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에, 그 교수는 내가 엄청나게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내 글을 칭찬했고, 내게 기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나는? 나는 막 학업을마친 상황이었고, 숫기가 없었고,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이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되었고, 겁먹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상으로 여기던 마음을 버리고 그가 잘못된 혹은 도를 넘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또 내가순진했던 게 아닌지, 남자와 함께 마티니를 마시면서 거기에 야릇한 의미가 없다고 가정했던 것이 잘못이 아닌지 걱정되었다. 내가그런 일을 가능케 할 만한 행동을 했던 게 아닌지, 사귀고 싶다는 신호라도 내보냈던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내보낸 것은 다른 신호들이었을 것이다.
불안정의 신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신호,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의 신호. 이것은 강력한 감정들이고, 어떤 사람들은(어떤 남자들은) 이런 감정을 포착하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그들은 인정 욕구를 정확히 가려내고 대상에게 접근한다. - P249

하지만 이 현실에는 그보다 덜 구체적인 원인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드러난 현상은 무관심, 타성, 노인을 돌보는 대신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 개인 차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덜 매정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는 늙고 아픈 사람들을(그리고 대체로 제 목소리를 내지못하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머릿속에서 훨씬 더 쉽게지워버린다. 노화는 추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하게 정의한 젊음과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문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솔직히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에 공감하기란 워낙 괴롭고 어러운 일이라서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지 않고는 그런 경험을 추체험하기 어렵다- 우리가 조만간 존 킹거리 같은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 P262

나는 이렇게 상충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동시에 품고 있는 데익숙하지 않다. 보통은 한 번에 하나, 기껏해야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이때는 불안감을, 저때는 만족감을, 나쁜 날에는 약간의 구슬픔을 좋은 날에는 순간의 기쁨을. 하지만 금요일 무렵부터 이번주 내내, 그 단순한 신경 체계가 고장 났다. 의식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이겠지만, 그래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리적 참상, 그로부터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에 대한 두려움, 갑자기 느끼게 된 자신의 취약함, 사라진 삶 하나하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삶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퍼져나간 막대한 슬픔. 이것은 보통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넘어선 상황이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한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갈팡질팡한다. 하나의 감각에 내려서 그것을 온전히 흡수할 수없는 상태인 것이다.
뇌세포들이 사방팔방 돌아가는 듯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나는 내 작은 집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지만 동시에 몹시조마조마하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얼어붙는다. 뭐지? 누가 타고 있지? 추락할 건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거듭거듭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이내 보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가 관음중이고 어디까지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인지 알 수 없어서다. 한 감정이 솟구쳤다가도 이내 정반대 감정에 자리를 내준다.  - P277

사람들이 멍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오만 가지 감정들이 정신을 압도하는 바람에 우리가 피로와무력함을, 그리고 감정들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인간적인 것이면서도 무서운 것인 듯하다. 사실 테러 행위가 의도하는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사기를 꺾어서 멍하게 만드는 것, 건물과 더불어 사람들의 의욕과 의지를 날려버리는 것. 그리고 이런 반응을 물리치기란 어렵다. 토요일 오후, 나는 여전히 멍하고 무기력하게 느끼면서도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마흔아홉에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어떤 남자를 아는 친구들이 그를 돌보는 문제를 의논하려고 모인 자리였다. 갑자기 렌즈가바뀌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재앙의 파노라마가 물러나고 그 대신 훨씬 더 사적이고 개별적인 비극의 클로즈업이 초점에잡혔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감정적 과부하가 우리를 마비시키는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적 과부하는 일종의 무력한 좌절감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 P280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 주인 6월 21일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대낮의 빛이 저녁까지 길게 늘어질 것이다. 7시 30분까지, 8시까지, 8시 30분까지. 사람들이 하루 일을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도 아직 늦은 오후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을 것이다. 유달리 뜨거운 6월 말과 7월의 빛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른한 편안함이 초저녁 해처럼 얇고 낮게 걸려 있을 것이다. 연인들은 저녁 식사 후에 산책할 테고, 아이들은 앞마당에서 늦게까지 놀 것이다. 여름의 소리들이 잔디깎이 기계가 윙윙거리는소리, 아이스크림 트럭이 짤랑거리는 소리-멀리서 울릴 것이다. 또 한 번 여름이 올 것이다. 무더운 밤들이 길고 환하게 이어지는 여름이.
나는 그것이 싫다. - P291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효과가 있으려면 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 -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 비록 싫은 감정이기는 해도 나는 분노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열띤 언쟁과 눈물과 분해서 이를 가는 상황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내가 그 일에 영 젬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갈고닦을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자, 다 들었으면 그만 좀 꺼져. - P325

