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801년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 여긴 확실히 아름다운 고장이다.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다시없는 천국이다. 더구나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이 쓸쓸함을 나누어 갖기에 썩 알맞은 짝이다. 멋진 친구! 말을 타고 다가가는 나를 보고 그의 시꺼먼 두 눈이 눈썹 아래에서 미심쩍게 찌푸려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내가 이름을 대자 그의 손가락들이 잔뜩 경계하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을 때, 내가슴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그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히스클리프 씨지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 P7

워더링 하이츠란 히스클리프 씨의 집 이름이다. ‘워더링‘이란 이 지방에서 쓰는 함축성 있는 형용사로, 폭풍이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말 이 집 사람들은 줄곧 그 꼭대기에서 일 년 내내 그 맑고 상쾌한 바람을 쐬고 있을 것이다. 집 옆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전나무 몇 그루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이 모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 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그것을감안하여 튼튼히 지었다. 좁은 창들은 벽에 깊숙이 박혀있고 집 모서리는 크고 울퉁불퉁한 돌로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 P9

방이며 가구 등속은 투박한 외모와, 바지에 각반이나 차야 어울릴 억센 다리를 가진 소박한 북쪽 농부의 것으로는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이 산중 오륙 마일 안쪽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둥근 탁자 위에 거품이 넘치는 커다란 맥주잔을 앞에 놓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히스클리프 씨에게는 그의 거처나 생활양식과는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데가 있었다. 얼굴은 집시처럼 검지만 차림새와 태도는 신사이다. 신사래야 시골 유지 정도의 신사로, 단정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잘생기고 곧은 체구라서 아무렇게나 하고 있어도 어색하지는 않고, 약간 침울한 편이었다. 아마 사람에 따라서는 그를 얼마만큼은 천한 자존심을 풍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속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가 무뚝뚝한 것은 감정을 야단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것, 이를테면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내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싫어서라는것을 나는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라든가 미움의 감정을 똑같이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을 받는다든가 미움을 사는 것을 대단치 않은 일로 여기리라. - P11

시키는 대로 하여튼 그 방에서만은 나왔다. 그러나 그좁은 복도로 가면 어디로 나가는지도 몰라서 가만히 서 있으려다 본의 아니게 집주인의 미신적인 일면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겉보기의 그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는 침대에 올라가서 창을 비틀어 열고 당기면서 걱정을 걷잡을 수 없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들어와! 들어와!" 그는 흐느꼈다. "캐시, 제발 들어와.
아, 제발 한 번만 더! 아! 그리운 그대, 이번만은 내 말을들어주오. 캐서린, 이번만은!"
그러나 유령은 유령다운 변덕을 보였다. 그것은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과 바람만이 사납게 회오리치며 들어와, 심지어는 내가 있는 데까지 불어 들어와서 촛불을 꺼버렸다.
이러한 울부짖음과 더불어 복받쳐 오르는 비통함 속에 너무나 쓰라린 고뇌가 있었으므로, 나는 불현듯 동정심이들어 그 어리석은 짓도 그대로 보아 넘겼다. 그러한 것을 엿들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고, 바보 같은 꿈 얘기로 고통을 준 것이 난처해서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내 꿈 이야기가 왜 그를 그렇게 슬프게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P49

뜻밖에도 히스클리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서그대로 자기가 마음먹었던 일을 해나갔어요. 안장이고 뭐고 다 바꾸어놓고는 조금 전에 얻어맞아서 생긴 현기증을가라앉히느라 짚단 위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갔지요.
그가 멍이 든 것은 말 때문이라고 해두자고 제가 타이르자 그는 쉽게 말을 들었어요. 원하던 것을 가진 이상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지요. 정말이지 그는 그정도의 일로는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아서 저는 그가 진심으로 복수심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시겠지만 제가 감쪽같이 속았던 거랍니다. - P67

사정 이야기는 조셉에게 맡겨두고 저는 아이들 방으로 달려갔어요.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들여다봤는데, 자정이지났는데도 자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까보다 차분해져 있어서 제가 위로할 필요는 없었어요. 두 아이는 저 같으면 떠올리지 못할 기특한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어요. 세상에 어떠한 목사님도 그들이 순진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려낸 것만큼 아름다운 천국은 그려내지 못했을거예요. 저는 흐느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도 모두 그러한 천국에 갔으면 하고 바라지않을 수 없었지요. - P74

