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들은 너의 어두운 거리에서 창백한 표지판들을 마치 이마처럼 치켜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름이, 주름 잡힌 이마 같은 표지판들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들이 이 세상이요, 그들은 침대, 굶주림 그리고 여자라고 불린다. 울라 혹은 카롤라. 얼어붙은 발과 눈물, 정거장들의 이름은 담배나 립스틱 또는 술이다. 아니면  신이거나 빵이다. 그리고 정거장의 창백한 이마들, 그 표지판들은 이름이 있다. 그들은 여자라고 불린다.
너 자신이 철로다. 녹슬고 얼룩이 진, 은빛으로 반짝이고 아름답고 막연한 철로다. 너는 정거장으로 나뉘고, 역과 역사이에 묶여 있다. 정거장들에는 표지판이 있고 저기 여자가, 달이 혹은 살인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다.
너는 열차다. 덜커덩거리며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열차다. 너는 철로다. 온갖 일이 네 위에서 일어나고 너를 녹슬어 눈멀게 하고 은빛으로 반짝이게 한다.
너는 인간이다. 너의 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도 없이 긴 목 위 어디엔가 붙어 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이는 아무도 없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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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이브는 새롭고 강력한 수치심 머신의 피해자였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이끄는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의 조롱으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이용하고 퍼뜨린다. 대형 연구실에서 수학자는 심리학자 및 인류학자와 긴밀히 협업해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 기계를 학습시킨다. 이들의 목적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끌어들여 광고라는 금광을 캐는 것이다. 이용자를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섹스만큼이나 강력하다. 데이터 과학자와 고위 경영진이 조롱에 기반한 전략을 따로 세우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여기에 주목한다. 조롱은 트래픽을 올리고 수익을 높인다. - P136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탄산음료 코너에서 목격한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친구나 이웃끼리 공유하며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쩌다 한번 넘어진 일도 전 세계가 공유한다.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이 드라마에 동참한 수백만 명은 거대 기술기업에 공짜 노동을 제공한다. 이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우리가 만드는 사회를 규정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한다. 또 온라인에 떠도는 수치심 문화는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뿐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이는 대상에도 영향을 준다. - P137

알고리즘 설계가 이렇다 보니,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분노 자극엔 매우 능숙하지만 평화로운 합의 도출에는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무능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페이스북 임원진은 자사의 사업모형과 관련해 불편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 내부 연구 자료를 일단 무시하고 넘어갔다. 이후 2020년 페이스북의 의뢰로 진행한 시민권 감사에서 "페이스북 리더십은 양극화 문제에 대해, 그리고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극단적이고 양극화된 콘텐츠를 무심코 주입한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않는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들은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루면 "현실 세계에서 위험한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되어 성난 군중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을 이에 대한 근거로 들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 퍼진 음모론에 빠진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죽음과 파괴의 씨앗을 뿌렸고, 미국 부통령의 목을 매달겠다며으름장을 놓았다. - P144

온라인이든 사교모임이든 새로운 동질 집단은 그 집단을 넘어 시야를 확장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동질 집단은 나의 정보 채널을 장악하고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우리는 어리석게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과 공유한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믿어버린다.
우리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우리끼리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현재 다수의 대학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적부에 연락처와 함께 본인이 원하는 인칭대명사를 기입하고 또 여러 인종이나 종족, 성 정체성과 관련해 가장 최근 승인된 용어나 약어를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을 보면 역사적 불의에 맞선 노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한 진전을 ‘이루고‘, 새로운 용어가 그 결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런식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새로운 규범을 싹틔우므로, 옛용어를 고수하는 사람은 이제 방침을 바꿔야 한다. 교실에서 꾸지람을 듣든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남들의 우스꽝스러운 영상을보든, 변화의 계기는 때로 약간의 수치심을 동반한다.
문제는 한 공동체에서 오랜 세월철저한 논쟁을 거쳐 얻어낸것, 즉 진리로 여기는 것을 다른 집단이 매우 생소하게 여길 수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원하는 인칭대명사를 표기하라고? 이걸 왜 하지? 내가 원하는 인칭대명사를 밝히지 않으면 남들에게 무례한 건가? 이런 사람들에게 용어 수정은 정의를 둘러싼 담론의 합리적 결론이 아니라, 고상한 척하는 이질적 집단이 만들어낸 당황스러운 명령이다. 인칭대명사 문제도 소위 깨어 있는 자들이 만든 규범일 뿐이다. 그래서 양측은 서로를 비방하는데, 한쪽은 새로운 교리를 퍼뜨린다고 욕하고, 다른 쪽은 이를 거부한다고 비난한다.
온라인 소모임에 파묻혀 시야가 좁아지면 대화가 편협해지고오해가 생기며 남들을 경멸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상대를 나와 다른 존재일 뿐 아니라, 컬트cults (강렬한 일체감을 바탕으로 극단적 이념을 추구하는 집단, 종교적으로 사이비를 뜻하기도 한다 - 옮긴이) 추종자로 여기게 된다. 보통은 상대방도 우리를 그렇게 본다. - P145

