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버스가 도착한다. 우리는 통로 위의 난간에 바짝 기대며승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제 내 앞에 놓일-영불해협횡단레이스"에 견줄 만한, 그러니까 악명 높은 위스트르앙 부두의 페리에서 일하는 생활에 얽매여 그들에게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첫 출근 날이니, 짐을 갖고내리는 모든 승객들을 바라보면서 기운찬 목소리로 성심성의껏 "어서 오십시오"라고 환영의 인사를 건네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인사에 아무도 대꾸를 보내지 않는다. 가끔씩 그들 중 한명은 다리에 감아 놓은 동아줄 더미가 인사한 건 아닌가 하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안중에 없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 P115

빅토리아와 팡팡은 "비정규직들‘을 관장하는 분과를 만들었다. 고용 약속이 파기된 노동자들, 슈퍼마켓 노동자들, 임시직들, 여자청소부들, 혹은 하청 노동자들 모두를 다 이 분과로 규합시켜야 했다. 금속노조, 조선노조, 우편전신전화노조 같은 거대한 단위를 중심으로 조직된 남자들의 세계에서 조합운동을 한다는 것은 절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규정했다.
"우리는 바로 보루지."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콩티낭Continant"의 계산원들 혹은 빗자루를 든 여자 청소부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는 데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파업이었고, 그들의 행진이었고, 그들의 플래카드였고, 그들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조합 모임에서는 노조 간부들이 비정규직들도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여기면서 그들 특유의 어법으로 정책 및 기술적인 용어를 구사했는데, 비정규직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책임자들에게달리 말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는 그야말로 간부들을 화나게 했다.
"당신의 그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모두들 지겨워하고 있는 거몰라?"
가끔 비정규직들이 발언권을 얻어 말할 때면, 남자들은 배꼽이빠져라 웃어댔다. 빅토리아는 그들과 함께 계급투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 P160

 나는 가끔씩, 어느날 저녁 헬리콥터가 우리의 작은 부두 끝으로 내려와 그녀를 이곳에서 아주 먼 곳, 즉 우리는 꿈에서라도 언감생심 따라가지 못할그런 곳으로 그녀의 진정한 운명을 향해 데려간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하루는 어리석게도 그녀에게 모델이 되어 보려고 하지는 않았느냐고, 게다가 더 바보같이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라고 물어보고 말았다. 미미는 다른 쪽을 바라보고, 묘하게허스키한 목소리에 힘을 빼며 대답했다.
"너무 늦었지. 이미 스무 살인데."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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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HD 약물 치료가 학업적·사회정서적기능의 저하와 관련 있다‘는 새롭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한때 ‘습관성‘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항우울제도 내성과 의존성을 일으켜서 장기간에 걸친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 이 현상을 지발성 불쾌감tardive dysphoria이라고한다.
나는 중독 문제와 약물의 효과 여부에 관한 의문을 넘어서서더 심오한 질문과 씨름해 왔다. 향정신성 약물이 인간성의 본질적인 부분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닐까?
1993년, 정신의학 박사 피터 크레이머Peter Kramer는 『프로작에게 듣는다 Listening to Prozac』라는 획기적인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우울제가 사람들을 "보통 좋은 것보다 더 좋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크레이머가 틀렸다면?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향정신성 약물이 우리를 보통 좋은 것보다 더 좋게 만드는게 아니라 보통 좋은 것이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로 만든다면 어떨까?
수년 동안 만난 다양한 환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향정신성 약물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자체를 제한한다. 비탄과 경외심 같은 강렬한 감정을 특히 무디게 한다.
어떤 환자는 항우울제 덕분에 조울증의 고통에서 해방됐다고기뻐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올림픽 광고를 보고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격 중 감성적인 부분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수 없자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내 처방에 따라 그녀는 항우울제를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우울과 불안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폭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녀는 바닥에 가까운 감정도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 P162

