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높은 사대부들이 비통한 글을 남기고 잇달아 자결했다. 그들은 독약을마셨고 물에 뛰어들었다. 조선 황제는 자살한 신하들에게 표창을 내려서 충절을 기렸다. 오백 년을 지탱해온 나라의 관리와 식자 몇 명이 치욕을 못 견디어 자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토는 이 죽음에 따른 민심의 동태를 주시하면서도 못 본체했다. 이 동시다발적 죽음들은 무력하기는 했으나 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서울의 통감부 집무실에서 이토는 날마다 주둔군 사령부에서 보내오는 폭민 대처 상황 보고서를 읽었다. 정보참모는 여러지역의 소요사태를 열거하고 문서의 말미에 상황개요라는 항목으로

일파가 흔들리니 만파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

라고 써놓았다.
••••• 참으로 한가한 녀석이구나.
이토는 주둔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귀 사령부의 정보참모는 문장력이 좋더구나. 풍류남아냐?
라고 말했다. 그뒤로 정보참모는 보고서에 상황개요를 쓰지 않았다. - P18

수백 년 동안의 수탈과 억압으로 검불처럼 무기력해 보이던조선 백성들이 무너진 왕조의 부흥을 외치며 그토록 가열하게봉기하는 사태가 이토는 두려웠다. 농장기를 들고, 꽹과리를 치고.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펄럭였지만 조선의 폭민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일어섰고 한 고을이 무너지면 이웃 마을이 또 일어섰다. 기생과 거지까지 대열에 합세했다. 무력집단이라기보다는 시위군중에 가까웠지만, 영명한 장한壯漢들이 지휘하는 부대는 무장과 대오를 갖추고 주둔군을 위협했다. 허튼 풍류기가 추접하기는 했지만, 주둔군 정보참모의 상황개요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는신문 대한매일신보가 이 폭민들을 의병이라고 일컫고 기세를 부추겼다. 통감부가 신문사를 겁박했으나 배설은 굽히지 않았다.
조선이 문명개화되면 이 거친 백성들의 들뜸은 스스로 잦아들어 제국에 동화될 테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요가 풍토병으로 눌어붙으면 조선 병합 정책은 순조롭지 못할 것이었다. 무리가 되더라도 빨리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그의 결정은 단호했고 돌이킬 수 없었다. - P19

큰 구도가 필요하다. 폐허를 크게, 조선 황제를 작게 나타내라고 이토는 만월대 돌계단 앞에서 일본인 사진사에게 명령했다. 이토는 손짓으로 송악산 능선과 계단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무너진 돌계단과 그 너머의 송악산 능선을 구도의 횡축에 들어앉히고 조선 황제의 대열이 그 폐허에 종축으로 길게 늘어선 사진을 이토는 요구했다. 미리 현장을 답사한 사진사는 이토의 요구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사진사는 멀리 떨어져서 카메라를 설치했다. 시야의 범위를넓게 잡고, 렌즈의 각도를 위쪽으로 오 도쯤 올려 잡았다. 뷰파인더 안에서 돌계단의 폐허가 화면 중앙에 가득차고 그 너머로송악산 능선이 구름처럼 떠 보였다. 조선 황제의 얼굴이 또렷이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산이 받쳐져 있어서 거기가 황제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이토는 그 옆에 희미하게 보였고 군도를 찬 일본군 장교가 그 앞에서 대열을 인도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오느라고 황제의 대열은 흐트러졌다. 대열이 폐허를 배경으로 종축을 이루었을 때 사진사는 셔터를 눌렀다. - P51