데이터 경제에서 수치심은 두 번째 생명력을 얻는다. 강제퇴거,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당하거나 아동보호법으로 구속될 뻔한 사건, 카지노 여행, 이 모두가 온라인에 풍부한 정보를 남기므로, 수치스러운 데이터를 먹고 사는 다수의 기관에는 그야말로 노다지다. 이런 정보는 사회연결망을 훌쩍 뛰어넘어 신용평가 회사, 담보대출 중개인, 가석방 심사위원회 같은 공식 경제 formal economy부문으로, 더 나아가 수많은 장사꾼과 사기꾼에게까지 뻗어나간다. 디지털이나 문서에 남은 매우 치욕스러운 정보를 수백 수천의 알고리즘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는 남들에게 평가당하고 돈벌이에 이용당하며 각종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다. - P149

바디튠으로 보정한 수영복 사진을 공유하는 것부터 트위터에 정의로운 척 소신 발언을 올리는 것까지, 이 모든 온라인 활동은 거짓과 망상을 부추긴다. 이런 행동은 세상을 달리 규정하는 것 그리고 나의 수치심을 다른 사람을 통해 해소하는 것에 초점을맞춘다. 게다가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좋아요‘, ‘공유하기‘, 이모티콘으로 공감을 표시하므로, 우리는 이런 반응에 현혹되기쉽다. 보정한 내 셀카에 예쁘다는 칭찬이 올라오면 남들은 못생겼고 심지어 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월마트 통로에서 넘어진 뚱뚱한 여성의 사진을 신나게 공유했는데 남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그 여성이 건강해지도록 살짝 자극한 것일 뿐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는 물론 꾸며낸 말이고 생수에 담긴 독과 같다. 애석하게도 그 해악은 개인을 훨씬 넘어선다.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부지런히 끌어들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 우리는 나한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과도한 감정에 몰입하지만, 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수치심 머신이다. - P154

현대적 의미에서 관계 끊기 canceling는 종교적 배척과 비슷하다. 즉 신앙을 떠났다는 이유로 친구 혹은 이웃이었던 사람과 말도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 선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사회에서 인종주의를 추방하고, 여성을 존중하며, 성정체성을 밝힌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그 과정은 여러모로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과 닮았다. 아마추어 탐정들은 SNS에 올라온 게시물을 샅샅이 살핀다. 소프트웨어로도 이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다 말이든 행동이든 허물이 될만한 증거를 찾으면 팔로워를 총동원해 실수한 사람을 공격한다. - P164

도나 힉스의 시각으로 캔슬 문화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존엄성침해가 곳곳에 배어있다. 대화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고 비난받는 자에게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납작 엎드려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만, 사과한다 해도 비난이 줄지 않는다. 인터넷 거물기업의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증폭되는 이 과정은 규칙을 강요하고, 단 한 번의 잘못도 처벌하며, 적법한 절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힉스는 섣부른 판단 대신 일단 사람들의 말을 믿어보자고 권한다.
충동적 비난을 자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덕성을 과시하는 트윗이 정작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시에 살다가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교외의 부유한 백인 동네로 이사 간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모종의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자기 동네 캐런이 추태 부리는 영상을 찍어 신랄한 비난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자신은 이들과 달리 고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은 만족감을 줄지 몰라도, 반인종주의 활동의 행동 지침으로 삼기에는 너무 저급하다. 인종별 학교 분리와 거주지 분화 현상을 없애고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도 더 필요한 일이다.  - P165