우리는 약물에 기대어 세상에 적응할 때 과연 어떤 세상에 만족하는 걸까? 고통과 정신 질환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참기 힘든상황에 대해 생화학적으로 무감각한 인구를 양산해내고 있는 건아닐까? 설상가상으로 향정신성 약물은 가난하고 직업이 없으며선거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되고 있다.
정신 치료제는 가난한 아이들을 비롯한 빈곤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자주 다량으로 처방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보건통계센터에서 진행한 2011년 국민건강인터뷰조사 National Health Interview Survey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6~17세 어린이 가운데 7.5퍼센트‘가 "감정적 · 행동적 문제"로 약을 처방받았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향정신성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이 더 컸다 (9.2퍼센트 대 6.6퍼센트),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비히스패닉계 백인들은 유색인들보다 복용 가능성이 더컸다. - P165

누구나 한번쯤은 고통이 쾌락으로 바뀐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아팠다가 기분이 나아진 걸 느꼈거나, 운동 후 러너스 하이를 느꼈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 있다.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이다. - P181

6주 동안 쳇바퀴를 돌린 쥐들에게 코카인을 주었더니, 쳇바퀴를 돌지 않은 쥐들에 비해 코카인 사용을 자율적으로 조절했고 코카인 사용 빈도가 줄었다. 이는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알코올을 가지고 진행한 실험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됐다. 동물에게 강제적으로 운동을 시키자, 자발적인 약물 사용 빈도는 더 줄어들었다.
인간의 경우 중학교, 고등학교, 성인 초기에 하게 되는 고도의신체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물 의존도를 낮추는 것으로 보고됐다. 운동은 약물에 중독된 이들이 의존을 멈추거나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도파민이 운동 회로에 미치는 중요성은 조사가 이루어진 모든 동물 실험에서 보고되고 있다. 가장 단순한 실험동물 중 하나인 예쁜꼬마선충은 그 지역의 영양물이 풍부함을 알려주는 환경적자극에 반응해 도파민을 분비한다. 연구를 종합해보면 도파민은‘저걸 원해‘라는 동기 부여 신호를 주어 신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도파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앉아서 보내는데, 이는 50년에 비해 5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다른 부유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진화되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굉장히 충격적이다. - P184

이와 대조적으로 생산직은 갈수록 기계화되는 것은 물론 업무 자체의 의미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자율성을 제한받고, 경제적 이득도 그저 그런 수준이며, 공동의 사명감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성취감과 최종 제품 소비자와의 접촉은모두 내적 동기에 중요한데, 단편적인 조립라인 노동은 이 두 가지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적당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심리가생기는데, 이러한 심리에서 술, 도박, 약물 같은 강박적 과용이 고된 하루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된다. 그럴만도 한 게, 현재 저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고등학교 교육 이수자들이 일을 가장 적게 하는 반면, 고학력 임금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고 있다.
2002년 당시 소득 상위 20퍼센트가 하위 20퍼센트보다 두 배더 오래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됐는데,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추측이다.
개인적으로 가끔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기 어려울 때가 있다. 깊은 몰입의 ‘흐름‘은 그 자체가 마약과 같다. 몰입은 도파민을 분비하고 특유의 도취감을 낳는다. 이러한 무아지경은 부자 나라에서는 큰 보상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친구와 가족과 맺는 밀접한 관계를 가로막는다면 인생에서 덫이 될수 있다. - P204

근본적인 솔직함은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특히 자신의 결점을 노출하고 어떠한 결과를 감수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필수적일 뿐 아니라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전략이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여러모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본적인 솔직함은 첫째, 우리의 행동을 확실하게 의식하도록한다. 둘째,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셋째, 진실한 삶을 이끌어 현재의 자신뿐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더 나아가 사실대로 말하기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중독을 막을 수 있다. - P214