안태건이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신 뒤 카, 소리를 뱉었다.
-이번에 큰 놈을 잡았구나. 살이 실하다.
-큰삼촌댁에 뒷다리 한 짝을 보냈습니다.
-몇 발로 잡았느냐?
- 한 발 쐈습니다.
안태건이 안중근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잔을 채웠다.
-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
안태건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술자리에 모인 사내들에게그 말은 이 세상을 향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사내들은 한동안 침묵했고,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게 시국의 위태로움을 말했다. 안씨 가문의 사내들은 마을의 우물을 청소하는 일이나 홍수에 터진 개울 둑방을 다시 쌓는 일을 논의하는 것처럼 시국의 일을 말했다. 일본이 청을 무찌르고 러시아를 무찔러서 조선의 독립은 탄탄해졌다고 한다하는 식자들이 신문과 강연으로필설을 펼쳤다. 말은 자욱했는데, 아무도 말을 믿지 않았다.
가끔씩 서울이나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이 날짜 지난 대한매일신보를 가져왔다. 대한매일신보는 조선 전역의 소요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소요군중을 ‘의병‘이라는 두 글자로 일컬었는데, 글자 두 개가 더 큰 무리를 불러모았다. 신문의 문장은 곧고 단단해서 읽는 사람을 찌르고 들어왔다. 이 신문의 영문판에 ‘지난 목요일 경기도 양주와 포천 접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 열두 명이 반란군insurgents에 의해 살해되었고, 죽은 자들의 시신은 서울로 운구되었다고 보고되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청계동 사내들은 신문을 돌려 보며 영문을 아는 사람의 설명을 들었다. ‘반란군‘이라는 말의 뜻을 놓고 사내들은 여러 말을뒤섞었다. - P54

- 내일 아침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배를 타고 원산으로•••••
안정근은 형이 가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날 서울 도심에서 눈으로 본 일들이 형이 가려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안정근은 형이 여기에 남아서 함께 견디면서 함께 살기를 바랐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기는 마찬가지일듯싶었다. 안정근이 말했다.
-형님은 장자 아니오.
장자라는 말이 안중근의 가슴을 때렸다.
-대륙으로 건너가도 나는 여전히 장자다.
-어머니는 내가 모실 테지만 형수님과 아이들은 어찌하시려오.
-어쩔 수 없는 일을 자꾸 얘기하지 마라. 내가 자리잡히면 데려가겠다.
-형님, 가지 마시오. 여기서 삽시다.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것이 장자의 길이다.
안정근은 형이 의논하러 온 것이 아니고 통고하러 온 것임을 알았다. 안정근은 길게 말하지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럼, 먼 길에 조심하시오. 어머님께 형님이 우라지로 가셨다고 전하리다.
안정근은 돌아갔다. 안중근은 어둠 속에서 누웠다. 총소리와 호각소리, 고함소리, 빠르게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 P74

-우리는 강토를 모두 잃고 어디로 가려는가. 이번에 한 번싸워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승패와 유불리를 돌아보지 말고 싸워야 한다.
승산이 없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승산을 헤아리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을 대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안중근의 부대는 일본군 부대를 상대로 기획된 작전을 펼치지 못했다. 산속을 이동하다 마주친 일본군 분견대와 그들의 척후병 두어 명을 상대로 작은 전투를 벌였다. 쌍방에서 서너 명씩 죽고 다쳤다. 죽은 자들은 피아의 구별이 없이 쓰러져 있었다. 의병들은 죽은 일본군의 신발을 벗겨서 신고 군복을 벗겨서 입었다. - P91

안중근은 말했다.
- 너희들은 돌아가라. 돌아가서 포로가 되었던 일을 입 밖에내지 마라.
포로들 중 선임병이 말했다.
-총기 없이 돌아가면 군법으로 처형됩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안중근은 포로들의 소총을 돌려주었다.
-가져가라. 가서, 발설하지 마라.
포로들은 돌아갔다.
장교들이 안중근에게 항의했다. 장교들은 일본군이 생포한 의병들을 학살한 사례를 들며 분노했다.
-우리는 적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오!
-포로를 죽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너희들은 여러 말을 하지마라.
장교 한 명은 추종자들을 데리고 부대를 떠났다.
석방된 일본군 포로는 부대로 돌아가서 안중근 부대의 위치와병력 규모를 보고했다. 일본군 부대는 즉각 출동했다. 석방된 자들이 선두에서 길을 인도했다. 회령에서 일본군이 사방을 포위하고 조여들어왔다. 안중근 부대는 대항하지 못했다. 장교들은 포로를 풀어주어서 부대의 위치가 노출된 것이라고 안중근에게 들이댔다. 안중근 부대는 지휘 통제가 허물어져서 예닐곱 명씩무리를 지어서 흩어졌다. 산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두어 명씩 만났고 또 헤어졌다. 투항해서 포로가 되자는 대원과 집단자살하자는 대원이 싸웠다. 장맛비가 며칠째 쏟아졌고 안개가 끼어서 봉우리도 골짜기도 보이지 않았다. 풀뿌리를 캐 먹고 열매를 따먹었다. 옷을 찢어서 다친 발을 싸매고 걸었다. 닭 소리나 개소리가 들리면 민가로 내려가 밥을 얻어먹었다. - P92

