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801년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 여긴 확실히 아름다운 고장이다.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다시없는 천국이다. 더구나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이 쓸쓸함을 나누어 갖기에 썩 알맞은 짝이다. 멋진 친구! 말을 타고 다가가는 나를 보고 그의 시꺼먼 두 눈이 눈썹 아래에서 미심쩍게 찌푸려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내가 이름을 대자 그의 손가락들이 잔뜩 경계하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을 때, 내가슴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그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히스클리프 씨지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 P7

워더링 하이츠란 히스클리프 씨의 집 이름이다. ‘워더링‘이란 이 지방에서 쓰는 함축성 있는 형용사로, 폭풍이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말 이 집 사람들은 줄곧 그 꼭대기에서 일 년 내내 그 맑고 상쾌한 바람을 쐬고 있을 것이다. 집 옆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전나무 몇 그루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이 모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그것을감안하여 튼튼히 지었다. 좁은 창들은 벽에 깊숙이 박혀있고 집 모서리는 크고 울퉁불퉁한 돌로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 P9

방이며 가구 등속은 투박한 외모와, 바지에 각반이나 차야 어울릴 억센 다리를 가진 소박한 북쪽 농부의 것으로는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이 산중 오륙 마일 안쪽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둥근 탁자 위에 거품이 넘치는 커다란 맥주잔을 앞에 놓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히스클리프 씨에게는 그의 거처나 생활양식과는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데가 있었다. 얼굴은 집시처럼 검지만 차림새와 태도는 신사이다. 신사래야 시골 유지 정도의 신사로, 단정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잘생기고 곧은 체구라서 아무렇게나 하고 있어도 어색하지는 않고, 약간 침울한 편이었다. 아마 사람에 따라서는 그를 얼마만큼은 천한 자존심을 풍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속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가 무뚝뚝한 것은 감정을 야단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것, 이를테면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내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싫어서라는것을 나는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라든가 미움의 감정을 똑같이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을 받는다든가 미움을 사는 것을 대단치 않은 일로 여기리라. - P11

시키는 대로 하여튼 그 방에서만은 나왔다. 그러나 그좁은 복도로 가면 어디로 나가는지도 몰라서 가만히 서 있으려다 본의 아니게 집주인의 미신적인 일면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겉보기의 그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는 침대에 올라가서 창을 비틀어 열고 당기면서 걱정을 걷잡을 수 없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들어와! 들어와!" 그는 흐느꼈다. "캐시, 제발 들어와.
아, 제발 한 번만 더! 아! 그리운 그대, 이번만은 내 말을들어주오. 캐서린, 이번만은!"
그러나 유령은 유령다운 변덕을 보였다. 그것은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과 바람만이 사납게 회오리치며 들어와, 심지어는 내가 있는 데까지 불어 들어와서 촛불을 꺼버렸다.
이러한 울부짖음과 더불어 복받쳐 오르는 비통함 속에 너무나 쓰라린 고뇌가 있었으므로, 나는 불현듯 동정심이들어 그 어리석은 짓도 그대로 보아 넘겼다. 그러한 것을 엿들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고, 바보 같은 꿈 얘기로 고통을 준 것이 난처해서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내 꿈 이야기가 왜 그를 그렇게 슬프게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P49

뜻밖에도 히스클리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서그대로 자기가 마음먹었던 일을 해나갔어요. 안장이고 뭐고 다 바꾸어놓고는 조금 전에 얻어맞아서 생긴 현기증을가라앉히느라 짚단 위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갔지요.
그가 멍이 든 것은 말 때문이라고 해두자고 제가 타이르자 그는 쉽게 말을 들었어요. 원하던 것을 가진 이상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지요. 정말이지 그는 그정도의 일로는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아서 저는 그가 진심으로 복수심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시겠지만 제가 감쪽같이 속았던 거랍니다. - P67

사정 이야기는 조셉에게 맡겨두고 저는 아이들 방으로 달려갔어요.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들여다봤는데, 자정이지났는데도 자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까보다 차분해져 있어서 제가 위로할 필요는 없었어요. 두 아이는 저 같으면 떠올리지 못할 기특한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어요. 세상에 어떠한 목사님도 그들이 순진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려낸 것만큼 아름다운 천국은 그려내지 못했을거예요. 저는 흐느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도 모두 그러한 천국에 갔으면 하고 바라지않을 수 없었지요. - P74

