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오바마 행정부와 은행 경영진들은 이와는 다른 논리를 제시했다. 그들은 주택 소유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시행할 수없는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대다수 시민들이 힘들게 일해서 주택 담보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는데, 대출금 상환을 제대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는 주장이 그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주택 소유자들을 지원하면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즉 사람들을 주택 담보 대출금 연체의 곤경에서 구해 주면, 대출금을 상환하려는 유인이 약화된다는 이야기다.
이 논리는 은행에 대해서도 수월하게, 그리고 훨씬 강력하게 적용될 수있는 이야기다. 은행들은 되풀이해서 구제 금융 지원을 받았다. 1995년 멕시코 구제 금융, 1997~1998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의 구제 금융, 1998년 러시아 구제 금융, 2000년 아르헨티나 구제금융, 그 밖의 여러구제 금융 사례들은 모두 은행권의 과잉 대출로 경제 위기를 맞은 나라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은행 구제 금융이었다.
2008~2009년에 미국 정부가 실시한 구제 금융은 전에 없이 큰 규모였다. 은행권이 도덕적 해이와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났으나-은행 구제 금융이 거듭하여 은행의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를 촉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는 이 점을 무시하고 경영진을 해고하거나(영국 정부가 채택한 방식) 주주들과 채권 보유자들에게 타격을 입힘으로써 나쁜 행동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했다. 은행들과는 달리, 집을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상습범이 아니었다. 은행의 주주들과 채권 보유자들은 푸짐한 선물을 받았지만, 이 사람들은 주택에 투입했던 자금을 모두 날려야 하는 상황으로 떠밀려 갔다.  - P302

47. 이들이 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지원을 꺼렸던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들은정부의 재정 지원, 즉 정부가 은행들을 지원하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을 돕는 데 투입할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지원금이 늘어나면, 은행들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은행들의 재정상황이 위태로운 상황- 당시에는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서 자금이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지 확실치 않았다 - 이었으므로, 이들의 최우선 순위는 은행 지원금으로 쓸 자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데 있었다. 이들은 모기지 구조 조정에 쓰기 위해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가운데 약 500억 달러를 비축해 놓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오바마 행정부는 이중에서 약 34억 달러만을 사용했다. 이는 모기지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실질적인 요인은 지원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은행들이 거세게 반발한 데 있었음을 시사한다. - P561

진실은 이렇다. 성공적인 대규모 경제를 달성한 사례 뒤에는 늘 정부의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급속한 성장을 이룬 나라들(예컨대, 중국)과 상당히 높은 생활 수준에 도달한 나라들(예컨대, 스칸디나비아 제국에서는 정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의 이데올로기는너무나 확고하고, 작은 정부, 정부 서비스의 민간 이관, 민영화, 그리고 규제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파는 정부의 성공사례뿐 아니라 시장 실패 사례들까지 무시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반복되는> 금융 위기를 더 이상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반복되는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 출현 이후로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납세자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 금융 위기 이전에 금융 부문이 수행한 비효율적인 자본 할당으로 발생한 손실과 거품 붕괴 이후 미국 경제의 잠재 산출량과 실질 산출량 간의 차이를 더하면, 그 액수는 수조 달러에 이른다.
대공황이 발생한 후, 정부는 금융 부문을 규제하고 은행권이 대출 업무에 주력하도록 하여 기업 활동의 급속한 팽창에 필요한 돈을 공급하는 등,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금융 안정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정부는사기와 소비자 기만의 여지를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는 등, 시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까지 정부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규제 완화 정책은 경제 불안을 부채질했다. 정부의 감독이 줄어들면서 사기 행위가 늘어나고 경쟁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 P307

지금은 예산 적자 확대에 따른 예산 정밀 검토가 더욱 강화되면서, 기업복지의 삭감(명목은 다를지 모르지만)이 주요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 복지 중 일부는 이미 삭감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2012년 초부터 30년 동안계속되었던 60억 달러 규모의 에탄올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유력한 산업들과 기업들은 지금까지 받아온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안전망, 즉 <사회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개인과 가구들>을 당면한 위험들로부터, 특히 보험을 통해 대비할 수 없는 위험들로부터 보호해야 마땅하다. 기업들을 사업상 실수에서 벌어진 결과로부터 보호하거나, 기업들의 금고를 채워 주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가 아니다. 시장에 규율이 없으면(기업들이 위험의 유리한 부분만 추구하고 납세자들에게 손실만을 떠안긴다면) 그 시장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 P313