연추에서 안중근은 한인들의 집에 기식하거나 여관에 묵었다. 안중근이 물색없이 포로를 살려주어서 기습 공격을 자초하게 된것이라고 연추로 돌아온 대원들이 말을 퍼뜨렸다. 연추에서 안중근은 운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더불어 세력을 일으키기는 점점 어려웠고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연추에서 안중근은 늘 엎드려 있었고, 가끔씩 마을에 나가서 멀리서 온 소식들을 귀동냥했다. 소식들은 엇갈렸고 출처가 없는 소문은 더빨리 퍼졌다. 그해 겨울은 뒤숭숭했다. - P94

안중근이 하숙방으로 찾아와서 술을 사주면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말을 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이 왜 왔는지를 대번에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동행할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보지않았고, 우덕순도 같이 가자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이이토의 만주 방문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운명을 느꼈다. 자신의 생애는 이불가해한 운명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우덕순은 생각했다. 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토를 쏘면 이토는 그 사격의 결과로 죽게 될것이었고, 총알이 급소를 치지 못해서 이토가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쏜 이유를 말할 자리는 마련될 것이었는데, 우덕순은 총알이 급소에 정확히 박히기를 원했다.
그날, 우덕순과 술집에서 마주앉았을 때 안중근은 우덕순을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저절로 알았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明治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접견했다. 이은은 열두 살이었다.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 황태자의 보육을 책임지는 태자태사太子太篩의 자격으로 작년 말 이은을 서울에서 도쿄로 데려왔고 이날 메이지의 어전으로 인도했다.
메이지는 일본 제국 대원수의 군복에 군도를 차고 있었고, 이은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이토는 신년 하례용 연미복 차림이었다. - P7

이토는 한국 통감으로 부임한 후 서울의 여러 공공건물에 시계를 설치했다. 건물 정면에 대형 시계를 붙였고, 집무실과 회의실마다 벽시계를 걸었다. 통감부에 모이는 조선의 대신들은 벽시계 아래서 통감의 시정연설을 들었다. 이토는 시간이 제국의공적 재산이라는 인식을 조선 사대부들에게 심어 넣으려 했으나, 시간의 공공성을 이해시킬 길이 없었다. 이토 자신이 설명의언어를 갖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계량하고 시간을 사적내밀성의 영역에서 끌어내 공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문명개화의 입구라고 설명을 해도 고루한 조선의 고관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었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허구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것도 기후 위기가 택할 보다 기후위기에 대해 들을 때 훨씬 더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는 잘못이 있는 사람을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으면 반대로 언제나 개인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자신을 등장인물과 유쾌하게 동일화하지 못한다. 생활양식상으로 적대자에 속하는 사람은 주인공과 동일화를 시키지 못한다. 그 대신 양심의 가책이나 억압이 생겨날 위험이있다. 이는 영화관을 방문할 때마다 독이 된다.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소비를 덜 하고 비행기를 덜 타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덜 하면 될까?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 또는 상황을 그냥 지속시키는 무지함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상황이 ‘그렇게계속‘ 지속된다는 사실이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 P437

현 상태Status Quo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강력한 도전과제이므로 추상적 차원의 긍정적 변화를 통해 얻는 이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생존할 수 있는 지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보호할 수 있는 경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가장 단순한 주장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니얼 카너먼이 연구한 이른바 손실 회피 LossAversion인데, 이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익보다손실에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한다. 손실 회피는 특히 생태와경제 사이의 경쟁으로 조장된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경제 쪽이 더 유리해 보이기 때문에 경제를선호한다. 추상적인 기후 위기는 손실 회피의 완벽한 예이다. 현재의손실과 미래 이익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구체적인 고통이며, 그에 비해 미래는 본질적으로 항상 불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무조건 만끽하려고 한다. - P440