이 현상은 1619년 아프리카 노예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이래형성된 인종 관계의 양상을 그대로 따른다. 억압자들은 수치심을느끼며, 그중 남들보다 유독 심하게 느끼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자신이 인권 유린에서 혜택받는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다른 신화를 중심으로 뭉쳐야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일례로 19세기에 사람의 능력을 두개골의 형태 및 윤곽과 관련지은 골상학이라는 유사과학이 백인우월주의자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과학으로포장한 이 빈약한 논증은 한 세기 후 두개골에서 유전자로 옮겨갔다.
여전히 남부 연합기를 숭상하는 다수의 무리는 자족적인 거짓역사에서 위안을 얻는다. 노예제가 반인륜적 범죄이면 남부인은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을 한 셈이므로, 이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부 연합기 아래 모인 군중은 이보다 듣기 좋은이야기를 고안해야 했다. 인지부조화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결국 허구적 사실이 대거 교과서에 실렸고, 모든 세대가 남부의 잃어버린 대의 Lost Cause (남부 연합이 노예제 때문이 아니라 남부의 자치권을 위해 북부연방과 싸웠다는 역사관으로 노예제도를 합리화한다- 옮긴이)라는 신화를 주입받았다. - P167

우리 대부분 그렇다. 자신의 허점을 직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다들 자신에게 관대한 편이다. 물론 선의를 지닌 사람도 많다. 보통은 선의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시험대에 올랐을 때,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내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수치심 렌즈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즉 모든 관계와 만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심코 흘린 말과 농담조차 남에게 수치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이 감정과 엮인다.
일단 수치심에 눈을 뜨면 이것이 어디에나 있음을 알게 된다.
수습 직원에게 내뱉는 모진 말, 할아버지에게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주며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 열두 살짜리 아이에게 디저트좀 그만 먹으라며 주는 핀잔, 신랄한 리뷰를 리트윗하는 행위 등모두가 수치심을 낳는다. 수치심이 늘 나쁘거나 부적절한 것은아니지만, 일단 이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번개같이 빠른수치심 네트워크에서 언제 조롱이 일어나는지 알아채야 한다.
비만, 가난, 약물 중독, 인종차별 등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아니면 뭔가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는 각기 다른 수치심의 차원에서 저마다 선택과 마주한다. 많은 이들이 어느 한영역에서는 확고한 자세를 보이며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반면 다른 영역에서는 매우 풀어진 태도를 보인다. 어느 날 오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과 대치하며 용감히 싸우던 사람이, 잠시 짬을 내 접속한 트위터에서는 독설을 마구 내뱉을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반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멀두하는 등 우리는 수치심에 관한 한 점잖으면서 동시에 무자비할 수 있다. - P179

내재적 불안정성은 사이언톨로지(과학기술로 정신을 치료한다는미국의 신흥 종교 옮긴이)부터 ISIS(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에 이르기까지 종교 집단과 컬트 집단 내부에도 존재한다. 이탈자와 주변인은 집단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존재다. 집단에 심취한 광신도의 경우, 빈약한 세계관만으로도 의심을 거두고 강경 노선과 정통주의로 돌아선다. 인지부조화를 낳는 허술한 세계관이라도 말이다. 인셀 집단의 가장 열성적인 신도들은 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독자적 교리를 구성해서 채드와 스테이시의 세계관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결국 인셀은 깊은 수치심 때문에, 주류의 관습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경멸 때문에 불쾌한 동맹과 손을 잡기도 한다. 일부 인셀들은 백인 우월주의에서 공통된 명분을 발견한다. 양쪽 집단에 호소력을 갖는 한 가지 이데올로기로 교체 이론replacemen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선진국 여성은 성실히 커리어를 쌓고다양한 관심사를 추구하는 등 지나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백인의인구 성장률이 떨어져 백인 권력의 인구학적 기반이 약해졌다. 이 이론은 여성 인권이 열악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 이를테면 무슬림이나 멕시코인이 피부색이 짙은 아기를 수억 명 출산해서 백인 사회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러한 인식은 조던 피터슨이 주장한 가부장적 여성혐오와 이론적 거리가 아주 가깝다. 게다가 교체이론은 인종주의적 색채가 더 짙을 뿐, 비슷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바로 백인 여성이 자녀를 더 많이 낳도록 강제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파트너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이에따라 인셀이 만날 수 있는 여성들도 많아질 것이다. - P205

