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는 이렇게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본질은 [...] 이야기만을 남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다이몬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마침내 불멸의 인간 이야기로 응축되는 자신의 서사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의 다이몬뿐만 아니라 에우다이모니아의 불가능성도 인식한다. 영원한 방황은 그의 명예욕에 대한 대가다. 그렇다면 파이아케스 궁전의 오디세우스 일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결코 자립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항상 사회적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이야기능력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유일무이한 인간이 된다. 오디세우스와같은 영웅은 모든 인간의 욕구를 과장해서 표현한 형태이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고 이야기된다. - P129
그러나 이러한 거울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거울에서는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즉 어린아이는 자기 모습을 비춰주고 이를 통해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 처음으로 이해한다. 그 후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투영할 수 있고그들과 함께 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말하자면 자신도 영혼과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아이는 타인에게 투영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볼프강 프린츠는 "타인이 먼저고 그다음에 자기 자신이 온다."고 설명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의 출처로서 타인이 매우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할 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출처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원숭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타인의 의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믿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디세우스은 눈눌을 흘렸다. - P130
그래서 리쾨르는 이러한 ‘나‘를 파악하기 위해 정체성의 두 가지양상을 구분한다. 즉 ‘자체성idem‘과 ‘자기성ipse‘의 개념이다. 동등 혹은 상대적 불변성인 ‘자체성‘은 예를 들어 대상을 정의할 때 사용될 수있다(테세우스의 배에서 확인한 것처럼 복잡해질 수 있지만). 반면 개인은 자신이 추구하려는 일관성에 대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배우게 되고 나아가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우리 자신의일관성에 대해 성찰함을 통해 바로 이 일관성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리쾨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관성을 타인에게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자체성‘과 ‘자기성‘, 이 양극의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사적 자아다. 서사적 자아라는 개념은 모든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새롭게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확립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 P135
서사적 정체성 Narrative Identity은 다음과 같은 내면 거울의 두가지 측면을 결속시킨다. 즉 오래도록 지속되는 불변의 특성과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끊임없는 자기실현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기실현은여러 이야기와 지속적인 해석, 수정을 허용하기 때문에 결코 최종적이거나 완결될 수 없다. 이처럼 자기실현은 자기 서사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독단성이나 무작위성을 방지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적 일관성을 이루는 사람을 (자기)이해하게 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자기성‘은 서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우리 존재의 시간성을 성찰하는 능력, 실패와 승리를 파악하는 능력, 시작과 목표가 있는 이야기,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인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난관 극복 에피소드를 형성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가 누구인지 인식한다. "나는 불변의 존재이자 발전의 존재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속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는 보물이자 보물 지도이며 보물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누구이며 어떤지는내가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립된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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