결혼식을 꿈꾸면서 자란 여자아이들은 모두 아름다움과 로맨스에 집착하는 여자로 자라고, 결혼식에 콧방귀 뀐 여자아이들은모두 섹스와 폭력에 집착하는 여자로 자라고 하는 식으로 편이 갈린다는 말은 아니다. 꿈을 하나만 품는 사람은 없고, 가장 열렬한 로맨티스트도 그보다 좀 더 복잡하고 야심 찬 측면을 함께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둘 다를 원했어요." 왕년의 신부 지망자였던 애나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처럼 마차를 탄 결혼식을 꿈꿨지만, 그렇게 식을 올리고 나서는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로 날아가서 어떤이국적인 부족을 구하는 꿈도 꿨어요."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은, 문화적으로 지지받는 판타지와 실제 판타지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의 판타지에도 실제로는 어둡고 복잡한 실들이 엮여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꿈이든 특이한 꿈이든,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품는 꿈은 신부가 되고 싶은 꿈보다 훨씬 더 풍성하다. 또한 여성이 현실에서 겪는 체험과 훨씬 더 비슷하다. 그런 꿈은 우리가 자신에게 바라는 바를 반영하고(강해지고 싶다, 똑똑해지고 싶다. 아름다워지고 싶다), 우리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가족에 대한 혼란한 감정, 분노와 섹슈얼리티, 세상을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느끼는 기분.) 그런 꿈은우리의 은밀한 야망, 연결감에 대한 갈망, 우울의 씨앗을 보여준다.
그런 꿈은 여성으로 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 P336

하지만 여기에는 이미지에서 벗어난 단순한 안도감 외에 또 다른 것들도 작용한다. 오늘 아침 일찍 나는 강에 배를 띄우고, 청명한 8월 말 하늘 아래 강을 거슬러 오르며, 배의 리듬에,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빛에 노가 물을 가르는 느낌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꼈고, 내 몸이 내가 가르친 대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계속 노를 저으면서 나는 내 팔을 생각했고, 힘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생각했고, 내가 여성의 몸매와 체형을 규정하는 표준 방정식을 거스르는 데 이 스포츠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했다. 평소 내 팔은 스웨터나 긴팔 옷에 싸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져 있다. 나는 팔을 내보이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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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포를 한번 상상해보라.
당신이 전쟁 지역에 산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사는 곳에는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붕 위에는 저격수들이 있고, 발밑에는 지뢰들이 있다. 그다음 또 상상해보라. 당신은 그곳에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교한 대응 체제를 구축해두었다. 밖에서는 변장을 하고 다니고, 방탄조끼와 금속 헬멧으로 몸을가리고 다닌다. 안에서는 구석에만 머물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서, 총성이 들리지 않도록 귀를 계속 막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법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상상해보라.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났더니, 방탄조끼와 헬멧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밖으로 끌려 나온다. 보호 장구도 없이 안전한 구석에서 끌려 나와서 햇살 아래에 선다. 그때 당신이 얼마나 헐벗은 느낌일지,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해보라. 세상에 노출된 기분을 상상해보라.
상상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중독을 포기한 사람의 기분이다. - P213

 만약 당신이•중독을 포기한다면, 좋은 소식은 하나의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다. 당신은 마약이나 술 의존증이라는 싸움에서, 혹은 거식증이나 폭식증이나 도박 같은 중독적 행동과의 싸움에서 공식적으로 막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나쁜 소식은, 또 다른 전쟁이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제 새로운 영역에서 예전에 쓰던 무기도 없이싸워야 한다. 마취제도 없이 매일매일 부상을 겪어내야 한다.
물론 이 전쟁은 앞선 전쟁보다는 훨씬 더 희망적이다. 알코올중독이나 섭식장애 같은 적과 싸울 때보다는 당신이 이길 확률이상당히 더 높고, 전투에서 얻은 흉터가 눈에 훨씬 덜 띄는 형태일테고, 승리가 더 의미 있을 뿐 아니라 더 영구적일 것이다. 그래도이것이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에는 내면에서 벌어진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애초에 당신을 중독으로 내몰았던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은 차이가 없다. 그 적들이란 당신의 두려움과 분노와 불안정함, 위로와 위안을 갈구하는 마음, 곧 당신 자신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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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멀리서는 과거가 좀 더 부드러워 보인다. 덜 고통스럽고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내가 식탁에 앉아서 테이프를 녹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나는 포도주잔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둘다 서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둘다 불완전하고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나마 투병 기간 내내 서로에게 곁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와놓친 연결감과 이런저런 후회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는 것은 일종의 평온함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노력했어. 마지막에는,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했어. 이런 감상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평화도 있었다. - P192

