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살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 그냥 바다로 헤엄쳐나가 미리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샐리에게 시한부 인생 선고는 선물과 같다. 어쩌면 그 사실을 알기 바로 전주에 사비에르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샐리는 신이 났다. 모든 것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말은무엇이든 다 하고, 기분 좋아질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한단다. 웃기도 하고, 걸음새는 섹시하다. 목소리마저 섹시하다. 화도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내 동생 샐리. 언제나 온순하고 소극적이었다. 어렸을 때는 내 그늘 속에서 그랬고, 성인이 되어서는 제 남편의 그늘속에서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강인하고 얼굴이 환하다. 그 열의에는 전염성이 있다.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 앞에 멈춰 서서 인사를 한다. 남자들은 샐리의 손등에 입맞춘다. 의사, 건축가, 홀아비.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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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체성 구성은 근대 후기의 개인을 도시 계획가 게오르크 프랑크 Georg Franck가 기술한 ‘주목 경제 Attention Economy‘ (그가 저술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즉 인지 자원의 자본화로 인도한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평범한 현상은 광고다. 오늘날 광고는 온갖 내러티브를 동원하여 우리의 부족한 관심을 끌려고 애쓰며, 민영방송에서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창출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브뢰클링은 여기서 영웅화를 통해 진부한 것이 ‘고상해지는 현상‘을 인식한다. 마케팅의 언어로 상품 또는 심지어 소비자 자신까지 영웅이 된다. 란제리 브랜드 훈케묄러 Hunkemöller는 여성 고객을 쉬어로즈 Sheroes로 칭송하고 알디쥐트ALDI-Süd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옮긴이)광고에서는 케이크 글레이즈Cake Glaze 제품을 ‘일상의 영웅‘
으로 만들었다. 언어 행위를 극도로 응축하고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은폐하며 비교적 단순한 인과관계를 따르는 광고는 일상에 확고하게스며든 미니 영웅 여정의 좋은 예다. - P151

 또한 오늘날 우리는 영웅주의가 뜨거운 모래 위에서붉은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투를 벌이는 것 말고도다른 형태의 영웅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Rousseau가 썼듯이 "영웅이라는 무리는 필연적으로 몰락할 것이다. " 세무신고에서 해상 구조에 이르기까지 시민 영웅주의에는 연방 청소년 대회 Bundesjugendspicle (독일 학교를 대상으로 매년 국가에서 실시하는 스포츠 대회 - 옮긴이)의 오랜 규칙이 적용된다. 즉 너무 많은 선수의너무 훌륭한 퍼포먼스가 낙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상승시킨다. 과거에는 누군가 어떤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면 비록 단골 지정석에서 맥주 다섯 잔을 마신 후라도 주목 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성공적이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팔로워 수가 만 명이 되지않으면 전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브뢰클링이 ‘비대칭적 시선 체제‘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다. 즉 영웅은 언제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청중이 필요하다. 브뢰클링에 따르면 "영화에서 사용되는 영웅 샷 Hero Shor은 주인공을 클로즈업하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카메라 앵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서사는 19세기의 자유화와 행동하는 주체로의 시민의 지위 상승을 통해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즉 이 이야기에서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 영웅으로 제시되고신에 가까운 힘과 초인적인 용기를 요구하는 모험을 떠난다. 가이 리치와 같은 현시대의 감독은 아서 왕과 같은 고대 신화까지도 우리가 모두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모두가 자기의 왕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찾고 자신의 운명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이다. - P152

‘내러티브 Narrative‘, ‘이야기 Erzählung‘, ‘스토리Geschichte‘는 정확히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이 세 가지 개념과 그 의미가 서로를 기반으로 구축된다고 생각한다. 내러티브가토대를 형성한다. 그 위에 내러티브의 문화적 표현으로서 이야기가쌓이고, 다시 그 위에 수많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스토리가 쌓인다. - P159

보로딧츠키에 따르면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우리가 사물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영어를사용하는 목격자는 사고 유발요인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목격자는 그것이 의도되지 않은 사건, 즉 불의의 사고라는 사실을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관찰자는 이미 자신의 언어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같은 사건을 다르게 인식하며, 따라서 세부적 내용도 다르게 기억한다. 이는 증인 진술과 법적 결과와 관련하여 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로딧츠키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언어는 우리가 사건을 판단하는 방식을조종한다. - P169