지구가 암울해지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새로운 장르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1815년 4월 5일, 발리에서 동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탐보라 산에서 기록상 가장 격렬한 화산이 폭발했을 때 거대한 먼지구름이 전 세계로 퍼져 태양을 어둑하게 만들고 기온을 3~6도 떨어뜨렸다. 그 결과 심각한 기후 변화가 일어났고, 1816년은 역사상 ‘여름이 없는 해‘로 불렸다. 그해 5월 영국의시인 바이런 경Lord Byron은 제네바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우연히 메리 셸리Mary Shelly도 그녀의 연인과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두 개의 인접한 저택에 함께 앉아 있었다. 비때문에 꼼짝없이 집안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바이런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무서운이야기를 한 편씩 쓰자고 모두에게 제안했다. 바이런은 뱀파이어 이야기를 썼고, 셸리는 시체를 부활시키는 이야기가 가능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2년 후 그녀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Prometheus』가 출판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후로 2세기가 넘는동안 미래의 소재를 뚜렷히 보여주는 장르로 굳어졌고 우리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 배움과 성장을 함께 했다. 그 장르는 바로 SF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날의 SF는 행복과 정의를 찾고 발견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 P458

작가 윌 스토가 자신의 저서 「셀피 : 서구는 어떻게 자신에게 집착하게 되었는가 Selfie: How The West Becamed Self-Obsessed』(국내 출간 시부제는 바뀌었다. 편집자)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 시대가 처한 자기서사의 위기는 많은 사람을 자살로 이끌고 있다.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감, 수치심, 이러한 악순환을끊고 싶은 충동. 이러한 슬픈 패턴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0.1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100명 중 2명은 살면서 자살을 시도한다. 낮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자기 보호가 사실상 우리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생존은 우리존재의 주요 목적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은 보조 약물의 도움으로 생존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인구의 8~10퍼센트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약물 복용과 관계없이 우울해한다. 아마도 인류가 오늘날만큼 건강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과중한 부담을 느끼고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쳐버린 원숭이가 되었을 뿐일까? - P462

이야기의 과잉 공급은 사람들이 선택 가능성과 자유의 폭이 더넓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앞에서 언급한 피로감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서사를 단순화하려는 욕구를 촉발하기도 한다. 이는 머지않아 우리가 ‘서사부조화‘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지부조화와 유사하게 서사 부조화는 이치에 맞는 두 가지 내러티브가 서로 모순될때 발생하는 긴장감이다. 이는 모호함을 제거하고 ‘우리가 동의할 수있는‘ 내러티브를 내세우려는 시도로 이어진다(8장의 주도문화 Leitkultur내러티브 참조).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현재의 만물 질서와 나아가 다수의 이야기를 쉽게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현실을 어떻게 지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가 적대적인 파벌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되고 있다는두려움이나 내러티브가 생겨난다. - P491