연구자들은 전두엽 피질의 신경 흥분성이 높아지면 거짓말 빈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정직의 증가는
"물질적인 사리사욕이나 도덕적 신념의 변화로 설명될 수 없었고, 참가자들의 충동성, 자발적 위험 감수, 기분과도 무관했다."
연구진은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면 정직의 정도가 강해질 수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인간의 뇌가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적극적으로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켜 왔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이 실험을 보고 나는 ‘역으로‘ 솔직함을 실천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될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스위스에 있는 크리스티안 러프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는 것이 사람들을 더 솔직하게 만든다면, 더 솔직해지는 것이 전두엽 피질을 자극할 수도 있을까요? 사실대로 말하기를 훈련하면 우리가 미래 계획, 감정 조절, 지연보상에 활용하는 뇌 부위의 활동성과 흥분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의 질문은 일리가 있습니다. 확실 한 대답은 드릴 수 없지만, 솔직함과 관련된 전두엽의 작용처럼 특정 목적을 위한 신경 작용이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강화된다는 당신의 직관에 공감합니다. ‘함께 점화하는 세포들은 연결된다‘는 도널드 헵Donald Hebb*의 오래된 이론에 따르면, 거의 모든 유형의 학습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함을 훈련하면 특정 목적을위한 신경 회로가 강화될 수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어 배우기, 피아노 연주하기, 혹은 스도쿠 잘하기가 다른 회로를 강화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뇌를 변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쾌락-고통 균형과 강박적 과용을 이끄는 정신적 작용을 더 확실히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P217

2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리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말하는 방식이 정신 건강의 표식이자 예측 변수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자신이 주로 피해자이며 나쁜 결과는 남탓이라고 하는 환자들은 보통 상태가 더 나빠지거나 계속 그 상태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남을 비난하기 바빠서 자신의 회복에는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호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피해자 서사‘는 보통 우리가 자신을 특정한 상황에 대한 피해자로 보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사례를 받아 마땅하다고여기는 광범위한 사회적 경향을 말한다. 정말로 피해를 당한 경우에도 그 서사가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지 못하면 치료가 진행되기 어렵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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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까닭이 있어? 우리 할머니 우산인데."
커밀라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피를 빨면서 원망스러워하는 눈길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카밀라에게 주었다. 커밀라는 손수건을 폈다가 손가락에다 돌려 감았다. (펄럭이는 하얀 손수건,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 어둑어둑한 하늘 문득 시간이 정지하는 것 같았다. 기억의 한 자락이 비수처럼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그랬듯이 하늘은 금방이라도빗줄기를 쏟을 듯이 컴컴했다. 나뭇잎도 그때처럼 푸릇푸릇했다. 커밀라의입가로 흘러내린 몇 올의 갈색 머리카락까지 똑같았다.
(펄럭이는 하얀 손수건)
(•••••• 그 골짜기. 커밀라는 헨리를 따라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가 헨리보다 먼저 올라왔다. 우리는 벼랑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커밀라의 머리카락을 휘젓고 있었다. "죽었어?" 우리가 물었다. 커밀라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손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커밀라는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커밀라의 표정은 비어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의 앙금도 투사되지 않고 있었다.) - P228

운구 요원들은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코러스들처럼 관 뒤에 우중충하게서 있었다. 헨리가 그중에서 가장 젊었다. 헨리는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크고 하얀 손, 책상물림의 손, 잘 가꾸어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손, 우리가 골짜기 위의 벼랑에 가만히 선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을 동안, 버니의 목에서 급소를 찾아내고 그 급소에 박혔던 손, 버니의 목을 앞뒤로 젖혀 기어이 목뼈를 부러뜨려놓고 말던 손.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는데도우리 눈에는 비틀린 버니의 목, 앞뒤가 바뀐 발, 버니의 입과 코에서 흐르는 피가 보였다. 헨리는, 뒤틀린 채 버니의 머리 위로 올라가 버린 안경에는 손을 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가만히 눈꺼풀을 내려주었다. 버니의 다리 하나가 경련하다가 그대로 굳었다. 커밀라의 시계에는 초침이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재는 헨리와 커밀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밀라의 뒤를 따라 올라오면서 헨리는 손으로 무릎에 묻은 흙을 털고, 그 손은 바지에 닦았다. 그때 우리가 물었다. 죽었어? 그는 의사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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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학생들 개개인이 어쩔 수 없는 고립감 때문에 저희끼리 동아리 짓기를 즐기는 햄든 같은 조그만 대학 사회에서 그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공식화되면서 햄든 학생들이 토해내는 정숙하지 못한 슬픔은 실로 가관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 버니의 죽음은 그 상황에 공짜로 던져진 행삿거리, 학생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선물로 비쳤다. 내가 알기로는 버니가 실종된 직후에도 버니라는 인간 자체를 놓고 상심하는 학생은 없었고, 최악의 소식밖에는 더 들어올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버니의 실종을 크게 슬퍼하는 학생은 없었다. 수색작업 자체도 학생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가담하는 학생들도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그것은 자기네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학교의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버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고부터 학교는 이상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많은 학생들에게 버니는 그럴 수 없이 절친한 친구가 되어갔다. 많은 학생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버니 없이는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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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들은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쾌락과 고통이 뇌의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self-regulating mechanism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나는 이러한 자기 조절 시스템을 그렘린gremlin*들이 쾌락 쪽의 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서울의 고통 쪽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렘린들은 어떤 생물체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경향, 다시 말해 항상성homeostasis 을 대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 P69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neuroadaptation 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 tolerance 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 P72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쾌락-고통 저울은 앞서 상당한 절제 기간을 거친 사람들도 다시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저 평범한 기분(수평 상태)을 느끼려 해도 중독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조지 쿱George Koob은 이러한 현상을 "불쾌감에 따른 재발dysphoria driven relapse이라고 표현한다. 중독 대상에 과거와 같이 다시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금단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 P77