‘피부색‘이라는 단어를 밝은 베이지색과 동일시하면 완전히 잘못된 현실 묘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피부색‘이라는 단어 자체는 백색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탈로 간주하는 사회적 자기 서사의 표현이다. 이는 레이코프와 보로딧츠키가 연구했듯이 우리의 인지 격차를 보여준다. ‘피부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러한인지 격차가 다시 재생산 및 강화되며, 사람들을 배제하고 평가절하한다. 말하자면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고려해야 할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이러한 모든 내러티브가 ‘피부색‘이라는 눈에 띄지 않는 단어에 담겨 있다. 언어는 이러한 식으로 차별하는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힘도가지고 있다. - P174

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일단 먼저 주장한다는 의미다.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청중은 언어유희라는 틀 안에서 그의 주장이 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한정된 시간동안 화자와 청자는 ‘마치 인 것처럼‘ 함께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현실에 대해말하고 쓰는 방식을 모방한다. 앵글로색슨의 허구 이론에서는 이를 ‘믿는척하기 Make-Believe‘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허구적 사실은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실처럼 보이는 순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영화관 관객은 영화표를 구매함으로써 일라이저 우드 Elijah Wood가호빗이고 백발의 늙은 남자들이 마법을 쓰고 반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사라지게 하고 악을 끌어들인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주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상상력으로 주어진 내용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장하지 않으면서 주장하는 것이다. 독문학자 베니타 헤르더 Benita Herder가 자신의 저서 『이미지와 허구 Bild und Fiktion』에서 ‘검‘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하듯이, 집단으로 ‘믿는 척하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규칙은 우리의 언어다. 우리에게는 특정 글자의 조합이 글자 이상의 것처럼 행위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가 있다. 이를테면 waff 라는 알파벳 문자로는 검치호랑이나공격자에 맞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무기를 제공하다 Waffeanbicien"라는 말로 실제 전쟁이 시작되거나 끝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이미지로도 충분히 그것이 가능하다. - P178

이미지는 우리가 어떤 사태나 실상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같은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그 이미지를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두건을 두른 여성 이미지는 이주나 통합 논쟁을 설명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 독일에 살고 있는 무슬림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증거처럼 사용된다.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 여성의 70퍼센트가 두건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미지 뒤에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파성은 어디로 이어질까? 베텔스만 재단 Bertelsmann Stiftung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절반이 이슬람을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특정 이미지가 과잉 노출됨으로써 독일의 문화적 동질성이 두건을 쓴 여성들로 인해 도전받는다는 내러티브가 생겨났다.
덧붙여 말하자면 유대교나 반유대주의를 다루는 뉴스나 기사에서는 종교적 소수자를 묘사하는 편파적인 성(性) 표현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 유대 모자를 착용한 뒤통수가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전형적으로 키파Kippah를 쓴 남성 모습만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독일에 살고 있는 유대인 중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여성도 유대인 남성과 똑같이 반유대주의 폭력의 피해자다. 그러나 유대인 여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연출되지 않기 때문에 기사에 등장하는 경우는드물다.
무슬림과 유대인에게서는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들 문화와 종교의 작은 일부분을 일반화하고 이를 다시 이주 주제와 혼합하는 반면,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보도가 그 자체로 위험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세 번째 예가 있다. 바로 극우주의다. 극우주의에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이 열심히 작동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군화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극우주의자와 네오나치Neo-Nazis가 그들의 옷차림으로 쉽게 식별될 수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에는 법원 판결에 따라 극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 정당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연방의회에서 군화를 신지는 않는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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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는 호텔로 돌아가는 정글 길을 지나갈 때 몹시 더웠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멜에게 말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걸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았다. 멜이 죽고얼마 안 되었을 때 티브이에서 막스 브라더스의 쇼를 보았다. <오페라의 밤> 엘로이즈는 티브이를 꺼야 했다. 도저히 혼자 웃을 수 없었다. - P178

그들은 물위로 떠올랐다. 초록색 물은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해의 위치를 보고 잠수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다는것을 알았다. 무게를 느끼지 못하면 판단 기준으로서의 자신을 잃는다.
시간 속 자신의 위치를 잃는다.
"고마워요." 엘로이즈가 말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조개를 많이 잡았어요."
"레슨비는 얼마죠?"
"나는 선생이 아닙니다."
엘로이즈는 베르나르도의 간판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레슨비 500페소."
"손님은 베르나르도의 손님이 아니죠. 우리한테 오셨잖아요"
그게 전부였다. 나중에 엘로이즈는 아침 식탁에서 생각했다.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은 그들이 그녀를 좋아한다거나 그녀가 그들과 잘맞는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들에게 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 청년처럼. 그는 그러고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어쩌면 잠수부들은 그광대한 공간 속, 그런 물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예상했다는 듯이, 똑같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 P184