금주한 지 일 년 뒤에 다시 마시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 무렵은 뿌연 안개가 걷히고 앞으로 해야 할 어려운 일이 드러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술을 끊는 일은기차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좀 비슷하다. 당신은 멍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일어나서,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다 머리가 맑아지고 트라우마가 잦아들면, 자신도 모르게 망연히 잔해를보며 서 있게 된다. 저 기차에서 내린 나는 이제 누구지? 이제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이것은 겁나는 시기이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는사실을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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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깊이 동일시하는 건 드문 일일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딸에게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할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라는 사람, 딸이라는 사람, 서로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 그 사이를 잇는 선들은 서로 교차하고 엉클어지고 겹쳐지기 일쑤다.
하지만 모녀 관계가 얽히고 설킨 관계가 되기 쉬운 게 그 때문이라면, 역시 그 덕분에 모녀 관계는 유달리 풍성한 관계가 될 수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란 딸의 내면에 있는 로드맵 혹은 거울이다. 우리와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훈들, 우리가 과거에 걸어오다가 계속 걷기로 결정했거나 포기하기로 결정한 길들이 반영되어 있다. 여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일이나 연애 문제든,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입고 어떤 친구들을 사귈까하는 문제든,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문제든 다소나마 자신의 결정을 어머니의 결정에 견주어 평가해보기 마련이고, 어머니의 노력들이 어떻게 어머니를 형성하거나 제약했는지, 강화하거나 약화했는지 따져보기 마련이다.
몇 주 뒤에 나는 서른다섯이 된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려야 할 시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나는 그 거울이, 지도가, 나를 짜증 나게 만들던 통화들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직은 내가 혼자서 해낼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 - P150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성인이 된 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밑바탕에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슨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고,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고, 내게 맞는남자나 직업이나 신발, 옷, 헤어스타일 따위가 휙 하고 나타나서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행복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외부에서 내게 주입해주기를 기다렸다.
술이 사실은 그 구속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 디뎌야 할 고통스러운 걸음들을 디디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술을 끊고서야 비로소 든 생각이었다. - P155

거식증은 당신을 잡아당긴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늘 술이 있듯이, 거식증도 늘 거기 있으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다. 그 힘은내가 약할 때, 혼란하거나 산란하거나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음식에 대한 경직성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의식들로부터 너무 멀어졌을 때, 나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할 때 가장 세어진다. 그럴 때, 그 힘은 안전한 안식처처럼 나를 꾄다. 나는 별의별 이유로 굶어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무엇이라도 통제하기 위해서, 분노와 불안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표현하는 대신 내보이기 위해서,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역설적으로) 돋보이기 위해서, 한 가지 일에서라도 철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물론 그 일이란 마르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가끔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거식증은 자신을 제약하는 일, 외로운 일, 고통스럽도록 단조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훌륭한 수단이기도 하다. 뼈와 모서리로 이루어진 딱딱한 벽 뒤에 숨는 일이다. - P180

나는 이 외로움과 오래도록 친밀하게 지내왔다. 가끔은 내가이 외로움을 타고난 게 아닐까,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뭔가 부족해서 세상과 떨어진 존재라고 강하게 느끼는 이 감정을 타고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어느 봄날에 내 방에 앉아서 창밖에서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이름붙이지 못했던 어떤 기분을 느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은세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저 창밖에서 나 없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거기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의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늘 친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것도 많다. 하지만 내가 겪는 외로움은 현실의 상황이나 논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산다. 작고 끈질긴 악마 같은 그것은 가장 고요한 순간에, 그러니까 계획 없는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 같은 때 활개를친다. 그것은 공허감이다. - P184