캐시 아가씨는 숨어 있는 친구를 언뜻 보고는 껴안으려고 달려갔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예닐곱 번이나 키스를하더니 멈추고 뒤로 물러나 깔깔 웃으면서 소리를 쳤어요.
"아니, 어쩌면 이렇게 시커멓고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있는 거지? 왜 이렇게 우습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에드거와 이사벨라 린튼을 늘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걸거야. 그래, 히스클리프, 나를 잊어버렸어?"
아가씨가 그렇게 묻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았지요. 수치심과 자존심이 그의 얼굴에 이중의 어둠을 던져 그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 P89

캐시 아가씨는 새 친구 맞을 준비를 여러 가지 하느라늦게까지 앉아 있었어요.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부엌에도 한번 들렀지만 그는 가버린 뒤였고, 아가씨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만 묻고는 도로 들어갔지요.
다음 날 아침에 히스클리프는 일찍 일어났더군요. 그날이 일요일이었던 탓에 기분이 나쁜 채로 벌판으로 나가버리고, 집안사람들이 교회에 갈 때가 되어서야 다시 나타났어요. 먹지도 않고 반성을 하느라 기분은 좀 누그러진 것같았지요. 제 앞에 와서는 한동안 우물거리더니 용기를 내서 불쑥 이렇게 소리쳤어요.
"넬리, 나를 보기 싫지 않게 해줘. 나도 점잖아지고 싶어."
"잘 생각했어, 히스클리프, 너는 캐서린 아가씨를 슬프게 했어. 집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을 거야! 모두들 아가씨를 너보다 소중히 하니까 네가 시기하는 것 같아."
저는 말했습니다.
캐서린 아가씨를 시기하는 것 같다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를 슬프게 한다는 말은 분명히 알아들은 것같았어요.
"캐시가 슬프대?" 그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물었어요.
"네가 오늘 아침 다시 나갔대니까 아가씨가 울었어."
"나도 간밤에 울었단 말이야." 그는 대답했어요.  - P93

"그런 게 아니야. 한번은 내가 천국에 간 꿈을 꾸었어."
"꿈 이야기는 듣지 않겠어요. 캐서린 아가씨! 그만 가서 잘래요." 저는 다시 말을 가로막았어요.
아가씨는 깔깔 웃고, 제가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저를 붙잡았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씨는 외쳤어요.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가슴이 터질 만큼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이 몹시 화를 내며 나를 워더링 하이츠의 꼭대기에 있는 벌판 한복판에 내던졌어. 거기서 나는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지. 이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 줄 거야.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않았던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 P133

"그렇지 않아." 아가씨는 반박했습니다. "그것이 제일 훌륭한 동기지! 다른 동기는 내 변덕을 만족시키는 것들이었고, 에드거를 위해서도 만족할 만한 거야. 하지만 이것은 에드거나 나 자신에 대한 나의 느낌을 몸소 이해해 주는 사람을 위한 것이거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당신이든 누구든 자기를 넘어선 삶이 있고, 또는 그런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이 지상만의 것이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내게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각자의 불행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니까. 그리고•••••." - P136

