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환경이 경제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자연 환경은 대체로 평탄한 농지, 낮은 산들, 항해가 가능한 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농경에 적합하였고,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유리하였다. 농경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화목한생활이었다. 특히 쌀농사의 경우에는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람들 간의 화목은 관개 공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중요하다. 관개 공사가 절실히 필요했던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북부의 황하 골짜기 지역이었다. 관개 공사는 이웃과의 화목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유도하게는데,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작농들은 자신들의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 했고, 자기 부락의 연장자들이나 권력자들의 지배를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역의 권력자들은 다시 왕(통일 중국 이후는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그들의 생태 환경으로인해 매우 복잡한 사회적 제약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자연 환경은 그와 대조적이었다. 그리스는 해안까지 연결되는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사냥, 수렵, 목축, 그리고 무역(정확히는 해적)에 적합했다. 이런 일들은 농업에 비해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덜 필요로 한다. 실제로 무역을 제외하고는 굳이 안정적인 공동체가 필요없다고 할 수 있다. 농경정착 생활이 그리스에 도입된 것은 중국보다 거의 2,000년이나 뒤였으며, 도입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기보다는 상업적인 대규모 농경으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경에 이르렀을 때 많은 농부들은 사업가적 성격을지닌 개인 단위의 농장주였으며, 중국에서처럼 소작농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토양과 기후는 농경보다는 포도주와 올리브유 생산에 더 유리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중국인들과는 달리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들과의 화목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시장이나 공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논쟁하는 습관도 기를 수 있었다. - P190

앞에서는 사회적 행위(관계 중심적 사회 행위와 자율 중심적 사회 행위)가 형이상학적 신념에 영향을 주고 이 형이상학적 신념이 인식론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러나 사회적 행위들이 곧바로 인식론적 사고 습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고대 중국의 변증법적 사고와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개발된 인지적 도구들이다.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논쟁이나 대결의 전통이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관점의 차이가 발견되면, 모순을 뛰어넘는 중용의 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논쟁이 장려되는 사회에서는 ‘비모순율‘이나 ‘형식 논리‘ 같은 절차들이 자연스럽게 개발된다. 논리학이 발달되면그것은 자연스럽게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앨런 크로머 (Alan Cromer)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과학은 어떻게 보면 수사학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유일하게 그리스에서만 발달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리스의 공회가 논쟁의 기술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증명은 궁극적으로 수사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 P194

20세기의 심리학자들은 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사람들의 지각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심리학자인 허먼 윗킨스(Herman Witkins)와 그 연구팀은 ‘장의존성 (field-dependenc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는 어떤 사물을 지각할때 주변 맥락의 영향을 받는 정도를 지칭한다. 장의존성은 다양한방법으로 측정되는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 ‘숨은그림찾기 검사(Embedded Figures Test)‘이다. 이 검사는 복잡한 배경에숨겨진 사물들을 찾아내는 것으로서, 장의존적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주의를 너무 기울여 숨겨진 사물을 쉽게 찾지 못하지만, 장독립적(field-independent)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영향을 덜 받고 쉽게 사물을 찾아낸다.
만일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내용이 타당하다면, 즉 경제적인 요인들이 사람들의 인지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농경 사회의 사람들은 수렵이나 사냥 사회 같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이고, 전통적인 농경 사회 사람들이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일 것이다. 연구 결과, 이러한 예측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수렵과 사냥을 하는 사람들과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장독립적이다. - P198

과학에서의 동서양 차이
미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만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일본은 겨우 1명만을 배출했다. 일본의 과학 예산이 미국 과학예산의 절반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차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서독은 일본 과학 예산의 절반밖에 책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서독보다도 과학 예산을 훨씬 적게 지출하는 프랑스조차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이러한 초라한 성과에 대하여 혹자는 연장자를 존경하는 유교 전통을 그 원인으로 본다. 젊고 유능한 학자보다는 실력은 없으나 나이 든 학자를 지원하는 사회 풍토를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일본내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논쟁과 지적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비판하고 심사하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하며, 논쟁과 지적 토론이 과학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한 일본 과학자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아주 유명한 두 명의 과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서로 매우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심지어 저널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 P206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
서양인들은 개인과 국가 간에는 오직 하나의 바람직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즉, 각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그리고 국가와 사회적 계약을 맺으며, 그 계약에는 개인의 권리, 자유, 그리고 의무가 포함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국가를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고유한 권리라는 개념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며 그보다는 부분-전체, 개인-사회라는 관계적 측면에서의 권리가 훨씬 더 의미가 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그들의 사회에서 마치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근거로 동양인들의 도덕관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도덕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양인들이 서양인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도덕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 유학 온 동양 학생들은 영어에 익숙해지고나면, 미국의 미디어에 폭력, 섹스,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곤 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양인들은 권리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 P211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것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들만을모아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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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러가드는 핸들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잡았다. 그는엔진의 진동을 핸들과 팔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은 이제 더이상 요동치지 않았다. 심장 박동은 1분에 70 정도로 떨어졌고, 이정도의 심박수가 그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치였다. 어떤 사람은 피아노 혹은 기타를 치기 위해 태어났다고들 하지만, 그에게는 차가 악기였고 지금은 차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냉기는 심장에서 시작해 손끝, 발끝으로 번졌다. 그는 지금보다 더 현재에 집중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는 그것이 진실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사실이 슬프지 않을수 없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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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개정판서문