대다수 히키코모리는 외로움에 짓눌려 산다. 이는 매우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부분이다. 외로움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점점 증가하는 유행병으로, 코로나 이후 더욱 심각해지면서 자살과 약물과다복용을 급증시켰다. 외로움은 수치심의 여러 징후 중 진형적인 형태이자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만, 가난, 중독, 성 기능 부전 등 수치심의 원인이 무엇이든, 남들의 평가에 취약한 사람은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수치심의 여러형태처럼 자기 강화적self-reinforcing 악순환을 낳는다. 수치심이 외로움을 낳고, 외로우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을 처벌할 확률이 매우 높다.
히키코모리의 처지는 자연스럽게 수치심 산업의 시장이 된다. 현재 많은 업체가 히키코모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큰 경제적 기회는 히키코모리가 아닌 그들 부모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모들은 그야말로 수치심의 피해자다. 노력과 직업적 성공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자식이 자발적으로 방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 P207

나는 그 집 아들이 성적 욕구불만과 사회적 배척에서 자신을구원해줄 공동체와 정체성을 찾고 있다고 짐작했다. 이런 행동은 인생의 전환기에, 예를 들면 친구도 없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흔히 튀어나온다. 보통은 무난하게 지나가지만 방황하는 아이에게 창피를 주면 그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게다가 아이는 그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이 헛소리임을 알면서도 동지애 때문에 발을 빼지 못했을 것이다.
혐오집단에서 빠져나온 남성들을 연구한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집단의 역학에 대한 최소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혐오집단을 떠난 남성들은 대부분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았다. 전혀 믿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곳에 머물렀던 건 소속감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수치심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게끔 다른 선택지와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며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 P210

코로나 환자 비하는 해롭지만, 내 남편이 맨얼굴로 거리에 나갔다가 당한 수모는 정당하고 건전하다고 본다. 마스크 쓰기는 개인의 선택이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 창피를 주는 것은 전략상 효과적이며 심지어 필요하다. 바이러스 같은 위험 요인을 사회적으로 감시하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대유행은 새로운 규범을 낳았고,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수치심이등장해 그 규범을 강제했다.
다양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규범을 강제하는 일은 불가능에가깝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건전한 수치심은 일종의 승리를거두었다. 그 승리가 반드시 기분 좋은 감정을 동반하지는 않았어도 건전한 수치심은 정당하고 효과적이었다. - P224

한편 자유로운 몸이든 갇힌 몸이든, 시위 지도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증오의 시선을 느꼈다. 이런 반응은 권력층을 규탄할 때 흔히 나온다. 이는 정부의 거짓말과 왜곡뿐 아니라 시위대가 초래한 불편으로도 생긴다. 시위대의 목표에 공감해도 다수의 시위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훗날 마틴 루터킹 목사처럼 추앙받더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상징적 인물은 활동 당시엔 원망을 듣고 종종 멸시당한다. 이들을 남들의 고통에 기대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적 인물로 보기때문이다. 또 이들 때문에 교통이 혼잡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는 등 일상이 마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 P240

간디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추종자 2,500명 정도가 계속 제염소로 행진하면서 영국 정부를 향한 시위가 극에 다다랐다. 경찰은 나무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치며 시위대를 공격했다. 비폭력을 다짐한 인도인들은 막으려고 말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으므로, 시위대에게 충돌의 책임을 물으려는 주장은 꾸며낼 수도 없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어느 미국인 기자는 "인도인이 볼링핀처럼와르르 무너졌다"라고 표현했다.
간디의 설계대로 펼쳐진 드라마에서 인도 시위대는 성인처럼보인 반면, 대영제국과 그 군대는 누가 봐도 야수처럼 행동했다. 미국 의회에서 소금행진을 겨냥한 폭력의 심각성이 공식적으로거론되면서, 영국의 인도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에서도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영국의 전총리 윈스턴 처칠은 훗날 간디의 소금행진에 대해 "영국이 인도땅을 밟은 이래 그런 굴욕과 저항은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시위대가 물리적으로 참패한 와중에도, 수치심은 불의를 깨부수는 공성 망치 battering ram 로 기능했다. 시위자는 대부분 카스트제도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이들은 수 세기 동안 너희는 열등하며 평생 천한 신분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교육이나 주거, 심지어 소금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 곧바로 조롱이 날아들었다. 교육받지 못했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었으며, 의사 표현도 서툴렀다. 이들은 수치심의 첫 단계에 갇힌 채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천한 존재가 어떻게 감히 시민권과 평등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전형적인 약자 비하로, 앞서 살핀 중독자나 빈곤층을 향한 비난과 같은 종류다. 간디(그리고 훗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미국의마틴 루터 킹 목사)는 추종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이들이 압제자에게 맞서도록 이끄는 일을 중시했다.  - P244