자정까지도 우리는 앉아 있었는데 그때 그 언덕 너머로폭풍이 맹렬히 불어왔어요. 천둥뿐만 아니라 바람도 사나웠고, 그 어느 쪽인지 집 모퉁이에 선 나무를 마구 부러뜨렸어요. 커다란 가지 하나가 지붕에 떨어져서 동쪽 굴뚝한 모서리가 무너졌고, 돌이며 검댕이 부엌 난로 속으로 와르르 떨어졌답니다.
우리는 벼락이 우리 한복판에 떨어진 줄 알았지요. 조셉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죄 있는 자는 벌하시더라도 족장인 노아와 롯을 생각하시어 옛날처럼 바르게 사는 자들은살려주십사고 기도를 드렸어요. 저도 그것이 정녕 우리에대한 심판일 거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요나가 바로 언쇼 서방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분의 방문 손잡이를 흔들어보았어요. 서방님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대답했고, 그 소리에 조셉은더욱 요란하게 자기 같은 성자와 주인 같은 죄인 사이에확실한 구별을 해주십사고 고함을 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이십 분 후에 폭풍은 지나갔답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사했지요. 다만 캐시 아가씨는 고집을 부려 비를 피하지 않고 모자와 숄도 쓰지 않은 채 서 있다가 머리고 옷이고 함빡 젖었지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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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학사가 미하일 마흐친Mikhail M. Bakhtin이 보여주듯이 우리의 이야기는 현대 소설의 등장으로 타자에 의해 결정된 스토리, 즉 인간이 운명이나 신이 야기한 기이한 일들과 만나게 되는 스토리에서 주인공과 그들의 동기)이 행위 유발자가 되는 플롯으로 변천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부르주아적 주체가 확립되는 동시에 개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적절한 방식이 생겨났다.
셰익스피어의 경우에는 여전히 돈 대신 권력과 사랑 문제가 중요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차원에서 놀라울 정도로 계몽적이었다.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어느 하나도 착하기만하거나 악하기만 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자연조차도 셰익스피어에게는 양가적이다. 즉 잔인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며, 매혹적이기도 하고 위협적이다. 영국 시인 존 키츠ohn Keats는 인과관계를 즉시 찾지 않고 불확실성, 신비, 의혹을 보류하는 셰익스피어의 계몽주의적인 ‘부정적 수용 능력Negative Capability‘ 을 증명해 보였다. 예를들면 햄릿은 문학사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라는 독백에서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확신을 갖고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죽음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울질한다. - P276

 인간이 최종적으로 정착하고 더 큰 사회를 구축했을 때 적어도 세 가지 발전에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첫째,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기 파괴적 혼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직을 정비해야 했다. 둘째, 한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낯선 민족을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갈등과 공존이 전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타결이 이루어져야했고, 경계 설정이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셋째, 사람들은 정착과함께 처음으로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 지렛대로서 상속이 생겨났다. 문명은 점점 더 커지고 더 부유해지고 경쟁이 더 심해졌으며 이에 따라 위계질서도 더 엄격해졌다. 즉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짐으로써 더 많은 권리와 특권을 동시에 누렸다.
조직화할 수 있는 집단이나 문명, 도시, 국가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수의 사람이 상층에 위치하고 다른 많은 사람이 하층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더 정교하고 더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실제로 스토리는 자원의 부당한 분할과 이용가능성에 논리적으로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은 가장 독단적인 불의조차도 즉 태어날 때부터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절대주의적 통치자의 불의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종교는 매우 효과적인 메타내러티브 Metanarrative로 자리 잡았고, 군주제 역시 성공적인 스핀 오프Spin-Off가 되었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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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는 사람들이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제시가친절하다는 말이 아니다. 친절은 자선과 같은 말이다. 노력을 수반한다. 무작위의 친절한 행동이 어쩌고 하는 내용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처럼. 친절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의미해야지 선택적인 행동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시는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 어린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평생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느낌으로 살았다. 그런데 제시는 그런나를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았다. 우리는 함께 위험한 짓들을 저질렀지만, 나는 제시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 P446

엄마가 그러더라, ‘네 아빠가 처음엔 내 보호자더니 나중엔 간수더구나‘라고 아빠는 나름 엄마를 돕는다는 생각에 그런 거였지. 하지만 아빠는 엄마한테 술을 일정량 배급식으로 주고 엄마를 숨겼어. 치료를 받게해주지 않았지. 우리는 엄마 가까이 가지 못했어. 아무도 그러지 못했지.
엄마는 잔인하고 불합리하게 벌컥 화를 내곤 했으니까. 우리가 뭘 하든 엄마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생각했어. 그런 한편 엄마는 우리가 공부를 잘하고, 성장하고, 무언가 성취하는 꼴을 못 봤어. 우리는 어리고 예쁘고,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었지. 이제 알겠니, 샐리? 그게 엄마한테 얼마나 힘들었을지?" - P466

