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에, 그 교수는 내가 엄청나게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내 글을 칭찬했고, 내게 기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나는? 나는 막 학업을마친 상황이었고, 숫기가 없었고,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이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되었고, 겁먹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상으로 여기던 마음을 버리고 그가 잘못된 혹은 도를 넘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또 내가순진했던 게 아닌지, 남자와 함께 마티니를 마시면서 거기에 야릇한 의미가 없다고 가정했던 것이 잘못이 아닌지 걱정되었다. 내가그런 일을 가능케 할 만한 행동을 했던 게 아닌지, 사귀고 싶다는 신호라도 내보냈던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내보낸 것은 다른 신호들이었을 것이다. 불안정의 신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신호,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의 신호. 이것은 강력한 감정들이고, 어떤 사람들은(어떤 남자들은) 이런 감정을 포착하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그들은 인정 욕구를 정확히 가려내고 대상에게 접근한다. - P249
하지만 이 현실에는 그보다 덜 구체적인 원인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드러난 현상은 무관심, 타성, 노인을 돌보는 대신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 개인 차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덜 매정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는 늙고 아픈 사람들을(그리고 대체로 제 목소리를 내지못하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머릿속에서 훨씬 더 쉽게지워버린다. 노화는 추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하게 정의한 젊음과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문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솔직히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에 공감하기란 워낙 괴롭고 어러운 일이라서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지 않고는 그런 경험을 추체험하기 어렵다- 우리가 조만간 존 킹거리 같은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 P262
나는 이렇게 상충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동시에 품고 있는 데익숙하지 않다. 보통은 한 번에 하나, 기껏해야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이때는 불안감을, 저때는 만족감을, 나쁜 날에는 약간의 구슬픔을 좋은 날에는 순간의 기쁨을. 하지만 금요일 무렵부터 이번주 내내, 그 단순한 신경 체계가 고장 났다. 의식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이겠지만, 그래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리적 참상, 그로부터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에 대한 두려움, 갑자기 느끼게 된 자신의 취약함, 사라진 삶 하나하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삶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퍼져나간 막대한 슬픔. 이것은 보통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넘어선 상황이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한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갈팡질팡한다. 하나의 감각에 내려서 그것을 온전히 흡수할 수없는 상태인 것이다. 뇌세포들이 사방팔방 돌아가는 듯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나는 내 작은 집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지만 동시에 몹시조마조마하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얼어붙는다. 뭐지? 누가 타고 있지? 추락할 건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거듭거듭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이내 보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가 관음중이고 어디까지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인지 알 수 없어서다. 한 감정이 솟구쳤다가도 이내 정반대 감정에 자리를 내준다. - P277
사람들이 멍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오만 가지 감정들이 정신을 압도하는 바람에 우리가 피로와무력함을, 그리고 감정들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인간적인 것이면서도 무서운 것인 듯하다. 사실 테러 행위가 의도하는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사기를 꺾어서 멍하게 만드는 것, 건물과 더불어 사람들의 의욕과 의지를 날려버리는 것. 그리고 이런 반응을 물리치기란 어렵다. 토요일 오후, 나는 여전히 멍하고 무기력하게 느끼면서도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마흔아홉에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어떤 남자를 아는 친구들이 그를 돌보는 문제를 의논하려고 모인 자리였다. 갑자기 렌즈가바뀌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재앙의 파노라마가 물러나고 그 대신 훨씬 더 사적이고 개별적인 비극의 클로즈업이 초점에잡혔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감정적 과부하가 우리를 마비시키는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적 과부하는 일종의 무력한 좌절감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 P280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 주인 6월 21일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대낮의 빛이 저녁까지 길게 늘어질 것이다. 7시 30분까지, 8시까지, 8시 30분까지. 사람들이 하루 일을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도 아직 늦은 오후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을 것이다. 유달리 뜨거운 6월 말과 7월의 빛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른한 편안함이 초저녁 해처럼 얇고 낮게 걸려 있을 것이다. 연인들은 저녁 식사 후에 산책할 테고, 아이들은 앞마당에서 늦게까지 놀 것이다. 여름의 소리들이 잔디깎이 기계가 윙윙거리는소리, 아이스크림 트럭이 짤랑거리는 소리-멀리서 울릴 것이다. 또 한 번 여름이 올 것이다. 무더운 밤들이 길고 환하게 이어지는 여름이. 나는 그것이 싫다. - P291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효과가 있으려면 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 -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 비록 싫은 감정이기는 해도 나는 분노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열띤 언쟁과 눈물과 분해서 이를 가는 상황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내가 그 일에 영 젬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갈고닦을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자, 다 들었으면 그만 좀 꺼져. - P325
결혼식을 꿈꾸면서 자란 여자아이들은 모두 아름다움과 로맨스에 집착하는 여자로 자라고, 결혼식에 콧방귀 뀐 여자아이들은모두 섹스와 폭력에 집착하는 여자로 자라고 하는 식으로 편이 갈린다는 말은 아니다. 꿈을 하나만 품는 사람은 없고, 가장 열렬한 로맨티스트도 그보다 좀 더 복잡하고 야심 찬 측면을 함께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둘 다를 원했어요." 왕년의 신부 지망자였던 애나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처럼 마차를 탄 결혼식을 꿈꿨지만, 그렇게 식을 올리고 나서는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로 날아가서 어떤이국적인 부족을 구하는 꿈도 꿨어요."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은, 문화적으로 지지받는 판타지와 실제 판타지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의 판타지에도 실제로는 어둡고 복잡한 실들이 엮여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꿈이든 특이한 꿈이든,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품는 꿈은 신부가 되고 싶은 꿈보다 훨씬 더 풍성하다. 또한 여성이 현실에서 겪는 체험과 훨씬 더 비슷하다. 그런 꿈은 우리가 자신에게 바라는 바를 반영하고(강해지고 싶다, 똑똑해지고 싶다. 아름다워지고 싶다), 우리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가족에 대한 혼란한 감정, 분노와 섹슈얼리티, 세상을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느끼는 기분.) 그런 꿈은우리의 은밀한 야망, 연결감에 대한 갈망, 우울의 씨앗을 보여준다. 그런 꿈은 여성으로 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 P336
하지만 여기에는 이미지에서 벗어난 단순한 안도감 외에 또 다른 것들도 작용한다. 오늘 아침 일찍 나는 강에 배를 띄우고, 청명한 8월 말 하늘 아래 강을 거슬러 오르며, 배의 리듬에,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빛에 노가 물을 가르는 느낌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꼈고, 내 몸이 내가 가르친 대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계속 노를 저으면서 나는 내 팔을 생각했고, 힘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생각했고, 내가 여성의 몸매와 체형을 규정하는 표준 방정식을 거스르는 데 이 스포츠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했다. 평소 내 팔은 스웨터나 긴팔 옷에 싸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져 있다. 나는 팔을 내보이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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