우리가 기대한 보상을 얻으면, 뇌에서 발화한 도파민은 기준선을 넘어서 증가한다. 반면 우리가 기대한 보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파민 수준은 기준선 밑으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기대한 보상을 얻으면 도파민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나고, 기대한 보상을 얻지 못하면 훨씬 더 많이 줄어든다.
누구나 기대한 만큼 보상을 얻지 못해서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를 떠올려보라. 기대했지만 못 받는 보상이 애초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보상보다 더 나쁘다.
그렇다면 단서로 인해 발생한 욕구는 우리의 쾌락-고통 저울을 어떻게 움직일까? 저울은 앞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쾌락 쪽으로 기울어지는데도파민 소폭 증가), 곧 단서의 여파때문에 고통 쪽으로 기운다(도파민 소량 부족). 도파민 부족해지면 우리 뇌는 중독 대상을 찾으려는 행동을 유도한다.
지난 10년 동안 병적으로 심각한 도박에 대한 생물학적 원인을 파악하는 데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 그 결과 정신장애 진단및 통계 편람Diagnosite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제5판)에서 도박 중독은 다시 중독 장애로 분류되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도파민 분비는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일반적으로 돈) 자체 못지않게 보상 전달의 예측 불가성과 관련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박을 유도하는 것은 금전적 이득보다는 보상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 P80

과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매일 코카인에 노출된 쥐들은첫날엔 활기차게 뛰다가 마지막엔 정말 광란의 질주를 하면서 코카인의 영향에 누적된 감작作, sensitization 상태를 보였다. 그러다가 연구자들이 코카인 투여를 멈추자, 쥐들도 뛰기를 멈췄다. 실험 쥐의 일반적인 수명 기간인 1년 후 쥐에게 코카인을 한 차례다시 투여하자 1년 전 마지막 날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친듯이뛰었다.
과학자들이 그 쥐들의 뇌를 살펴본 결과, 쥐의 보상 경로에서지속적인 코카인 감작과 일치하는 코카인 유도 변화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코카인 같은 중독성 물질이 뇌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알코올부터 오피오이드, 대마초에 이르기까지 다른 중독 물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상담을 하면서 나는 심각한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수년 동안 의존을 멈추고도 단 한 번의 노출로다시 강박적인 의존에 빠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 P83

학습 또한 뇌 속의 도파민발화를 증가시킨다. 다양하고 자극적인 새로운 환경에서 세 달간 머문 암컷 쥐들을 표준적인 실험실 우리에 머문 쥐들과 비교했을 때, 전자의 뇌보상 경로에서 도과민 시냅스가 급증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환경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뇌의 변화는 고도의 도파민을 유도하는 (중독성 있는 대상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뇌의 변화와 유사하다.
하지만 똑같은 쥐들이 중독성 강한 약물인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같은 흥분제를 투여받으면, 자극적인 환경에 노출되어도 시냅스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메스암페타민이 쥐의 학습 능력‘을 제한했음을 암시한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나의 동료인 에디 설리번EdieSullivan은 알코올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선 세계적인 전문가다. 그는 중독에 따른 뇌의 일부 변화는 돌이킬 수 없지만 손상된 영역을 새로운 신경망을 만듦으로써 우회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뇌의 일부가 영원히 바뀌더라도, 우리가 새로운 시냅스 경로를 찾아서 건강하게 행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 P84