‘길 없는 길‘

대학 교수 시절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단행본을 발간한지 약 10년이 흘렀다.
그 책을 발간한 당시 내 심정은 이러했다. 나는 정치인도, 시민운동가도, 철학자도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의 가장 큰 존재가치를공부하는 사람, 학인學人에 둔다. 그래서 책의 서문에 ‘나의 세상은 작은 7평 연구실에서 시작된다‘고 썼던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정치에 깊숙이 참여를 하면서도 7평 연구실에서 법학 관련 논문과 판례를 읽고 꾸준히 논문을쓰는 것은 물론, 전공을 넘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부를 계속 이어갔다. 그것만이 내 삶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3년 6월 12일 나는 서울대로부터 교수직을 파면당했다. 이제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학인이라는 소임을 내려놓고 하나의 시민으로서 ‘길 없는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 P5

이렇게 현실은 험난하지만, 여전히 나는 법의 역할을 믿으려한다. ‘정의의 여신‘ 디케ike는 망나니처럼 무지막지하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라, 늘 균형과 형평을 중시하는 차분한 모습이다. 나는 디케가 형벌권으로 굴종과 복종을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신이라고 믿는다. 또한머지않은 시간에 주권자 시민들이 ‘법치法治‘가 ‘검치檢治‘가 아님을확실히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궁극에는 법을 이용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의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 P13

특히 ‘검사동일체‘와 ‘상명하복‘을 조직 운영 원리로 삼고 있던 검찰은 다른 엘리트 집단에 비해 우위에 섰다. 대한민국 검찰은 OECD에 속한 다른 국가의 검찰과 달리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기권‘, ‘영장청구권‘ 등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엘리트 집단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기‘를 가진검찰은 정치권력과도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권력의 사냥개에 그치지 않고, ‘주인‘인 정치권력이 약해진다 싶으면 ‘주인‘을 물어뜯었다. 이즈음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라는 건배사가 검찰내에서 공유되었다.
군부의 총칼이 최고의 무력이었던 시간이 끝나가면서, 수사권 · 기소권 · 영장청구권 등 이른바 ‘검찰권‘이 최고의 무력이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법이 주먹 같은 역할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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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유럽계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생활의 통제감이 개인의 정신 건강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반면,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들에게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덜했다.
흥미롭게도 동양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자신을 통제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믿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 P98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물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설사 변하더라도 일정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변한다고 믿었다. 현대 서양인들 역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고대의중국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고를 이어받은 현대의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이며 현재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들은 일이 어떤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 있다면 그것은 곧 정반대 방향으로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를 예측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설사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변화가 현재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측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처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 - P100

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서양의 지성사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Republic), 청교도주의, 세이커 공동체, 모르몬주의, 미국과프랑스의 혁명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등장하는 에덴동산과 새로운 예루살렘의 약속과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위에 나열된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에는 유교 사상이나 고대중국의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있다.
•유토피아를 향한 직선적 진보가 가정되어 있다.
• 일단 도달하면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된다.
운명이나 초인간적인 개입이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
•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 그리고 유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은 동양인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는 여러면에서 반대된다. 동양인들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추구하고,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동양의 유토피아는 ‘과거‘에 존재하며, 인간의 소망은 ‘현재 상태에서 과거의 완전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 P104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이해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오류를 쉽게 범한다.

