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에 예쁘게 색칠한단청을 만든 것이다.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았을 때 시야에서 윗부분을 프레임하는 것이 서까래와 처마다. 처마 부분은 외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의 프레임이니, 장식이 들어간다면 이 부분에 했어야 했던 것이다. 재미난 것은 단청을 구성하는 색깔이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대부분이 녹색 계통이고 강하게 보색이 되는 자줏빛을 사용한다. 이 색깔은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자연을 더 확장돼 보이게 하려는의도로 추측된다. 여름철에 처마에 서서 주변 산을 바라보면 자줏빛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고, 녹색은 나뭇잎으로 보여서 주변 풍경이 연속되어 건축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우리나라 단청이 왜 그렇게 명도가 높은 색상으로 된 것인지도 이해가된다. 처음에 서양인의 시점으로 건물을 밖에서 바라보면 단청의 채도가 너무 눈에 띄게 높아서 거슬린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바라보게 되면 이해가 된다.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나는 이런 경험을 불국사의 어느 처마 밑에서 할 수 있었다.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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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강이가 죽을 것 같아."
나의 귀가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엄마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허겁지겁 집에 달려갔다. 강이는 현관까지 뛰어와 엉덩이가 실룩거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었다.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어서 좋았다. - P9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
엄마는 크기가 다른 냄비를 써도 라면 물의 양을 정확히 예측했다. 반장은 중간고사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정확히 예측했다.
선생은 무슨 말을 해야 아이들이 웃을지 예측했고, 아이들은 어떤 말을 해야 선생이 화를 낼지 예측했다. 그렇지만 나는 예측할수 있는 게 없었다. 읍내동에서 쌓아왔던 예측의 기술은 전민중학교에서 번번이 빗나갔다. 읍내동 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 교과서를 읽는 아이가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전민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모두가 원어민이 되었다. 내가읍내동에서 선행학습반에 뽑혀 한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고있을 때, 전민동 아이들은 미분이니 적분이니 하는 두세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었다. 이해받을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선생들은 화를 냈고, 화낼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친구들은 옷음을 터뜨렸다. 읍내동에서 그나마 똑똑한 아이로 취급받던 나는 전민동에 오자 멍청한 아이가 되었다. 달라지는 상황 앞에서도 예측이 정확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얼마나 많은냄비를 써봐야 어느 냄비를 쓰든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문제를 풀어봐야 어떤 선생이든 무슨 문제를 낼지 알아맞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꽃을 키워봐야 얼마나 많이 꽃을 죽여봐야 다짐을 더 자주 다지는 것밖에는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다짐에 골몰했다.
소영의 예측 방식은 달랐다. 내 방식이 먼 곳에 놓인 돌멩이를보려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식이 쥐고 있는 돌멩이를 꾸준히 쥐고 있는 거라면, 소영은 돌멩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둑을 두는 방식이었다. 현실에 두는 돌 하나로 미래의 돌의 위치를바꿔놓았다. 소영의 곁에서 나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미래가 현실을 향해 마구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했다. 막연한 단어로만 꺼내보았던 미래가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영은 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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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마음 한구석에 그물을
드리우는 것과 같아서
그 그물을 건드릴 때마다
예기치 않게 온갖
감정과 기억이 죄다끌려나오는데...
그때그때 밀려오는 것에
제대로 이름을붙여주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휩쓸리기마련이거든요.
이름을 붙이면
마주할 수 있고,
마주할 수 있으면
다른 감정과 슬픔을구별할 수 있어요.
그 모든 걸
슬픔으로 뭉뚱그리면
슬픔의 총량만 한없이
불어나거든요.
무엇보다소중한 사람을 슬프게만
기억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요. - P125

원래방두 개를 채울 만큼
많았는데 그나마다 정리한거야.
왜 정리하신거예요...?
좋아했던 마음이무거워서…
지나간 일은그리워하기
적당한 무게로남겨두는게 좋겠다고생각했거든.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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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이야기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죽음이 또다른 생으로 가는 첫번째 단계라고 믿었어요.
사람이 숨을 거두는 것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거라고요. - P8