나는 국제통화기금의 일관성 없는 주장과 지배구조의 실패 사례도 파헤쳤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은 <지배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세였지만, 정작 국제통화기금의 지배 구조 자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금융부문은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에 개발도상국들은 발언권이없었다. 국제통화기금은 금융 부문의 과도한 영향력에 휘둘려 긴축 정책에몰두하고 있었다. 이 조직은 서구의 채권자들이 채무 상환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개발도상국들에게 재정지출을 줄여채무 상환 자금을 더 많이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직이 자본시장 자유화(국경을 넘나드는 돈, 특히 투기성 단기 자금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조치를 철폐하는 정책)를 적극 지지한 것 역시 금융 부문의 과도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자본 시장 자유화가 경제 성장의 가속화를 낳는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경제 불안정의 심화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많았다. 하지만 선진공업국들의 입장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는 서구 금융 회사들이 개발도상국들에 진출할 기회(그리고 그곳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기회를 넓혀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자기 강화 경향을 보이는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의 조합에 포획되어있었다.
국제통화기금은 당연히 나의 관점을 불쾌하게 여겼다. 국제통화기금은 나를 겨냥하여 맹렬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내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본통제가 바람직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그들은 나를 돌팔이라고 몰아세웠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내 저서가 기여한 바가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제는 지배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일부 개혁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더많은 개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제 국제통화기금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본 통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 P315

국내 총생산 지표는 어째서 해당 국가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서 그릇된인상을 심어 주는 걸까. 일인당 국내 총생산으로는 일부 부문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부문과공공 부문이다. 오늘날 이 두 부문은 국내 총생산이 처음으로 측정되었던50년 전에 비해 훨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의료비지출이 예전보다 늘어난 데 비해 기대 수명 및 여러 가지 건강 지표상의 성과는 하락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성과>라면, 의료 부문의 효율성이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은 프랑스보다 못한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국내 총생산 지표를 이용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의료 부문의 비효율성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면 미국의 국내 총생산 역시 늘어난다.
우리가 표준적인 성과지표로 사용하는 국내 총생산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개인이나 국가는 자신의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며살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한시적으로만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가 그랬다. 대다수 개인들은 돈을 빌려서 생활 수준을 유지했고, 국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세기 초 십 년 동안 미국 경제가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주택 시장 거품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는 인공적인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조해서 지속 불가능한 소비를 이어갈 수 있었다. - P316

71. 국가 간 비교를 하려면 생활비 격차를 감안해야만 한다. 현재 환율하에서는 생활비는 나라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생활비 격차는 어디에 돈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구입해야 하는 사람은 프랑스에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 생활 수준이 훨씬 낮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감안한 생활비 비교 방식을 PPP(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 평가)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공식 환율을 적용할 때 2010년 미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중국의 10배가 넘지만 PPP를 적용하면 중국의 6배다.  - P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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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소변을 보다가 피를 발견했다. 월경이었다. 물론 폐경기 초기에는 월경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고 폐경기가 왔다고 해서 월경이 갑자기 끊기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폐경을 맞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취기와 생리 탓에 약해진 마음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앨리스는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쉰살이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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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때, 그러니까 1년여 전부터 그녀의 머릿속에서 뉴런들이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귀에서 멀지 않은 곳의 뉴런들이었지만 너무조용한 죽음이었기에 그녀 자신에게조차 들리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뉴런들이 스스로 파멸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분자 살해였든 세포 자살이었든, 뉴런들은 죽기 전에 그녀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경고할 수가 없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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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네스갤브레이스는 60여 년 전에 이미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완전 경쟁>에 근접한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대항권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썼다. 수많은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이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만 미국 언론계에는 참된 의미의 경쟁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할 여지는 있다. 우리는 광고시장을 제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념 시장을 제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독점금지법의 감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를 지배하려는 언론 기업들의 시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 공적 지원을 제공하면 언로를 다양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익은 공공재다.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는다. 경제학계의 기본적인 시각은 민간 시장을 자율에 맡겨 두면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누리는 편익은 크지만 개인이 누리는 편익은 그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대중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에 긴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다양한 언론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러 국가들이 이런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국영 공익 방송국과 지역 자체 라디오 방송국, 소규모 공동체 내의 소규모 신문사 등 언론에 대해 폭넓은 공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 P248