오늘날 수치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은 기업 가치가수조 달러에 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그중에서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가장 주목받는다. 앞서 살폈듯 이 기업들은 인터넷 이용기록을 추적해 표적 광고를 하고, 우리에게 디지털 주홍 글씨를붙이며, 진실이든 허구든 가장 수익성 있는 단편적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들의 시스템은 침투력과 편향성이 강한데, 잘못된 사업 관행이 점점 누적되자 폭로가 터져 나왔다. 이어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규제가 되살아나면서 그간의 행적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기시작했다. 그러나 기업의 속셈을 밝히고 현실을 바꾸려면, 이들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엔진을 파헤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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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주던 즈음- 머린에서는 계절이 때로는 한나절 남짓만 머물다가 재킷을 벗거나 스웨터를 걸치는 잠깐 사이에 변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서로 거의 교류가 없는 이런 상태를 맴돌았고, 따스한 봄날이 시원한 여름날에 자리를 내줄 때도 이런 상태를 맴돌았다. 두 사람 모두 전 연인의 새로운 존재를 온라인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소셜미디어에서는 서로 거리를 유지했다. 서로를 보살피고 주시하고 싶어 했지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불편하게 상기시켰기에 연락을 유지하는 일이 버거웠고, 서로를 덜 염려하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행복에 자신이 필요하리라는 걱정을 덜 하게 되었고, 결국 그렇게 연락 없이 한 달이, 또 1년이, 그리고 평생이 지나갔다. - P244

그들은 커피를 다 마셨다. 나디아는 사이드가 칠레의 사막에 가서 별들을 보았는지, 그 별들이 그가 상상했던 것과 같았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저녁 그녀가 시간이 난다면 데려가겠노라고, 이번 생에 한 번쯤 볼 가치가 있지, 라고 말했고, 그녀는 눈을 감고 그거 좋지, 라고 답했으며, 그들은 일어서서 포옹을 하고 헤어졌고, 그런 저녁이 언젠가 올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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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입안자의 입장에서는 빈민을 두 집단으로 나눠야 했다.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자와 아닌 자였다.
이때 정책 입안자는 다른 집단도 아닌 다수의 빈민층에게서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회과학에서 ‘밑바닥 혐오 last-place aversion‘라고 부르는 현상 덕분이었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빈곤은 수치심으로 얼룩져 있으므로,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든 빈곤충으로 묶이길 거부하며 자기보다 훨씬 못한 사람과 자신을 적극적으로 구분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빈민끼리 연대하기가 힘들고, 이른바 자격 있는 집단과 아닌 집단 사이에 충돌이 생긴다. - P89

많은 이들에게 가난이라는 수치심은 물질적 고통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이나 엑셀 스프레드시트에 달러는 기록할 수 있어도 감정은 그럴 수 없다. 감정은 형체가 없고 주관적이어서 종종 무시된다. 그러다 보니 복지정책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엔진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 P92

문제를 숨기는 방식을 ‘회피withdraewal‘라고 한다. 한동안 못 본친구에게 연락해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친구에게 돈이 없고 미납 고지서가 쌓였으며 빚이 많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었다. 친구는 지금 내 상황이 이렇다고 털어놓을까? 대개는 말하지 않는다. 작가 닐 개블러가 시사 잡지 디 아틀란틱The Atlantic에 썼듯이, 이 경우 남성들은 카드빚보다는 자신이 체험한 비아그라 효과를 얘기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발기부전보다 가난을 훨씬 더 부끄러워할 것이다. 당신이 연락한 친구는 개인의 재정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를 들어 약속을 거절할 확률이 높다.
회피는 고립으로 이어진다. 상황이 달랐다면 유지했을지도 모를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그들 중에 일자리를 알아봐주거나 육아를 도와줄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카운티의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조카를 둔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고립은 사회적 자본이라는연결망을 파괴한다.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아르누드 플란팅가Arnoud Plantinga는 연결망 파괴로 생기는 하강의 악순환을 추적했다. 회피로 가난과 수치심이 심해지면 다시 극심한 회피를 낳는다. 이 과정이 계속 이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외로움은 보통 우울증을 낳고 이는 다시 절망감을 키운다.
이와 반대되는 성향인 ‘접근approach‘은 결코 더 건강하다고 볼수 없다. 플란팅가에 따르면, 접근은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아 가난이라는 수치심을 떨치려고 할 때 생긴다. 당신이 연락한 힘들게 사는 친구가 회피가 아닌 접근을 선택한다면, 친구는 고급 음식점에 가자고 고집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친구는 150달러짜리 러시아 보드카 한 병을 주문하고, 본인의 카드로 결제하면서 웨이터에게 식비의 30퍼센트를 팁으로 남길 것이다. 현실 부정에 빠진 상태에서 이런 행동은 가난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겠지만, 잠시일 뿐이다. - P94