• 발생한 결과 이외의 다른 결과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발생한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범하는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인지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Baruch Fischhoff)에 의해 처음 증명되었다. 그는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있었다고 과잉 확신하는 경향‘과 ‘그 때문에 당연히 놀라워해야 할 예외적인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이를 후견지명 효과, 심리학 용어로는 과잉 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 P126

물론 보르헤스 자신이 편의적으로 만든 분류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세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한 방식이고대 그리스인들의 방식과는 상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공통의 속성을 지닌 것들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지만, 철학자 도널드 먼로에 따르면 중국인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서로 공평(resonance)‘을 통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을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오행설에 따르면 ‘봄, 동쪽, 나무, 바람, 초록‘은 모두 동일한 범주에 속했다. 왜냐하면, 바람의 변화가 나머지 네 가지에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범주화라는 지적 작업 자체에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장자는 "범주화는 지식을 제한하고 더 큰 지식을 분열시키는 짓이다"라고 적고 있다. 도덕경』은 범주화에 의존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 P135

첫째, 동사는 영어와 기타 유럽 언어에서보다도 동양의 언어에서지각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중국어나 일어, 한국어에서는 동사가문장의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치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곳들이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동사가 대개 문장의 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지각적으로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 P146

넷째, 영어나 다른 유럽 언어에서 ‘속명 (generic nouns, 어떤 범주자체에 대한 이름)‘은 문장 구조상 확연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a duck‘, ‘the duck‘, ‘the ducks‘, ‘ducks‘라는 표현을 쓸수 있는데, 이 중 마지막 표현은 속명에 해당한다. 즉, 오리 일반을지칭하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이처럼 ‘특정 오리 한 마리‘, ‘특정오리 집단‘, ‘오리 일반‘ 등을 분명히 구분지어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는 이러한 구분이 쉽지 않으며, 오로지 맥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발달심리학자인 수잔 겔먼(Susan Gelman)과 트와일라 타디프(Twila Tardif)가 영어를 사용하는 어머니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어머니를 비교 연구한 결과, 영어권 어머니들이 속명을 사용하는 빈도가 2배 높았다고 한다. - P147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뿌리 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nge) 동양의 사고에서 우주는정적인 곳이 아닌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곳이다. 어떤 사건이 현재 특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상태가 곧 변화할 것이라는징후로 간주된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들 역시 고정적이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
2) 모순의 원리(The principle of contradiction)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립(oppositions), 역설(paradoxes), 변칙(anomalies)이 늘 발생하며, 신/구 선/악, 강/약이 모든 사물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대립은 사실상 서로를 완성시키고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도교에서는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주장들이 역동적인 조화의 상태로 존재하며, 서로 대립적인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상호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도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된다.
도교의 창설자인 노자는 "사람들이 미를 미로서 인정할 때에야비로소 추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을선으로서 인정해야 마침내 사악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존재와 부재는 상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을 정치가 군인, 철학자, 시인으로 명명했던 중국의 독재자 마오쩌둥도 "대립은 서로 맞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연결, 상호침투, 상호 관통, 상호 의존을 뜻한다"라고 기술하였다.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onship, or Holism) 변화와 대립에 대한 그러한 견해는 자연스레 어떤 사물도다른 것들과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무수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연관되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물론 변증법적 사고의 이 세 가지 원리는 서로 관련되어 있 - P165

어쩌면 서양인들의 눈에도 이와 같은 동양적인 사고들이 낯설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칸트, 피히테, 헤겔의 시대 이래로이런 종류의 변증법 전통은 서양 사상의 흐름에서도 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모순을 수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모순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변증법적 사고보다 더 공격적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변증법적 사고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존재한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고 전통 안에 동양적 변증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논리적 원리들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양 사고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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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 마셔버리지 뭐 수당 입금이 다음 주에 되니까." 레지가 말했다.
로니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가난하게 자라면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복지 수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교회에서 구호물품을 나눠 줄 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교구 주민이 동정이 서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봐줄 때까지 기다린다. 형이 자신이 신고 있던 상표 없는 신발을 물려줄 때까지, 그 신발의 해진 부분에 대충 접착제를 바르고 신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빚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죽음을 기다린다. 로니는 그기다림에 진절머리가 났다. - P98

보러가드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더스터에서 나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을 다 내보이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상처가 벌어져 진물이 녹아내리는 그곳을 정확히 알았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보이면 그들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어떤 지점이 약한지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폭발할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방금처럼 전화를 먼저 끊는 것과 같이. 그는 사자처럼 입을 떡 벌렸다가 다시 닫고는 머리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이 기분을 떨쳐버려야 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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