이런 것들은 어려운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앞질러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이 질문들에 답할 기회를 회피해왔다. 물론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새 신발의 치유력을 열렬히 증언하는 바다. 하지만 더 큰 질문들을 피하기만 했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돈을 펑펑 쓰면서 종종거릴 때, 보통은 내가 평범한 일요일을 계획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느낌이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잠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일에 착수했다. 몇 달 동안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생각만 했던 커튼을 직접 만들어서 걸었다. 할 일을 해치웠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기쁨이었을 뿐 아니라, 이 일로 새삼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내게는 절망감에 맞서 싸울 자원이 있다는 사실, 내 시간을 잘 쓰고 내 영혼을 잘 돌볼 능력이 있다는 사실, 외로움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사실.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고독한 일요일이었지만, 결국에 외로운 일요일은 아니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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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명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닐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이곳의 풍경은매일 좋구려. 거친 시멘트 선, 건물의 사나운 직각이 시야를 찢고 들어오지만 거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는구려. 때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담장 훨씬 위로 까마득하게 치솟아 올라간 20여 년 이상 묵은 나무들이그렇게 정답게 다가올 수가 없소.
마치 머리를 기웃거리며 아는 체하고 내 방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 같다오. 거칠 것 없이 시원하게 크면서도 미루나무처럼 본때 없이 그리하여 허전하고 허망하게 기다란 그런 모습이 아니고, 희끄무레한 새벽하늘을 뒤로하고 약간씩 구불구불텅 틀면서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가 줄기를 내어 함께 위로 솟구쳐 오른, 빙 둘러쳐진 나무들 모습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구려.
여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한과 한숨이 저렇게 나무를 굽이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오. 당신과 만나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미명에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저 나무처럼 여겨지는구려. 짧지 않은 세월을 저렇게쭉 밀고 올라왔고, 그러면서 정답고 또한 구불텅한 굽이와 옹이도 없지않았던 세월이었지요. - P225

다음은 생전에 김병곤의 셋방을 찾아가서 함께 민청련 일을 하자고제안하던 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쏠쏠했던 심정을 그린 글인데, 집안 풍경 묘사 속에 그 복잡한 감정이 잘 녹아 있는 글이다.

그런 약속을 한 곳은 원효로의 어디쯤인가, 창고 같은 2층에 병곤이가 살 때였습니다. 마루엔 애들 기저귀가 치렁치렁 걸려 있었고, 문숙 씬 식사준비한다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지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쁘고 자랑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아픔, 그리고 슬픔으로 옆구리가 걸리는 듯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뭐 대단한 계획이야 있을까만, 그래도 봉급 받아서 뭣인가 해보려고 하고 있었을 텐데, 아무런 대책 없이 그렇게 떠나는 병관이가 과연 잘하는 것이고 그것을 권하는 나는 또 무엇인가 하는 상념에 흔들렸습니다. 그날 문숙 씨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앉아 있다가 옆걸음을 쳐 나왔던 것이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 P227

김근태는 출소 직후 《월간 말》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온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대연합론‘을 개진했다. 옥중에서오랫동안 고민해본 결과 야당의 일각까지 가세한 수구 세력을 깨는 데는 민주대연합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연합의 내용은 사회과학적으로는 기층민중과 중간 제계층, 그리고민족적 입장의 자본가가 상호 동맹세력으로 재배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현상적으로는 재야와 제도야권의 결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 운동의 현 단계 전략적 목표인 자주 · 민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의 상호 대치선은 외세와 국내 지배세력을 한편으로 하고 재야와 제도야권의 연합세력을 한편으로 하는 대립으로 돼야 하며 이럴 때 어느 정도승산 있는 싸움이 가능하다.
따라서 재야 세력은 비제도권에서 자신의 본대를 꾸리고 이 본대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일부가 제도권에 들어가 제도야당 내부에 교두보를 확보하며, 이러한 민족민주 세력의 의원단이 의회에서 민중적 대의를 널리 알리고, 대중운동을 엄호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전까지 주장해온 이른바 ‘제도야당의 민주연합당으로의 개변‘을 의미하는 것이다. - P239

결국 1987년 대선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재야에 대해 국민들도 지지를철회해버렸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대중이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을 철회하고 사적 이해관계의 축으로 옮겨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파시즘의 물적 기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광역선거전후 나타난 무서운 침묵과 정치적 무관심은 유신 중후기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난해 평민 · 민주당의 통합으로 일부 복원되었지만, 아직도 충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대선 승리의 묘수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또 이대로 가면 패배한다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마지못해서 후보를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대연합의 최대주주인민주당의 김대중 대표는 이러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배세력이 조장한 지역패권주의에 의해 분열된 대중의 힘을 이끌어내려면 이런 교착국면에서 지도자의 도덕적인 결단과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대중이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승리하는 민주대연합이 이루어져 수권의 준비가 다 이루어졌다는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선 대선 승리를 위한 김대중 대표의 자기희생이 결국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 P241

김근태는 1992년 10월 재야인사들과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위한 국민회의‘(국민회의)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보수대연합 함대인 민자당은 5, 6공의 모든 자원, 심지어 박정희의 유산까지 동원하여 정권 재창출에 혈안이 되었다.
반면에 초라해진 민주당은 다시 김대중을 내세워 혈투를 전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수언론·검찰·관료 · 재벌이 총동원되고, 부산복집기관장회의를 통한 관권개입은 물론, 나중에 드러났지만 재벌에서 3천억 원을 김영삼에게 지원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금권선거를 치렀다.
김근태는 1992년 9월 17일 <정세연구>지의 초청을 받고 ‘9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의 대담을 가졌다. 대선 정국에서 이번에도 야권은 분열되고, 심지어 과거 학생운동과 재야의 지도자급 인사중에 민자당 후보 진영에 참여한 이도 적지 않았다.
이 대담에서 김근태는 재야 단체의 문제점으로 급진적 관념론과 세력관계에 대한 올바르지 평가를 꼽고 이어서 몇 가지 문제를 더 제기했다.