그는 이책에서 사회적 부족주의와 예술과 문화의 동질화라는 특징으로 단일화되어가는 현실에서 모호함과 모순에 가능한 한 침착하게 대응하는우리의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도 프랑스의 철학자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비교할 수 없는incommensurable‘ 세계 설명을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데도 그러한 세계 설명의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언어유희‘(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에게서 차용한 개념)를 그 자체로 반영하고 서로 관련시키는 것,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의 영웅화와 적대화를 우리의 것과 서로 맞추고 현실에 대한 우리의 서사적 연출을 함께시도할 수 있는 공동 무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체성 정치 내러티브는 이에 대해 한 가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즉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동시에 서로 다른사람들이 서로다른 욕구와 지위,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의 영웅 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하나는 우리의 서사적 본능이 우리를 한데 모이게 하고 따뜻한 불가에 둘러앉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야기 속에 담긴 우리의 생각이 매우 보편적이어서 수천년동안 여러 문화에 걸쳐 같은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존과 의미 발견이다. 생존과 의미 발견은 우리의 상황과 처지가 아무리다르더라도 결국 우리를 서사적으로 연결하는 문제들이다. 그리고이는 우리가 다시 모여야 할 인류의 가장 큰불로 우리를 인도한다. - P4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한 번 저 여자를 이 팔로 안아보자! 만약그녀의 몸이 차면 이 북풍 때문에 내 몸이 차가워진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잠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연장 창고에서 삽을 꺼내다가 힘껏 파기 시작했어.
살 끝이 관 모서리에 닿는 소리가 나더군. 그러자 엎드려서 손으로 후볐지. 관 뚜껑의 못 박은 자리가 벌어지고 내가 목적하던 바가 거의 이루어질 참인데, 그때 바로 묘 가장자리에서 내 머리 위로 몸을 구부리며 누군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내이 뚜껑을 열 수만 있다면 나를 함께 묻고 흙을 덮어주면 좋으련만!‘ 하고 나는중얼거렸어. 그리고 나는 더욱더 미친 듯이 뚜껑을 잡아떼려고 했지. 바로 내 귓전에서 다시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 진눈깨비를 몰고 오는 바람을 물리치는 따뜻한 숨결 같은느낌이었어. 피가 통하는 산 인간이 옆에 없다는 건 알고있었지. 그러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면 눈으로 분간은 못 할망정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난 확실히 캐시가거기 땅속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걸 느꼈어.
갑자기 안도감이 심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더군. 난 고뇌에 찬 일을 그만두고 당장 마음이 놓여 돌아보았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위안이 되었지. 그녀의 모습이 내옆에 있었단 말이야. 내가 파낸 묘를 다시 메우는 동안 그대로 거기 있다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어.  - P481

내가 헤어튼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을 때는 밖에 나가면그녀를 볼 수 있을 것 같고, 벌판을 쏘다니다 보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그녀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그래 집을 나갔다가도 급히 돌아오는 거지. 그녀가 틀림없이 워더링 하이츠의 어느 곳엔가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야! 그녀가 있던 방에서 잠을 자게 되는 날에는 난 쫓겨나고 말아. 거기에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눈을 감자마자, 그녀가 창밖에 나타나거나 판자벽 뒤로 살그머니 몸을 숨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방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심지어 그녀가 어렸을 때 쓰던 그 베개 위에다 그 귀여운 머리를 누이기도하거든. 그러면 보려고 감았던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단 말이야. 나는 하룻밤에 몇 번씩이나 눈을 떴다 감았다 해.
언제나 실망하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어!
난 가끔 끙끙 소리를 내어 앓았고, 그 늙은 조셉 녀석은틀림없이 내 양심이 마음속에서 마귀를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 P482

그는 조금 뒤에 책들을 주워 모아 난로 속에 집어던져버렸다. 나는 화풀이로 그런 희생을 바치게 된 것을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얼굴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책들이 타서 없어지는 동안 그는 그 책들에서 이미 얻었던 즐거움, 그리고 그가 그 책들에서 얻으리라 기대했던 승리감과 끊임없이 늘어나는 즐거움 같은 것을 회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남몰래 공부를 하고 싶어 한 이유도 아울러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캐서린이 그의 길에 나타날 때까지는 하루하루의 노동과 거친 동물적인 즐거움에 만족했던 것이다. 그녀가 비웃는 것이 부끄럽고,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그에게 공부를해야겠다는 자극제가 되었다. 그런데 인정을 받기는커녕 자신을 높이려는 노력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 P503

"초라한 종말이군그래." 그는 방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나의 그 맹렬한 노력이 이렇게 끝장난단 말인가? 두 집을부숴버리려고 지렛대며 곡괭이를 장만해 놓고 헤라클레스와 같이 괴력을 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훈련했건만, 막상만반의 준비가 되고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자어느 쪽 집에서도 기와 한 장 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으니! 나의 숙적들은 나를 넘어뜨리지는 못했어. 이제야말로 바로 그들의 후손에게 복수를 할 때지. 내 힘으로 할수 있지. 그리고 아무도 막지 못해. 하지만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사람을 때리고 싶지 않아.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귀찮아졌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니 마치 오직아량의 미덕을 보이기 위해서 이제까지 애를 써온 것처럼 들리는데, 그와는 거리가 먼 얘기지. 난 그들의 파멸을 즐길 만한 힘도 없어졌고 쓸데없이 남을 파멸시킬 생각도 없어졌단 말이야. - P538