캐시 아가씨는 숨어 있는 친구를 언뜻 보고는 껴안으려고 달려갔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예닐곱 번이나 키스를하더니 멈추고 뒤로 물러나 깔깔 웃으면서 소리를 쳤어요.
"아니, 어쩌면 이렇게 시커멓고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있는 거지? 왜 이렇게 우습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에드거와 이사벨라 린튼을 늘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걸거야. 그래, 히스클리프, 나를 잊어버렸어?"
아가씨가 그렇게 묻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았지요. 수치심과 자존심이 그의 얼굴에 이중의 어둠을 던져 그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 P89

캐시 아가씨는 새 친구 맞을 준비를 여러 가지 하느라늦게까지 앉아 있었어요.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부엌에도 한번 들렀지만 그는 가버린 뒤였고, 아가씨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만 묻고는 도로 들어갔지요.
다음 날 아침에 히스클리프는 일찍 일어났더군요. 그날이 일요일이었던 탓에 기분이 나쁜 채로 벌판으로 나가버리고, 집안사람들이 교회에 갈 때가 되어서야 다시 나타났어요. 먹지도 않고 반성을 하느라 기분은 좀 누그러진 것같았지요. 제 앞에 와서는 한동안 우물거리더니 용기를 내서 불쑥 이렇게 소리쳤어요.
"넬리, 나를 보기 싫지 않게 해줘. 나도 점잖아지고 싶어."
"잘 생각했어, 히스클리프, 너는 캐서린 아가씨를 슬프게 했어. 집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을 거야! 모두들 아가씨를 너보다 소중히 하니까 네가 시기하는 것 같아."
저는 말했습니다.
캐서린 아가씨를 시기하는 것 같다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를 슬프게 한다는 말은 분명히 알아들은 것같았어요.
"캐시가 슬프대?" 그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물었어요.
"네가 오늘 아침 다시 나갔대니까 아가씨가 울었어."
"나도 간밤에 울었단 말이야." 그는 대답했어요.  - P93

"그런 게 아니야. 한번은 내가 천국에 간 꿈을 꾸었어."
"꿈 이야기는 듣지 않겠어요. 캐서린 아가씨! 그만 가서 잘래요." 저는 다시 말을 가로막았어요.
아가씨는 깔깔 웃고, 제가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저를 붙잡았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씨는 외쳤어요.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가슴이 터질 만큼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이 몹시 화를 내며 나를 워더링 하이츠의 꼭대기에 있는 벌판 한복판에 내던졌어. 거기서 나는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지. 이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 줄 거야.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않았던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 P133

"그렇지 않아." 아가씨는 반박했습니다. "그것이 제일 훌륭한 동기지! 다른 동기는 내 변덕을 만족시키는 것들이었고, 에드거를 위해서도 만족할 만한 거야. 하지만 이것은 에드거나 나 자신에 대한 나의 느낌을 몸소 이해해 주는 사람을 위한 것이거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당신이든 누구든 자기를 넘어선 삶이 있고, 또는 그런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이 지상만의 것이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내게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각자의 불행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니까. 그리고•••••." - P136

자정까지도 우리는 앉아 있었는데 그때 그 언덕 너머로폭풍이 맹렬히 불어왔어요. 천둥뿐만 아니라 바람도 사나웠고, 그 어느 쪽인지 집 모퉁이에 선 나무를 마구 부러뜨렸어요. 커다란 가지 하나가 지붕에 떨어져서 동쪽 굴뚝한 모서리가 무너졌고, 돌이며 검댕이 부엌 난로 속으로 와르르 떨어졌답니다.
우리는 벼락이 우리 한복판에 떨어진 줄 알았지요. 조셉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죄 있는 자는 벌하시더라도 족장인 노아와 롯을 생각하시어 옛날처럼 바르게 사는 자들은살려주십사고 기도를 드렸어요. 저도 그것이 정녕 우리에대한 심판일 거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요나가 바로 언쇼 서방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분의 방문 손잡이를 흔들어보았어요. 서방님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대답했고, 그 소리에 조셉은더욱 요란하게 자기 같은 성자와 주인 같은 죄인 사이에확실한 구별을 해주십사고 고함을 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이십 분 후에 폭풍은 지나갔답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사했지요. 다만 캐시 아가씨는 고집을 부려 비를 피하지 않고 모자와 숄도 쓰지 않은 채 서 있다가 머리고 옷이고 함빡 젖었지요.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