이로부터 가난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흔한 인식이생긴다. 비교적 안락한 계층이 보기에 빈곤층은 어리석은 결정을내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 상황에도 나름의논리가 있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은 신체와 정신이라는 두 가지면에서 고통받는다. 의식주와 교통비 같은 기본적인 생활수단이 부족한 데다,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 하루하루 다급한 문제가 터지는 상황에서 다음 달이나 내년에 대한 계획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10달러짜리 전기구이통닭을 포기하고 대신 1달러짜리 양배추 한 통을 사다가 데쳐 먹고(근처에 신선한 농산물을 취급하는 슈퍼가 있을 때의 얘기다) 9달러는 저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 셈을 하려면 미래에 형편이 나아지고 출구가 보이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이는 요정의 존재를 믿으라는 말과 같다. 플란팅가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다수의 빈곤층은 절충안을 택하는 편이다. 나아질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수치심은 더욱커진다. - P95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우리는 대체로 주변에서 작동하는 수치심 머신의 전제와 전망을 받아들인다. 웨이트 와처스의 경영진이 비만 문제 해결에 헌신적이지 않다거나, 거칠긴 해도 CEO의 징벌적 관리방식이 전과자에게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선뜻 믿지 못한다. 물론 시간을 들여 통계를 공부해보면, 이들에게서 미심쩍은 구석이 보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책임자들이 선의에서 활동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선의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이들이 활동하는생태계는 수치심이 지배하고, 유사 과학 연구가 뒷받침하는 곳이다.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빈민에게 가난의 책임을 교묘히 떠넘기는 연구 중 하나가 바로 마시멜로 실험이다. - P107

마시멜로 실험은 이들이 이미 믿고 있던 내용을 확인해준 연구로 보였다. 지배계층은 자식들에게 유전적, 문화적으로 올바른 자질을 길러주는 반면, 하류층은 그런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각자 처지에 맞게 사는 것이니, 부자를 탓할게 아니었다. 게다가 빈곤층을 돕겠다고 지출을 늘려봤자 도움이안 될 게 뻔했다. 이들은 마시멜로를 냉큼 먹어버린 본인 자식들처럼 그 돈을 낭비할 게 분명했다.
의심스러운 과학에 근거한 이 자족적인 분석은 현상 유지를도와주고 빈곤층에게 수치심을 불어넣는다. 그렇지만 마시멜로실험의 결론은 더 엄밀한 연구로 무너졌다. 2018년에 연구자들이이 실험을 열배 규모로 실시하면서,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을통제했다. 실험 결과,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집어 먹게 한 그어떤 요인보다도 부모의 부와 교육 수준이 아이의 장기적인 성공과 훨씬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사실 가난한 아이일수록 만족감을 뒤로 미루지 못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하얀가운을 걸친 연구자가 물질적 보상을 약속했을 때 이를 복음처럼 받아들였는데, 재력 있는 부모가 그런 약속을 항상 지켰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아이는 물질적 보상을 의심했는데, 그동안 결핍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당장 내일 아침에 먹을 음식도 냉장고에 없었을 것이다. 또 이 아이에게는 지금 당장 확실한 것이 미래에 약속된 보상보다 먼저였을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신중하고 현명한 전략이다. 내 손안에 든 새 한 마리가 숲속에 있는 새 두 마리보다 낫기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복지사나 환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의사 등을 부모가 불신하는 모습을 봤다면, 자녀들도 마시멜로를 주겠다는 낯선 사람의 약속을 선뜻 믿지 못했을 것이다. - P109