"너 그 바보같은 생활로 돌아가면 안 돼! 가지 마! 날 떠나지 마." 우리가 그녀의 아파트가 있는 길가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계속 그런 말만 했다.
나는 "안녕히 계세요. 모두 고마웠어요"라고 했던가 뭐랬던가, 아무튼 그런 멍청한 말을 했다. 나는 그녀를 내려주고,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 갈때까지 운전사 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눈물을 참았다.
우리 집 하녀들이 문에 기대 이웃집 경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골프를 치러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집에 왔네. 어디 갔다 왔니?" 아버지가 물었다.
"소풍갔었어요. 역사 선생님이랑."
"응, 그래. 그 선생님 어때?"
"괜찮아요. 공산주의자예요."
그만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정말 비참한 날이었다. 도슨 선생님이라면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에게 한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처리되었다. 도슨 선생님은 그 주에 해고되었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내 친구들은 그녀가 없어진 걸 기뻐했다. 대학교에 가면 미국 역사 과목을 보충해야 할 테지만, 지금 그과목의 수업 시간은 우리 세상이었다. 나는 말할 상대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할 상대가. - P209

다음 주 일요일, 로레타는 늦게 그들의 집에 갔다.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정말 집에 있고 싶었지만, 전화로 약속을 취소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 현관문이 잠겨 있어서 집 뒤의 계단을 통해 들어가려고 뒤뜰로 향했다. 뒤뜰에서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토마토, 호박, 깍지완두가 무성했다. 느른한 꿀벌 소리. 아나와 샘은 계단 위 베란다에 나와 있었다. 로레타는 그들이 대화에 열중하고 있어서 소리쳐 부르려다 말을 거두었다.
"로레타가 늦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안 올지도 모르겠네."
"응, 오겠지•••••. 로레타에게 여기서 보내는 아침 시간들은 아주 소중하니까."
"가엾은 것. 너무 외로워서는, 로레타에겐 우리가 필요해요. 가족이라곤 정말 우리밖에 없잖수."
"내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어하는데, 망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하나도 생각이 안나."
"생각나겠지•••••."
" 저 왔어요!" 로레타가 외쳤다. "집에 계세요?"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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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이전의 문화 -오로지 서사적으로 물려받은 지식, 범신론과정령 신앙에 따른 세계 모형, 협력과 조정에 강하게 의존하는 최대 150명의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 집단을 지닌 문화에서 이야기는 이타심과 공평함을 통해 함께 어울리고 최적의 문제 해결을 통해 나란히 앞서 나가며 근본적인 창조 신화와 인과성 신화를 통해 세상을헤쳐가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 마지막 기능을 통해 오늘날 중동의 초기 문자 문화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한 서사 구조와 규범을 가진 최초의 종교가 발생했다. 그 후 기원전 500년경에 오늘날의 그리스, 특히 아테네와 에게해 주변의 도시국가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발견이다.
스토는 이 현상의 근원을 무엇보다 그리스의 지형에서 찾는다. 즉 가파른 해안으로 깊은 틈이 많아 넓은 평야에서의 농업처럼 집단기반 활동보다는 개인 위주의 생업 (어업, 올리브오일 생산, 무역)이 더 적합하다. 스토는 "고대 그리스에서 이 세상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립이었다. 개인의 자립이 성공의 열쇠였기 때문에 전능한 힘을 가진 개인이 문화적 이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 문화의 하나로서 명성, 완벽함, 위신과 같은 현대적 가치를 추구하려고 했다. 스토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을 상대로 싸우는 전설적인 경기인 올림픽을 만들었고, 50년 동안 민주주의를 실천했으며, 자기 자신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나르시스의 이야기에서 감당할 수 없는 자기애를 경고해야 했다. 폭군, 운명, 신의 변덕의 노예가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기의 힘의 장소가바로 개인이라는 구상은 혁명적이었다." - P141