나는 코코아를 한 잔 타서 계단에 나가 앉았다. "누들스, 이리 와서 저거 봐!" 대답이 없었다. 새 시럽제 마개를 돌려 따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노을이 화려하고 찬란했다. 광대한 산디아산맥이 짙은 분홍색으로 물들었고 산기슭의 바위 언덕들은 불그스름했다. 강기슭에는 미루나무들이 노란색으로 작열했다. 벌써 복숭아색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또 울었다. 아름다운 걸 나 혼자 보는 건 너무 싫다. 어느새 그가 나와서 내 목에 입술을 갖다 대고 나를 감싸 안았다.
"있잖아, 저 산들은 모양이 수박 같아서 산디아"라고 하는 거야." 누들스가 말했다. "아니야. 색깔 때문이야." 내가 말했다. 제일 처음 데이트하면서 말씨름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키스했다. 달콤한 키스. 그는 이제 멀쩡했다. 그게 약의 비참한 측면이다. 약이듣는다는 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쏙독새를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 P472

언젠가 닥터 켈리가 양손에 여섯 손가락이 달린 어린 소년을 검진했다. 부모는 수술을 원했지만 당사자인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예닐곱 살먹은 귀여운 사내아이였다.
"싫어! 난 다 가지고 있고 싶어. 내 거란 말이야. 그대로 갖고 싶어!" 나는 노련한 닥터 켈리가 그 아이를 설득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그는 그러지 않고 아이가 그 특이성을 간직하길 원하는 듯하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안 될 거 없죠." 닥터 켈리는 말했다. 부모들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마음이 바뀌면 그때 해도 된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물론 있잖아, 저 산들은 모양이 수박 같아서 산디아"라고 하는 거야." 누들스가 말했다. "아니야. 색깔 때문이야." 내가 말했다. 제일 처음 데이트하면서 말씨름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키스했다. 달콤한 키스. 그는 이제 멀쩡했다. 그게 약의 비참한 측면이다. 약이듣는다는 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쏙독새를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 P524

이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떠났네. 난 그전엔 누가 "남편을잃었어요"라고 하면 그 말이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딱 그 느낌이야. 누군가 실종된 느낌. 폴, 차타 이모, 버디 사람들이 왜 유령이 있다고 믿고 교령회를 열어 죽은 자를 부르려 하는지 알겠어. 몇 달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 생각만 하다가도, 어느 날 어떤 농담 한마디에 문득 버디가 나타나는 거야, 탱고 음악이나 수박주스에 네가 생생하게 나타나기도해. 그럴 때 네가 말을 하면 좋으련만. 넌 우리 귀먹은 고양이만큼이나 무심하지.
네가 마지막으로 온 건 며칠 전 폭설이 내렸을 때였지. 천지가 얼음과 눈으로 덮인 가운데 하루는 느닷없이 날이 포근했어. 다람쥐와 까치들이 재잘거리고 참새와 되새가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기웃거리며 노래를 불렀지. 그래서 난 창문과 커튼을 모두 활짝 열어젖혔어. 부엌 식탁에 앉아차를 마시며 잔등에 따스한 볕을 만끽했지. 앞문 포치 옆에 집을 만든 말벌들이 집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날아다녔어. 부엌에 들어와 윙윙거리며 나른하게 빙빙 돌아다니더구나. 하필이면 바로 이때 천장의 연기탐지기 배터리가 죽어서는 여름철 귀뚜라미처럼 짹짹 울기 시작했지. 햇빛이 찻주전자와 밀가루 단지, 향기로운 꽃이 든 은제 꽃병에 닿았어.
느른한 햇살. 네 방에 비쳐들던 멕시코의 오후 같았지. 너의 얼굴에 그햇살이 비쳤어. - P584

