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깊이 동일시하는 건 드문 일일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딸에게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할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라는 사람, 딸이라는 사람, 서로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 그 사이를 잇는 선들은 서로 교차하고 엉클어지고 겹쳐지기 일쑤다.
하지만 모녀 관계가 얽히고 설킨 관계가 되기 쉬운 게 그 때문이라면, 역시 그 덕분에 모녀 관계는 유달리 풍성한 관계가 될 수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란 딸의 내면에 있는 로드맵 혹은 거울이다. 우리와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우리가 평생 배워온 교훈들, 우리가 과거에 걸어오다가 계속 걷기로 결정했거나 포기하기로 결정한 길들이 반영되어 있다. 여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일이나 연애 문제든,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입고 어떤 친구들을 사귈까하는 문제든,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문제든 다소나마 자신의 결정을 어머니의 결정에 견주어 평가해보기 마련이고, 어머니의 노력들이 어떻게 어머니를 형성하거나 제약했는지, 강화하거나 약화했는지 따져보기 마련이다.
몇 주 뒤에 나는 서른다섯이 된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려야 할 시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나는 그 거울이, 지도가, 나를 짜증 나게 만들던 통화들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직은 내가 혼자서 해낼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 - P150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성인이 된 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밑바탕에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슨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고,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고, 내게 맞는남자나 직업이나 신발, 옷, 헤어스타일 따위가 휙 하고 나타나서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행복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외부에서 내게 주입해주기를 기다렸다.
술이 사실은 그 구속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 디뎌야 할 고통스러운 걸음들을 디디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술을 끊고서야 비로소 든 생각이었다. - P155

거식증은 당신을 잡아당긴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늘 술이 있듯이, 거식증도 늘 거기 있으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다. 그 힘은내가 약할 때, 혼란하거나 산란하거나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음식에 대한 경직성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의식들로부터 너무 멀어졌을 때, 나 자신의 가치를 믿지 못할 때 가장 세어진다. 그럴 때, 그 힘은 안전한 안식처처럼 나를 꾄다. 나는 별의별 이유로 굶어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무엇이라도 통제하기 위해서, 분노와 불안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표현하는 대신 내보이기 위해서,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역설적으로) 돋보이기 위해서, 한 가지 일에서라도 철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물론 그 일이란 마르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가끔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거식증은 자신을 제약하는 일, 외로운 일, 고통스럽도록 단조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훌륭한 수단이기도 하다. 뼈와 모서리로 이루어진 딱딱한 벽 뒤에 숨는 일이다. - P180

나는 이 외로움과 오래도록 친밀하게 지내왔다. 가끔은 내가이 외로움을 타고난 게 아닐까,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뭔가 부족해서 세상과 떨어진 존재라고 강하게 느끼는 이 감정을 타고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어느 봄날에 내 방에 앉아서 창밖에서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이름붙이지 못했던 어떤 기분을 느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은세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저 창밖에서 나 없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거기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의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늘 친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것도 많다. 하지만 내가 겪는 외로움은 현실의 상황이나 논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산다. 작고 끈질긴 악마 같은 그것은 가장 고요한 순간에, 그러니까 계획 없는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 같은 때 활개를친다. 그것은 공허감이다. - P184

이런 것들은 어려운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앞질러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이 질문들에 답할 기회를 회피해왔다. 물론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새 신발의 치유력을 열렬히 증언하는 바다. 하지만 더 큰 질문들을 피하기만 했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돈을 펑펑 쓰면서 종종거릴 때, 보통은 내가 평범한 일요일을 계획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느낌이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잠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일에 착수했다. 몇 달 동안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생각만 했던 커튼을 직접 만들어서 걸었다. 할 일을 해치웠다는 것 자체가 단순한 기쁨이었을 뿐 아니라, 이 일로 새삼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내게는 절망감에 맞서 싸울 자원이 있다는 사실, 내 시간을 잘 쓰고 내 영혼을 잘 돌볼 능력이 있다는 사실, 외로움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사실.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고독한 일요일이었지만, 결국에 외로운 일요일은 아니었다.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