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렇게 멀리서는 과거가 좀 더 부드러워 보인다. 덜 고통스럽고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내가 식탁에 앉아서 테이프를 녹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나는 포도주잔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둘다 서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둘다 불완전하고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나마 투병 기간 내내 서로에게 곁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와놓친 연결감과 이런저런 후회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는 것은 일종의 평온함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노력했어. 마지막에는,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했어. 이런 감상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평화도 있었다. - P192
금주한 지 일 년 뒤에 다시 마시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 무렵은 뿌연 안개가 걷히고 앞으로 해야 할 어려운 일이 드러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술을 끊는 일은기차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좀 비슷하다. 당신은 멍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일어나서,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다 머리가 맑아지고 트라우마가 잦아들면, 자신도 모르게 망연히 잔해를보며 서 있게 된다. 저 기차에서 내린 나는 이제 누구지? 이제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이것은 겁나는 시기이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는사실을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