네가 뭘 선택하든
그게 널 해치는 일만아니면
엄마는 상관없어.
나는 그냥 이모나 주연의 영화가
걸리는 상영관 맨 앞에 앉아서
응원봉이나 흔들게.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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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보면 농업 문명이 같은 위도상의동서 방향으로는 빠르게 전파되고, 남북 방향으로는 느리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남북 방향으로 이동하면 위도가 달라지면서 기후가 바뀌게되고, 기후가 바뀌면 어렵게 발견한 농사 가능한 종자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동서 방향 이동은 같은 위도상으로 같은 기후대상에서의 이동이기 때문에 옆에서 농사가 가능했던 종자를 그대로 쓸 수 있기에 농업 전파의 속도가 빠르다. 우루크는 북위 33도에 위치하고, 아테네는 북위 37.5도, 시안은 북위 34도에 위치한다. 우루크와 비교해서시안은 위도상 1도 차이가 나는 반면 아테네는 4.5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우루크에서 아테네에 가려면 가운데에 지중해가 가리고 있어서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우루크에서 시안은 육지를 통해 동쪽으로수평 이동하면 된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을 적용하면 동쪽으로 수평 방향으로 전파된 농업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서 그리스와 중국은 같은 시대에 위대한 사상가가 나올 정도의 비슷한 발전 수준이었지만 거리로 따지면 시안이 아테네보다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도시에서 두 배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 P55

한국이 미국보다 자본주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같이 유독 동아시아에서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 사회주의 국가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같은 벼농사 사회에 있는 사회주의적 가치관이 깔려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일찍이 서양 문화에 개방됐던 일본처럼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자본주의 산업화에 앞서 나간 경우도 있으니 그리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벼농사와 사회주의 공산 개념은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정리해 보면, 벼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농사짓는 방식 때문에 결속하고, 집단의식을 키우고, 주변인과 협업하도록 가치관과 시스템이 발달해 왔다.
반면 밀 농사는 씨 뿌리는 모습부터 다르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지만, 밀 농사 지을 때는 땅 위를 혼자 걸어다니면서 씨를 뿌린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경우가 적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비가 집중호우 없이 적당히 고루 내리는 지역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농사는 벼농사에 비해서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자연스럽게 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관개수로 토목공사를 하고 집단 모내기를 하면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만들어지게 된다. 벼농사 지역의 이혼율이 밀 농사 지역보다 매우 낮은이유도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자연 속에오두막이 띄엄띄엄 있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의시골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농사 방식은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만들었다. 노동 방식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지은 것이다. - P64

반면, 벽 중심의 수메르 건축 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아시아에는 장마철에 집중 호우가 내리기 때문이다. 집중 호우가 내리면 땅이 물러지게 되어서 벽돌 같은 무거운 재료로만든 벽은 옆으로 넘어가 집이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의 일부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건축 재료로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목재를 사용하게 되면 다 좋은데, 물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질 위험이있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부분에는 방수 재료인 돌을 사용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처마를 길게 뽑아서 비에 맞지 않게 지붕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들어서 빗물이 잘 흐르게 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지붕을 덮는 방수 재료로 흙을구워서 만든 기와를 사용했다. 그런데 기와는 무겁기 때문에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더 굵어야 하고, 기둥 재료도 더 비싼 큰 나무를 써야 한다. 기와로 만든 지붕은 무겁고 기둥도 더 굵어져서 집이 전체적으로 더 무거워졌다. 주춧돌 같은 좁은 면적의 기초를 가지게 되면 기둥이 침하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더 넓은 기초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더 많은 돌을 써서 넓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지어야 한다(238쪽 아래 사진 참조). 기와를 사용하면 건축비뿐 아니라 토목공사비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돈이 많은 부자일수록더 큰 주춧돌과 더 높은 기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때 가장큰 주춧돌을 가진 건축물은 무엇일까? 왕이 사는 ‘경복궁‘의 ‘경회루‘다. - P69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의 건축은 다르게 발전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했다. 밀 농사 지역은 벽중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에 창문을 내려고 구멍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다.
게다가 유리가 대량 보급되기 전에는 창문을 유리창이 아닌 나무로 만든 문으로 가려야 했다. 유리창은 고딕 성당 같은 엄청나게 비싼 건축물에나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서양 건축의 대표적인 창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바깥 경치를 볼수 있는 투명한 창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동양의 건축은 입면을 디자인할 때 서양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동양의 건축물을 보면 건물의 입면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수를 하는 지붕이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였다. 비가 많이 내리니 빠른 배수를 위해서 지붕의 기울기가 급하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바라보면 지붕이 건물 입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 P74

동양은 나무 기둥을 이용해서 건축되었는데,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갖기 쉽다. 게다가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있었기에 유리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창문을 크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여름철 더울 때에는 통풍을 위해서 창문을 접어서들어 올려 처마 밑에 걸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벽이 없는 건축이 된다. 비가 오더라도 처마가 길게 가려 주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비가들이치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마 아래에는 툇마루를 만들어서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수도있다. 동양 건축에서는 이렇게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의 내부와 바깥 경치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 및 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의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향해서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땅이어야지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햇볕을 받게 되고, 비가 온 후에도 땅과 건물이 잘 말라서 건축물이 더 잘 유지될 수 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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