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오바마 행정부와 은행 경영진들은 이와는 다른 논리를 제시했다. 그들은 주택 소유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시행할 수없는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대다수 시민들이 힘들게 일해서 주택 담보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는데, 대출금 상환을 제대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는 주장이 그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주택 소유자들을 지원하면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즉 사람들을 주택 담보 대출금 연체의 곤경에서 구해 주면, 대출금을 상환하려는 유인이 약화된다는 이야기다. 이 논리는 은행에 대해서도 수월하게, 그리고 훨씬 강력하게 적용될 수있는 이야기다. 은행들은 되풀이해서 구제 금융 지원을 받았다. 1995년 멕시코 구제 금융, 1997~1998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의 구제 금융, 1998년 러시아 구제 금융, 2000년 아르헨티나 구제금융, 그 밖의 여러구제 금융 사례들은 모두 은행권의 과잉 대출로 경제 위기를 맞은 나라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은행 구제 금융이었다. 2008~2009년에 미국 정부가 실시한 구제 금융은 전에 없이 큰 규모였다. 은행권이 도덕적 해이와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났으나-은행 구제 금융이 거듭하여 은행의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를 촉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는 이 점을 무시하고 경영진을 해고하거나(영국 정부가 채택한 방식) 주주들과 채권 보유자들에게 타격을 입힘으로써 나쁜 행동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했다. 은행들과는 달리, 집을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상습범이 아니었다. 은행의 주주들과 채권 보유자들은 푸짐한 선물을 받았지만, 이 사람들은 주택에 투입했던 자금을 모두 날려야 하는 상황으로 떠밀려 갔다. - P302
47. 이들이 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지원을 꺼렸던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들은정부의 재정 지원, 즉 정부가 은행들을 지원하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을 돕는 데 투입할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지원금이 늘어나면, 은행들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은행들의 재정상황이 위태로운 상황- 당시에는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서 자금이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지 확실치 않았다 - 이었으므로, 이들의 최우선 순위는 은행 지원금으로 쓸 자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데 있었다. 이들은 모기지 구조 조정에 쓰기 위해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가운데 약 500억 달러를 비축해 놓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오바마 행정부는 이중에서 약 34억 달러만을 사용했다. 이는 모기지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실질적인 요인은 지원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은행들이 거세게 반발한 데 있었음을 시사한다. - P561
진실은 이렇다. 성공적인 대규모 경제를 달성한 사례 뒤에는 늘 정부의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급속한 성장을 이룬 나라들(예컨대, 중국)과 상당히 높은 생활 수준에 도달한 나라들(예컨대, 스칸디나비아 제국에서는 정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의 이데올로기는너무나 확고하고, 작은 정부, 정부 서비스의 민간 이관, 민영화, 그리고 규제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파는 정부의 성공사례뿐 아니라 시장 실패 사례들까지 무시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반복되는> 금융 위기를 더 이상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반복되는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 출현 이후로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납세자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 금융 위기 이전에 금융 부문이 수행한 비효율적인 자본 할당으로 발생한 손실과 거품 붕괴 이후 미국 경제의 잠재 산출량과 실질 산출량 간의 차이를 더하면, 그 액수는 수조 달러에 이른다. 대공황이 발생한 후, 정부는 금융 부문을 규제하고 은행권이 대출 업무에 주력하도록 하여 기업 활동의 급속한 팽창에 필요한 돈을 공급하는 등,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금융 안정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정부는사기와 소비자 기만의 여지를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는 등, 시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까지 정부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규제 완화 정책은 경제 불안을 부채질했다. 정부의 감독이 줄어들면서 사기 행위가 늘어나고 경쟁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 P307
지금은 예산 적자 확대에 따른 예산 정밀 검토가 더욱 강화되면서, 기업복지의 삭감(명목은 다를지 모르지만)이 주요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 복지 중 일부는 이미 삭감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2012년 초부터 30년 동안계속되었던 60억 달러 규모의 에탄올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유력한 산업들과 기업들은 지금까지 받아온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안전망, 즉 <사회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개인과 가구들>을 당면한 위험들로부터, 특히 보험을 통해 대비할 수 없는 위험들로부터 보호해야 마땅하다. 기업들을 사업상 실수에서 벌어진 결과로부터 보호하거나, 기업들의 금고를 채워 주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가 아니다. 시장에 규율이 없으면(기업들이 위험의 유리한 부분만 추구하고 납세자들에게 손실만을 떠안긴다면) 그 시장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 P313
나는 국제통화기금의 일관성 없는 주장과 지배구조의 실패 사례도 파헤쳤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은 <지배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세였지만, 정작 국제통화기금의 지배 구조 자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금융부문은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에 개발도상국들은 발언권이없었다. 국제통화기금은 금융 부문의 과도한 영향력에 휘둘려 긴축 정책에몰두하고 있었다. 이 조직은 서구의 채권자들이 채무 상환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개발도상국들에게 재정지출을 줄여채무 상환 자금을 더 많이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직이 자본시장 자유화(국경을 넘나드는 돈, 특히 투기성 단기 자금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조치를 철폐하는 정책)를 적극 지지한 것 역시 금융 부문의 과도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자본 시장 자유화가 경제 성장의 가속화를 낳는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경제 불안정의 심화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많았다. 하지만 선진공업국들의 입장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는 서구 금융 회사들이 개발도상국들에 진출할 기회(그리고 그곳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기회를 넓혀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자기 강화 경향을 보이는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의 조합에 포획되어있었다. 국제통화기금은 당연히 나의 관점을 불쾌하게 여겼다. 국제통화기금은 나를 겨냥하여 맹렬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내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본통제가 바람직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그들은 나를 돌팔이라고 몰아세웠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내 저서가 기여한 바가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제는 지배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일부 개혁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더많은 개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제 국제통화기금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본 통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 P315
국내 총생산 지표는 어째서 해당 국가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서 그릇된인상을 심어 주는 걸까. 일인당 국내 총생산으로는 일부 부문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부문과공공 부문이다. 오늘날 이 두 부문은 국내 총생산이 처음으로 측정되었던50년 전에 비해 훨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의료비지출이 예전보다 늘어난 데 비해 기대 수명 및 여러 가지 건강 지표상의 성과는 하락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성과>라면, 의료 부문의 효율성이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은 프랑스보다 못한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국내 총생산 지표를 이용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의료 부문의 비효율성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면 미국의 국내 총생산 역시 늘어난다. 우리가 표준적인 성과지표로 사용하는 국내 총생산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개인이나 국가는 자신의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며살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한시적으로만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가 그랬다. 대다수 개인들은 돈을 빌려서 생활 수준을 유지했고, 국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세기 초 십 년 동안 미국 경제가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주택 시장 거품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는 인공적인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조해서 지속 불가능한 소비를 이어갈 수 있었다. - P316
71. 국가 간 비교를 하려면 생활비 격차를 감안해야만 한다. 현재 환율하에서는 생활비는 나라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생활비 격차는 어디에 돈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구입해야 하는 사람은 프랑스에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 생활 수준이 훨씬 낮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감안한 생활비 비교 방식을 PPP(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 평가)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공식 환율을 적용할 때 2010년 미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중국의 10배가 넘지만 PPP를 적용하면 중국의 6배다. - P5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