고통(과 쾌락)에 대한 우리의 감각 지각은 우리가 그 고통과 쾌락)에 부여하는 의미에 큰 영향을 받는다. 헨리 놀스 비치 Henry이Knowles Beecher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는 전쟁 중에심각하게 다친 225명의 병사들을 관찰했다.
비처는 연구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분류되는 심각한 부상 다섯 가지 중 한 가지에 해당하는" 인원만조사했다. "광범위한 말초 연조직의 상처, 장골의 복합 골절, 두부 관통, 흉부 관통, 복부 관통.… 그 사람들은 부상을 당했을 때정신이 맑았고... 조사 당시에도 놀라지 않았다."
비처의 발견은 놀라웠다. 심하게 다친 병사들 가운데 4분의 3이 부상 직후에 고통을 거의 혹은 아예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다쳤음에도 말이다.
비처는 그들의 신체적 고통이 "피곤함, 불편함, 불안함, 공포감, 실제 사망 위험 등으로 가득 찬 극도의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에 누그러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고통이 "안전한 병원으로 가는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 P86

나는 환자들에게 절제하는 한 달을 보낸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이때 환자 대다수는 자신이 한 달 동안 절제에 성공하고 절제의 이점을 경험할 수 있음에도 다시 중독 대상에 기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에 기대던 것과 다르게 기대고 싶어한다.
중독의학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는 논란은, 중독 대상에 심하게기대왔던 사람들이 그 대상에 ‘적당히, 위험 없이 기대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AA에 수십 년간 축적된 지식에 따르면, 중독자들에게 선택지란 절제뿐이다.
하지만 최근 증거에 따르면 과거에 중독 기준에 살짝 걸쳐 있던 일부 사람들, 절제된 방법으로 자신의 중독 대상에 다시 기댈수 있다. 내 임상 경험에서도 이것은 참이다. - P109

내 환자 중 중독 대상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 성공한 이들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고 얘기했다. 결국 그들은 최종적으로는 중독 대상과의 이별을 택했다.
하지만 음식에 중독된 환자들은 어떨까? 아니면 스마트폰? 완전히 끊을 수 없는 중독 대상이라면?
‘어떻게 조절하느냐‘는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점차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 고도의 도파민 상품이 말 그대로 곳곳에 널려 있어서 누구나 강박적 과용에 빠지기 쉽다. 중독의 임상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 P111

고도의 도파민 제품은 ‘만족을 미루는 능력‘을 해치는데, 이를지연 가치 폄하delay discounting 라고 한다.
지연 가치 폄하는 보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보상 가치를 낮게 보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 20달러를 받는다면 1년 후보다는 오늘 바로 받고 싶어 할 것이다. 인간이 오랜 시간 후에 받는 보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받는 보상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여러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러한 요인 중 하나가 의존 대상이 된 물질과 행동의 중독성이다. - P129

신경과학자 새뮤얼 매클루어 Samuel McClure와 그의 동료들은 즉시 보상과 지연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관여하는지를 연구했다. 관찰 결과, 참가자들이 즉시 보상을 선택했을 때는 뇌에서 감정 처리와 보상 처리를 하는 부위가 활성화되었고, 보상을 미뤘을 때는 계획과 추상적 사고와 관련된 뇌 부위인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
이 연구가 암시하는 바는, 현대에는 감정적 보상 경로가 삶에지배적인 동력이 되면서 우리 모두가 전두엽 피질 위축증을 앓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도의 도파민 물질에 기대는게 지연 가치를 폄하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예를 들어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노출에 적응한 이들이 있고, 자원이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도 거기에 비슷하게 적응한 이들이 있다고 치자. 이때 지연 보상보다 즉시 보상을 중시할 가능성은 전자에게 더 크다. 실제로 빈민가에 사는 브라질의 젊은이들‘은 동년배의 대학생들보다 미래에 받을 보상을 낮게 평가한다. 싸구려 도파민에 얼마든지 쉽게접근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가난이 중독의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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