건강관리 산업에서 가장 왜곡된 곳은 노화를 감추기 위해, 더 나아가 노화를 늦추거나 뒤집기 위해 방대한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내는 분야다. 이 산업은 노화가 심각한 불행이라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면 허약하고 추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감이 떨어지며, 측은하고, 산송장과 같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 말에 납득이 가지 않으면 서른을 넘긴 사람들이 나이를 속일 때 실제보다 높이지 않고 항상 낮춰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젊어 보여요"는 칭찬이다. 마찬가지로 "나 나이 들었나 봐"는 좌절감의 표현이다. 상대방에게 나이 들어 보인다고 대놓고말하는 것은 대단한 결례여서 그런 상황이 자주 보이지는 않지만, 이것만큼은 사실이다. 연령차별ageism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널리 퍼져 있다.
다른 수치심은 대부분 타인에 대한 경멸을 기반으로 한다. 잘못됐거나 안이한 선택으로 인생을 망친 자를 비난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일을 안 해서, 마약을 해서, 돈을 낭비해서 저렇게 됐다고 손가락질한다. 우리는 행실이 나쁜 사람에게 당연하다는 듯 모욕을 준다.
연령차별은 다르다. 노년기는 우리 모두 거치는 단계다. 좋든 싫든 단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이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따라서 노인에 대한 모욕은 일종의 자기혐오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겪을 상황을 질색하고 경멸하며 기를 쓰고 노화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P123

그래도 가짜 과학은 불리한 결과를 유리하게 바꿔치기할 수있다. 통계학자가 데이터를 파고들어 원하는 자료가 대충 모일때까지 데이터를 잘게 쪼개는 수법이다.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내기 위해 퀸시는 아홉 가지 인지 과제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눈다음, 매디슨 기억력 연구 실험 결과를 30번 넘게 분석했다. 이는통계학의 고전적인 사기 수법으로, 이 작업을 수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통계로 사기 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통계학자로서이런 일을 맡게 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잘게나누면 통계조작자는 ‘작은 수의 법칙‘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우리가 동전 던지기를 100번 하면 앞면과 뒷면이 보통 50대 50에 가깝게 나온다. 1,000번을 던지면 반반일 확률이 훨씬높아진다. 그렇지만 100번 연속 던지기를 10회씩 나눠 실행하면, 50대 50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 가운데 8대 2로, 아니면 적어도 7대 3으로 나오는 표본이 몇 개 있을 것이다. 통계조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적합한 표본을 골라내면 된다. - P128

 수치심은 각각의 사회적 실패에 작용하지만,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각종 사회 문제를겪을 때, 다음과 같이 안이한 충고를 자주 듣는다. ‘그런 끔찍한 선택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고통받지 않을 텐데. 그러니 그들 잘못이다.‘ 이렇게 수치심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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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둘은 그다지 다정하지 않았으며, 각자 상대방이 자신의 존재를 거슬려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 상황을 너무 오랫동안 너무 가까이에서 지내다 보니 어떤 관계든 겪을 수 있는 부자연스러운 근접성의 상태라고판단했다. 두 사람은 낮에 따로 다니기 시작했고 이런 분리는 숨통을 틔워 주었지만, 사이드는 혹시 그들이 사는 구역을 청소하겠다는 싸움이 느닷없이 시작되어서 두 사람이 제시간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되었다. 그의 휴대전화 사용 경험에 따르면 연결 상태란 변덕스러운 것이었고, 정상 상황에서는 햇빛이나 달빛 정도로 생각되는 신호란 것이 돌연 끝없는 일식이나 월식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나디아는 그녀 자신도 아버지라 불렀던 사이드의 아버지에게 사이드가 안전해질 때까지 곁에 있겠다고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쩌나, 그렇다면 이제 자신은 어떤 것도 지킬 수 없다는 뜻일까 걱정했다.
하지만 폐소 공포에 가까운 근거리에서 해방되어 낮이면 떨어져서 다니다 보니 밤에는 서로를 더 따뜻하게, 때로는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온기처럼 느껴지는 따뜻함을품고 만날 수 있었다.  - P156

"죽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나디아가 그에게 물었다.
"내세 말이야?"
"아니, 죽은 뒤에 말고, 죽을 때, 그 순간에 말이야. 갑자기 모든 게 캄캄해질까? 휴대전화 화면이 꺼지듯이? 아니면 잠이 들 때처럼 이쪽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쪽에도 있는, 이상한 중간 상태로 들어가게 될까?"
사이드는 그건 어떻게 죽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디아가 한참 귀를 기울인 채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대답했다. "잠들 때 같을 거라고 생각해. 떠나기 전에 꿈을 꾸겠지."
그 순간, 그가 제공할 수 있는 보호는 그뿐이었다. 이 말에 나디아는 따스하고 밝게 빙긋 웃어 보였다. 사이드는 나디아가 자신의 말을 믿는 걸까, 아니면 아니, 그렇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달라, 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했다. - P183