우리가 유리할 때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리한 시기로 반전되는 상황 속에서 굉장히 많은 희생을 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공격할 때는 사상자가 별로 발생하지 않지만 후퇴할 때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공격할 때는 사기가 충천하고 대오를 갖추어서 공격하는 데 반해, 후퇴할 때는 오합지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로부터 시급히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대오를 제대로 갖춰내지 못한다면 사상자가 굉장히 많이 발생할 것이고, 후퇴하는 대오 속에서 지배세력의 공격 앞에 동요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내부에서 반복해서 위기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합니다. - P242

김근태의 관심은 재야민주 세력을 정치적 대안 세력으로 묶는 작업이었다. 과거 일부 재야인사들이 진보정당운동에서 보여준 실패를 돌아보면서 제도정치권과 재야 세력의 조직적인 연계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러 날 동안 준비한 끝에 마침내 이를 위한 1단계 작업이 이루어졌다.
1994년 4월 23일 오후 충정로 동아일보사 18층 대강당에서 4백여명의 재야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최고지도부인 공동대표단에는 종교계 원로와 재야원로 5명을 선출했다. 가톨릭 대표 김병상 신부, 개신교 대표 김상근 목사, 법조계 대표 한승헌 변호사, 재야여성 대표 김희선 전국연합자주통일위원장, 불교계 대표 조계종 개혁의 핵심인 지선 스님, 그리고 이 단체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김근태가 각각 선임되었다. 김근태는 실질적인 상임대표였다. 대변인에는 천정배 변호사가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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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는 ‘국민회의‘ 출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1992년 대선 후 상황정리가 우선 필요했다. 첫째, 1992년 국민회의는 대선 패배로 무너졌고, 전국연합이나 기층민중운동 진영에서도 변화된 상황에 대한 논의가 합의되지 않았다. 둘째, 평가 결과 폭넓게 꾸리는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리고 민중 중심의 공감대를 가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셋째, 김영삼 정권이 민중의 기본권 문제,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정리했다. - P247

개혁이 지배적인 언술이 된 것은 김영삼 정권 성립 이후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주장되고 있는 ‘개혁‘이라는 슬로건 속에는 시대정신이 관철되고있는 측면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 양 측면은 반드시 상호배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립이 존재하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당면 요구로서의 진정한 ‘개혁‘을 보다 힘차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이 주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될 때, 우리는 비판적으로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조건상 그리고 힘의 관계로 볼 때 지금 추진하고 있는 개혁 이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는 전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함축이 그 속에 담길 텐데 과연 그럴까? ‘개혁‘이 이처럼 이데올로기가 될 때 그것은개혁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보다 그것을 오히려 제한하고 망상적인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 P251

간디가 가는 길이 있고 네루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재야운동은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길이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사회운동의 길은 간디의 길이고 정치운동의 길은 네루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르지만지원하고 협력하는 길입니다.

김근태는 이제까지 걸어온 간디의 길에서 네루의 길로 접어들었다. 간디의 길과 네루의 길이 다른 것 같지만 그 목표와 지향은 다르지 않다. 김근태의 말을 더 들어보자.

물론 내 개인적으로 간디의 길과 네루의 길을 동시에 다 갈수는 없지요. 나는 이제 네루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런 전제 위에서 간디의 길을 가는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고 함께할 생각입니다. 국민회의(재야단체인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인용자)에서 김상근 목사님과 함세웅 신부님을 상임대표로 하고 저를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뽑은 것도 간디의 길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인정한 것이지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도덕적 정당성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김근태는 간디의 길과 네루의 길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다. 그리고해방 뒤 김구 선생 곁에 네루와 같은 지도자가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여겼다.

위대한 영혼 간디가 인도 독립을 위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이며 전국을순회하고 죽음을 각오한 단식투쟁을 벌일 때, 위대한 현실주의자 네루는간디의 그 숭고한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치를 했던 것입니다. 간디에게는 간디의 길이, 네루에게는 네루의 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평양으로 떠나시던 김구 선생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사진 속에서 선생의 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만일 그때 김구 선생 곁에 네루와 같은 인물이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우리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으리라고생각합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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