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 P7
"고 선상님을 잘 알그마요." 그제야 어머니의 눈빛에서 경계가 사라졌다. 사회주의자답지 않게 어머니는 낯선 사람, 낯선 것에 대해 경계가심하다. 어머니에게는 익숙한 것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다. 그중 가장 익숙하고 좋은 것이 사회주의이고 동지들일 뿐이다. 어머니는 몇시간 전 세상 떠난 아버지가 북한을 비판하면 파르르 날을 세우던, 누가 보면 천생 사회주의자였다.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음으로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P21
아버지가 최 약방의 꼬임에 넘어가 한약을 먹는 바람에 나의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열일곱의 나는 믿었다. 그 무렵 읍내 오거리에서 최약방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환갑 넘어 눈도 안 좋았을 그는 스스로 지은 약을 먹고 개안한 것인지 눈이 나보다 밝아, 저 멀리서•나를 보며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나롤 이 세상에 불러낸 원흉을 일별도 하고 싶지 않아 재빨리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에게 동생이 하나뿐이었다는 걸, 일찍 어머니를 잃어 그가 업어 키운 아들 같은 동생이었다는 걸, 그 동생이 아버지 바로 곁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자기 몫까지 잘 살라는 동생의 유언을 그에게 전해준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는 걸.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아버지도 그랬다. - P28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건대 늘 그랬다. 유관순 언니보다두해 먼저 태어난 할머니가 1991년 세상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지로 향하는 상여를 뒤따를 때도, 유품을 정리할 때도, 그 유품 속에서 닳을까봐 헝겊에 꿰매놓은 자신의 소학교 졸업사진을 발견했을 때도, 아버지는 아래윗집 살던 할머니와 오며가며 인사나 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무수한 죽음을 목도했다. 보급투쟁을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왔더니 동지들의 시신이 목 잘린채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예의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덤덤하게 말했었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3
박선생도 아버지만큼 부지런하여 일찍 일어났다. 긴아•침나절이 무료하여 신문도 직접 받을 겸 허물없는 친구도볼 겸 배급소로 나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박선생이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빼앗아 후루룩 일별했다. 그러고는 박선생에게 휙 집어던졌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꿔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 두 노인네는 매일 아침 투닥거리며 늘그막을 보냈다. 신문을 들고 집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앞에서 평생 교련선생 한 놈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박선생 흉을 보았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라 어느 날 짜증이 나서물었다.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촥 펴면서 말했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 P46
"괜찮다. 괜찮아." 자기 상태가 괜찮다는 것인지, 죽음이란 것도 괜찮다는것인지, 살아남은 자들은 그래도 살아질 테니 괜찮다는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불현듯 눈물이 솟구쳤다. 그 눈물의 의미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빠는 우는 나를 가만히지켜보기만 했다.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만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그 눈빛 앞에서 차마 더는 울어지지 않았다. 내 울음이 사치스럽게느껴졌기 때문이다. 본디 눈물과는 친하지 않기도 했다. 오빠가 테이블에 손을 짚은 채 몸을 일으켰다. 왔을 때처럼 오빠는 휘적휘적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허리춤에서 엉덩이까지 어른 주먹 몇개는 들락거릴 정도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P85
국화꽃 한송이를 제단에 올린 아이는 가만히 서서 아버지 영정 사진을 응시했다. 조문이 처음인 듯했다. "절할래요? 두번 절하면 돼요." 아이가 시킨 대로 두번 절을 올렸다. 나와의 절은 생략했다. 절을 올리고 난 아이가 쓱 얼굴을 훔쳤다. 나는 모르는 둘만의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냥 가려는 아이를 한갓진 안쪽 접객실 테이블로 이끌었다.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버지라면 응당 그러했을테니. "우리 아버지랑 친했나보다." 아이가 콜라를 마시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애들은 천날만날 놀리기만 했는디••••••" 엄마가 베트남 출신인 모양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미제국주의 운운, 아버지다웠다.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담배를 피우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이가 겪어왔을 세월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알았을 테고 아버지 방식대로 위로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게 아버지식의 위로였다. 그 위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잘 먹혔다. - P140
"아니여. 나가 맹근 누룽지가 자네 것보담 시배는 크거든, 우리 아리가 누룽지라면 환장을 허잖아." 아닌디, 누룽지 안 줘도 아빠가 최곤디, 잠결에 중얼거했고 아버지는 하하, 밤하늘이 시끌적하게 웃어젖혔다.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경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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