그런데 이러한 서사적 자기 고행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함께 어울리면서 앞서기 위해서다To Get Along and Get Ahead. 그렇게 하면 가혹할 정도로 부당한 상황을 나름대로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중세 봉건 계급사회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소수의 엘리트 계층인 귀족과 성직자에게 예속되었다. 또한 언제든지 질병에 걸려 죽거나 굶주리거나 더 강력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고난과 기도로가득 찬 짧은 삶은 이미 특권이었다. 그러한 시대에는 부당함과 양립•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기독교의 기원은 노예 신분의 사람들에게 완벽한 스토리였다. 이승에서 희생하면 내세에서 보상받는다는 스토리는 기발한 착상이었다. 고통을 통해서만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놀랍게도 그들은 고통을 훨씬 더 잘 감당할 수 있게 된다. 크나큰 고통 속에서 순종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함께 어울리고 나아가 앞서 나갈수있는 핵심 능력이었다. - P144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고대 그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세계 반대편의 한 학자는 그 당시의 고행에 대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즉 완만한 언덕과 넓고 비옥한 평야에서 마을 전체 지역이 협력하여 급수와 수확에 힘쓴다면 쌀과 밀을 훌륭하게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윌 스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 세상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고개를 숙이고 하나의 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집단 통제 이론은 자아의 집단적 이상으로 이어졌다. "중국 철학자 공자는 『논어』에서 ‘우월한 인간‘은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덕목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사람은 ‘우호적인 조화를 증진하고 균형과 조화의 상태가 완벽하게 지속되도록 한다.‘ 이러한 특성은 7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테네에서 보였던 것과 완전히 반대였다. 그리스인에게는 주된통제 수단이 개인이었다면 중국인에게는 집단이었다.  - P145

이러한 현실 경험 차이로부터 서로 다른 서사 형식이 생겨났다. 그리스 신화는 일반적으로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작, 중간, 끝(위기, 싸움, 해결)이 그것이다. 종종 영웅의 주요 역할은 끔찍한 상대와 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간계나 힘으로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다. 이는 한 명의 용감한 사람이 정말로 모든 것을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개인주의 선전과 다름없다. 반면 중국 동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공동체에 봉사함으로써 지위를획득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결말은 크게 비극적이지도 행복하지도않다. 한국의 심리학자 김의철 박사는 중국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열린 결말이라고 본다. "중국 이야기에서는 결코 답을 얻지 못한다. 결말도, 해피엔딩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이것이 이야기의 재미다. 개인에 초점을맞춘 동양의 이야기에서 영웅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집단과 관련된 방식으로 획득된다." 아시아에서는 희생하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 회생하는 사람이 가족과 공동체, 국가를 보살핀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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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이렇게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본질은 [...] 이야기만을 남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다이몬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마침내 불멸의 인간 이야기로 응축되는 자신의 서사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의 다이몬뿐만 아니라 에우다이모니아의 불가능성도 인식한다. 영원한 방황은 그의 명예욕에 대한 대가다.
그렇다면 파이아케스 궁전의 오디세우스 일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결코 자립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항상 사회적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이야기능력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유일무이한 인간이 된다. 오디세우스와같은 영웅은 모든 인간의 욕구를 과장해서 표현한 형태이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고 이야기된다. - P129

그러나 이러한 거울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거울에서는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즉 어린아이는 자기 모습을 비춰주고 이를 통해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 처음으로 이해한다. 그 후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투영할 수 있고그들과 함께 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말하자면 자신도 영혼과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아이는 타인에게 투영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볼프강 프린츠는 "타인이 먼저고 그다음에 자기 자신이 온다."고 설명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의 출처로서 타인이 매우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할 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출처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원숭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타인의 의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믿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디세우스은 눈눌을 흘렸다. - P130

그래서 리쾨르는 이러한 ‘나‘를 파악하기 위해 정체성의 두 가지양상을 구분한다. 즉 ‘자체성idem‘과 ‘자기성ipse‘의 개념이다. 동등 혹은 상대적 불변성인 ‘자체성‘은 예를 들어 대상을 정의할 때 사용될 수있다(테세우스의 배에서 확인한 것처럼 복잡해질 수 있지만). 반면 개인은 자신이 추구하려는 일관성에 대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배우게 되고 나아가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우리 자신의일관성에 대해 성찰함을 통해 바로 이 일관성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리쾨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관성을 타인에게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자체성‘과 ‘자기성‘, 이 양극의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사적 자아다. 서사적 자아라는 개념은 모든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새롭게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확립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 P135

서사적 정체성 Narrative Identity은 다음과 같은 내면 거울의 두가지 측면을 결속시킨다. 즉 오래도록 지속되는 불변의 특성과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끊임없는 자기실현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기실현은여러 이야기와 지속적인 해석, 수정을 허용하기 때문에 결코 최종적이거나 완결될 수 없다. 이처럼 자기실현은 자기 서사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독단성이나 무작위성을 방지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적 일관성을 이루는 사람을 (자기)이해하게 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자기성‘은 서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우리 존재의 시간성을 성찰하는 능력, 실패와 승리를 파악하는 능력, 시작과 목표가 있는 이야기,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인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난관 극복 에피소드를 형성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가 누구인지 인식한다. "나는 불변의 존재이자 발전의 존재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속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는 보물이자 보물 지도이며 보물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누구이며 어떤지는내가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립된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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