로 대립적인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상호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도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된다. 도교의 창설자인 노자는 "사람들이 미를 미로서 인정할 때에야비로소 추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을선으로서 인정해야 마침내 사악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존재와 부재는 상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을 정치가 군인, 철학자, 시인으로 명명했던 중국의 독재자 마오쩌둥도 "대립은 서로 맞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연결, 상호침투, 상호 관통, 상호 의존을 뜻한다"라고 기술하였다.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onship, or Holism) 변화와 대립에 대한 그러한 견해는 자연스레 어떤 사물도다른 것들과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무수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연관되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물론 변증법적 사고의 이 세 가지 원리는 서로 관련되어 있 - P165
어쩌면 서양인들의 눈에도 이와 같은 동양적인 사고들이 낯설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칸트, 피히테, 헤겔의 시대 이래로이런 종류의 변증법 전통은 서양 사상의 흐름에서도 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모순을 수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모순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변증법적 사고보다 더 공격적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변증법적 사고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존재한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고 전통 안에 동양적 변증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논리적 원리들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양 사고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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