경제학자들과 통계학자들은 투표권자 관리과정상의 실수를 두 가지로 구별한다. 하나는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실수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권이 없는 사람이투표를 하도록 허용하는 실수다. 공화당은 두 번째 실수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첫 번째 실수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화당의 주장은 표리부동한 것이다. 공화당이 두 번째 실수를 차단하겠다며 만들려고 하는 장벽은 사실 <경제적 장벽일 뿐, 투표권자로서의 자격 여부와 관련된 장벽이 아니다.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정부가 교부한 사진 부착 신분증(대표적인 것이 미국 차량국이 발행하는 운전면허증이다)을 요구하는 것은 차량국에 가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다. 투표권자임을 확인받으려면 출생증명서나 기타 서류가 필요한데, 이 서류까지 준비하려면 더 많은돈과 시간, 그리고 공무 행정 조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미국에서 특정 집단을 투표 참여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일들이 벌어지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투표 참여를 제한하는 계획들은 여전히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그 계획들은 어김없이 가난한 사람들과 인맥이 시원찮은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교묘한 방법을 이용해서 특정 집단의 정치 참여를 막을 수 있다. 이를테면 빈민층이나 이민자 집단에 대한투표 독려를 부실하게 진행하거나, 투표소에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거나, 일부 중죄인의 투표를 막는 방법이다. 업무 태만인지 계획적인 선거권 박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본질이야 어떻든 이런 행위들은 특정 집단의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행위들은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 행위를 막는 장벽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이런 효과는 특히 투표를하려는 열의가 낮고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높은 비특권 계층 가운데서 크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결과적으로 유권자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 네 명 중 한 명(5,100만 명 이상)이 유권자 등록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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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들은 이중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시도들이 성공하면 그만큼 유권자들의 의견은 무시된다. 게다가 모든 유권자가 효과적으로 투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원칙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확인하면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환멸감이 강화되고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의식이 커지게 된다. - P250

 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한 시도들, 정치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인식, 그리고 상위 계층에게 장악된 언론이 정보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는 인식, 과도한 정치자금 기부 관행 등을 통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금권의 힘 등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일반인들의 환멸감을 강화한다. 환멸감은 특히 하위 계층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노골적인 선거권 박탈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상위 계층에게 유리한 결과를 몰아준다. 이런 상황은 상위 1퍼센트의 부유층과 그들이 가진 돈이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넓히고, 그 결과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감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환멸감 때문에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또한 사람들을 투표소에 나오게 하려는 노력이 상위 계층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되기도 한다. - P255

지금 적용되고 있는 세계화의 규칙은 미국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세계화 체제의 효율성 향상에도, 공정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세계화 규칙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이룰 수있다. 미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양쪽 모두에게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세계화를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세계화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시장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그리고 막강한 힘을 가진 소수 계층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화도 길들일 수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속시키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세계화를 길들여야 한다. - P268

심리학 연구의 두 번째 중요한 주장은 개인이 기존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그렇지 않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것이다.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는 기억에 새겨지고,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며, 신념을 강화한다.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되거나 쓸데없는것으로 치부되거나 잊힌다. 이런 왜곡을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이라부른다.
이 과정에서 신념이 강한 지속력을 발휘하는 <허구의 평형 상태equili-brium fictions>가 나타날 수 있다. 개인이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할 때 그의눈에는 자신의 신념에 완전히 부합하는 증거만 들어오기 때문이다. - P276

18믿음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르다. 원자의 운동 방식에 관한 믿음은 원자의 실제적인 운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 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에관한 믿음은 그 실제적인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 억만장자 금융업자인조지 소로스는 이런 현상을 <재귀성reflexivity>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뛰어난 투자자로 이름을 날렸던 케인스는 시장을 미인선발 대회에 비유했다. 남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 미인 선발 대회의 우승자가 된다.
시장이 스스로 현실을 창조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이 효율적이며 정부규제는 효율성을 저해할 뿐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으면, 정부는 규제를 걷어 낼 가능성이 높고, 정부 규제 완화는 시장의 실제적인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경제 위기 때 규제 완화 정책이 실시된 이후의 시장상황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의 해석을 둘러싸고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우파는 외견상으로 드러난 시장실패를 정부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은 하위 계층의 주택소유를 장려했던 정부의 노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은 보수권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 근거를 평가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관점은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시장이 결코 나쁜일을 할 수 없고 정부는 결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미미한 타당성을 근거로 자신의 관점이 타당하다는 확신을 굳힌다. 이것 역시 <확증편향>의 한 가지 사례다. - P278