"그럼 죽음이 두렵진 않으세요?"
"죽음이 두렵다고? 천만에!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거니와, 그런 예감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것도없어. 왜 죽어야 하지? 이렇게 튼튼한 몸에 절제 있는 생활을 하고 위험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마땅히 내머리에 검은 머리가 없어질 때까지 살아 있어야지. 그리고어쩌면 그렇게 살게 될 거야. 이런 상태로 머물 수는 없으니까! 숨쉬는 것을 나 자신이 잊지 않도록 해야겠어. 심장의 고동마저도 거의 잊지 않아야겠단 말이야! 마치 강한용수철을 뒤로 젖혀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한 가지 생각에 자극받지 않으면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억지로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과 관계 없는 것은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억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알 수가 없단 말이야! 내겐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고, 내몸과 능력이 그것을 성취하기를 열망하고 있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꿋꿋하게 그 소원의 성취를 열망했던지 나는 그것이 꼭 성취되리라고 믿고 있지. 그것도 얼마 있지 않아서 말이야. 그것을 위해 내 생애를 바쳐왔기때문이지. 나는 소원이 성취되리라는 기대 속에 갇혀버린거야.
내가 고백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이 고백이 내 성격의 설명할 수 없는 면에 대한 설명은 될거야. 아. 젠장! 오랜 싸움이었지. 이제 끝장이 났으면 좋겠어!" - P541

나는 포근한 하늘 아래 그 비석들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지켜보고, 풀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렇게 조용한 땅속에 잠든 사람들을 보고 어느 누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 P5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신교 유산과 대학 외에도 미국에 필적하는 18세기와 19세기독일의 가장 최근의 딥 스토리 중 하나는 고도로 기능적인 프로이센군대와 이곳의 금욕적인 사명감이었다. 의무를 다하는 것- 위계질서와 엄격한 규칙 준수-은 일반 대중에게 품위와 덕성의 전형이 되었다. 동시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식민지 보유국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으로부터 철저히 위장된 민족 우월주의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눈에 띄게 더 커 보이려는 열성적이고 과시적인 노력의 이상은 점차더 위험한 것으로 바뀌었다. ‘규율 없이 제멋대로인 이웃들이여, 우리가 얼마나 모범적인지 보아라‘라는 생각이 ‘독일적인 것으로 세상이 치유되어야 한다‘는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성과 품위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으려면 공공연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인식의 상호성이 생겨난다. 말하자면 각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 인식할 수있듯이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어느 정도 수행했는지를 본다. 하지만 자신의 미덕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과 똑같이 사회적 관습을 깨는 행위다. 말하자면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공이나 긍정적인 자아실현, 집단을 위해 자신이 뒤로 물러나는 겸손함이 아니라 야망 없는 야망, 사회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나는 공명심이다. 여기서 ‘공명심 Ehrgeiz‘의 어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교정 수단이 된다. 만약 그 시대에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소셜 미디어 프로필을 작성해야 했다면 우리는 1933년까지의 독일의 딥 스토리를 불완전하나마 다음과 같이 제안할 수 있다. ‘나는내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다." 또는 "우리는 각자의 의무를 다하기만하면 된다." - P371

"대략 20대 안팎의 젊은 독일인들은 자기 삶의 모든 내용, 그러니까 좀더 깊은 감정, 사랑, 증오, 환희, 슬픔뿐만 아니라 모든 화젯거리와 자극의 소재까지도 공적인 영역에서, 말하자면 거저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와 함께 특정한 서사적 고정점이 만들어졌다. 즉 해방, 또는 극단적 적대주의를 통해 다른 민족들을 비인간화시키는것으로서의 최종 승리Endsieg가 그것이다. 1923년의 인플레이션, 빈곤과 굶주림의 경험은 독일을 특히 집단적으로 ‘모든 환상적인 모험‘
에 대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유치한 집단취기‘를 통해 고난과 굴욕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수많은 독일인은 조국과 가족을 위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의무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상처받은 자기이미지를 회복하는 유일한 자극제는 전투적인 것이었다. 생산적인딥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틈새를 히틀러가 메웠다. - P373

