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보면 농업 문명이 같은 위도상의동서 방향으로는 빠르게 전파되고, 남북 방향으로는 느리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남북 방향으로 이동하면 위도가 달라지면서 기후가 바뀌게되고, 기후가 바뀌면 어렵게 발견한 농사 가능한 종자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동서 방향 이동은 같은 위도상으로 같은 기후대상에서의 이동이기 때문에 옆에서 농사가 가능했던 종자를 그대로 쓸 수 있기에 농업 전파의 속도가 빠르다. 우루크는 북위 33도에 위치하고, 아테네는 북위 37.5도, 시안은 북위 34도에 위치한다. 우루크와 비교해서시안은 위도상 1도 차이가 나는 반면 아테네는 4.5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우루크에서 아테네에 가려면 가운데에 지중해가 가리고 있어서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우루크에서 시안은 육지를 통해 동쪽으로수평 이동하면 된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을 적용하면 동쪽으로 수평 방향으로 전파된 농업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서 그리스와 중국은 같은 시대에 위대한 사상가가 나올 정도의 비슷한 발전 수준이었지만 거리로 따지면 시안이 아테네보다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도시에서 두 배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 P55

한국이 미국보다 자본주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같이 유독 동아시아에서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 사회주의 국가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같은 벼농사 사회에 있는 사회주의적 가치관이 깔려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일찍이 서양 문화에 개방됐던 일본처럼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자본주의 산업화에 앞서 나간 경우도 있으니 그리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벼농사와 사회주의 공산 개념은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정리해 보면, 벼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농사짓는 방식 때문에 결속하고, 집단의식을 키우고, 주변인과 협업하도록 가치관과 시스템이 발달해 왔다.
반면 밀 농사는 씨 뿌리는 모습부터 다르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지만, 밀 농사 지을 때는 땅 위를 혼자 걸어다니면서 씨를 뿌린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경우가 적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비가 집중호우 없이 적당히 고루 내리는 지역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농사는 벼농사에 비해서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자연스럽게 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관개수로 토목공사를 하고 집단 모내기를 하면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만들어지게 된다. 벼농사 지역의 이혼율이 밀 농사 지역보다 매우 낮은이유도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자연 속에오두막이 띄엄띄엄 있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의시골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농사 방식은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만들었다. 노동 방식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지은 것이다. - P64

반면, 벽 중심의 수메르 건축 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아시아에는 장마철에 집중 호우가 내리기 때문이다. 집중 호우가 내리면 땅이 물러지게 되어서 벽돌 같은 무거운 재료로만든 벽은 옆으로 넘어가 집이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의 일부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건축 재료로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목재를 사용하게 되면 다 좋은데, 물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질 위험이있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부분에는 방수 재료인 돌을 사용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처마를 길게 뽑아서 비에 맞지 않게 지붕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들어서 빗물이 잘 흐르게 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지붕을 덮는 방수 재료로 흙을구워서 만든 기와를 사용했다. 그런데 기와는 무겁기 때문에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더 굵어야 하고, 기둥 재료도 더 비싼 큰 나무를 써야 한다. 기와로 만든 지붕은 무겁고 기둥도 더 굵어져서 집이 전체적으로 더 무거워졌다. 주춧돌 같은 좁은 면적의 기초를 가지게 되면 기둥이 침하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더 넓은 기초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더 많은 돌을 써서 넓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지어야 한다(238쪽 아래 사진 참조). 기와를 사용하면 건축비뿐 아니라 토목공사비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돈이 많은 부자일수록더 큰 주춧돌과 더 높은 기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때 가장큰 주춧돌을 가진 건축물은 무엇일까? 왕이 사는 ‘경복궁‘의 ‘경회루‘다. - P69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의 건축은 다르게 발전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했다. 밀 농사 지역은 벽중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에 창문을 내려고 구멍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다.
게다가 유리가 대량 보급되기 전에는 창문을 유리창이 아닌 나무로 만든 문으로 가려야 했다. 유리창은 고딕 성당 같은 엄청나게 비싼 건축물에나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서양 건축의 대표적인 창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바깥 경치를 볼수 있는 투명한 창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동양의 건축은 입면을 디자인할 때 서양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동양의 건축물을 보면 건물의 입면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수를 하는 지붕이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였다. 비가 많이 내리니 빠른 배수를 위해서 지붕의 기울기가 급하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바라보면 지붕이 건물 입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 P74

동양은 나무 기둥을 이용해서 건축되었는데,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갖기 쉽다. 게다가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있었기에 유리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창문을 크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여름철 더울 때에는 통풍을 위해서 창문을 접어서들어 올려 처마 밑에 걸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벽이 없는 건축이 된다. 비가 오더라도 처마가 길게 가려 주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비가들이치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마 아래에는 툇마루를 만들어서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수도있다. 동양 건축에서는 이렇게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의 내부와 바깥 경치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 및 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의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향해서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땅이어야지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햇볕을 받게 되고, 비가 온 후에도 땅과 건물이 잘 말라서 건축물이 더 잘 유지될 수 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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