만일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어떻게 됐을지 안다. ‘만일 했더라면‘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조만간 뜻밖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나는 파타고니아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텍사스의 아마리요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평평한 공간, 곡식 저장고들, 하늘, 회전초,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라곤 보이지 않는 곳. 데이비드 삼촌과 해리엇 숙모, 증조할머니 그레이와 함께 살게 되었으리라. 그들은 나를 문제아로 여겼겠지. 그들이 져야 할 십자가. 그들이 ‘억압된 감정의표출‘이라고 할 많은 사건이 있었을 테고, 학교 카운슬러는 그것을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라고 했겠지. 나는 소년원에서 나온 뒤 머잖아 그곳을지나던 어느 다이아몬드 드릴 시추공과 야반도주해서 몬태나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게 믿겨질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생은 지금과 똑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것이다. 콜로라도주 다코타 리지의 석회암 산기슭, 까마귀들이 있는 이곳에.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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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과 교수인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좋은 컴퓨터 게임이 적절하게 제공하는 무수한 작은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할 때 느끼는 ‘애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게임 세계가 점점 복합적으로 발전한 지난 수십 년 동안 응우옌이 말한 ‘행위 능력의 예술 The Art ofAgency‘과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것은 말하자면 수동적으로 수용하는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 능력 (‘Agency‘라는 단어의 가장 좋은 번역이 아닐까 한다)의 범위와 자질에 대한 예술 형식이다. 또는 자기 수용의 공감에 대한 예술 형식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게임은 까다로운 도전을 넘어서 그러한 도전에 프레임과 서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블록을 정렬해야 하는 테트리스와 같은 고전적인 몇 가지 캐주얼 게임(간단한 조작으로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 옮긴이)을 제외하고는 가장 초기의가장 단순한 컴퓨터 게임에서도 그 속의 우주를 향해 가는 동안 적어도 하나의 명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이름에서 이미 내러티브를 알 수 있다. 즉 외계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보호해야 한다는 내러티브다. 배가 고픈 팩맨은 유령에게 쫓긴다. 그리고 슈퍼마리오는 구원 마스터플롯에 따라 여자 친구를 고릴라 동키콩에게서 구해야 한다. - P203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지도 앱을 실행시켜 ‘구텐베르크로드 GutenbergRoad‘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스트리트뷰Streetview 상에서 임의의 한 지점 거리 일부, 건물 전면 등 여러분이 원하는지점을 선택하고 스크린샷을 찍어본다.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셜 미디어 앱을 열고 아무런 코멘트도 쓰지 않고 이미지를 공유해보라. 이상한 느낌이 드는가? 그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한 작은 마을인 제퍼슨타운의 거리 사진은 아마도 여러분의 자기 서사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여러분의 연락처나 프로필에 아무런 서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에게도.
인류 역사에서 스마트폰만큼 강력하고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 기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어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넘쳐나는 무한한 정보와 활동을어느 정도 의미 있고 유용하게 선택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원숭이인우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의미를 마련해주는 도구, 즉 ‘스토리‘를 이용한다. 우리는 인풋과 아웃풋을 곧바로 스토리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없다. 그리고 하나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자기 서사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진들은 낯선 나라의 황량한 거리 사진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즐겨 이야기하는 대상을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가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P210

아주 평범한 예로서 맛있는 음식 사진을 들 수 있다. 얼핏 보면 우리 눈에는 음식 사진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디지털 청중시선으로 확장해서 보면) 쾌락주의, 차별, 소셜 미디어 특유의 부분 대중과의 놀이가 담긴 자기 서사를 보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발화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우리가 해당하는 상황에 대해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스마트폰은 이야기하는 원숭이인 우리가 글자나 그림문자, 사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코멘트를 달고 반응하는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매체가 현재와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속 추가되는 각각의 이미지는 끝없는 영웅 여정의 한걸음 한 걸음을 나타낸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휴대전화는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우리 자아의 연장된 팔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미디어는 메시지다 The Medium is the Message‘)은 이러한 휴대전화를 ‘인간의 확장‘ 혹은 ‘우리 자신의 확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를 이미 그러한 물리적 확장으로 보았다. 즉 그는 텔레비전으로는 우리의 시력이, 라디오로는 듣는 방식이 확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주도적으로 장악하고 결정적으로 확장했다. - P213