관념이 느리게 변화하는 이유는 관념과 인식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데 있다. 어떤 신념을 지지하는 나의 생각은 비슷한 신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국내 여행과 세계 여행을 할 때마다어떤 곳에서는 어떤 관념(이를테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효율성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나 정부가 경기 침체를 야기한다는 주장, 혹은 지구 온난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통념으로 통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정반대의관념이 <진리>로 여겨지는 현실에 종종 부딪히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각각의 관념이 지닌 증거를 직접 검토하지 않는다. 설사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지구 온난화의 증거를 평가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불과하다. 그러나 자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신뢰하는 다른 사람들이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신념이 타당하다는 확신을 강화한다.
사회적 구성물인 관념과 인식은 개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종 및 계급 등의 차별 의식이 용인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회도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종 혹은 계급을 차별하는 <관념>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도 한다.
사회는 특정한 신념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신념 변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만 개인의 신념 변화가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 변하지 않으면 <개인>의 신념 변화는 이루어지지않는다.
관념과 인식을 사회적 구성물로 파악하면 사회적 신념이 상당히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관념을 받아들이는 시람들이 많아지면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에 이를 수 있다. 이때 그 관념은 새로이 출현한 <현실적인 사회적 구성물〉, 즉 새로운 일반적 통념이 된다. - P286

문제는 물건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듯이, 관념도 시장에서 거래될 수있다는 점이다. 정책을 뒷받침하는 관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대 마케팅 이론은 인식을 형성하는 기술과 학문을 가르친다. 풍족한 자원을 가진사람들(부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룬다)은 인식을 형성하는 데 투자할 자원을 가지고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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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면서 

재작년 가을 어느 사사로운 모임에서 이재형 선배가무슨 말 끝에 "저 이 형이 여운형 선생을 잘 알아"라고말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신경림 선생이 그 후나더러 동양 선생의 전기를 한번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 텐데요" 하고 일단 사양하는 입장을 취했다. 며칠 후 신 선생은 또다시꼭 써보라고 간곡하고도 격려에 찬 말씀을 하시지 않는가. 신 선생께서 모처럼 두 번씩이나 말씀하시는 것을 사양한다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난다고 생각돼서 미력을 무릅쓰고 써보겠다고 대답했다.
몽양의 전기를 쓰라는 말은, 실은 나에게 있어서 생에 가장 벅찬 감격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을 주저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모양의 정치적 활동에는 전혀 관여한 일이 없었고 다만 문학 서생으로서 옆에서 몽양을 바라만 보았기 때문이다. 해서 몽양 전기의 필자로는 정치 일선에서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쟁쟁하고도 당당한 당대의 독립투사나 학자 중의 누군가가 의당 붓을 들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한데 그 투사 그 학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답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혹은 작고했고, 혹은 행방불명이 됐고, 혹은 풍진 속 깊숙이 가물거리는 촛불일 게고… 다만 두산 이동화 선생만이 홀로 건재할 뿐이 아니던가. - P27

역사는 흐른다

몽양 여운형(呂運)이 살다간 61년의 세월은 조선민족 근현대사에서 망국-식민-분단의 시작이라는 비운의 소용돌이 한복판이었다. 여운형이 태어난(1886) 무렵의 나라 형편은 극도로 어수선했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직후라면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겠는가. - P35

1905년 미국·영국의 지지를 얻은 일본은 무력한 국왕과매국 각료 을사오적(李完用·李夏榮·李根澤·李址鎔·權重顯)을 협박하여 보호조약을 강제 체결함으로써 조선의 국권을 유린하였다. 이러한 망국의 사태에 직면하여 민영환이 동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등 항일 국권회복운동은 개화 · 계몽사상가들의 언론활동과 애국적 유생들의 상소 및 분신의 항거를 도화선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어갔다. 광범위한 대중이 국권회복을 위한 반일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몸을 던졌다.
여운형 역시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박탈당한 민족현실에 통분해 마지않았다. 그는 평생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며 민영환의 유서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암송했다고 한다.

아아, 나라와 국민의 치욕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국민은 향(向) 생존경쟁 속에서 전멸할 것이런가?
그러나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되고 죽음을 기하는 자는 살아나갈 길이 필연코 있을 것이니, 국민 여러분이 이 이치에 어두우리까. 영환 이 몸이 죽음으로써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이천만 형제 동포 여러분께 사죄하나니, 영환 이 몸이 비록 죽는다 하나 영혼은 살아 있어 반드시 국민 제군을 지하에서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는 더욱 분려(奮勵)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술을 닦아 마음과 힘을 합하여서 다시금 우리의 자유 독립을 찾을진대, 죽은 이 몸도 저 세상에서 기쁨을 금치 못하리니, 아아 동포여 조금도 실망을 말지어다. 이에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 앞에 결별을 고하노라. - P57

이 당시 여운형은 가정형편상 직업을 갖기 위해서 흥화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이 보장되는 관립 우체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을사조약에 따라 일본이 통신원을 장악하게 되자, 우체학교도 저절로 일본인 관리하에 들어갔다. 여운형은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우체학교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졸업 후에는 월 27원을 받을 수 있는 관리로서의 길이 약속된 자리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보장의 탄탄대로를 단숨에 박차버린 것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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