아마도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할 이주자들을 몰아넣고 유혈 사태를 벌이고 필요한 경우 살육할 배짱이 없다고, 다른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들을 닫을 수가 없으며 새 문들이 계속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공존을 부인하려면 한쪽의 존재가 멈춰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는지도 모르며, 소멸시키려는 쪽 역시 그 과정에서 변해서 너무 많은 본토인 부모들이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자식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자신들 세대가 한 일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이제 문들이 있는 곳의 숫자가 너무 많아 한곳에서 싸워봐야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이유야 어찌 됐든 이 경우에는 품위와 또한 용기가- 두려울 때 공격하지 않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므로- 이겼고 전기와 물이 다시 들어왔으며, 협상이 뒤따랐고, 그 말이 퍼졌으며, 팰리스 가든스 테라스의 벚나무들 사이에서 사이드와 나디아와 이웃들은 축하를 했고, 밤늦도록 축하가 이어졌다. - P184

북구의 여름날 저녁은 끝이 없었다. 사이드와 나디아는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잠드는 일이 많았고, 잠들기 전에는 숙소를 등지고 바깥의 바닥에 앉아 각자 휴대전화를 보며 머나먼 곳으로, 겉보기에는 함께 있는 듯했지만 각자, 방황했다. 때로 그 또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온통 난장판인 주변 들판을 거쳐 얼굴에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그들은 대화 부족을 피로의 탓으로 돌렸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면 그들은 말도 하기 힘들 만큼 극도로 피곤했다. 휴대전화란 본래 개인을 물리적인 주위 환경에서 동떨어지게하는 힘을 지녔으므로 그것 역시 일부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이드와 나디아는 이제 더는 침대에서 서로를 만지려 들지 않았다. 숙소의 커튼으로 가린 공간에서 사생활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마치 벌겋게 드러난 신경이 통증을 유발하듯,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길게 이야기를 할 때면 그 긴 시간이 다툼이 익숙지 않은 두 사람에게 왕왕 다툼을 유발하곤 했다. - P205

 기도를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했던 그는 자기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어 부모들이 아직 가르칠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고, 유난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교리 수업을 해 주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생애 마지막 날까지 기도는 사이드에게 때로는 어머니를, 은은한 향내가나는 부모님의 침실을, 열기 속에서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를 상기시켰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는 사이드에게 매주 가는 기도 공동체 모임에 따라가겠느냐고 물었다. 사이드는 가겠다고 답했고, 그 후로 금요일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집에들러 아들을 태워 갔다. 사이드는 아버지와 남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기도는 그에게 남자가 되는 것, 남자 중 한 사람이되는 것을 의미했다. 기도는 또한 성인기와 그를 연결해 주는 의식이었으며 특정한 종류의 남자, 신사이자 점잖은 남자의 됨됨이라는 개념에 닿아 있었고, 남자란 공동체와 신앙과 친절함과 품위를 옹호하는 사람이었으며, 달리 말하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젊은 남자들은 물론 다른 것들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키운 남자들의 선함을 영예롭게하고자 기도하는 젊은 남자도 있었고, 사이드는 이런 남자중 하아였다. - P220

사이드와 나디아는 서로에게 충실했고, 둘의 관계를 무엇이라 부르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둘 중 누구도 결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버려진다는 두려움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그들 자신도 말없이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서기도 했다. 그것은 관계가 끊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자 두 사람이 함께 일구어 온 세상이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들의 세상은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오직 둘만의 세상이었으며, 둘만의 고유하고 내밀한 공통의 언어였고, 만약 깨진다면 대체될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머린에서의 첫 몇 달간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 주는 동안, 서로를 놓아주기 전에 각기 상대방이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소망이 두려움보다 더욱 강력하게 자리했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오누이와 같은 것이 되었다. 그 속에서는 우애가 가장 강한 요소였으므로 많은 열애들과 달리 그들의 애정은, 예외적인 몇 번을 제외하면 그 반대인 분노로 굳어지지 않은채 서서히 식을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점에 대해 들은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또한 실수를 한 것일까, 만일 좀 더 기다렸다면 관계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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