스마트폰은 현재의 의사소통 매체라는 기능 외에도 기억 아카이브 Memory Archives 이기도 하다(무엇보다 클라우드Cloud에서). 우리는 소셜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도 많은 사진과 메시지, 메모, 영수중 등 디지털로 문서화할 수 있는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스토리를 저장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서사적 자아를 형상화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는 한편으로는우리와 우리 삶의 사진을 거의 무한대로 찍고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 대한 시각적 서사를 비롯한 다른서사를 다른 사람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선택권을 통해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PC나 태블릿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우리와 매우 가까이에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뜨고 알람 시계를 끌 때도 옆에 있고, 잠을 자러 갈 때도 옆에있다. 출산할 때도, 때로는 장례식에도 지니고 있으며 결혼식에는 늘지니고 있다. - P214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위계적 성질을 가지지도 않고 억압적인 제재 모델에서 생겨나지도 않은 힘은 소셜 네트워크라는 거울의 방에서사용자의 촬영된 신체에도 작용한다. 이 힘의 뛰어난 특징은 위압적인 세계성에 있으며, 이와 동시에 우리를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플랫폼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최대한 자주, 최대한상호작용하면서 머물도록 매우 정밀하게 프로그램화된 네트워크의중독성 있는 설계 Addictive Design 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정세는모든 능동적 사용자의 매일 매일의 활동을 포착하는 ‘신자유주의적디지털 판옵티콘 Panopticon‘13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실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온라인으로 전파하고 있으며, 나아가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러한 실생활을 평가 및 활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윤을 지향하는 플랫폼의 콘텐츠로서 이미지는 시장논리의 제약을 따르는 자원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온라인에서 서사규칙에 순응하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변경시킨다. - P220

우리가 기존의 (자기) 서사의 일관성을 위해 견지하는 가장 흔한인식의 왜곡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것을 믿으며 그에 따라 모든 정보를 분류한다. 렐로티우스도 프린스 모노룰루도 어느 정도 이러한 확증편향을 사용했다. 우리는 우리의 확신과 상충하는 지식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를 뒷받침하는 지식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은 적어도 모순투성이인 세상을볼 때는 서사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판단을 내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최고의 사기꾼이다.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호도조차 사회학적, 경제적 허구다. 우리는 사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인과관계를 만들어 ‘나는 그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사후판단편향, 혹은 잠복성 결정론 Creeping Determinism 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던컨 와츠 Duncan Watts에 따르면 사후판단 편향은 특히 이례적인 큰성공이 관찰될 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더 특별한 성공일수록 그 성공 스토리는 더 훌륭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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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서 추하고 악한 모습을 봤지.
엄마는 미쳤던 거야? 아니면 선지자였어? 어느 쪽이든 난 엄마처럼 되는 걸 견딜 수 없어. 무서워, 소중하고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 P371

달이 그립다. 고독이 그립다.
멕시코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누가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 책을 읽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이 혼자란 걸 알고가서 같이 있어준다. 샐리는 혼자 있는 적이 없다. 밤에는 샐리가 확실히 잠들 때까지 내가 곁을 지킨다.
죽음은 안내자가 없다. 죽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죽음이 어떨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P378

어느 날 밤, 그가 간 뒤 엄마가 집에 들어와 나와 같이 쓰는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술을 마시며 울다 일기장에 무언가 휘갈겨 - 말 그대로휘갈겨- 썼다.
"엄마 괜찮아?" 내가 마침내 묻자 엄마는 내 뺨을 때렸다.
" 너 엄마한테 그 말 하지 말랬잖아!" 그러고 나서 엄마는 화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만 그냥 업슨가에 사는 게 싫어. 네 아빠가 나한테 보내는 편지는온통 그 군함 이야기야. 그걸 배라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고 그런 데다 내삶에서 유일한 로맨스는 난쟁이 전등 세일즈맨이고!"
지금은 그게 웃기게 생각되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가슴이미어지듯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엄마 등을 톡톡 두드리자 엄마는 몸을 움찔했다. 엄마는 누가 몸에 손대는 걸 혐오했다. 그래서 난 그저 창문 방충망으로 새어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철저히 혼자였다. 내 동생 샐리가 그렇게 울 때 혼자이듯이. - P380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고, 목에는 그의 입술이, 허벅지에는 그의 손이 닿아 있곤 했다.
하루는 해가 뜨기 전 눈을 떠보니 그가 늘 있던 곳에 없었다. 방 안이조용했다. 수영하러 갔나 보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보니 맥스가 변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검게 그을린 스푼에 무언가를 녹이고있었다. 싱크대에는 주사기가 놓여 있었다.
"안녕,"
"맥스, 그게 뭐야?"
"헤로인."

이상은 이야기의 결말처럼 들린다. 어쩌면 시작처럼 들릴지도 사실 그 순간은 앞에 놓인 오랜 시간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그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의 행복감에 젖어 산 시간과 그 추악하고 무서웠던 시간.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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