하프너에 따르면 1933년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먼저 ‘역겨움의 마법‘이 독일인들을 매료시켰고, 그 후에는 사회 전체가 이 내러티브를 따랐다. 심지어 원래는 이러한 내러티브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까지 말이다. "신화시대에, 전쟁에서 패한 부족이 누가 봐도 믿을 수 없는 자기의 부족신을 버리고 승리한 적의 부족신을 수호신으로 받아들일 때 일어났을 법한 과정이었다. 지금껏 믿고 따랐던 성(聖) 마르크스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성(聖) 히틀러가 더 강력했다. 마침내 그들은 다시 강력한 내집단, 즉 신화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무라는 오랜 딥 스토리를 위한 목표를 갖게 되었다. 동참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은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망명을했다. 1934년에서 1938년까지 독일에서는 ‘유년기의 회상록, 가족소설, 전원시‘가 호황을 누리기도 했는데, 하프너는 이러한 현상을 다가오는 전체주의의 공포로부터의 서사적 도피로서 관찰한다. 행진과 집단 수용소, 군수공장과 나치 선전 신문 <돌격대Sturmer> 상자의한가운데서 아주 끈질긴 내면성과 시간 초월성을 지닌 문학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 동시에 그는 조용히 또는 큰 소리로 저항할 용기가있는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사회의 모든 집단이 얼마나 빨리 체념했는지에 대해 한탄한다. 나치 체제가 맨 처음 확립되었을 때 복종적인 민족에게 깊이 내면화된 무조건적인 순종 의식은 큰 득이 되었다. 하프너는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점차 확산하고 있는 민족주의가궁극적으로 독일인을 참을 수 없는 잔인함으로 이끌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독일인들의 특별한 ‘이타심‘, 즉 윤리와는 상관없는 의무감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고 본다. - P374

과학소설 작가 어슐러 르귄 Ursula K. Le Guin은 자신의 에세이 「구의 운반가방 이론 The Cartier Bag Theory of Fiction(1986)에서 영웅여정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영웅 여정이 수천 년 동안 어떤 다른 서사 방식들을 억압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인류 초기의 채집인들은 먹을 것을 조달하는 일만 하면 됐고 아주 많은 시간을 가지기는 했지만,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극적인 경험은 거의 하지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위험한 매머드와 대담한 용사들에대해 전하는 사냥꾼의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었다. 르귄은 ‘살육자이야기Killer Story‘와 ‘삶의 이야기 Life Story‘를 구분한다. 한편으로는 화살이 발사되어 과녁을 맞히는 것과 같은 선형적 갈등을 담고 있는 이야기, 다른 한편으로는 큰 소동을 중심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이야기. 이이야기는 도구와 무기를 거부하고 에너지(음식의 형태)를 밖으로 내뿜기보다는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용기와 가방을 칭송한다. 르귄은 살육이야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과 명시적으로 연결 지으며, 소설 특히 과학소설에서 운반가방에 상응하는 것을찾는다. 그녀는 서사를 갈등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영웅을 무대에 세우기보다 가방 안에 집어넣으면 ‘토끼나감자처럼 보인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즉 소설은 그안에 영웅 대신 사람들을 담는다." - P411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자유화와 해방으로인해 불안이 증가하면서 과장된 남성성, 즉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성장하는 남성 자기 서사의 한 형태가 생겨났다. 이러한 서사가 가장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포르노그래피 Pornography다. 포르노그래피는 디지털화와 그에 따라 극도로 단순화된 제작 및 배포를 통해 명백히 여성 혐오적인 차원을 다시 한번 배가시켰다. 오늘날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 14세 청소년은 온갖 성적표현이 난무하는 폭력적인 이야기들을 소비할 수 있다. 반면 ‘페미니스트 포르노라는 방편으로 모욕적인 남성의 시선과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의 시선을 대비시키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여전히 상업적돌파구를 찾고 있다. 포르노그래피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다수의 포르노가 우리가 이 장에서 파악하고 있는 내러티브를 정확히 재현하고 있다. 즉 여성을 물건이나 함정으로 남성을 지배자나 기계로 간주하며, 성을 투쟁으로, 쾌락을 자원으로 여긴다. - P4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