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네스갤브레이스는 60여 년 전에 이미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완전 경쟁>에 근접한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대항권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썼다. 수많은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이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만 미국 언론계에는 참된 의미의 경쟁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할 여지는 있다. 우리는 광고시장을 제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념 시장을 제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독점금지법의 감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를 지배하려는 언론 기업들의 시도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 공적 지원을 제공하면 언로를 다양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익은 공공재다.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는다. 경제학계의 기본적인 시각은 민간 시장을 자율에 맡겨 두면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누리는 편익은 크지만 개인이 누리는 편익은 그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대중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에 긴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다양한 언론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러 국가들이 이런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국영 공익 방송국과 지역 자체 라디오 방송국, 소규모 공동체 내의 소규모 신문사 등 언론에 대해 폭넓은 공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 P248
경제학자들과 통계학자들은 투표권자 관리과정상의 실수를 두 가지로 구별한다. 하나는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실수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권이 없는 사람이투표를 하도록 허용하는 실수다. 공화당은 두 번째 실수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첫 번째 실수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화당의 주장은 표리부동한 것이다. 공화당이 두 번째 실수를 차단하겠다며 만들려고 하는 장벽은 사실 <경제적 장벽일 뿐, 투표권자로서의 자격 여부와 관련된 장벽이 아니다.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정부가 교부한 사진 부착 신분증(대표적인 것이 미국 차량국이 발행하는 운전면허증이다)을 요구하는 것은 차량국에 가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다. 투표권자임을 확인받으려면 출생증명서나 기타 서류가 필요한데, 이 서류까지 준비하려면 더 많은돈과 시간, 그리고 공무 행정 조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미국에서 특정 집단을 투표 참여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일들이 벌어지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투표 참여를 제한하는 계획들은 여전히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그 계획들은 어김없이 가난한 사람들과 인맥이 시원찮은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교묘한 방법을 이용해서 특정 집단의 정치 참여를 막을 수 있다. 이를테면 빈민층이나 이민자 집단에 대한투표 독려를 부실하게 진행하거나, 투표소에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거나, 일부 중죄인의 투표를 막는 방법이다. 업무 태만인지 계획적인 선거권 박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본질이야 어떻든 이런 행위들은 특정 집단의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행위들은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 행위를 막는 장벽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이런 효과는 특히 투표를하려는 열의가 낮고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높은 비특권 계층 가운데서 크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결과적으로 유권자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 네 명 중 한 명(5,100만 명 이상)이 유권자 등록을 포기한다. ••••••• 선거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들은 이중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시도들이 성공하면 그만큼 유권자들의 의견은 무시된다. 게다가 모든 유권자가 효과적으로 투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원칙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확인하면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환멸감이 강화되고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의식이 커지게 된다. - P250
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한 시도들, 정치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인식, 그리고 상위 계층에게 장악된 언론이 정보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는 인식, 과도한 정치자금 기부 관행 등을 통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금권의 힘 등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일반인들의 환멸감을 강화한다. 환멸감은 특히 하위 계층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노골적인 선거권 박탈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상위 계층에게 유리한 결과를 몰아준다. 이런 상황은 상위 1퍼센트의 부유층과 그들이 가진 돈이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넓히고, 그 결과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감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환멸감 때문에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또한 사람들을 투표소에 나오게 하려는 노력이 상위 계층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되기도 한다. - P255
지금 적용되고 있는 세계화의 규칙은 미국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세계화 체제의 효율성 향상에도, 공정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세계화 규칙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이룰 수있다. 미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양쪽 모두에게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세계화를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세계화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시장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그리고 막강한 힘을 가진 소수 계층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게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화도 길들일 수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속시키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세계화를 길들여야 한다. - P268
심리학 연구의 두 번째 중요한 주장은 개인이 기존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그렇지 않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것이다.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는 기억에 새겨지고,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며, 신념을 강화한다.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되거나 쓸데없는것으로 치부되거나 잊힌다. 이런 왜곡을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이라부른다. 이 과정에서 신념이 강한 지속력을 발휘하는 <허구의 평형 상태equili-brium fictions>가 나타날 수 있다. 개인이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할 때 그의눈에는 자신의 신념에 완전히 부합하는 증거만 들어오기 때문이다. - P276
18믿음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르다. 원자의 운동 방식에 관한 믿음은 원자의 실제적인 운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 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에관한 믿음은 그 실제적인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 억만장자 금융업자인조지 소로스는 이런 현상을 <재귀성reflexivity>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뛰어난 투자자로 이름을 날렸던 케인스는 시장을 미인선발 대회에 비유했다. 남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 미인 선발 대회의 우승자가 된다. 시장이 스스로 현실을 창조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이 효율적이며 정부규제는 효율성을 저해할 뿐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으면, 정부는 규제를 걷어 낼 가능성이 높고, 정부 규제 완화는 시장의 실제적인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경제 위기 때 규제 완화 정책이 실시된 이후의 시장상황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의 해석을 둘러싸고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우파는 외견상으로 드러난 시장실패를 정부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은 하위 계층의 주택소유를 장려했던 정부의 노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은 보수권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 근거를 평가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관점은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시장이 결코 나쁜일을 할 수 없고 정부는 결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미미한 타당성을 근거로 자신의 관점이 타당하다는 확신을 굳힌다. 이것 역시 <확증편향>의 한 가지 사례다. - P278
관념이 느리게 변화하는 이유는 관념과 인식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데 있다. 어떤 신념을 지지하는 나의 생각은 비슷한 신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국내 여행과 세계 여행을 할 때마다어떤 곳에서는 어떤 관념(이를테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효율성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나 정부가 경기 침체를 야기한다는 주장, 혹은 지구 온난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통념으로 통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정반대의관념이 <진리>로 여겨지는 현실에 종종 부딪히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각각의 관념이 지닌 증거를 직접 검토하지 않는다. 설사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지구 온난화의 증거를 평가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불과하다. 그러나 자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신뢰하는 다른 사람들이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신념이 타당하다는 확신을 강화한다. 사회적 구성물인 관념과 인식은 개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종 및 계급 등의 차별 의식이 용인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회도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종 혹은 계급을 차별하는 <관념>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도 한다. 사회는 특정한 신념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신념 변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만 개인의 신념 변화가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 변하지 않으면 <개인>의 신념 변화는 이루어지지않는다. 관념과 인식을 사회적 구성물로 파악하면 사회적 신념이 상당히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관념을 받아들이는 시람들이 많아지면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에 이를 수 있다. 이때 그 관념은 새로이 출현한 <현실적인 사회적 구성물〉, 즉 새로운 일반적 통념이 된다. - P286
문제는 물건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듯이, 관념도 시장에서 거래될 수있다는 점이다. 정책을 뒷받침하는 관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대 마케팅 이론은 인식을 형성하는 기술과 학문을 가르친다. 풍족한 자원을 가진사람들(부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룬다)은 인식을 형성하는 데 투자할 자원을 가지고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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